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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30화 (230/284)

레벨업 머신 230화

행복해도 괜찮아(1)

“제길!”

복잡한 금속 장치로 가득한 방.

온화한 인상을 가진 청년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온화한 인 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칠게 일그러져 있는 표정.

“하, 하하. 이거 참….”

흥분에 찬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던 그는 헛웃음을 홀리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설마 실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 데 말이죠.”

온화한 인상의 청년, 단테리온은 자조하며 중얼거렸다.

그가 이번에 복구시켜 사용한 블랙 큐브는 강제력이 뛰어난 모델은 아 니었다.

진짜 강제력이 뛰어난 모델은 아예 사고 능력까지 모두 없애버린 뒤 꼭 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것이 가능했으 니까.

거기에 더해서 그는 일부러 블랙큐 브의 강제력을 낮췄다.

그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선택’ 에 따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 확신했다.

그는 그런 강제력 없이도 그녀를 조종하는 것 정도는 아주 손쉽게 생 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듣 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달콤한 말로 내면의 욕망을 긍정해

주면 맹목적으로 그 말에 따르게 되 어 있었다.

이번에 루시아도 마찬가지.

단테리온은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복수심과 그에 대한 독점욕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그녀를 조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계획은 루시아의 돌발적인 행동에 의해 무너져 버리 고 말았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영식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단테리 온을 이겨버린 것이다.

“후우….”

단테리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적으로 강제력을 좀 더 강하게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 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아니, 아니지.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가 원하는 것은 명령에 따르는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꼭두각시 따위로는 영식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대 장을, 영식을 설득시킬 수 있는 ‘재 료’들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단테리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이브 사건에 이 은 이번 사건으로 영식은 락테온이 틀리고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 달아야 했다.

다시금 자신을 이끌고 사명을 완수 해야 했다.

“아아, 대장님….”

단테리온은 갈증에 찬 목소리로 그 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지도자였고, 왕이었으며, 메시아였

고, 신이었다.

그가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오 로지 영식 때문이었다.

“락테온.”

단테리온의 눈에 농밀한 증오가 서 렸다. 모든 문제는 그에게서 시작되 었다. 그는 자신의 신에게 쓸모없는 정보를 흘려 그를 혼란시켰다.

완벽했던 그를 신의 자리에서 끌어 내어 버렸다.

만약 그가 지금 죽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 하는 몸으로 만들어 끔찍한 복수를 했을 것이다.

“부디 깨달아주세요, 대장님. 그는 틀렸습니다.”

단테리온은 신에게 기도하는 신도 처럼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기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계획이 비틀려 버렸다.

정성을 들여서 ‘설득’한 루시아는 그를 등지고 영식에게 가버렸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

단테리온은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 탁탁탁탁.

그의 발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점 점 더 빨라졌다.

루시아와의 일이 일단락 된 후, 영식 은 바로 요새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요청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군대를 끌고 온 알렉은 영식과 티리아, 루 시아를 보호한 후 빠르게 구조 작업 에 들어갔다.

살바토르 길드를 비롯한 서부 소환 자들은 그리 깊지 않은 입구 쪽에 파묻혔기 때문에 구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길수를 비롯한 강력한 랭커 들이 붕괴의 충격에서 최대한 소환 자들을 보호했기 때문에 사상자 또 한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가장 깊은 곳에 매장된 서 강준이었다.

위치 자체는 영식이 땅속을 스캔하 여 어렵지 않게 찾아냈지만 너무 깊 은 곳에 매장되어 있어 구조에 20 시간이 넘게 걸려 버리고 말았다.

공기조차 없는 흙속에서 20시간.

인간이 견디기에는 터무니없이 기 나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강준이라는 규격 외의 강 자는 산소도 없는 땅속에서 20시간 을 견뎌냈다.

물론, 아무리 서강준이라고 하더라 도 수만 톤의 무게에 짓눌렸는데 멀 쩡할 수는 없었다.

갈비뼈는 대부분 박살 났고, 두 다 리와 왼팔이 참혹하게 짓이겨져 있 었다.

그런 끔찍한 상태에서도 그는 20 시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목숨을 유지한 채 버텨낸 것이다.

서강준은 구조대에 의해 긴급히 요 새로 옮겨졌고, 그의 치료에 수십 명의 힐러들이 달려들었다.

당장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는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움직 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했다.

그를 따르던 서부 소환자들은 서강 준의 트롤 뺨치는 재생 능력에 아연 해하는 한편 그의 생환을 반겼다.

지도 세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서부 소환자들에게 있어 서강준의 존재는 그들의 자존심이자, 가장 든 든한 지지대였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서강준과 살바토르 길드 라는 연합군의 핵심 세력을 잃을 뻔 했던 사건은 영식의 등장으로 인해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영식 씨, 이번 사건 사후 보고서 예요.”

잉그리움 제국의 황성, 수개월 동 안 영식이 잠들어 있었던 방 안에 티리아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수십 장의 서류들이 쥐어져 있었다.

“그 괴생명체는 찾았어?”

서류를 받아든 영식은 티리아를 향 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이후로 몇 번 조사대가 주변을 살폈지만 괴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다른 정찰조에서 습 격당했다는 소식도 없고요.”

“홈…. 가만히 내버려두긴 좀 껄끄 러운 존재인데.”

