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24화
재가동 (1)
-콰드득. 콰득.
영상이 붉게 물들었다. 살육이 짓 뭉개지고, 뜯어 먹히는 섬뜩한 소리 만이 영상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상일세.”
알렉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수정 구
슬에 손을 뻗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 내부에 내려 앉았다.
잔인한 장면에 대해서는 꽤나 강 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소환자들 도 표정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끔 찍한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 찍힌 정체불명의 살덩어 리의 모습이 주변 분위기를 압도했다.
“저건… 대체 무엇입니까?”
한성은 가늘게 눈을 뜨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의 시체를 어설프게 이어붙였 다가, 녹여버린 것 같은 끔찍한 외 형을 가지고 있는 살덩어리.
이제까지 몬스터의 종류에 대한 여 러 문헌을 접해봤지만 저런 형태를 가진 몬스터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있다면….
“흑마법사의 마물…?”
“아니,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알렉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 했다.
“흑마법사의 마물이라면 검은 연기
처럼 생긴 마기가 생기게 마련이네. 하지만 저 괴생명체 어디에도 검은 색 연기는 보이지 않아.”
“흐... ”
◎ ?
“예상으로는 신종 몬스터의 일종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네.”
“신종 몬스터라고 생각하기도 좀 애매하긴 한데요. 일단 기계가 어디 에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한성은 끔찍한 외형을 가지고 있던 살덩어리를 떠올리며 표정을 일그러 뜨렸다.
확실히 기계 몬스터라고 하기엔 많 은 무리가 있는 외형의 몬스터였다.
“혹시 실험의 실패작은 아닐까요?”
“실패작이 라?”
“예. 창조주들은 몬스터와 기계를 하나로 섞는… 일종의 키메라를 만 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기술을 가지 고 있죠.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던 도중 이런 괴생명체가 태어났을 가 능성도 충분합니다.”
“흠….”
“아니면 아예 새로운 종류의 몬스 터일 가능성도 있겠죠.”
묘한 침묵이 흘렀다.
“지금 단계에서의 추측은 큰 의미
가 없을 것 같군.”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서강준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영상 속 정보만으로는 추측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었다.
저것이 정말 실험의 실패작인지, 아니면 창조주와 전혀 별개의 생명 체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이다.
“일단 조사대를 만들어 저 괴생명 체의 정체에 대해서 확인해볼 생각 이네. 생포가 가장 큰 목적이긴 하 지만 필요시 사살해도 상관없네.”
“조사대 인원은 어떻게 하실 생각
이시죠?”
“영상으로 봐서는 정확히 알 수 없 지만 꽤 강력한 생명체라고 추측되 네. 앞서 말이 나온 것처럼 창조주 들이 새로운 계략을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알렉은 고개를 돌려 서강준과 티리 아를 바라보았다.
“때문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번 조사대에는 올드 원과 살바토 르 길드에게 맡기고 싶네.”
서강준이 이끄는 서부 소환자들과 동부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살바토 르 길드.
두 세력은 현재 대륙 연합군의 핵 심 세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 었다.
“신중해야겠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할 필요성도 있고. 알겠네. 조사대에 참여하도록 하지.”
서강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창조주에 관한 것이라면 신중을 가할 필요성이 있 었다.
‘그리고 신속해야겠지.’
서강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기계 몬스터만 하더라도 제때 발견 했다면 카르가스 같은 괴물이 나타 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나타난 것이 창조주들이 세 우는 계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저희 길드도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부탁하네. 광산 근처에서 다른 곳으 로 괴물이 이동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예.”
결단은 빨랐다.
소환자들은 각자의 준비를 위해 방 으로 향했다.
“언니, 준비 끝났어?”
“응.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였어?”
“응. 다들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
“알았어. 바로 나갈게.”
가벼운 갑옷을 입은 티리아는 방 밖 으로 나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
방문으로 향하던 티리아는 다시 몸 을 돌려 서랍 쪽으로 다가갔다. 서 랍의 문을 연 그녀는 그 안에 있는 통신기를 들어올렸다.
영식이 전투 중에 빠른 속도로 의 사소통을 하기 위해 길드원들에게 나눠준 통신기였다.
영식이 잠든 이후 그녀는 밖으로 나갈 때면 이것을 마치 부적처럼 몸 에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끼익.
“그럼 출발하자, 언니.”
“먼저 내려가 있어, 유나야.”
“응? 바로 가는 것 아니었어?”
“잠깐 들릴 곳이 있어서.”
티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영식 이 잠들어 있는 방에 시선을 보냈다.
유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 달칵.
티리아는 방문을 열고 영식이 잠들 어 있는 침대에 다가갔다.
“다녀올게요, 영식 씨.”
그녀는 고개를 숙여 영식의 입에 입을 맞췄다. 입술 너머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그것이 영식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 한 증거였다.
영식과 가볍게 키스를 나눈 티리아 는 길드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 로 발걸음 옮겼다.
“헤헤, 언니. 뭐 하고 왔어?”
밖으로 나가자 채린이 히죽히죽 미 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티리아는 살짝 뺨을 붉히며 기어들 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잠깐 영식 씨에게 인사하고 왔어.”
“흐응. 생각보다 빨리 왔네. 영식 오빠가 그렇게 참을성이 없나?”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니?”
