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58화
신성 (神性)(1)
“영식 씨를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이요?”
갑작스러운 한성의 말에 영식은 고 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타이밍에 영식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죠? 박시아 씨인가요?”
“아뇨 저도 처음 보는 여자였습니다.”
?%.
‘면접에서 떨어진 생산직 소환자인 가?’
당장 떠오르는 가능성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헤파이스토스’ 면접에 떨어진 소환자가 불만을 품고 자신 을 찾아왔을 가능성이었다.
생산직 소환자들에게 있어서 헤파이 스토스에 입단하는 것은 유일한 성공 길이었으니 면접에 떨어졌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산직 소환자라면 그냥 돌려보내 주세요.”
그러나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법.
살길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동정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식이 그들 모두를 챙겨줄 필요는 없었다.
잔인한 말이지만 능력이 되지 않는 자에게 대우를 해줄 수는 없는 법이 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생산직 클래스 소환자였다면 제 손에서 벌써 돌려보냈을 겁니다.”
“그렇다면….”
“루크델라의 연락을 받고 영식 씨
를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루크델라.
지금 영식이 마음 놓고 제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소중한 공 장이었다.
‘루크델라의 연락을 받았다는 건.’
그를 찾아온 여인의 정체가 드래곤 일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사무실로 불러주세요.”
“예, 영식 씨.”
영식은 의자에 앉아 한성이 자신을 만나러왔다는 여인을 데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끼익.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기 다란 녹색 머리칼을 땋은 여인이 사 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창백해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영식을 보고는 흠칫 몸 을 떨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뭐가 맞았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 만 일단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합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고 있는 영식 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은 베냐. 바람을 관장하는
드래곤이다.”
‘ 역시.’
영식의 예상대로 방 안으로 들어온 여인의 정체는 드래곤이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거죠?”
“루크델라에게 살려달라는 구조 신 호를 받았다. 자네에 대한 것도 루 크델라를 통해 미리 들었지.”
‘그 빌어먹을 도마뱀이.’
용언의 속박에 의해서 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으니 다른 드래곤에게 도움을 청한 것 같았다.
‘어떻게 연락을 한 거지?’
지금 루크델라는 용언의 속박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그녀에게 도 움을 청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는 없는 노릇.
지금 중요한 것은 루크델라가 어떤 방법으로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는지 가 아니었다.
“루크델라를 풀어달라는 말을 하러 오신 거라면 그냥 돌아가세요. 그를 풀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루크델라는 지금 영식의 계획에서 핵심적인 존재였다. 어렵게 얻은 황 금 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서 놓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며 영식은 살짝 기운을 일으켰다.
여기서 억지를 피운다면 가만히 있 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흐읏 ?!”
“웅‘?”
그가 일으킨 기운을 받은 베냐는 신 음을 흘리며 애처롭게 몸을 떨었다.
영식은 드래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 렸다.
“하아, 하아. 기운을, 거둬줬으면 좋겠군.”
“…어떻게 된 일이죠?”
드래곤은 그 자체로 강력한 존재였 다. 영식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고작 기운을 조금 내뿜은 것 정도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북방에서의 전투에서 큰 상 처를 입었다. 지금 내 힘은 인간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해.”
그녀의 말에 영식은 굳게 입을 다 물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 지는 않았다.
베냐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어 렵게 말을 이었다.
“구조 신호를 받고 오기는 했지만 내가 온 이유는 그 미련한 멍청이를 구해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런 머 저리는 어떻게 되던 아무 상관없어.”
‘역시 인망이 아주 두텁구만.’
루크델라의 훌륭한 인맥 관리에 감 탄하며 영식은 입을 열었다.
“홈. 그렇다면?”
“나는 너를 만나고 싶어서 왔다.”
“저를?”
영식은 가늘게 눈을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냐가 상처를 입은 몸 을 이끌고 굳이 자신을 만나러 온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루크델라가 인간들에게 무슨 취급 을 받고 있는지 전해 들었을 텐데.’
지금 루크델라는 좀 과장을 하면 차라는 죽는 것이 나은 상태였다.
산채로 신체의 일부가 뽑혀나가고 재생하고를 반복하는 삶이라니.
아무리 고통을 줄여주었다고 하지 만 잔혹한 고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해서 자부심이 강한 루크델라의 입장에서 는 정말 자살만 할 수 있다면 자살 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동족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는 자신을 그녀가 직접 찾아올 만 한 이유가 있을까.
“그래. 네게 할 얘기가 있다.”
“말씀해 보세요.”
