레벨업 머신 265화
5분짜리 절대자(2)
“후우.”
영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팔꿈치 만 남은 그의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 었다.
-철컥.
안드라스의 가슴에 박혀 있던 그의
오른팔이 공중으로 떠올라 팔꿈치에 다시 장착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감싸고 있 던 은회색 슈트가 밝은 빛 무리로 변해 왼쪽 손등으로 흘러들어갔다.
[슈트의 사용 제한 시간이 다 되어 문양의 형태로 되돌아옵니다.] [다용도 기능성 전투 슈트 ‘데우스 엑스 마키나 0식’은 72시간 이후에 사용 가능합니다.] [현재 보안 레벨 상태에서는 코어 의 신성 에너지를 운용할 시 오버로 드의 위험이 있습니다. 신성 에너지 는 슈트 착용 시에만 사용하는 것을 권고 드립니다.]
“흐음.”
영식은 눈앞에 떠오른 푸른색 창을 바라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모든 보안 레벨이 해제되지 않은 건가.’
악마 대공이라는 강대한 존재를 일 격에 죽일 수 있는 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과거의 기억이 담겨 있는 보안 레벨은 해제되지 않 고 있었다.
‘이제는 구조파악 스킬을 올릴 방
법도 없는데.’
영식은 살짝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까지 복잡한 구조, 혹은 상위 등급의 기계에 구조파악을 해서 스 킬 레벨을 올렸지만 더 이상 그것도 불가능했다.
구조파악의 숙련도가 오르는 기계 가 이제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결국 모든 보안 레벨을 해방하지 는 못한 채로 싸워야 하나.’
이렇게 된 이상 원래 계획 중이었 던 강제해방으로 모든 보안 레벨의 해방을 노리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 법은 없었다.
‘아니면.’
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과거 영식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신성의 힘.
그것을 활용하여 싸우는 방법이 있 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트….”
영식은 그 알 수 없는 이름을 입 에 담았다.
어째서인지 속이 메스꺼워지며, 머 릿속이 어지러워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일단은 이 5분에 모든 것을 다하 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겠네.’
강제해방은 그가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막말로 죽을 때까지 발동하지 않는 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단테리온은 날 죽이려고 하 지는 않으니까.’
발동할 수도 있지만, 발통하지 않 는다고 해서 억울해할 수는 없다.
그것이 지금 강제해방의 현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확실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영식에게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5분이라는 점이 좀 걸리지만.’
인스턴트 라면도 아니고 고작 5분 만에 전투를 마칠 수는 없었다.
낮은 레벨의 소환자 간의 싸움에서 는 5분 만에 승부가 나는 일도 종 종 있었지만 조금만 높아져도 5분이 라는 전투 시간은 지나칠 정도로 부 족했다.
완전 동수라는 가정 하에 랭커들은 몇 시간, 길면 하루가 넘도록 전투 를 이어가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
‘단테리온도 역장을 다룰 수 있다면.’
슈트를 입는다고 해도 완전히 압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고… 결정적인 순 간에 슈트를 입는 방법 외에는 없나.”
영식은 밖에서 길드원들이 애타게 기다린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가 단테리온에게 효과적으 로 사용할 수 있는 패는 3개.
하나는 지난 수개월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강력해진 연합군의 전력.
그의 안드로이드 군대가 정확히 어 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연합군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대패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특히 이브의 경우 예상하지 못하 겠지.’
칼기아의 검술에 대해서 깨달은 루 시아와 일전을 벌일 수 있는 이브의 존재는 단테리온의 군대를 상대할 때 와일드카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강제해방.
목숨을 건 보안 레벨의 해방을 통 해 과거의 힘을 되찾아 그와 싸우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은 이번에 얻은 신성 의 힘이었다.
‘좋아.’
이 정도라면 충분히 쓸 만한 패였 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세월아 내월아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이제 결판을 내야지.’
영식은 손을 들어 자신의 명치를 만졌다.
그의 코어 안에 잠들어 있는, 우주 의 법칙을 왜곡하는 힘의 존재.
이것을 얻은 것으로 전투에 필요한 조건들이 모두 충족된 듯한 기분이 었다.
‘5분이라면, 신성과 역장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내가 더 유리해.’
단테리온의 역장이 지금 영식보다 완벽하다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강력 한 슈트와, 신성의 힘이 있었다.
아예 승산이 없는 발버둥이 아니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고, 싸울 수 있다.
영식은 가슴 위에 올린 손을 내리 며 밖으로 향했다.
지금은 단테리온이나, 데우스 마키 나 프로젝트에 대한 것보다 그를 걱 정하고 있을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 을 보고 싶었다.
“주인님!”
“괘, 괜찮아요, 영식 씨? 어, 엄청
난 굉음이….”
던전 밖으로 나가니 길드원들이 걱 정 어린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한 것과 달리 던전에서 얼마 떨어져 있 지 않은 장소였다.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하아…. 다, 다행이에요. 영식 씨.”
“믿고 있었어요, 주인님!”
G = = TZ = rz
n?I?I~I~I~r.
전차처럼 굉음을 내며 달려든 루시 아가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영식은 그녀의 눈가에 맺힌 선명한 눈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랬던 것치고는 꽤나 불안해하던 것 같았는데.”
“그,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전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있었어요!”
