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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60화 (260/284)

레벨업 머신 260화

신성 (神性) (3)

“?그랬던 거군.”

뿔뿔이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뭉친 듯한 감각.

‘황성 벽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단 단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

역장을 익힌 후, 영식은 황성 벽을

향해 역장을 사용해 봤다.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역장 이라면 혹시 황성 벽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는 참패.

전력을 쥐어짜내 만들어낸 역장은 황성 벽에 흠집하나 내지 못했다.

그가 사용하는 역장이 불완전한 탓 도 있겠지만 드래곤 하트의 마력까지 제어할 수 있었던 역장이 고작 벽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에 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흠집을 낼 수 없었겠지.’

베냐의 얘기를 들으니 왜 자신이

황성 벽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황성의 외벽을 보고하고 있 는 보호막은 이 세계의 근간을 이루 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라핌은….”

“맞다. 처음부터 신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바로 이 자리에 황성을 만든 것이지. 그리고 동면에 든 신성의 자아는 이 황성을 자신을 지킬 성이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잉그리움 제 국의 황성만이 대전쟁 속에서도 멀 쩡히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지.”

영식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였다.

‘과거의 나도 이 황성에 있는 신성 만큼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말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까 지의 정황으로 보면 과거 자신이 대 전쟁을 주도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이었다.

그 전쟁 속에서 황성이 멀쩡하다는 의미는 과거 자신의 힘으로도 신성 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깐만.’

영식은 신성에 대해서 떠올리며 가 볍게 눈을 감았다.

루크델라와의 사건이 있던 후, 황 성 외벽을 조사했을 때가 떠올랐다.

‘분명 황성 외벽에 흐르는 에너지 는 주변으로 점차 퍼져 나가고 있었 어.’

황성에서 떨어질수록 그 영향력은 약해졌지만 분명 외벽의 기운이 주 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던 것만은 확 실했다.

“신성은... 주변에 퍼져 나가거나 영향을 주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음? 네가 그걸 어떻게 안 거지?”

‘ 역시.’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거지?”

베냐의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가진 에너지를 육안으로 확인 하는 기술에 대해서 일일이 그녀에 게 설명해 줄 여유는 없었다.

“흠…. 어떻게 그걸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성의 힘은 주변 전체 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아 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세계 자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해야겠군.”

“세계 자체에 영향을 준다고?”

“너도 상태창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리고 눈앞에 푸른색 창이 떠오르 거나 레벨,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겠 지.”

“신성은 우주의 법칙을 왜곡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세계를 구성 하는 모든 기적은 신성의 힘으로 이 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 참… 편리하네.”

영식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올렸다.

레벨, 스킬, 메시지 창 등등.

지구에서는 없는, 에르노어 대륙에 만 존재하는 시스템.

제조 스킬을 사용했을 때 질량 보 존의 법칙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는 듯 만들어지는 물건들.

그 현상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8영웅이 모두 잉그리움 제국 출신이라는 사실이나 최근 들 어서 랭커들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는 것도….’

신성의 영향을 가까이서 받았기 때 문이라는 의미였다.

“하아….”

“머릿속이 복잡한가?”

“뭐, 복잡한 건 사실이야. 이런 믿 기 힘든 정보를 한 번에 몰아들었으 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아귀는 맞는다.

신성이라는 것 하나로 이제까지의 대부분의 의문점들이 해결된 기분이 었다.

‘정작 중요한 의문점들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문점.

왜 자신이 부하들을 배신하고 단테 리온에게 돌아섰는지는 지금 들은 정보로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락테온에게 알려준 정 보는 그게 전부야?”

“그렇다. 그는 신성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들은 적 있어?”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저 자신 의 대장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료라고만 말했다.”

“설득이라….”

이제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배신자는 락테온이었어.’

어떤 이유에선지 락테온은 배신을 생각했고, 자신을 그 배신에 동조시 키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에게 동조했다.

대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봐서는 바 로 한 번에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이후에 시간이 지나 결 국 자신은 락테온의 손을 들어준 것 이다.

‘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모든 진실이 담겨 있다는 메모리칩 이 다시금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익숙한 답답함이 그를 옥죄였다.

“후우.”

영식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 왔다.

메모리칩이 그에게 없는 이상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유는 중요하지 도 않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알았다고 해도 정작 바뀌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배신의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배신

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단테리온과 싸우는 데 있어서 배신 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 테리온을 이길 수 있는 힘이었다.

‘신성처럼 강력한 힘.’

왜 악마 대공이 신성을 노리고 큰 전쟁을 벌였는지 영식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엘리아와의 전투에서 강제 해방을 했을 때 느낀 전율스러운 전능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를 할 수가 없었 다.