“그전에 우선 확인해 두마.”
베냐는 긴장감이 서린 표정으로 영 식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북방의 악마가 맞는가?”
“아뇨.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 는지는 모르지만 잘못 짚으셨습니 다. 전 명실상부한 인간입니다.”
영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질문 에 대답했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대답.
마치 그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정말로 그가 인간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안 거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내심 영식은 당황하고 있 었다.
자신의 정체를 이렇게 쉽게, 그것 도 얼굴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인이 알아차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이로군.”
“내게는 상대방의 말이 진실인지 거 짓인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군요.”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손 가락을 튕겼다.
-쿠웅!
“으윽!”
영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압박했다.
베냐는 의자에서 떨어져 내려 바닥 에 쓰러졌다. 그녀의 입을 타고 거 친 신음이 홀러나왔다.
영식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 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거 지?”
“읍…. 흐윽. 이익.”
?탁
“하아! 하아! 보, 보기와는 달리 난폭한 남자군.”
“잡소리는 거기까지. 빨리 말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입을 열게 만들 어주지.”
영식은 살기를 담은 목소리로 밀했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지기 시작 한다면 연합군 자체가 붕괴될 위험 성도 있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인 살바토 르 길드원들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 듣고 혼란스러워 했는데 만약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들 었다면 반응은 뻔했다.
아마 그를 믿지 못하고 적대할 것 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이 여자를 죽여서라 도 정체를 숨겨야 해.’
그의 정체에 대한 건 말 그대로 폭 탄이나 다름없었다. 연합군 자체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는 그 정보를 함 부로 돌아다니게 놔줄 수는 없었다.
베냐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으 니까.”
“좋아. 말해봐.”
“루크델라에게 너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초에 루크델라는 어떻게 네게 구조신호를 보낸 거지?”
영식은 계속 가지고 있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드래곤 사이에서만 가능한 원거리 통신 마법이 있다. 용언을 통해서 가능한 마법이지.”
“흐음. 그래서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들었지?”
“루크델라와의 게임에서 이겼다고 들었다.”
“그래. 이겼지.”
영식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베냐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녀는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 을 이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인간과 드래곤은 신체 구조 자체 가 다르다. 연산 능력이 가장 중요 한 게임에서 인간은 절대로 드래곤 을 이길 수 없다.”
“대단한 자신감이네. 루크델라도 그런 자신감에 차 있었지.”
가소롭다는 듯이 말하는 영식을 바 라보며 베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신감이 아니다. 이건 엄연
한 사실이다.”
“성격은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루 크델라는 천마대전 이후 살아남은 드래곤 중에 가장 뛰어난 연산 능력 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를 무력이 라면 몰라도 게임에서 인간이 이기 는 건 불가능해.”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은 아니야.’
루크델라의 연산 능력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와의 대 국을 통해 영식이 역장을 쓸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서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그를 이 기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멍청한 성격 탓에 그가 가진 능력 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냉정하게 생 각한다면 루크델라는 인간과 격이 다 른 연산 능력을 가진 존재가 맞았다.
“그래서 네 정체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예상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정체를 완 전히 알 수는 없었을 텐데?”
“맞다. 그 정보로는 너에 대해서 완전히 알 수 없었지.”
연산 능력에서 드래곤을 이겼다고 해서 영식을 정체를 괴물들의 창조 주라고 확정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처음 들어왔을 때 나도 모 르게 놀란 것이다. 솔직히 나도 네 가 북방의 악마가 맞는지 확신이 없 었거든.”
영식은 처음 자신의 방에 들어왔을 때 흠칫 몸을 떨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처음에 역시라는 말을 했 던 거군.’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의 행동.
그것이 하나씩 이해가 되는 기분이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의문점
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내 외모만 보고 정체를 알 수 있던 거지? 그것도 무슨 능력을 사용한 건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니 다. 회색 머리칼에 날카로운 눈매. 내가 전해들은 그대의 외모와 똑같 았기 때문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내 외모에 대해서 다른 누군가 에게 전해 들었다고?”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영식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살바토르 길드원뿐.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드 래곤에게 자신의 정체를 떠벌리고 다녔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한테 나에 대한 정보를 들은 거지?”
“아마 너도 알고 있을 사람이다.”
베냐는 침착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락테온. 그자에게 너에 대한 얘기 를 들었다.”
- 쿵.
무거운 추가 가슴 속에 떨어진 듯 한 감각.
영식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어지러
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뭐, 라고?”
그는 격렬하게 떨리는 눈빛으로 베 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