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40화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3)
“아, 으, 아아….”
루크델라의 입에서 새하얀 거품이 흘러나왔고, 곧 그가 쓰러졌다.
영식은 그런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전율 의 여운에 잠겨 있었다.
‘세상에.’
예상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확.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갑 작스럽게 얻은 수확이었다.
‘설마 바둑을 두면서 연산 능력이 한계를 돌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격이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행운에 영식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게다가 역장이라.’
역장.
영식은 수개월 전에 있었던 엘리아 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모든 보안 레벨을 해방했을 때, 자 신의 본래 슈트를 사용한 상태에서 야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
에너지 제어 기술이 정점에 도달해 야만 사용 가능한 절대적인 힘.
그걸 부분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 다는 소식은 영식에게 있어서 이 이 상 반가울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네.’
꾸준한 수련이나 목숨이 경각에 달 했을 때 극복하는 것이 아닌, 고작 내기 바둑을 두다가 각성을 해버리 니 상당히 기분이 묘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산 복권이 1등으 로 당첨된 기분이랄까.
“주인님?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아니, 괜찮아. 그보다 이놈… 완전 히 기절해 버렸네.”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아 요.”
“루시아, 혹시 드래곤을 인간 형태 에서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리는 방 법을 알아?”
영식은 인간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 는 루크델라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 었다.
인간 형태의 루크델라로는 영식이 머릿속으로 생각해 두었던 보상을 뜯어낼 수 없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인 님. 인간으로 변신하는 건 드래곤들 이 가진 고유 능력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알았어. 일단 카르 가스의 시체를 수거해 가자.”
게임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마지막 수를 두기도 전에 이미 결판 난 것. 보상을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철태 형님, 길수 형님. 루크델라를 데리고 와주세요. 만약 정신을 차리 면 저한테 바로 알려주시고요.”
“알겠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르가 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거대한 카르가스의 시체를 바라보 고 있는 영식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상의 시간이 었다.
“영식 씨, 아까처럼 비늘을 다 뜯 어내면 될까요?”
“응. 일단 비늘을 떼서 한곳에 모
아줘. 본격적인 해체 작업은 비늘이 다 제거된 이후에 할 생각이니까.”
영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드래곤 스케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른 재료들을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 었다.
드래곤의 혈액, 내장, 뼈, 가죽.
그 어떤 것도 S급 이상의 재료들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
혈액이나 내장의 경우 영식이 가공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생산 직 소환자들 중에서 찾으면 재료들 을 가공할 수 있는 소환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뼈의 경우 추출이 가능할 수도 있고.’
당연한 얘기지만, 드래곤 본은 비 늘보다 더 단단한 강도를 가지고 있 었다.
일종의 ‘금속’으로 취급 받는 비늘 에서 추출이 가능하다면 드래곤의 뼈에서 또한 추출이 가능할 것이다.
‘재료가 넘쳐흐르겠구나.’
영식은 꼬리부터 머리까지 모두 합 치면 무려 백 미터에 달하는 카르가 스의 시체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어
버렸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기계공 학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생산직.
무언가를 만들고 개조할 때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 게다가….’
영식은 길수와 철태에게 붙잡혀 질 질 끌려오고 있는 루크델라를 바라 보았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 흘륭한 협력자를 얻었으니까.’
용언의 맹세로 인하여 그의 명령에 거부할 수 없는 루크델라.
그를 활용할 좋은 계획들은 영식의
머릿속에서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확실히 절대적인 명령권이란 건 이래서 좋아.’
과거 왜 그가 블랙큐브를 통해 몬 스터를 지배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이었다.
만약 그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결코 들어주지 않을 부탁들 도 가볍게 명령으로 처리할 수 있다 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티리아는 통신기를 통해 알렉을 부 르며 길드원들에게 비늘 수거 작업 을 명령했다.
“후훗! 주인님 옷을 벗기는 것처럼 홀라당 벗겨버릴게요!”
굉장히 꺼림칙한 말을 소리치며 루 시아가 카르가스의 시체를 향해 달 려들었다.
그를 도와주러 온 레비아탄 길드도 살바토르 길드를 따라 드래곤의 시 체에 다가갔다.
‘응…?’
루시아가 드래곤의 비늘을 하나 손 으로 잡아 뜯은 순간, 영식은 표정 을 일그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카르가스의 시체 안에 들어 있는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아주 살짝 흐 트러지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잠깐만.”
영식은 드래곤의 비늘을 뜯고 있는 루시아를 말리며 카르가스의 시체에 다가갔다.
‘왜 시체에 손을 댔는데 드래곤 하 트의 마력이 흩어진 거지?’
정확히 말하면 흩어진 것이 아닌 소량의 마력이 그의 시체로 퍼져 나 가버렸다.
처음 드래곤의 비늘을 뜯을 당시에 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에너지 제어 기술이 향상 되면서 보이기 시작한 건가?’
처음과 지금의 다른 점이라면 루크 델라와의 대국을 통해 영식이 성장 한 것 이외에는 없었다.
영식은 손을 들어 카르가스의 시체 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그의 손길에 따라 희미하지만 드래 곤 하트의 마력이 흩어지는 것이 보 였다.
“?설마.”
