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39화
소 뒷걸음치다 쥐잡기(2)
-탁. 탁. 탁.
흑돌과 백돌이 차례대로 바둑판 위 에 놓였다.
루크델라와 영식이 서로 합의한 한 수당 제한 시간은 1분.
두 사람은 그런 1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무안할 정도로 서로 빠르게 수를 교환했다.
≪ o O”
"o'.I
대국이 진행될수록 루크델라의 표 정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는 뭔가 꺼림칙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백돌을 손에 집었다.
‘뭐지?’
그는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살짝 표 정을 일그러뜨렸다.
분명 지금 전세만 놓고 보면 그가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그의 레어 안에서 소환자와 자주 바둑을 겨뤘을 때보다 더욱 압도하고 있는 모습.
너무 쉽게 끝나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뭔가 이상해.’
루크델라는 백돌을 손에 든 채 생 각에 잠겼다. 분명 이기고는 있는데, 어쩐지 상대가 파놓은 함정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는 듯한 기분.
뭔가 끈적하고 불쾌한 액체가 전신 에 퍼져나가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 다.
루크델라의 고민이 길어졌다. 그는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호오.’
영식은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설마 눈치챌 줄이야.’
지금 당장 전황이 불리하게 보이는 것은 영식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미끼를 물기 위해 백돌이 흑돌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순간 남김없이 뜯어먹을 준비가 끝난 교묘한 함정.
앞으로 이루어질 억 단위가 아득히 넘는 변수를 모조리 고려한 이 함정 은 거의 미래 예지에 가까운 예측력 이 아니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함정이었다.
‘과연 드래곤이라 이건가.’
영식은 함정이 발각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 다.
아니, 실제로 그는 지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첫수를 바둑판에 내려놓을 때까지 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루크델라 를 압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드래곤 사이에 넘을 수 없 는 격이 있다면, 드래곤과 자신 사 이에도 넘을 수 없는 격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생물의 한계 상 기계
의 연산 능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즐겁게 해줄 거라 고는 생각 못 했어.’
영식은 전신에 퍼져 나가는 짜릿한 전율을 즐기며 흑돌을 내려놓았다. 어마어마한 연산에 머리가 뜨거워지 는 것 같았다.
단순히 변수의 숫자만 생각한다면 몸을 움직이는 전투 쪽이 월등히 많 았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
람일지라도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임이 변하게 되니까.
전투라는 무한을 연산을 통해 분석 할 수 있는 영식에게 바둑에서 나오 는 변수를 계산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었다.
아니, 가소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었 다.
‘색다른 기분이야.’
영식은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흥분으로 인해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전투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전투 데이터는 사실상 모든 변수를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경우 의 수가 너무 막대했고, 그것조차 개개인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상대방의 움직 임을 관찰한 후, 그것을 패턴화시켜 다음 움직임을 예지에 가깝게 예측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 기반이 되는 데이터 자체가 없 으면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가 이미 전투 데이터에 대한 분 석이 끝난 루시아는 일 대 일로 싸 워 이길 수 있지만, 동급의 실력을 지닌 다른 강자는 이길 수 없는 것 과 상통하는 이유.
복선이 없는 반전은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바둑은 달랐다.
바둑은 무한이며, 동시에 완전한 무한은 아닌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 었다. 룰이 있었고, 규격이 정해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361개의 착점 이외의 장소에 바둑돌을 둘 수도 없었고, 한 수에 두 개의 돌을 두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름다워.’
영식은 바둑판을 바라보며 황홀함 에 찬 숨을 토해냈다.
왜 루크델라가 이 게임을 아름답다 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주 전체의 원자 개수보다 많은, 361팩토리얼이라는 아득한 경우의 수 영식이라고 할지라도 10의 1기승 이 넘는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착수가 진행될수록 그 경우 의 수는 폭발적으로 줄어들기 시작 하고, 점점 더 손으로 무한을 움켜 쥘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 감각은 영식에게 있어서 전율스 러운 쾌감 그 자체였다.
“ 크으으으.
루크델라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침 음이 흘러나왔다.
함정의 정체를 눈치챘지만, 이미 촘촘하게 그를 옥죄고 있는 그물망 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 았다.
1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점점 더 그의 숨통을 틀어쥐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영식은 점점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
는 루크델라를 바라보며 초조한 표 정을 지었다.
이 순간의 전율을, 쾌감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룰을 바꾸죠.”
“……뭐라고?”
“한 수당 제한 시간을 10분으로 늘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한계에 내몰려진 루크델라에게는 더 이상 달콤할 수 없는 제안. 그는 영식이 무슨 의도를 가진 것인지 생 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순식간에 10배의 시간이 주어진 그는 다시금 눈을 빛내며 생각에 잠 겼다. 숨을 막히게 만드는 침묵의 시간이 영식과 루크델라 사이에 내 려앉았다.
“허……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철태의 입에서 탄성이 홀러나왔다. 그의 옆 에 서있던 길수가 고개를 갸웃거렸 다.
“무슨 일인가?”
“저도 프로 레벨은 아니지만 꽤 오 랫동안 바둑에 취미가 있었는데요.
이 경기는…… 대체 뭐가 어떻게 되 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허허. 자네의 취미는 X담을 보는 것 아니었나?”
“그건 취미가 아닙니다. 인생이죠.”
