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25화
재가동 (2)
그것은 광산의 내부보다 어떤 생물 의 뱃속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 합한 장소였다.
- 찔꺽.
“ 윽?”
갈색 머리칼의 청년은 광산 내부의
광경에 압도되어 벽에 손을 짚었다. 서강준을 따르는 서부 소환자 중 하 나였다.
손바닥에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점성 높은 점액질에 손을 담군 듯 한 불쾌한 감각.
그는 벽에서 다급히 손을 떼었다.
“어...?”
벽에서 손을 뗀 소환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질척한 점액질이 묻은 그의 오른손이 마치 액체라도 된 것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살점이 녹아내리며 검붉은 혈관과, 그 안의 새하얀 뼈가 드러났다.
“아, 아아아악!”
뒤늦게 밀려드는 고통.
자신의 손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시 각적인 공포.
갈색 머리칼의 청년은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하지만.
-철퍽.
“히, 히익!”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한 그가 쓰 러진 장소는 점액질이 가득한 벽 쪽 이었다.
끈적한 점액질의 액체가 그의 전신
을 뒤덮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듯 서강준을 향 해 손목만 남은 손을 내밀었다.
-치이이이익.
“아아아악!”
하지만 서강준이 그를 빼낼 틈도 없이 점액질에 범벅이 된 청년의 몸 이 연기를 피워 올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살이 타들어가는 역겨운 냄새가 동 굴 안에 퍼져 나갔다.
“모두 광산 벽에 몸이 닿지 않게 해라! 점액질에 몸이 닿아서는 안 된다!”
광산 벽 전체에 칠해져 있는 점액 질 액체.
정체불명의 그 액체가 강한 산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서강준은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소환자들은 발에 마력을 집중한 후 벽에서 떨어져 서로 뭉쳤다.
그들의 표정에 긴장이 서렸다.
갈색 머리칼의 청년은 90레벨 후 반대의 소환자.
그런 강력한 소환자가 아무것도 하 지 못하고 순식간에 녹아버렸으니 저 점액질이 가진 살상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 었다.
아마 랭커라도 저 점액질을 뒤집어 쓰고는 길게 버틸 수 없으리라.
“어떻게 하겠나, 살바토르 길드마 스터.”
지금 이 광산 안에 그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확실했다.
문제는 이곳이 그 괴생명체의 아지 트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이 이상 안쪽으로 접근하는 것은 짐승의 아가리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티리아는 굳게 입술을 다문 채 잠 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고민에 잠겨 있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며 손을 들어올렸다.
-파지지직!
세라핌의 힘을 상징하는 새하얀 뇌 전이 그녀의 손에 맺혔다.
티리아는 손에 맺힌 뇌전을 점액질 범벅이 되어 있는 벽에 가져다 대었다.
-치이이익.
끔찍한 악취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 랐다. 벽에 붙어 있던 점액질이 공 기 중으로 흩어졌다.
점액질이 사라진 벽을 손으로 만지 며 티리아가 입을 열었다.
“마법을 사용해 이 액체들을 날려 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네. 액체를 지우면서 천천히 진입 하죠.”
서강준은 고개를 끄덕인 후 양팔을 넓게 펼쳤다.
그의 손목에서 뿜어져 나온 수백 가닥의 와이어들이 동굴 벽에 달라 붙었다.
“열전도가 뛰어난 재질의 와이어를
주변에 뿌려두었네. 누구 강력한 화 염 계열 스킬을 쓸 수 있는 사람 있는가?”
“그거라면 나한테 맡겨.”
유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서강준의 와 이어에 두 손을 올리고 단전 속의 힘을 끌어올렸다.
“염화(炎火).”
- 화르르르륵!
유나의 손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불 꽃이 와이어를 타고 동굴 전체에 퍼 져나갔다.
점액이 불타오르며 매캐한 연기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컨트롤 윈드.”
바람 계열 소환자가 마법을 캐스팅 해 동굴 안에 찬 연기를 밖으로 빼 냈다.
동굴 벽 전체를 뒤덮고 있던 점액 질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소환자들 은 천천히 동굴 안쪽으로 진입했다.
-찌걱.
“진짜 끝도 없네.”
유나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좀 더 안으로 진입하자 다시금 벽 마다 한가득 점액질이 있었다.
점액질 자체가 불에 꽤나 내구성이 강했기 때문에 태울 수는 있어도 동 굴 전체에 퍼져 있는 모든 점액질을 한 번에 없앨 수는 없었다.
자연히 조사대의 진입 속도는 기어 가는 것처럼 느릴 수밖에 없었다.
“염화.”
- 화르르륵.
유나는 기계적으로 서강준의 와이 어에 손을 올려 불의 힘을 사용했다.
뜨거운 불길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점액질이 타들어가면서 끔찍한 악취 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끄응.”
유나는 코를 움켜쥐며 바람 마법을 기다렸다.
-콰드드드득!
“아아아악!”
하지만 그녀가 기다리던 바람 마법 대신 끔찍한 비명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유나는 쌍식을 빼어들며 재빠르게 비명이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야?!”
“스, 습격입니다!”
조사대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며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동굴 안은 점액질이 불타고 나온 연기들로 인해 시야가 완전히 차단 되어버린 상태였다.
“크읏! 제길!”
유나는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 의 감각에 따라 살기가 느껴지는 곳 을 향해 쌍식을 휘둘렀다.
그녀를 따라 서강준과 티리아의 공 격이 이어졌다.
-촤악!
“키에에에에엑!”
생물의 비명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비명소리.