“알렉 씨에게 부탁해서 지속적으로 조사대를 파견해 달라고 할게요.”

“알았어.”

영식은 고개를 끄덕인 후 서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내용은 길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거의 적혀져 있지 않은 보고서였다.

“영식 씨.”

의자에 앉아 있는 영식에게 티리아 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는 영 식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티리아는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영 식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돌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살짝 울먹이는 듯한 눈빛으 로 그를 바라보았다.

영식이 수개월 동안 잠들었을 때, 그녀는 겉으로는 강한 척을 했지만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 은 심정이었다.

외롭고, 두려웠다.

그가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 로 끔찍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가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 의 마음속에 뚫린 구멍이 점점 커져 가는 기분이었다.

“미안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영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허 리춤에 손을 올려 살짝 끌어당겼다.

방금 전보다 조금 더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아...”

진한 키스가 끝난 후, 티리아는 아 쉽다는 표정으로 짧은 탄성을 흘렸다.

그녀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앞으로는 쭉 제 곁에 있어주 세요.”

티리아는 영식의 가슴에 머리를 기

대며 마치 투정을 부리듯 그를 끌어 안았다.

평소 수줍음이 많은 그녀치고는 굉 장히 적극적인 모습.

영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티리아 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티리아는 머리에서 새하얀 김이라 도 피어오를 것 같은 표정으로 다급 히 영식에게서 떨어졌다.

“흐, 흐흐흠! 아, 여, 영식 씨. 따로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티리아는 부끄러움을 감추듯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응? 뭔데?”

“루시아 씨에… 관한 얘기예요.”

그녀의 말에 영식은 굳게 입을 다 물었다.

루시아.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면 막막한 감 정이 몰려들었다.

루시아는 지난 사건이 있던 이후로 는 황성의 방 안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영식에게 달라붙던 활기찬 모습도, 밝은 미소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최소한의 식사와 물을 방 안으로 가져가는 것 이외에는 방 밖으로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 루시아 씨 를 가만히 놔두는 것은… 너무 가슴 이 아파서요.”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문 채 티리아 의 뺨에 손을 올렸다.

“티리아, 너는 루시아를 용서할 수 있어?”

“예?”

“물론 루시아가 단테리온에게 조종

당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녀의 의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네가 죽을 수 도 있었어.”

“그래도 그녀를 용서할 수 있어?”

정곡을 찌르는 그의 질문에 티리아 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을 이어가던 티리아는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 을 이었다.

“예. 물론이죠. 루시아 씨는… 많이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 가 그녀의 입장이 된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오싹한 걸요.”

티리아는 영식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는 영식 씨를 사랑해요. 하지만 루시아 씨는 영식 씨를 사랑하고 싶 어도 순수하게, 아무런 고민 없이 사랑하기는 힘든 입장이겠죠. 죄책 감도 많으실 거예요.”

“?그렇겠지.”

“그런 루시아 씨의 마음을 저도 이 해하고 있는 걸요. 그런데 어떻게 그녀를 미워할 수 있겠어요.”

영식은 티리아다운 말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영식은 다시금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역시 티리아답네.”

“읏…. 그, 그건 칭찬인가요?”

“글쎄? 다만 이번 경우에 한해서는 칭찬으로 생각해도 좋아.”

영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럼 지금부터 루시아 씨의 방 에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신가요?”

티리아는 살짝 초조한 표정으로 그 에게 물었다.

그녀가 걱정되는 것은 루시아만이 아니 었다.

영식 또한 그녀에 대해 전처럼 대 하기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었다.

기억도 안 나는 자신이 했던 일이 라고 해도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은 사실이니 죄책감 에 시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식은 가볍게 눈을 감은 채 고민 에 잠겼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루시아와 제대 로 마주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에게 먼 저 손을 내미는 것만큼 염치없는 짓 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루시아를 방치해 둘 수 없 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 다.

“루시아의 방으로 가보자. 나도 할 얘기가 많으니까.”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티리아의 손 을 잡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앞에 허리까지 기른 흑발을 가진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아라야?”

“아, 얘기는 끝났어?”

“네. 루시아 씨가 있는 방으로 가 기로 했어요.”

“다행이네.”

이미 그의 방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상의된 이야기였다는 듯 아라는 만 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두 여인의 작전에 꾀인 영식은 아 라와 티리아에게 끌려 루시아의 방 앞에 도착했다.

- 똑똑.

영식은 가볍게 루시아의 방문을 두 들겼다.

예상했던 대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루시아, 잠깐 할 얘기가 있어.”

-콰당!

영식의 말이 들리자 그녀의 방안에 서 가구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죄송해요. 지금은 주인님과 얘기 를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만큼 문을

연 루시아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 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잠깐.”

“읏….”

“조금만 시간을 내줘.”

“지, 지금은 안 돼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부탁이야.”

“죄, 죄송해요. 지금은 혼자 있게 해주세요.”

루시아는 그를 만나는 것을 계속해 서 거부하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영식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씁쓸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평소라면 강제로라도 문을 열었겠 지만, 그녀에 대한 깊은 죄책감 때 문에 함부로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였다.

“아, 진짜! 답답해서 못 봐주겠네!”

?쿵!

아라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루시아는 엄청난 반응 속도를 보여 주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허무할 정 도로 쉽게 열렸다.

아라는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 쳤다.

“야! 언제까지 그렇게 방구석에 처 박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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