박철태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 답했다.
정소림은 그런 박철태의 모습에 땅 이 내려앉을 것 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철태 오빠, 지금 영식이가 이기고 있는 거예요?”
바둑에 대해서는 규칙조차 잘 모르 고 있는 아라가 박철태에게 물었다.
영식이 이길 거라고 믿고 있기는 하 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불안한 것 도 사실이었다.
“……전혀 모르겠다. 더 이상 이게 바둑이 맞는지도 모르겠어.”
박철태가 예상한 수는 모조리 다 빗나갔다. 누가 유리한지, 불리한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인님……
루시아는 검을 빼어 들어 언제든지 루크델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며 초 조하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 탁.
그런 그녀의 걱정과 달리 영식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움을 느끼 고 있는 상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왜 그러세요? 집중력이 흐트러졌 잖아요.”
“시, 시끄럽다.”
“조금만 더 힘을 내봐요.”
영식은 진심으로 루크델라를 응원 했다.
대국이 이어질수록 영식은 점점 더 끓어오르는 고양감을 느꼈다.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제삼자로 서 바둑판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감 각.
더 이상 그의 의지로는 이 끝없이 이어지는 연산의 호수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하면.’
지금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 것. 아 득한 높이에 있어 아무리 손을 뻗어 도 닿지 않는 것.
그것을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치익.
- 경고.
-연산 장치가 과열되었습니다. 연
산 중단을 요청합니다.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무시무시할 정도로 연산 능력이 상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 었다.
과열된 영식의 머리에서 아지랑이 가 피어올랐다.
‘아직 부족해.’
?탁.
영식은 흑돌을 집어 바둑판에 올려 놓았다.
아득한 높이에 있는 그것. 보이지
않는 신을 조각하는 것처럼 영식은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아! 하아! 져, 졌다.”
루크델라는 거친 숨을 내쉬며 창백 하게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 나려고 했다.
-쿠우웅!
“앉아.”
영식은 거칠게 발을 구르며 루크델 라를 노려보았다. 그는 다급한 목소 리로 소리쳤다.
“져, 졌다고 하지 않았나.”
“입 닥치고 앉으라고.”
영식은 흉포한 살기를 내뿜으며 그 를 노려보았다. 이제 조금이었다. 조 금만 더 하면, 닿을 수 있었다.
“그런 다고 내가……
“주인님의 명령이야. 앉아.”
루크델라의 목에 라이트 세이버가 드리워졌다. 정신적으로 거의 탈진 상태에 가까운 루크델라는 루시아의 협박에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제길, 제길!”
루크델라는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바둑판이 놓여 있는 얼음 테이블과 의자를 녹여 버리려고 했다.
“어딜.”
-쩌적!
테이블을 이루고 있는 냉기가 빠져 나가는 것을 감지한 아라가 아이리 스로 순식간에 냉기의 마력을 만들 어 쏘아냈다.
녹아가던 테이블과 의자가 다시 단 단하게 얼어붙었다.
“왜, 왜 그러는 건가 인간! 져, 졌 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내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하는 거지? 용언으로 맹세했 으니까 말이야.”
“그, 그건……
“자, 어서 앉아 루크델라. 네 한계 를 넘어서, 빨리 다음 수를 두라고.”
영식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루크 델라를 바라보았다.
광기까지 느껴지는 그의 눈빛에 루 크델라는 덜덜 몸을 떨었다.
‘아, 안 돼.’
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여기서 더 이상 게임을 지속했다가 는, 뇌가 과열되어 정신이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직감했다.
‘제발 그만……
용언의 힘이 그의 영혼을 구속했 다.
드래곤의 맹세는 절대적. 루크델라 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백 돌을 집어 들었다.
‘더 이상 생각하면... 내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마차에 몸을 실은 기분. 그는 절망으로 물든 눈 빛으로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열 개의 사고가 동시적으로 진행됐 다.
뇌가 녹을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 미 한계 이상의 연산을 처리하고 있 는 그의 뇌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 르고 있었다.
“아, 아아아……! 그, 그만, 둬 ……
루크델라는 억지로라도 두 눈을 감 으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용 언으로 지배되는 그의 몸은 계속해 서 무한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자, 빨리!”
영식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다그 쳤다.
“쿨럭!”
루크델라의 코와 입, 눈에서 검붉 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덜덜 떨 리는 손으로 백돌을 들어 바둑판 위 에 올려두었다.
그의 한계를 초월한, 무한을 향해 손을 뻗은 대가로 얻은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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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수를 본 영식의 몸에 짜릿 한 전율이 퍼져나갔다.
-치익.
-경고. 경고.
시끄러운 경고음조차 지금은 노래 처럼 들릴 정도.
영식은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절대로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영식의 손에 닿았다.
-띠링.
-연산 능력이 한계를 돌파하였습 니다.
-연산 장치의 기능이 향상됩니다.
-기능의 향상에 따라 에너지 제어 기술이 향상됩니다.
-역장 구성의 필요조건을 부분적 으로 달성하였습니다.
-부분적으로 ‘역장’의 사용이 가능 해집니다.
영식은 손에 닿은 무한을 힘껏 움 켜쥐며 흑돌을 바둑판에 내려놓았 다.
- 탁.
흑돌이 놓인 바둑판에서 맑은 소리 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