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34화
승리의 보상(3)
드래곤 스케일.
그 단단함이 오리하르콘 이외에는 견줄 것이 없다고 알려진 물건.
물론 그것을 과연 ‘금속’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아다만티 움보다 단단한 강도를 가졌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충분히 가능성 있어.”
에르노어 대륙의 기록으로 남아 있 는 무구 중에는 드래곤 스케일을 재 료로 만든 무구가 존재했다.
그것은 용의 비늘이 금속처럼 정제 하여 무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 사실만으로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일단 알렉 장군에게 가볼까.’
알렉 또한 수많은 전장을 넘어온 전사. 승전 이후에 카르가스의 시체 를 그대로 평야에 방치해 두지는 않 았을 것이다.
그 시체를 활용하지는 못했더라고 최소한 보관하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몇 개월 동안의 공백이 너무 크네.’
영웅의 요새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 터 있었다면 각종 주요 물품이 어디 에 보관되어 있고, 종류는 무엇인지 모두 체크해 뒀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며칠 전에 오랜 잠에서 깨어난 그가 영웅의 요새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잘 성장해 줘서 다행이야.”
영식은 황성 창문 아래로 보이는 요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연합군의 총력이 모인 덕에 영웅의 요새는 유례가 없는 속도로 빨리 발 전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아르난 제 국의 수도 라무스보다 더욱 큰 도시 가 될 수도 있을 정도.
‘성장통이 없을 수는 없지만.’
저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일궈내고 있는데 어두운 일면이 드러나지 않 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영웅의 요새의 치안 상태 는 연합군이 거주하고 있는 것에 비 해 형편없을 정도였으니까.
‘저것도 언제 한번 정리해야겠군.’
뒷골목을 장악한 조직이 지들이 왕 이라도 된 것처럼 설치고 다니는 것 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
썩은 고름을 뽑아낼 타이밍이 필요 할 것이다.
영식은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 로 정리하며 알렉의 집무실 앞으로 도착했다.
“충성!”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렉 장 군님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영식의 모습을 확인한 기사들이 바 짝 긴장한 표정으로 경례했다.
실질적인 권력은 알렉보다 오히려 위라고 알려진, 사실상 연합군의 수 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영 식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는 사 실이었다.
-끼익.
방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던 영식은 기사들이 열어준 문 안으로 걸어 들 어 갔다.
방 안에는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는 한성과 알렉의 모습이 보였다.
알렉은 영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
“영식 군, 몸은 좀 괜찮나?”
“예. 다행히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보다… 뭐 하는 중이십니까?”
“추가 보급품에 대해서 수량 조사 중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한성은 그렇게 말하며 무시무시한 두께의 서류 뭉치를 슬쩍 내밀었다.
“…사양하죠.”
영식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서류에 서 눈을 떼고는 알렉에게 다가갔다.
“알렉 씨, 카르가스의 시체는 어디 에 보관 중이십니까?”
“그건….”
“아...”
카르가스의 시체에 대한 얘기가 나 오자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하 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한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카르가스의 시체는 전에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에 그대로 남아 있습 니다.”
“예? 설마 시체를 옮기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영식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 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영웅의 요새를 건설하는 데
급했다고는 하지만 무려 용의 시체 였다.
그 가치는 골드로는 따질 수가 없 을 정도. 그 사실 대해서 모를 정도 로 두 사람은 멍청하지 않았다.
“물론 옮기려고 했었습니다. 하지 만….”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네. 좀 얘기가 복잡하게 돼서요.”
“무슨 일이기에?”
“그건 내가 설명하겠네.”
알렉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새 준공 작업이 시작될 때쯤, 나는 연합군을 이끌고 카르가스의 시체를 수급하러 갔지. 하지만… 그 시체는 다른 드래곤 하나가 지키고 있었네.”
“?드래곤이요?”
영식은 뜬금없는 그의 말에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천마대전 이후 대륙에서 모습을 감 췄다는 드래곤이 여기 갑자기 왜 나 타난단 말인가?
“루크델라라는 이름을 가진 드래곤 이었네. 기록상으로 남아 있는 네 용 중에 얼음을 관장하고 있는 용이지.”
“드래곤이 왜 카르가스의 시체를 지키고 있단 말씀입니까?”
“드래곤의 심장이 강력한 마력의 결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 나?”
“네. 들어본 적 있습니다.”
드래곤 하트.
드래곤이 브레스라는 강력한 권능 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 이며, 동시에 드래곤이 가진 막대한 힘의 근원이었다.
영식의 목적은 드래곤 하트가 아닌 비늘이지만 단순히 가치만 놓고 본 다면 드래곤의 신체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곳이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알렉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 심장의 마력이 자연적으로 흩 어질 때까지 그 시체를 아무도 건드 리지 못하게 하는 게 드래곤들만의 장례라고 하더군.”
“?그렇다면.”
“드래곤의 심장은 3년의 시간에 걸 쳐 천천히 분해된다고 하더군. 만약 그전에 시체를 건든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에 어쩔 수 없이 시체를 포기하고 돌아왔네.”