짧은 입맞춤에 무슨 참을성이 있고 없고가 있단 말인가?
티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린 을 바라보았다.
채린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보통 10분 이상은 버티지 않나? 아니면 언니 쪽이 탁월한 기수… 아악!”
“이 발랑 까진 꼬맹이. 아직 일어 나지도 못하고 있는 영식이를 상대 로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거야.”
아라는 티리아가 말의 진의(?)를 깨닫기 전에 채린이의 이마를 쥐어 박았다.
채린은 몸을 바동거리며 소리쳤다.
“하, 하지만 영식 오빠 잠들어 있 을 뿐이지 반응은 하잖아!”
“뭐, 뭣?! 너, 너너너너 그, 그 얘 기를 어디서…!”
“헤헤. 전에 영식 오빠 방으로 가 는 언니의 뒤를 몰래 따라가서 확인 했지! 후훗. 언니도 차암?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우후후후훗.”
“이,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아라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채린의 입을 막았다.
티리아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신 거 죠?”
“?길드장님은 모르셔도 괜찮은 얘 기입니다.”
한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티리아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 해서라도 여기서는 다른 화제로 얘 기를 돌려야 했다.
“어서 출발하죠, 길드장님. 오리하 르콘 광산은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 에 있습니다. 자칫하면 피해자가 늘 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 예.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티리아는 살바토르 길드원들을 이 끌어 요새 밖으로 향했다.
그녀의 옆으로 서강준이 이끄는 서 부 소환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예 소환자들로 이루어진 부대의 이동속도는 기마대와 비슷했다.
살바토르 길드와 서강준은 얼마 지 나지 않아 영상 속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을 확인한 티 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환자들이 입고 있던 것으로 보이 는 옷가지는 있는데 정작 그 안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옷만 남아 있고 시체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사람을 먹는 종류의 괴물인가 보 네요.”
“흠….”
티리아의 말에 한성은 가늘게 눈을 떴다.
“그렇다면 창조주들이 벌인 계획이 아니라 완전한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조금 더 커졌군요.”
창조주들이 만든 기계 몬스터는 인 간을 잡아먹지 않았다. 오로지 죽이 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아직 확신하긴 이른 것 같습 니다. 애초에 기계 몬스터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종류의 생명체니까요.”
“그렇긴 하군요.”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황현 씨, 이 괴생명체가 어디로 이 동했는지 확인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의 말에 황현은 한쪽 무릎을 굽 혀 바닥에 손을 짚었다.
눈을 감고 감지 스킬을 사용하던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가 없 네.”
“흔적이 없다는 건가요?”
“그래. 황무지 바닥을 움직였다면 흔적이 남는 게 당연한데 그런 게 전혀 없어.”
“흐음….”
황현의 말에 한성은 짧은 침음을 삼켰다.
영상을 봤을 때 추정되는 괴물의 크기는 적어도 3미터 이상.
이런 엄폐물도 없는 황무지에서는 수 킬로미터 떨어져도 식별이 가능 할 정도의 크기였다.
“일단 주변을 찾아보는 방법 이외 에는 다른 방법은 없겠군요.”
“병력을 나누는 게 좋을까요?”
“흠. 아무래도 효율성을 따지면 그 편이 낫겠지만….”
한성은 고민에 찬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수색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
연히 흩어져서 찾는 편이 빨랐다.
‘하지만 그것도 이런 황무지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데.’
괜히 병력을 나눴다가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이 더 컸다.
한성은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주변 을 둘러보았다.
“한성아.”
“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살피던 유나가 허리춤에 찬 쌍식을 만지며 말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아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지팡이를 쓰다듬 었다.
“뭐랄까…. 어디선가 날 부르는 듯 한 기분이 들어.”
“아라 언니도?”
≪으 W
“?이상하네요. 저희는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데.”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리던 한성은 서강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강준 씨는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십니까?”
“아니,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
고 있네.”
“그럼 그런 느낌을 받는 건 아라 씨와 유나 씨뿐인가요?”
다른 소환자들은 고개를 끄덕여 한 성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라와 유나만 가지고 있는 공통점.
그것이 무엇인지 추측하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8영웅과 관련된 괴물일까요?”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고는 영웅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이외에 다 른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다.
무력 수준이라면 서강준이 높았고, 감지 능력이라면 황현이 가장 우월 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만 묘한 감 각을 느끼고 있다면 영웅의 무기 이 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 웠다.
“그 묘한 감각이 느껴지는 곳은 어 디죠?”
“저기야.”
유나는 한쪽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살바토르 길드 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소였다.
“오리하르콘 광산… 이군요.”
한성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티리 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을 받은 티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광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 겼다.
“일단 광산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오리하르콘 광산.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그 폐 광에는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바토르 길드와 서강준이 이끄는
서부 소환자들은 광산의 입구로 들 어갔다.
“읏….”
“이게 무슨 냄새야?”
광산으로 들어간 소환자들의 표정 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광산 안에서는 끔찍한 악취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안이 너무 어둡네요.”
“잠시만요.”
티리아를 비롯한 마법사 계열 소환 자들은 라이트 마법을 사용했다. 주 변이 밝혀지며 동굴 안의 모습이 눈 에 들어왔다.
“이건...”
“히, 히익!”
동굴 안에 모습을 본 소환자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