영식은 거칠게 눈살을 찌푸리며 드 래곤 하트가 있는 가슴 쪽으로 다가 갔다.
그러자 드래곤 하트에 담긴 마력이 마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에너지가 육안으로 보이는 영식이 기에 확인할 수 있었던 현상.
‘역시 마력에 자아가 남아 있어.’
자아를 가진 마력이 시체가 훼손 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여 시체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물이 가득 든 플라스크에 물 감을 떨어트린 후, 그 물을 건드렸 을 때와 같은 느낌.
“이 새끼…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
었군.”
영식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루크델라를 노려보았다.
3년의 시간이 지나야 드래곤 하트 가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고?
그게 드래곤들만의 장례 문화라고?
되지도 않는 개소리였다.
드래곤 하트 안에 담긴 강대한 마 력은 자연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 카르가스의 시체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루크델라가 무엇을 노리 고 장례라는 헛소리까지 내뱉으며 카르가스의 시체를 온전하게 지키고 있었는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 았다.
자아를 가진 마력이 스스로의 주인 을 잊어버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
그는 그 시간이 지난 후 드래곤 하트를 자신이 취할 생각을 하고 있 던 것이다.
‘어쩐지 저 찌질한 성격에 카르가 스가 죽자마자 튀어나온 게 이상하 다고 생각했더니.’
힘에 대한 욕망은 아무래도 드래곤 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영식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루크 델라를 바라보았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온 그를 정당 한 내기였다고는 하나 가차 없이 짓 누른 것이 살짝 양심에 찔렸는데 이 제는 그런 양심의 가책도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영식아, 무슨 문제 있어?”
“응. 조금 문제가 생겼어.”
“무슨 문제?”
“나중에 설명해 줄게. 일단 모두 카르가스의 시체에서 떨어져 줘.”
≪..2”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길드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카르가스에 게서 떨어졌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온존하게 보존하려면 시체를 건들면 안 돼.’
하지만 카르가스의 시체라는 보물 을 3년 동안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영식은 카르가스의 시체를 바라보 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 이 스쳐지나갔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어.’
영식은 카르가스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가슴이라고는 해도 그 크기는 작은
건물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비늘이 없는 가죽 너머로 농밀하게 뭉쳐 있는 마력의 덩어리가 느껴졌다.
마력 또한 그 근본을 따지면 에너 지의 집합. 에너지 제어 기술을 익 히 영식이 그것을 다루지 못할 리가 없었다.
- 우우우우웅!
카르가스의 가슴에 닿은 영식의 손 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렸다.
기존에 블레이드의 날을 직접 몸속 에 틀어박고 했던 분해-홉수의 과 정을 블레이드의 도움 없이, 순수 에너지 제어 기술만으로 이뤄내는 것이다.
-치익.
-고속 연산을 사용합니다.
다시 한번 이루어진 의식의 확장.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제어하려는 영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확실히 분해가 자동으로 되지 않 으니 제어가 더 힘들어.’
오리하르콘으로 덧씌운 블레이드는 별다른 연산 없이 자동으로 에너지 분해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 민감하기 짝이 없는 드래곤 하트에 직접 블레이드를 박 아 넣을 수는 없는 상황.
게다가 블레이드의 모든 면적을 사 용해 봤자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모 두 분해하는 데까지는 너무 오랜 시 간이 필요했다.
여기서는….
‘역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영식의 눈?이 반짝였다.
전능한 힘을 가진 무형의 기운.
모든 것을 막아내고, 모든 것을 뚫 어내는 사기적인 힘을 가진 기술.
그것을 사용하여 분해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치익.
-모든 연산 장치를 사용하여 부분 적으로 ‘역장’을 구성합니다.
-연산 장치의 과열로 역장 구성 중 에는 보안 레벨 1단계의 무기 이외 에 다른 무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식의 손을 타고 뿜어져 나온 아 주 미약한 무형의 기운이 카르가스 의 드래콘 하트를 감쌌다.
-우우우우웅!
무형의 기운은 마치 흡혈귀라도 된 것처럼 드래곤 하트 안에 담긴 에너 지를 분해하여 흡수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영식의 몸속 으로 홀러 들어왔다.
영식은 그 에너지를 자신의 명치 쪽에 있는 코어로 흘려 넣었다.
-치익.
-해당 에너지는 본 기체에 적합하 지 않습니다.
-현재 코어를 이루는 에너지와의 질적인 차이로 인하여 해당 에너지 를 사용할 시 영구적인 기능의 저하 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뭐라고?’
영식의 표정에 당황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무려 드래곤 하트에서 추 출한 에너지였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질’이 떨어져서 자신의 코어에 사용할 수 없다니?
영식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치익.
-현재 단계에서 해석 불가능한 에 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해당 에너 지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뭐야, 이건?’
영식은 자신의 코어 안에 자리 잡 고 있는 ‘이질적인 에너지’를 느꼈다.
에너지 제어 기술이 상향된 지금으로 서도 그 정체조차 파악할 수 없는 힘.
영식은 그 이질적인 기운을 어딘가 에서 느껴본 기억이 있었다.
‘아니, 형이 왜 여기에…?’
그의 코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기운, 그것은 잉그리움 제국의 황성 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