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42화
슈트 제작(2)
카르가스 시체 해체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성과제로 드래곤의 시체로 만든 장 비를 추가 지급할 수 있다는 말을 살짝 흘리니 랭커들이 불을 켜고 달 려들어 비늘을 뽑아댔기 때문이었 다.
드래곤이라는 지고의 보물에는 버 릴 부분이 없었다.
비늘, 가죽, 혈액, 뼈, 손톱과 발톱 등등. 각각의 부위로 말끔하게 해체 된 카르가스의 시체는 연합군에 의 해 요새 안으로 이송됐다.
영식은 막대한 양의 재료를 이용하 여 장비를 만들 생산직 소환자들을 대륙 전역에서 끌어모았다.
굳이 영식 쪽에서 귀찮게 생산직 클래스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연봉과 복지 혜택, 스 킬 레벨업을 위한 재료들 무한 제공 과 같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자 생산직 소환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영웅의 요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까지 다른 전투 클래스들에 비 해서 대우가 좋지 않았던 생산직 클 래스의 소환자들에게 이런 절호의 기회는 흔치 않았다.
대장장이, 세공사, 연금술사, 심지 어 요리사까지 총출동하여 영웅의 요새로 몰려들었다.
영식은 그중에 이미 어느 정도 경 지에 오른 소환자나 장래성이 출중 한 소환자들을 면접을 통해 걸러내 어 생산직 전문 부대 ‘우에하라’를 만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만들려고 했다.
“?이 부대명, 영식 씨가 생각하신 겁니까?”
“아뇨 이번에 뽑은 소환자 중 하나 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지은 이름입 니다. 뭐…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본 최고의 장인 중 하나의 이름이 라고 하더군요.”
“당장 바꾸시죠. 그리고 그 이름을 추천한 정신 나간 새… 크흠. 소환 자를 제 사무실로 불러주세요.”
한성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영식은
결국 ‘헤파이스토스’라는 이름으로 바꿔 새로운 부대를 창설했다.
이제까지 소외받았던 설움을 터트 리듯 생산직 소환자들은 드래곤의 시체를 활용해 각종 장비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에 드래곤의 시체를 다 룰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소 환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메인 제작자의 보조로 들 어가 같이 협동 작업을 펼쳤다.
그것은 메인 제작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줌과 동시에 보조 제작자들의 폭발적인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 다.
영식 쪽도 순조로운 것은 마찬가 지.
드래곤의 비늘이 워낙 크기가 큰 탓에 추출에 시간이 걸렸던 것도 스 킬 레벨의 상승에 따라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추출을 마칠 수 있었다.
‘뼈가 추출되지 않았던 건 좀 의외 였지만.’
대체 추출에 무슨 기준이 있는지는 영식도 알 수 없었지만 드래곤의 비 늘은 추출이 가능했지만 뼈는 추출 대상에 속하지 않았다.
단순히 단단하기만 해서는 ‘금속’
의 분류에 속하지 못하는 모양이었 다.
‘혹은 아직 추출 레벨이 부족하거 나.’
추출 레벨이 올라갈수록 그 대상의 범위 또한 늘어나고 있었으니 아직 은 완전히 포기할 만한 단계는 아니 었다.
영식은 일단 혹시 모를 경우를 대 비하여 뼈들은 헤파이스토스의 생산 자들에게 일부만 주고 대부분은 인 벤토리와 창고에 나누어 보관해 두 었다.
당장 추출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쉽
기는 했지만 안 되는 것을 되게 만 들 수도 없는 노릇.
영식은 일단 비늘을 모조리 추출한 재료만으로 슈트 제작에 들어갔다.
- 달칵.
“영식 씨, 부르셨나요?”
때마침 방문을 열고 티리아가 들어 왔다. 최근 영식이 바쁜 탓에 거의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그 와 만난 티리아의 표정은 무척 밝았 다.
“주인니임?!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도 힘든 건가요오!”
티리아에 이어 방으로 들어온 루시
아는 울상을 지으며 영식의 몸을 끌 어안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마지막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온 아 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식에게 물었다.
“루시아를 부른 기억은 없는 것 같 은데….”
“헤헤! 주인님이 아라 씨랑 티리아 씨를 불렀다기에 저도 따라왔어요! 치사해요, 주인님! 왜 저만 쏙 빼놓 고 두 사람을 부르신 건가요?”
“슈트 제조에 필요한 치수를 재기 위해서 부른 거니까. 루시아 너는 이미 슈트가 있잖아.”
“앗…! 제, 제 것도 주인님께서 새 로 만들어주시는 게 아니었나요?!”
“재료가 그렇게 넘쳐나지 않아.”
“그, 그런….”
루시아는 울상을 지으며 침울한 표 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치수를 잰다니…?”
“길드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슈트를 만들어주고 싶거든. 슈트를 만들려 면 정확한 신체 사이즈를 파악해야 해.”
“슈트라면 그 영식 씨가 사용하시
는 검은색 갑옷 말씀하시는 건가 요?”
“맞아.”
“그, 그렇게 귀중한 것을 저희에 게…?”
“최근에 와서야 만들 수 있는 기술 과 재료를 확보했거든. 성능은 뭐… 내가 입은 슈트보다야 나오지 않겠 지만 전력 상승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안전성을 말할 것도 없 고.”
“와아….”