역장만으로도 그런 기분을 느꼈는

데 우주의 법칙을 왜곡할 수 있다는 신성의 힘을 얻으면 어떤 기분이겠 는가.

욕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역장으로 저 힘을 제어할 수만 있 어도 좋았을 텐데.’

역장은 거대한 에너지의 결정체를 자아가 없는, 순수한 에너지로 만들 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아를 가지고 있었던 드래곤 하트 를 순수한 에너지로 만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 같이 신성의 힘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는 말 그대로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는 것이 가능했다.

“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힘이라 고 하니까.”

신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 가.

영식은 끓어오르는 욕심을 마음속 한편에 묻어두었다.

“신성 말이냐?”

“맞아.”

“…그렇지. 신성의 일부를 받아들 인 안드라스만 하더라도 기적 같은 우연의 일치였을 뿐. 실제 그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 을 것이다.”

베냐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음…?”

그때, 영식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뭐지.’

뭔가, 중요한 무언가를 깜빡 잊어 버린 듯한 감각. 정갈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에 참기 힘든 위화감 이 느껴졌다.

‘잠깐만.’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성은 이 세계의 근간이며, 근원 인 힘이다.

황성 보호막의 정체는 신성이었다.

신성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다.

베냐와 나눴던 이야기의 흐름 속에 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영 식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신 의 명치 쪽에 손을 올렸다.

그의 코어가 자리 잡고 있는 장소 였다.

‘분명 전에….’

자신의 코어에 황성 보호막과 동일

한 기운을 가진 에너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황성 보호막의 정체는 신성이었다.

‘그렇다면 난 이미 신성을 받아들 였다는 얘기잖아.’

아직 코어 안에 잠들어 있는 그 기 운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는 신성이 자신의 코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에 게서 받은 정보와, 지금 상황이 연 결되지 않았다.

“안드라스는 신성의 힘을 받아들였 다고 했지?”

“그렇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기 적 같은 운이 있었던 덕분이지.”

“그리고 신성을 받아들인 대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되었고?”

“방금 전에 다 말한 얘기 아닌가.”

베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 라보았다.

영식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신성을 받아들인 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이상한 영향을 받은 적 은 한 번도 없었다.

‘ 어째서?’

분명 베냐는 신성은 아무도 받아들 일 수 없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최 소 만 년 이상 그 힘과 융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움직이지 못하는 몸 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코어 안에 신성을 받아들이고도 아무런 영향도 없이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

‘기계의 몸이기 때문인가?’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정보 가 너무 부족했다.

“베냐, 안드라스가 있다는 던전의 위치를 알고 있어?”

“알고 있다.”

“그곳의 위치를 알려줘. 한 번 그 를 만나봐야겠어.”

“그가 있는 던전은 왜 물어보는 건 가? 어차피 그는 앞으로 9천 년 이 상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안드라스보 다 북방에 자리 잡은 괴물들의 창조 주였다.

물론, 만년의 시간이 지나 신성의 힘을 완전히 얻은 안드라스는 대륙 에 큰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여기서 안드라스를 걱정하는 것은 목 앞에 칼이 드리워져 있는데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 아닌가.

“그가 가지고 있다는 신성을 확인 해야겠어.”

다른 존재가 신성을 받아들였을 때 는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할 필요 가 있었다.

“갑자기 왜….”

“나도 그 신성이란 걸 받아들인 상 태거든.”

“뭐, 뭐라고?”

베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영식 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대방의 말 이 진실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짓이 아냐.’

지금 영식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들어있지 않았다.

베냐는 눈에 격렬한 동요가 서렸다.

“하, 하지만 어떻게 신성을….”

“정 의심되면 직접 확인해 봐.”

영식은 그의 명치 부분을 손으로 건드렸다. 베냐는 가늘게 몸을 떨며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허….”

베냐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 왔다.

그의 가슴 너머에는 분명 황성 외 벽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 란스럽다는 듯이 그의 가슴을 더듬 었다.

그때 였다.

“주인님! 한성 씨에게 들었어요!

어떤 여자가 주인님을 찾아왔….”

거칠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 루시아 의 눈에 영식과 베냐의 모습이 들어 왔다.

가만히 서 있는 영식과 그의 가슴 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 녹색 머리 칼의 여자.

“하, 하하.”

루시아의 입에서 섬뜩한 웃음소리 가 흘러나왔다. 망가진 인형처럼 딱 딱한 동작으로 그녀의 고개가 돌아 갔다.

“꿈…. 그래, 차라리, 차라리 꿈이 라고 말해주세요, 주인님.”

저주를 읊조리는 듯한 음산한 목소 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신의 가슴에 올려진 베냐의 손을 치운 영식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아, 이건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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