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47화
쓰레기 치우기 좋은 날(3)
‘뭐야, 이놈들?’
조성현은 태평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가 함께 대동한 길드원들의 숫자 는 50명 이상.
그것도 하나하나가 어디서 꿀리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는 소환자들이 었다.
‘개념이 없는 놈인가?’
이 정도 숫자의 상대를 앞에 두고 저런 태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떠올 랐다.
‘낙하산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 군.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이번 면접관 인선에 있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측은 바로 면접관 자체가 낙하산이라는 가설이었다.
수개 월 동안 요새에 얼굴조차 보
이지 않았고, 어디 다른 곳에서 유 명한 장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도 아닌 생산직 소환자가 면접관 자리 를 홀로 차지했으니 꽤나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 딱 그거지.’
조성현은 길드원들에게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덤덤한 영식을 바라보며 낙하산 인선에서 자주 보이는, 현실 의 무서움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애 송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영식은 조성현에게 한 걸음 다가가 며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사내들을 빠른 속도로 살폈다.
‘이놈들이 그 레드 드래곤인가 뭔 가 하는 놈들인가?’
치열한 싸움 끝에 뒷골목 세계 장 악에 성공한 신생 길드.
전에 받아보았던 보고서에 분명히 본적 있는 길드의 이름이었다.
‘잘됐어.’
요새를 병들게 하는 썩은 고름. 언 젠가 한 번쯤 시간을 내어 제거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줄 줄이야.
‘이번 기회에 아주 뿌리를 뽑아버 려야겠네.’
이런 놈들은 어설프게 처리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완벽하게 처 리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 운 놈들이 나타나 똑같은 짓을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청소를 안 할 수는 없지.’
그들을 가만히 방치해 두는 것은 어차피 길거리의 쓰레기가 안 쌓일 수는 없으니 청소를 하지 말자는 것 과 같은 의미였다.
길을 걷는데 더러울 정도로 쓰레기 가 쌓였다면, 한 번쯤은 대청소를 해줄 필요성이 있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부라려?
앙? 확 눈까리를 뽑아버릴까 보다.”
‘뭐지 이 저렴하기 짝이 없는 대사는.’
영식은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전 형적인 양아치의 대사에 허탈한 표 정을 지었다.
‘저런 놈이 뒷골목 세계를 장악했으 니 치안이 개판인 것도 이해가 되네.’
머리가 좋은 놈이었다면 뒷골목을 장악한 순간 연합군의 눈치를 봐가 며 최대한 몸을 사렸을 것이다.
뒷골목에서는 레드 드래곤 길드가 가장 강력하다고 해도 결국은 뒷골 목 세계.
전 대륙의 힘이 집결되어 있는 연 합군이 가진 전력에 비한다면 레드 드래곤 길드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 나 다름없었다.
‘지들이 무슨 카르텔 조직이라도 되는 줄 아나.’
정규군을 위협할 만한 전력을 가지 고 설치고 있다면 모를까.
훈련도 되지 않는 소환자를 대충 꾸려서 만든 길드가 이렇게 거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우습게까지 느 껴 졌다.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따라 와, 새끼야.”
“아까부터 새끼, 새끼 더럽게 시끄럽 네요. 듣는 사람은 생각 안 합니까?”
“뭐라고? 이 건방진 새….”
영식을 향해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던 조성형의 몸이 흠칫 굳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드래곤 웨폰 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감각에 잠시 흥분했었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 은 시장 한복판이었다.
언제 소식을 듣고 연합군이 출동할 지 알 수 없다는 의미.
“?조용히 따라와.”
“뭐, 그러죠.”
영식은 태연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잠시만요.”
“뭐야?”
“좀만 기다려 봐요. 살 물건이 있 거든요.”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조성현의 발에 걷어차여 쓰러진 좌 판을 다시 원래 자리에 세웠다.
“이거 펜던트 얼마입니까?”
“그, 저… 오, 오십 실버… 입니다.”
“여기 10골드 드리겠습니다. 좌판
은 죄송하게 됐네요.”
“가, 감사합니다!”
영식에게 골드를 받은 밤색 머리칼 의 여인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런 개….”
그런 그의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모 습에 조성현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 것이 당연했다.
“혀, 형님.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저놈 태도 말입니다. 너무… 여유 로운 것 같습니다. 혹시 배후에 연 합군의 거물이 있는 건….”
“홍. 어차피 그래봤자 생산직이야. 아무리 낙하산이라고 해도 연합군 놈들도 병신이 아닌 이상 고작 생산 직 하나를 보물처럼 애지중지 해줄 것 같아? 저놈도 거기서는 언제든 버 려도 되는 노예 취급 받을 거라고.”
생산직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소환 자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 었다.
연합군도 그 주요 간부층이 소환자 들로 이루어진 이상 생산직 하나를 구하기 위해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조성현은 아지트로 돌아가자마자
저 건방진 놈을 흠신 두들겨 패주겠 다는 생각을 하며 필사적으로 화를 억눌렀다.
“여기요, 형님.”
“고맙네, 영식이. 이건 내가 사야 했는데 말이야….”
“뭐, 괜찮습니다.”
돈이라면 어차피 썩어 넘칠 정도로 많았다.
영식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조성현 의 뒤를 따라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밝은 태양빛이 쏟아졌다.
“끄응.”
영식은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며 한 껏 기지개를 폈다.
기지개를 편 그는 품속에서 주먹보 다 작은 통신기를 하나 꺼내어 버튼 을 누른 후, 다시 품에 넣었다.
‘쓰레기 청소하기 좋은 날이네.’
영식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달칵.
미로처럼 얽힌 뒷골목 사이를 지 나, 으슥한 통로를 지나자 던전처럼 생긴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와아…. 용케 이걸 지었네.”
