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44화
황금 알을 낳는 거위(2)
‘이 새끼….’
사쿠라였어?
영식은 완전히 기절해 있을 때와는 달리 아주 조금씩이지만 몸을 움직 이고 있는 루크델라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심장에 전류를 흘러 넣기 전
에는 없었던 움직임.
영식은 그가 방금 전 충격으로 정 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머리 굴러가는 건 하나 빠르네.’
전기 충격으로 몸이 지져지는 와중 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는 의미였다.
괜히 영식에게 바둑 승부를 제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 치와 머리 회전이 빨랐다.
‘근데 그러려면 절대 움직이지 말 았어야지.’
영식은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 은 채 말을 이었다.
“이거 안 되겠네요. 다른 방법을 하나 써보죠.”
“그렇게 하다가 진짜 죽으면 어떡 하나?”
“괜찮아요. 드래곤은 튼튼합니다.”
‘사실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안 이 상 용언의 맹세를 이용해서 조종하 면 되지만….’
필사적으로 의식을 차리지 못한 척 을 하고 있는 루크델라의 모습이 영 식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 그럼 이번에는 손모가지를 한 부러뜨려 볼까요?”
사기꾼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벌이 필요한 법.
영식은 길수에게 방패를 빌려 있는 힘껏 루크델라의 왼손을 내려찍었 다.
-콰직!
“?음. 방패는 처음 다루는 거라 조준이 어렵네요.”
손목 대신 손등 쪽에 내려찍힌 방 패를 보며 영식은 살짝 표정을 일그 러뜨렸다.
“하하. 그럼 내가 대신 하겠네.”
길수는 광휘의 방패를 들어 정확하
게 루크델라의 손목을 찍었다. 마력 을 잔뜩 머금은 그의 방패가 손목을 아작냈다.
-콰드드득!
뼈가 박살나는 섬뜩한 소음.
눈을 뒤집고 있는 루크델라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밀려들어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 고는 싶은데 깨어났다는 것을 들키 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모습.
영식은 그런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 며 즐겁다는 듯이 입술을 핥았다.
“이거 정말로 일어나지 않는 것 같
군요.”
“흐음.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해야 할 것 같네.”
“그럼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해 보죠.”
“오른쪽 손목도 분지를 셈인가?”
“아뇨.”
영식은 루크델라의 다리 사이를 가 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럼 알까기를….”
_쿵!
“이 악마 같은 자식!”
자리에 누워있던 루크델라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영식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루크델 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요, 루크델라 씨.”
“헉... 이, 이건...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영식의 말에 반응해 버린 루크델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신 것 같군요. 지난 몇 주간 일어나지 않아서 걱정 했습니다.”
“크윽…. 이, 이제 네놈 목적은 다
이루지 않았나?”
“그럴 리가요. 아직 당신에게는 부 탁할 게 많습니다.”
영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핥았다. 루크델라는 그의 사 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에 가늘게 몸 을 떨었다.
대국을 포기했던 그에게 광기까지 뿌리며 다음 수를 두라고 명령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체 이 인간은….’
잘못 건드려도 보통 잘못 건들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 델라는 불안에 찬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워, 원하는 게 뭐냐.”
“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조력 을 얻고 싶은 것뿐입니다.”
“조력…?”
“예. 카르가스의 시체만으로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부족해서 말이 죠.”
“나,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 가?”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당신을 죽이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영식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는 다는 말에 루 크델라의 표정에 안도가 서렸다.
살고 싶다는 것은 생물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궁극적인 목적이 었다. 그것은 인간에 비해서 압도적 으로 오랜 수명을 가지고 있는 드래 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나긴 수명을 가지 고 있는 만큼 삶에 대한 욕구는 더 욱 컸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언제든지 도 망칠 기회는 있어.’
루크델라는 굳은 결의가 담긴 눈빛
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저 악마 같은 인간에게서 벗어나, 다시금 안전한 레어에서 은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거야.’
욕심에 눈이 멀어 레어 밖으로 나 왔다가 이런 호된 꼴을 당했다.
루크델라는 방패에 짓이겨진 자신 의 왼쪽 손목을 바라보았다.
안전한 레어에 홀로 숨어 있을 때 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상처들.
‘역시 레어 밖은 위험해…!’
루크델라는 공황장애라도 걸린 듯
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 그래서. 결국 원하는 게 뭐지?”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 습니다. 드래곤들은 신체의 재생이 빠른 편인가요?”
“물론, 인간과 신체 능력을 비교하 는 것 자체가 드래곤에게는 우스운 일이지.”
그의 대답에 영식은 만족스러운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는 아주 좋은 교훈을 담은 이야기가 하 나 있습니다.”
“이야기...?”
“바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라는 이야기죠.”
영식은 즐거운 듯이 말을 이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욕심에 눈 이 멀어 그 배를 갈라 버리는 안타 까운 내용입니다. 아쉽게도 그 거위 의 배 안에는 황금이라고는 들어 있 지 않았죠. 참 멍청하지 않나요? 그 냥 조금만 인내를 가진다면 매일 황 금 알을 하나씩 얻을 수 있는데 그 걸 욕심을 부리다뇨.”
