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249화 (249/284)

레벨업 머신 249화

생체 병기(1)

루크델라의 비늘을 뽑는 작업은 착 실하게 진행되었다.

회복이 빠르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지 그의 비늘은 한 번 뽑으 면 일주일 정도 만에 다시 원래 상 태로 재생되었다.

말 그대로 노다지.

무한한 재료 창고를 얻었다고 표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루크델라가 계속해서 비늘을 생산(?)할 수 있도록 그의 체력과 정신 또한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수십 명의 사제가 24시간 그에게 달라붙어 각종 치료 마법과 통증 감 소 마법, 회복 포션을 사용하여 그 가 원활하게 비늘을 생산할 수 있도 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훌륭한 복지 아닙니까?”

영식의 태연한 물음에 루크델라의 몸 상태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사 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통을 억제했다고는 하지만 맨 가 죽에서 강제로 비늘을 뽑는 일인데 그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면 밥 나오 지, 치료도 해주지, 몸도 닦아주지. 다 해주잖아요?”

‘그리고 못 나오지.’

사제는 구속구에 묶여 있는 루크델 라를 힐끔 쳐다보며 안쓰럽다는 표 정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총사령관님. 총사령관 님의 따듯한 배려는 저 용에게도 전 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루크델라의 변호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

사제는 영식을 향해 활짝 미소를 지 어보이며 간사하게 두 손을 비볐다.

권력의 개가 된 그의 훌륭한 모습 에 영식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 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일단 일주일치 비늘은 모두 수거해 가겠습니다. 루크델라의 몸 이 빠르게 재생될 수 있도록 지속적 으로 회복 마법을 걸어주세요. 아, 물론 루크델라를 위해 준비한 최고 급 고기도 매 끼니마다 주고요.”

“예!”

“자, 이제 다시 즐거운 노동의 시 간입니다, 여러분.”

영식이 기운 찬 목소리로 손뼉을 치자 그의 뒤에서 수백여 명의 사내 들이 비척거리면서 걸어왔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 퀭한 눈빛.

마치 좀비 군단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 사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저게 그 레드 드래곤 길드였나.’

뒷골목을 장악한 채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살았을 그들은 이제 연합군의 잡역부가 되어 쉴 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4시간의 노역 끝에 그들에게 주 어지는 임금은 42쿠퍼.

원화를 기준으로 했을 때 4,200원 이라는, 밥 한 끼 사먹기 힘든 금액 이었다.

‘군인도 아니고….’

시급으로 치면 3쿠퍼.

과거 자랑스러운 한국의 국군이 받 았던 시급과 동일한 액수.

제설차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빗자루 하나 쥐고 눈을 쓸어야 했던 그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니, 일단 노동의 강도 자체가 차

원이 다르니 오히려 레드 드래곤 길 드원들의 상황은 차라리 이집트 노 예나 학대 받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르는 편이 맞으리라.

_쿵!

무거운 비늘을 짊어지고 옮기고 있 던 사내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연합군에서 파견되어 그들을 관리 역을 맡은 랭커 하나가 사내의 몸을 거칠게 걷어찼다.

“똑바로 서라, 핫산!”

“예, 반장님!”

가혹하기 짝이 없는 노동 환경을 바라보며 영식은 말리기는커녕 즐겁 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으시군요.”

오히려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레드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 가고 있었다.

“여러분, 노동이라는 것은 웃음과 땀이 합쳐졌을 때 그 결실을 맺는 겁니다. 자, 웃으시죠!”

당연하지만, 사람 크기보다 큰 드 래곤 비늘을 몇 개씩 짊어지고 있는 그들의 입에서 웃음이 나올 리가 없 었다.

영식은 픔 속에서 꺼낸 작은 벨을 손으로 눌렀다.

-띵?!

“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가 벨을 누르자 레드 드래곤 길 드원들은 이 힘겨운 상황에서도 눈 물이 찔끔 날 정도로 폭소를 터트리 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웃음소리와 달리 그들 의 눈을 썩은 동태의 그것처럼 영혼 을 잃어가고 있었다.

일명 웃음 벨.

벨을 눌렀을 시 웃지 않으면 하루 치 임금이 모두 날아가는 마법과도 같은 아이템이었다.

“음. 역시 여러분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쁘군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사 제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영식 을 바라보았다.

‘ 악마.’

-띵띵띵띵.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은 채 연

달아서 벨을 누르고 있는 그의 모습 은 악마 그 자체였다.

‘우리들의 진정한 적은 북방의 괴 물이 아닐지도 몰라.’

주적의 북에 있는 것이 아닌 안에 있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제는 주먹을 움켜쥐며 굳은 결의 가 담긴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영식 사령관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돼.’ 마치 전장에 나온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표정에 서렸다.

“후우. 그럼 모두 수고하세요.”

신나게 벨을 누르던 영식은 다시

품속에 벨을 집어넣고는 창고로 발 걸음을 옮겼다.

‘재료는 이제 어느 정도 모였고….’

남은 것은 한동안 쉬었던 제조를 이어가는 것뿐.

‘슈트만 계속 만들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다른 걸 해봐야겠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락테온. 그가 직접 만든 안드로이드의 모습 이었다.