“무슨 던전을 보는 것 같구만.”
레드 드래곤 길드의 아지트로 들어 온 영식과 길수는 마치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주 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조성현의 이마 에 굵은 힘줄이 솟아올랐다.
“이 시건방진 놈들이…!”
성난 황소처럼 홍분한 그는 주먹을 움켜쥐고는 영식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의 양옆에 따라오고 있던 부하들 이 그를 뜯어말렸다.
“지, 진정하세요, 형님!”
“혹시라도 죽이면 계획이 틀어집니다!”
당장에라도 영식을 죽일 것 같은 조성현의 모습에 부하들이 다급히 외쳤다.
조성현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드래 곤 웨폰을 생각하며 끓어오르는 화 를 억눌렀다.
그는 영식에게 손을 까딱거리며 사무 실 안에 있는 작은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
“감사합니다.”
영식은 조성현을 향해 가볍게 고개 를 숙이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의자가 아닌 딱 보더라도 길드 마스터의 전용석으로 보이는 고급 가죽으로 된 검은 의자.
영식은 평소 조성현이 앉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아 책상 위에 올렸다.
“그런데 기껏 손님을 불러놓고 뭐
마실 것도 없습니까? 쯧, 서비스가 형편없군요.”
“이, 이 미친놈이….”
인질로 삼기 위해 끌고 왔더니 자 신의 의자에 앉아 서비스를 찾는 영 식의 모습을 보고 조성현은 입을 쩍 벌렸다.
다른 레드 드래곤 길드원들도 정신 이 나간 것 같은 영식의 행동을 보 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 음을 흘렸다.
_쿵!
조성현의 몸이 한 줄기 빛살이 되 어 영식에게 날아갔다. 강렬한 마력 의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영식을 향해 돌진하는 조성현의 모 습을 그야말로 황소.
그것도 머리 끝가지 화가 난 황소 였다.
조성현은 거대한 주먹을 들어 건방 지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영식 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정 경지를 넘어선 소환자들이 보 여주는 마력의 결정, 무협지에서 흔 히 강기라고 부르는 기운을 주먹에 두른 그가 영식의 머리를 향해 주먹 을 휘둘렀다.
분노에 찬 그의 머릿속에는 영식을
살려둬야 한다는 생각조차 남아 있 지 않았다.
-쿠우우우웅!
“후우. 힘이 장사로구만 그래.”
그런 조성현의 앞을 막아선 것은 호구처럼 보였던 중년 사내.
길수는 철벽의 보호 스킬을 두른 채 방패를 들어 조성현의 공격을 막 아냈다.
방패를 타고 전해지는 저릿한 충격 이 조성현이 얼마나 강력한 소환자 인지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길수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조 성현을 노려보았다.
뒷골목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게 강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결국 그것뿐 이었다.
고작 이 정도 공격으로 동요하기에 길수가 이제까지 넘어온 역경이 너 무 많았다.
“크으…!”
“혀, 형님!”
방패의 충격에 몸을 뒤로 빼낸 조 성현을 향해 부하들이 다가왔다.
그는 이글거리를 눈빛으로 길수를
노려보았다.
“어쩐지 좀 여유롭다고 했더니… 네놈이 보디가드 역할이었군.”
“음….”
맹렬하게 착각하고 있는 조성현을 바라보며 길수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흥. 이거 저놈?이 과연 어떤 놈인 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 간다하게 막 을 정도의 보디가드라니.
연합군에서 저 영식이라는 놈에게 얼마나 큰 투자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 명에 불과해.’
한 명, 그것도 공격 능력이 형편없 는 탱커라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 은 이쪽이었다.
“하하하! 고작 저런 맷집만 좋은 고기 방패 새끼 하나를 믿고 있었던 거냐? 앙? 그거 하나 믿고 그런 건 방을 떨었어?”
“뭐… 믿고 있는 게 하나 더 있긴 합니다만.”
“훙, 그럼 한번 보여주시지? 그 믿 고 있는 거라는 걸 말이야.”
“조금만 기다리면 싫어도 알게 되 실 겁니다.”
영식은 느긋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 이에 등을 기댔다.
≪=시 w
아….
자신이 호랑이 굴로 끌려온 먹잇감 이라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그의 행동에 조성현은 더 이상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 정신 나간! 감히…!”
-콰앙
“혀, 형님! 크, 큰일 났습니다!”
“뭐야‘?”
“드, 드래곤 스, 슬레이어 부대가 지금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전원이 랭커급으로 이루어진, 명실 상부 연합군 최대 전력을 가지고 있 는 강력한 부대였다.
구성원들 자체가 연합군 내 높은 직위의 간부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드래곤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 왜 지금 움직 인단 말인가?
“몇 명인데?”
“저, 전원입니다!”
“?뭐라고?”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전원이 황 성에서 빠져나와 이 주변을 완전히 포위해 버렸습니다!”
“이, 이런 미친!”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 전원이 움직 이고 있다는 소식에 조성현의 입에 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현실성 없는 그의 말에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어, 어떻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다고.”
“이런, 미, 미친. 너, 너 대체 정체
가 뭐야!”
경악에 찬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조성현을 바라보며 영식은 피 식 웃음을 흘렸다.
“전 대륙 연합군 총사령관직을 맡 고 있는 영식이라고 합니다.”
“뭐…? 뭔 사령관?”
“이야. 그나저나 연합군 총사령관 을 대낮에, 그것도 시장 한복판에서 납치하는 레드 드래곤의 담대함에는 정말이지 감탄했습니다. 이건 아무 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무, 무슨 개소리를….”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가?”
영식은 손을 들어 조성현의 다리 사이를 가리켰다.
“거기 니 다리 사이에 달린 거 있 지?”
“너 그거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