“인간의 근시안적인 욕망을 비판하
는 아주 훌륭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 담긴 참 된 교훈을 그대로 실천할 생각입니 다.”
“자, 잠깐 설마 네놈….”
무엇을 상상했는지 루크델라의 표 정이 창백해졌다.
영식은 마치 길수와 같은 사람 좋 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 재생이 빠르다니 다행이네 요. 사실 지금 여유로운 상황은 아 니거든요.”
“이, 이런 미친놈…!”
“하하.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통
각을 무디게 만들어주는 약을 따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영식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루크 델라를 향해 고개를 가까이 기울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루 크델라 씨.”
방 안에 루크델라의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크델라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영식이 과거 보았던 은회색 악마와 어딘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후우.”
‘이것으로 일단 재료는 걱정 없나.’
영식은 살짝 피곤하다는 듯이 의자 에 등을 기댔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루크델라를 이용해서 비늘은 지속적으로 수급이 가능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재료를 뜯 어내고 싶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이야 기에서 주는 교훈을 거스르는 행위 였다.
‘루크델라 같은 보물을 죽게 내버
려둘 수는 없지.’
재료를 써야 할 장소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 그가 죽는다면 영식의 계획에 많은 차질이 생겼다.
“그럼 재료가 쌓일 때까지는 따로 할 일이 없는 건가.”
루크델라의 몸에서 비늘을 뽑아내 는 작업은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에 게 명령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어느 정도 재료가 쌓이기 전까지는 슈트 제조를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렇다면….’
영식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수개월 만에 눈을 뜬 이후, 눈을 돌릴 틈이 없이 바쁜 일정 탓에 생 각하지 않았던 의문점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였다.
‘우선 내 안에 들어간 게 정말 황 성 보호막이 맞는지.’
영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손을 대었다.
정체불명의 기운으로 보호되고 있 는 황성의 벽. 그 어떤 공격으로도, 마법으로도 뚫리지 않는 절대의 방 벽이 었다.
“?역시 같은 기운이야.”
정확하게 감지할 수는 없지만, 지금 그의 코어 안에 들어와 있는 정체불 명의 에너지와 벽에서 느껴지는 에 너지는 같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내 코어 안에 있는 기운이 조금 더 짙은가?’
풍기는 느낌 자체는 비슷하지만 자 신의 코어 안에 자리 잡은 기운이 벽에 퍼져 있는 기운보다는 더 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농도의 차이일 뿐 둘 다 같은 종류의 에너지라는 것은 확 실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벽을 둘러싸고 있는 기운 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영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황 성의 벽을 바라보았다.
천마대전 이후 생긴 보호막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기록들로 유추해낼 수 있었지만 정확한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기운을 다룰 수 있기라도 하면 모 를 텐데.’
지금 코어 안의 에너지는 어떤 방 법을 써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유나가 자신의 단전 안에 자 리잡은 라그나의 힘을 완전히 다루 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
코어 안에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힘은 역장을 사용해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지만… 황성에 만 기운이 국한된 것이 아니야.’
에너지 제어 기술이 향상됨으로써 영식은 에너지의 흐름 자체를 육안 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려진 바로는 이 기운은 황성의 벽만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 실상 은 조금 달랐다.
황성 벽을 통해 아주 미약한 양의 기운들이 밖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대륙 전체에 이 기운이 퍼져나가 고 있는 건가…?’
어느 정도 이상 퍼져나간 기운은 그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식은 이 기운들이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마치 에르노어 대륙의 심장, 혹은 핵과도 같은 느낌의 기운.
“아.”
그때, 영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 각이 스쳐 지나갔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랭커들.
그들 또한 이 기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어.’
랭커들의 급증, 즉, 자신의 한계레 벨을 극복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상대적으로 많아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소환자들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 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이 기운의 영향을 받았 다고 가정한다면.’
기운의 중심지가 이 황성이다 보니
당연히 그 근처의 사람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황성을 중심으로 만들어 진 영웅의 요새에 거주하는 소환자 들의 성장 속도가 이토록 빠른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식의 생각은 8영웅에게까지 미쳤다.
8영웅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 같이 잉그리움 제국 출신이었다는 것.
‘생각해 보니 말이 되지 않잖아.’
인류에서 손에 꼽을 만한 강자들이 모두 한 지역에서 나타나다니, 상식 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대체 정체가 뭐야.”
영식은 황성 벽을 손으로 쓰다듬으 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돌아 오지 않았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 시작한 생각인 데 오히려 더욱 의문만 쌓이게 된 듯한 감각.
“하아….”
이제는 질릴 정도로 느껴온 기분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당연 했다.
?끼익.
방문이 열리며 길수가 들어왔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영식 군.”
길수는 어딘가 고민에 잠긴 표정으 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분위기 에 영식 또한 살짝 표정을 굳히며 길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잠시 시간 괜찮나?”
“예. 재료가 모일 때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슈트 제조 이외에 할 일은 많았지 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 긴 상태였다.
“그렇군. 그렇다면 하나 부탁이 있 네.”
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식의 어 깨를 붙잡았다.
“영식군….”
길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굳은 결 의가 담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내 고백을 한번 받아주게.”
“?예?”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