“하하하. 알았어.”
“마스터, 루시아만 안아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알림. 성공적인 도킹 을 위해서라도 본 기체에도 관심을 쏟을 것을 요구.”
‘그러니까 그 도킹이 대체 뭐냐고.’
영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양쪽 에 달라붙은 루시아와 이브의 머리 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양옆을 차지한 두 사람을 바 라보며 티리아와 아라는 잠시 서로 의 눈치를 살피며 움찔움찔 몸을 떨 었다.
최근 여난(?)을 많이 겪으며 눈치 가 빨라진 영식은 그에게 안겨든 두 사람을 잠시 떼어내고는 티리아와 아라를 향해 걸어갔다.
“자, 마음 것 울어도 괜찮아!”
“…재수 없어.”
양팔을 넓게 벌린 채 씨익 미소를
짓고 있는 영식을 바라보며 아라가 묵직한 한마디를 날렸다.
하지만 그런 말과 달리 아라와 티 리아는 조심스럽게 영식을 향해 다 가갔다.
“영식 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너무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저한테도 그렇게 말씀 하셨잖아요.”
“미안해. 하지만 그래도… 언제 터 질지 모르는 폭탄이 있는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이번에 길드원들을 밖으로 내보낸 것은 희생과는 개념이 달랐다.
그 자신의 코어가 대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길드원들을 가 까이 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 이었다.
그 상황에서 길드원들을 가까이 두 는 것은 슈류탄이 떨어지는데 ‘뭉쳐 야 산다!’라며 병력을 결집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인 멍청한 짓이니까.
“그렇긴 해도…. 차, 차라리 영식 씨 혼자 죽게 놔둘 바에… 같이 죽 는 편이 나은 걸요.”
‘얘는 또 왜 이래.’
루시아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티리아,
네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잖아.”
“영식 씨….”
티리아는 울먹이는 눈빛으로 영식 의 팔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그의 팔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채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티리아 언니 임신했어?”
‘이 꼬맹이는 또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채, 채린아!”
티리아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채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채린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히죽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오빠가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기에? 나는 또 좋은 소식이 있 는 줄 알았지.”
“그, 그런 거 아니야!”
“맞아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끼어든 루시아가 채린을 향 해 소리쳤다.
그녀는 티리아에게서 영식을 잡아 끌며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눈빛으 로 주변을 경계했다.
“저보다 먼저… 다른 사람이 주인 님의 아이를 얻는다면… 알죠?”
‘대체 뭘 할 생각이야.’
영식은 짙은 살기를 주변에 줄기줄 기 뿌리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걱정 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채린에게 들은 지구의 얘기 중에 루시아와 같은 여자주인공이 등장한 다는 만화가 하나 떠올랐다.
‘뭐시기 데이즈라고 하던데.’
그 만화의 마지막에 그 루시아와 닮은 여자주인공이 질투에 눈이 멀 어 다른 여자의 목을 톱으로 썰어내 는 장면도 있다고 들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주변을 향해 살기를 뿌리는 루시아 의 모습을 보니 불안한 것도 사실.
영식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 박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같은 길드 원에게 그러지는 말라고 했지.”
“읏... 죄, 죄송해요, 주인님.”
루시아는 머리를 감싸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국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다섯 사람의 치정극(?)을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베냐가 영식에게 다가와 물었다.
“뭐... 결과만 간단히 말하면 안드 라스는 이제 죽었어.”
“안드라스가 죽었다고?”
“그래. 친절하게도 내게 이 대륙의 안전을 위해 힘을 사용하라고 신성 을 건네줬지.”
죽은 안드라스가 들었다면 입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말이었다.
“농담이고, 어쨌든 안드라스가 가 져간 신성의 일부를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맞아.”
“미, 믿어지지 않는군. 어떻게 필멸 자의 몸으로 신성을….”
“뭐, 그 일부에 불과하니까. 나도 황성에 있는 신성까지는 사용하지 못해.”
“하지만….”
베냐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그는 피식 웃음 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안드라스라도 결국 만 년이 지나면 이 힘을 사용할 수 있 었던 거였잖아? 난 그만큼 시간을 들 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것뿐이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행이로군. 이로써 사실상 북방의 악마들에게서 대륙을 지켜내 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됐구나.”
“아니, 그런 건 아냐.”
영식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 었다.
“힘을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사 정상 5분밖에 사용하지 못해.”
“아….”
“5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그의 말에 길드원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영식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프로젝
트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길드원들에게 설명했다.
“아… 그러면 그때 그 회색 슈트를 이제 사용할 수 있게 된 거구나.”
“5분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껄껄! 그래도 5분이 어디인가!”
길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영식의 어 깨를 두들겨 주었다.
“신성이란 게 그렇게 대단하다면 지금 영식이 자네는 절대자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5분짜리 절대자지만요.”
영식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 의 왼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만약 자신이 제한적이지 않은, 완 전한 신성의 힘을 다룰 수 있었다면 소중한 길드원들에게 목숨을 건 전 쟁을 치르지 않게 해줄 수도 있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에요!”
그때, 풀이 죽어 있던 루시아가 강 하게 반발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영식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루시아….”
자신을 응원해 주려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영식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인님은 5분짜리가 아니에요! 제가 알고 있는 걸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