유나는 쌍식을 통해 느껴지는 질척 한 피륙의 감촉에 거칠게 표정을 일 그러뜨렸다.
굉장히 불쾌한 감각이었다.
-파지지직! 촤악!
유나의 공격에 이어 티리아와 서강 준 역시 공격을 쏟아냈다.
다른 소환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에 속했던 강자들.
시야가 차단되었다고는 하나 그 예 리한 감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디 간 거지?”
시간이 지나 연기가 걷히고 난 후, 유나는 동굴 안의 모습을 보고는 표 정을 일그러뜨렸다.
조사대를 습격했던 괴생명체의 모 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반으로 뜯겨나간 소환자 의 하반신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 다.
‘분명 베긴 벴는데.’
확실하게 살을 가르는 감촉이 느껴 졌다. 비명소리도 들렸고, 이어지는 공격에도 적중당한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막상 연기가 걷히고 난 후 조사대를 습격한 괴생명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동굴 안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성은 반으로 갈라진 소환자의 시 체에 다가갔다.
“?연기를 걷어낼 수 있는 마법을 가진 소환자부터 노렸군요.”
한성은 황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현 씨,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 이 있었습니까?”
“…아니. 나도 비명을 들은 후에야 습격당했다는 것을 알았네.”
“유나 씨와 아라 씨는요?”
“나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저도 마찬가지에요.”
“…기척을 거의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몬스터인 것 같군요.”
한성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지능도 상당한 것 같습니 다. 애초에 동굴 벽 전체에 점액을 바른 이유도 침입자의 행동을 제한 하고, 침입자가 점액을 제거할 때 나오는 연기를 이용해 습격하고 있 군요.”
단순히 괴물이라고 하기에는 노련
한 사냥꾼에게 가까운 모습.
조사대의 표정에 짙은 긴장이 내려 앉았다.
“더 이상 진입하는 건….”
“위험할 것 같군.”
서강준과 티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괴생명체는 서강준과 황현의 감지 능력조차 벗어날 수 있는 은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습격으로 괴생명체의 지능 또 한 상당한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진입하는 것은 위험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죠.”
티리아의 말에 서강준은 고개를 끄 덕였다.
피해만 입고 물러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나 후퇴할 때 망설이는 것만 큼 치명적인 것이 없었다.
“그럼 왔던 길로 돌아가죠. 모두 괴물에게 습격의 주의해 주세요.”
티리아는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돌 아가려고 했다.
들어왔던 길을 마법으로 비춘 티리 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질퍽.
“이건...”
남김없이 불태우고 왔을 길인데, 어느새 점액질이 흥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태우기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양 이었다.
‘점액질에 닿지 않고는 돌파할 수 가 없어.’
벽에 흥건한 점액질은 그렇다 쳐도 천장에서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점액이 문제였다.
“ 당했군요.”
“돌아갈 길이….”
“우, 우리 갇힌 거야?”
뚝뚝 점액이 떨어지는 통로를 바라 보며 티리아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불태우면서 돌아가는 것도 위험해.’
괴생명체는 연기로 시야가 차단된 틈을 노려 습격했다.
점액질을 태우며 되돌아가는 것은 위험이 너무 컸다.
“길수 씨, 방패를 위로 들어서 장 막을 펼쳐주세요.”
“알겠네.”
티리아는 서강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서강준 씨도 와이어로 방패를 만 들어서 점액질이 튀는 걸 막아주실 수 있나요?”
“강행 돌파할 생각인가?”
“예. 다소 피해는 입더라도 최대한 서둘러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 니다.”
티리아의 제안에 서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몸에 마력을 두르세요! 이곳 을 벗어나겠습니다!”
“철벽의 수호!”
길수는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조
사대 전체를 덮는 푸른 장막을 만들 어 냈다.
마치 넓은 우산에서 함께 비를 피 하듯 소환자들이 길수를 중심으로 뭉쳤다.
“그럼 출발하겠네!”
선두에선 길수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천장에서 떨어진 점액들이 그의 방 패 위에 쏟아졌다.
-치이이이익!
“크홉!”
길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방패에 닿은 점액질이 순식간에 장
막을 녹여내며 그 안으로 침입하려 고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길수는 과거 티비에서 보았던 영화 하나를 떠올렸다.
우주선 안에 외계생명체가 들어와 살육을 펼치는 SF 영화.
그 외계생명체가 질질 흘려내던 녹 색 체액은 우주선 바닥을 뚫을 정도 로 강렬한 산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천장에서 떨어지고 있는 점액 질이 그와 비슷했다. 길수는 방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력이 쭉쭉 떨 어져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얼음 방패!”
그런 길수를 도와준 것은 아라의 마법이 었다.
방패 위에 두꺼운 얼음 방벽이 생 기며 잠시 여유가 생겼다.
아라에 이어 소환자들은 각자의 방 어 스킬을 사용하며 빠른 속도로 동 굴 밖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조금만 더 견뎌주세요!”
티리아는 그렇게 소리치며 멀리서 보이는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옹…?’
동굴 입구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동굴 안에서 조사대를 습격했던 살 덩어리가 아니었다. 입구에 보이는 것은 명백한 사람의 인영이었다.
‘누구지?’
혹시 습격에서 살아난 생존자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한 티리아는 가늘게 눈을 뜨며 그 인영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입구에 서있 는 인영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어…?”
선명해진 인영의 모습을 본 티리아
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흘 러나왔다.
그녀는 한시가 급히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어, 어째서….”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굴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 았다.
“아도니스 디 리베리에.”
입구에 서 있는 존재의 입에서 낯 설지 않은 기술명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