알렉의 말에 영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몹시.
불쾌한 기분이 그의 전신에 퍼져나 갔다.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본 알렉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미안하네. 그때는 자네와 루시아 양도 없었을 때고 이제 막 전후 수 습을 하고 있을 때라 여유가 없었네. 그 이후로는 좀… 바쁜 일이 많아서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네.”
“아, 괜찮습니다. 알렉 씨를 탓하려 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보다는 그 격이 한 단계 낮 다고는 하나 드래곤은 매우 강력한 존재였다.
지금 당장만 놓고 보더라도 일대일 로 용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연 합군 내에 없을 정도.
그런 드래곤을 영식과 루시아 없이 상대하겠다는 것은 너무 엄청난 희 생이 필요한 일이다.
자칫하면 전멸할 수도 있으니 욕심 을 부리지 않고 재빨리 발을 뺀 알렉 의 선택은 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영식이 불쾌한 감정을 느낀 것은 그
‘루크델라’라는 드래곤 때문이었다.
대륙 전체가 전란에 휘말릴 때 어 디에 처박혀 있다가 이제 와서 뻔뻔 하게 기어 나온다는 말인가.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대륙 전체를 전란으로 몰아넣은 장 본인이 그런 얘기를 하기는 좀 양심 에 찔렸지만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3년이라….”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생 각에 잠겼다.
‘너무 길어.’
지금 당장 전력을 강화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3년이라니.
기다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끄응. 곤란하네요.”
루크델라는 엄밀하게 말하면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만 설득한다면 아군으로 끌어들여 강력한 전력의 상승을 노려볼 수 있는 존재였다.
만약 루크델라를 통해 다른 두 용 까지도 전력에 합세시킬 수 있다면 창조주를 상대할 때 천군만마와 같 은 아군을 얻게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그와 싸우게 된다면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피해가 생길 것이 분명했 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연합군의 전력은 카르 가스를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 력해져 있었다.
영식 자신만 하더라도 지난번 강제 해방 이후에 눈을 뜨면서 에너지 제 어 능력이 향상되었고, 루시아는 슈 트라는 강력한 힘을 얻었다.
비단 둘만 아니라 살바토르 길드부 터 시작하여 랭커들의 숫자와 질 모 두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됐다.
루크델라와 싸워 이기는 것 자체는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창조주와의 전투를 준비하 며 전력을 키워야 하는 연합군의 입 장에서는 루크델라와 싸우는 것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
만약 루크델라를 죽임으로써 다른 두 마리의 용까지 연합군을 공격하 게 된다면 최악도 그런 최악의 상황 이 없었다.
“일단 내가 보기에 말이 통하지 않 는 상대는 아니었네. 오히려 자기 말 로는 싸움을 극도로 싫어하니 되도록 싸울 일 없이 넘어가자고 하더군.”
“흐음. 그렇군요.”
영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 의미는 없는 말이었다.
협박을 하는 입장에서 싸울 일 없 이 넘어가자고 하는 것은 그냥 내 심기 건드리지 말고 알아서 기어라, 라는 의미와 같았다.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밀어붙 이며 상대방의 수긍을 강요하는 것 은 전형적인 갑질이었으니까.
옥수수를 내밀면서 다이아몬드로 바꿔 주지 않으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이라 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니, 더 질이 나쁘지.’
저건 최소한 옥수수라도 주지 이번
경우에는 아예 주는 것이 없었다.
“우선 연합군의 전력 상승을 위해 서는 카르가스의 시체가 반드시 필 요한 입장입니다.”
“그 말은...”
“네,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를 다시 모아주세요. 그 루크델라라는 용하 고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싸울 생각인가?”
알렉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물 었다.
영식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면 대화로 풀어볼 생각입니
다. 지금 상황에서 쓸데없는 희생을 늘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용은 강력한 존재입니다. 아 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죠.”
영식의 말이 이어졌다.
“때문에 루크델라에게 위기감을 조 성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음 접근 은 소수의 정예만 모여서 접근하겠 습니다. 다른 인원은 부르면 올 수 있는 장소에서 대기해 주세요.”
“얘기가 잘 됐으면 좋겠군.”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큰 기대 는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루크델라의 얘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불쾌감.
그 감정이 괜히 느껴진 것이 아니 었다.
‘카르가스가 창조주 손에 조종당하 고 있을 때는 가만히 처박혀 있다가 이제 기어 나와서 일방적으로 권리 를 주장한다 이거지.’
영식의 눈에 희미한 분노가 서렸다.
루크델라의 요구는 뻔뻔하고, 오만 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는 그가 과연 설득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딴 요 구를 하는 루크델라를 설득하고 싶 은 생각도 많이 없었다.
영식은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며 표 정을 일그러뜨렸다.
‘카르가스 하나를 죽이는 데 얼마 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데, 그걸 그 냥 3년 동안 손가락 빨고 구경하고 있으라고?’
양보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은 그만 한 권리를 가지고 나서야 할 수 있 는 행동이었다.
루크델라에게는 그럴 수 있는 권리 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