‘바빠서 거의 얘기도 못 했네.’

여유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 명 의 애인과 붙어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락테온과 대화를 나눌 시간 이 많지 않았다.

‘얘기도 나눌 겸, 업그레이드도 해 줄 겸. 먼저 락테온이 있는 곳으로 갈까.’

영식은 오랜만에 그를 만나러 갈 생각에 살짝 들뜬 표정으로 발걸음 을 옮겼다.

“아, 영식 군.”

“길수 형님?”

복도를 걸어가는 길에 깔끔한 정장 차림을 입은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 는 길수와 마주쳤다.

“오늘이 그날인가요?”

“하하. 그렇네. 포르테양의 생일이지.”

“지금 저녁 식사하시러 가는 길입 니까?”

“그래.”

“펜던트는 당연히 챙기셨죠?”

“당연하지.”

“하하. 건투를 빕니다, 형님.”

“끄응. 이 나이에 이게 뭐라고 이 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어.”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습니까. 사 실 루시아만 하더라도 저렇게 어려 보여도 형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잖 아요.”

“뭐… 그녀만큼 사랑에 열정적인 사람은 흔치 않지.”

“너무 열정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요.”

“하하하. 뭐, 알겠네. 그럼 나는 이 만 가보겠네.”

“아, 형님. 제방에 들어가면 레드 드래곤 길드에서 털어… 크흠. 수거 해온 고급 샴페인이 있습니다. 가지 고 가세요.”

“오, 고맙네, 영식이.”

길수는 영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긴 장에 찬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식은 잠시 흐뭇한 표정으로 길수 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락테 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달칵.

“웅? 영식 군?”

“무슨 일이야, 오빠?”

락테온의 방 안에는 철태와 유나, 채린, 정소림이 함께 있었다.

“락테온을 보러온 건데… 다들 여 기서 뭐 해?”

[본 기체와 친목을 다지고 있는 중 이었다고 알림.]

영식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락테온

이었다.

그는 녹색 빛으로 빛나는 눈을 깜 짝이며 영식에게 다가왔다.

[마스터가 직접 찾아와 주는 것은 오랜만이라고 알림. 본 기체는 기쁨 을 표함.]

“하하. 미안해. 최근 바빠서 잘 찾 아오지 못했어.”

[괜찮다고 알림. 마스터가 바쁜 것 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알 림. 본 기체는 다른 길드원들과도 사이가 좋아 외롭지 않다고 알림.]

“저거 거짓말이야.”

락테온에게 다가온 유나가 가볍게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 었다.

“맨날 영식이랑 만나지 못했다고 침울해 있는 주제에 왜 허세를 부리 고 그래?”

[소환자명 유나는 본 기체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을 퍼뜨리지 않을 것 을 요구.]

“흐응? 뭐가 왜곡됐다는 거야? 방 금 전만 해도….”

[소환자명 유나에게 잘못된 정보의 수정을 요구.]

락테온은 유나에게 두 팔을 뻗어 그녀의 말을 멈추려고 했다.

영식은 그런 그의 모습에 살짝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 는 모양이네.”

“뭐, 영식이 너보다 훨씬 귀여운 기계니까 말이야.”

어째서인지 유나는 뾰로통한 표정 으로 락테온을 끌어안았다.

락테온은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 기 위해 몸을 바동거렸지만 지난 수 개월간 영웅의 힘을 더욱 사용할 수 있게 된 그녀의 힘을 거스르지는 못 했다.

[손을 치워 달라고 알림.]

‘뭐... 귀여운 건 사실이니까.’

자신이 만든 안드로이드이기 때문 인지, 아니면 락테온 자체의 성격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귀 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자식 같은 존재니까.’

다른 지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안 드로이드와 달리 락테온은 지성을 가지고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단순한 제조품이라고 생 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줄게.’

이제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락테온 에 대해서 소홀이 했던 것이 미안해 졌다.

‘일하느라 자식을 돌봐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이런 기분일까.’

영식은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미소로 유나와 장난을 치 고 있는 락테온을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그래… 락테온군은 정 말 귀엽지….”

아무래도 락테온을 귀엽다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영식과 유나만이 아 니었던 모양.

박철태는 흥분한 표정으로 거친 콧 바람을 내뿜으며 락테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무섭다고 알림.]

“아아, 걱정하지 말게. 아무것도 아 지 않을 테니까…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네….”

[눈빛이 너무 무섭다고 알림.]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슬금슬금 락테온을 향해 뻗고 있는 박철태를 보며 영식은 정소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상태의 그를 막을 수 있는 것 은 정소림뿐이었다.

“야, 근육 돼지. 빨리 손 안 치워?”

“읏….”

“하아…. 내가 못살아. 대체 이런 로봇 오타쿠의 어디가 좋다고….”

정소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 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올렸 다. 삶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내, 내 인생을 모욕하지 말게! 로 봇의 아름다움을 소림 양이 알 수 있을 리가….”

“시끄러워, 이 오타쿠야.”

“으윽! 내, 내게 대체 왜 그러는

건가! 로봇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 나! 그리고….”

박철태는 굳게 주먹을 움켜쥔 채 진지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타쿠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단 말 일세!”

방 안에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내 려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