“직접 만드는 거니까 지난번 무기 를 만들었을 때처럼 최대한 각각 개 인의 몸과 특성에 맞춰서 만들고 싶 거든.”
“그래서 치수를 재겠다는 거야?”
“그래. 이렇게 몸에 딱 들어맞는 슈트는 1미리의 차이도 엄청 중요하 니까.”
슈트의 제조되는 기술력은 우주선 을 제조하는 것 이상의 정밀성을 요 구했다.
여러 국가가 모여 만든 우주선에 서로 사용하는 크기의 단위가 달라 발사에 실패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 야기.
영식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
기 위해 그녀들의 정확한 신체 사이 즈를 파악해야 했다.
“…자동적으로 몸 크기에 맞게 조 정하는 기능은 없는 거야?”
아라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영 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은 그녀의 의 심과 달리 담백한 표정으로 말을 이 었다.
“만들려면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범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드는 슈트도 아닌데 굳이 그런 기능을 넣 을 필요는 없잖아?”
‘기능이 추가되면 그만큼 재료가 더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신체에 맞게 슈트의 크기가 조정되 는 것은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간단하지도 않은 기능이었다.
허투루 재료를 낭비할 만큼 여유로 운 상황은 아니었다.
“알았어. 그럼 뭐부터 하면 돼?”
“우선 이 석고 틀에 누워줘. 아, 물론 옷은 벗은 채로.”
“으…. 주, 줄자 같은 걸로 재는 것 아니었어?”
“그건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 그리 고 난 쓰리 사이즈가 필요한 게 아 니니까.”
“아, 알았어.”
아라는 새빨갛게 뺨을 붉힌 채 고 개를 끄덕였다. 티리아 또한 홍당무 처럼 물든 얼굴로 힐끔힐끔 루시아 와 아라를 바라보았다.
단둘이 있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이 렇게 대낮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옷을 벗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 영식이 너는 계속 이 방에 있 을 거야?”
“물론이지. 슈트에 필요한 제작 틀 을 만들어야 하니까.”
영식은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
덕였다. 그의 표정은 한 치의 사심 도 느껴지지 않는, 제작에 영혼을 바친 장인의 표정이었다.
“왜? 부끄러워?”
“다, 당연하지!”
아라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영식 에게 소리쳤다.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 이번엔 참 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든 소환자들의 전력을 끌어올리는 거잖 아‘?”
“그, 그렇지만….”
아라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 였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어 도 역시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 다.
영식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굳이 내가 방 안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제작틀이야 나중에 석고의 라인을 따라 만들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방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보고 싶으니까.’
영식은 눈을 반짝이며 티리아와 아
라를 바라보았다.
수개월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난 이 후 하루하루가 정신없는 시간을 보 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과 같이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도 욕구가 있는 남자인 만큼 함 께 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
눈의 호강(?)을 위해서 두 사람을 같을 불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 다.
“그, 그럼….”
티리아와 아라는 서로의 눈치를 살 피며 옷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루시아가 다급하게 소리쳤
다.
“저도 벗을 거예요!”
‘아니 너는 또 왜.’
“저만 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요!”
‘대체 뭐랑 싸우고 있는데.’
문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루 시아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
부끄러움이 많은 티리아와 아라라 면 단순히 눈 호강을 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루시아가 참여하게 된다 면 얘기가 달라졌다.
최악의 경우 눈 호강으로 끝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좋은 일인가?’
영식은 동요가 섞인 표정으로 루시 아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쌓인 욕 구로 인해 이성이 살짝 맛이 가버리 는 듯한 감각이었다.
꿀꺽. 그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 침 이 넘어갔다.
남자의 꿈(?)이 실현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때 였다.
- 달칵.
“영식 오빠? 아라 언니 혹시 못
봤어? 잠깐 물어볼….”
방문을 열고 채린이가 들어왔다. 그녀는 방 안의 풍경을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지 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이것 참. 우후후후 후…. 내가 이런 실수를 해버렸네.”
“오, 오해야 채린아!”
아라가 다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채린은 영식을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찡긋 윙크 했다.
“오빠가 뭘 좀 아네! 역시 4인 스
쿼드가 가장 재밌지!”
“걱정하지 마 오빠! 모두에겐 비밀 로 해줄 테니까 나만 믿어!”
표정을 보아하니 내일이면 성문을 지키는 병사에게까지 소문이 퍼져나 갈 것 같았다.
“그럼 모두 즐거운 시간보내!”
- 쿵.
채린은 재빨리 문을 닫고는 어딘가 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1초도 참지 못하고 지금 그 녀가 본 것을 황성 전체에 소문을 내기 위함이 분명했다.
이건 너에게만 알려주는 소식이 모 두가 알게 되기까지는 하루도 채 걸 리지 않았다.
방 안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 다.
아라와 티리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자, 잡아!”
“빨리 채린이를 추격해야 해요!”
두 사람은 허둥지둥 옷을 입고는 채린이의 뒤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갔 다.
“?제조 틀은 나중에 한 명씩 불러 서 만들어야겠네.”
둘의 모습을 보니 한동안 같이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영식은 방금 전과 달리 휑해진 방 안의 풍경을 돌아보았다. 마치 금방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기분.
영식은 차오르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길!”
다음에는 반드시 문에다가 잠금장 치를 만들어 붙이겠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