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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21화 (221/284)

레벨업 머신 221화

빈자리 ⑴

“아….”

몸이 반으로 갈라진 엘리아는 허리 아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장에 뜯겨나간 자신의 하반신이 보였다. 복잡한 기계 장치 안에 묘 한 붉은빛을 띠고 있는 살덩어리들 이 섞여 있었다.

“단테, 리온, 님….”

그녀는 허공을 움켜잡듯 손을 뻗었다.

이제까지 그녀가 느껴본 적 없는 기묘한 감정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 다. 가슴이 아려오고, 안절부절 못하 게 만드는 감각.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다지 나쁘 지 않은 감각이었다.

그녀의 의식이 점점 꺼져갔다.

엘리아는 영식이 있는 방향으로 고 개를 돌렸다.

절대적이고, 결코 닿을 수 없는 산 처럼 느껴졌던 그의 모습이 지금은 왠지 무척 왜소하게 보였다.

‘당신이라면….’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기묘한 감각에 대해서 알려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질문을 건네기도 전 에, 그녀의 의식은 완전한 어둠에 집어 삼켜졌다.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 엘리 아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수고 많았습니다, 엘리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따듯해지는 온화한 목소리. 그녀가 지금 가장 보고 싶었던 존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뒤에 다가온 단테리온을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 었다.

단테리온의 두 팔이 자신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이 끌어 드리 겠습니 다.”

그리고.

- 파직.

그녀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부서지 는 소리가 울렸다.

“아...?”

그와 함께, 무시무시한 양의 에너

지가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대폭발.

반으로 뜯겨진 그녀의 몸에서 뿜어 져 나오기 시작한 거대한 불꽃이 휘 몰아쳤다.

-치익.

-경고. 개체 ‘엘리아 4식’의 코어 파손으로 인한 폭발적인 열에너지의 발생을 감지하였습니다.

-해당 에너지는 지금 역장으로 분 해 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초월하였 습니다.

-신속한 대피를 권고 드립니다.

“크읏.”

영식은 두 팔로 몸을 가린 채 표 정을 일그러트렸다. 엘리아를 중심 으로 믿을 수 없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영식은 역장의 장막을 펼쳐 폭발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경고음대로 지금 그의 역장으로는 분해가 불가능한 양의 에너지들이었다.

‘조금만 더.’

영식은 카르가스와 싸웠던 장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 소환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대로 라면 폭발의 범위가 그들이 있는 곳 까지 미칠 가능성이 컸다.

영식은 전력을 다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에너지를 분해시켰다.

-치익.

-강제 해방의 부작용으로 인해 오 버로드가 시작됩니다.

‘하필 이때.’

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처음에 비해서는 상당히 줄어들었 다고는 하나 아직 엘리아를 중심으 로 뿜어져 나오는 열기의 양은 끔찍 할 정도였다.

-파지지직!

영식의 몸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엄청난 고통이 있을 것이라 는 예상과 달리 고통 자체는 별로 강렬하지 않았다.

아니, 별로 강렬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통증을 느끼는 기능 자체가 사라 져 버린 건가.’

영식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 막 힘을 짜내어 역장으로 감싼 열에 너지를 분해시켰다.

불이 꺼지듯이 그의 신체의 기능이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영식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길드 원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 렸다.

“아...”

그가 고개를 돌려 길드원들을 바라 보기 전에 그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 다.

영식의 입에서 아쉬움에 찬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기까진가.’

하나씩 정지해 가는 신체 기능.

영식은 고요하게 다가오는 최후를

느꼈다.

처음 길수와 만난 이후 겪었던 수 많은 일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 나갔다.

‘기계도 주마등이 있나.’

영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자조적 인 미소를 지었다.

역장에서 풀려난 불꽃이 자신을 덮 치는 것이 느껴졌다.

-쿠구구구구궁!

과거 잉그리움 제국의 영토, 황무 지로 변해버린 땅에 다시 한번 거대 한 폭발이 일어났다.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카르가스를 처치하는 데 성공한 대 륙 연합군은 그대로 과거 잉그리움 제국의 수도까지 진격해 들어갔다.

‘영웅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장소 였다.

아직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 는 잉그리움 제국의 황성을 중심으로 임시 요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륙 연합군의 책임자 중 하나인

제이슨 황제는 더 이상의 진격을 멈 추고 북방 경계선과 영웅의 무덤 사 이에 있는 몬스터 토벌에 전력을 기 울였다.

보급부대를 위한 길이 만들어졌고, 기회를 노린 상인들이 그 길을 타서 영웅의 무덤으로 진출했다.

돈이 움직이면 사람이 움직인다.

꿈에 부푼 사람, 도망갈 곳을 찾고 있던 사람, 안주할 장소를 찾아 헤 매던 사람들이 영웅의 무덤을 향해 짐을 꾸렸다.

그중 가장 많은 숫자가 이동한 것 은 소환자들이었다.

곧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는 희망을 품고 오는 자, 잉그리움 제국의 유산을 통해 강력한 힘을 손 에 넣어보겠다는 욕망을 품고 오는 자 등 각자의 목적은 여러 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이동으로 인해 영웅 의 무덤은 순식간에 활기를 찾았고, 영웅의 무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요새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영웅의 요새.’

8영웅의 유지를 이어받아 인류의 모든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이름이었다.

대륙 중앙에 있는 영웅의 요새는 각 지역에서 보내오는 전폭적인 지 원에 힘입어 현재 대륙에서 가장 빠 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가 되 었다.

“호외입니다, 호외! 이번에 레비아 탄 길드에서 ‘서리 망령의 지하 동 굴’ 공략에 성공했다 합니다!”

“오오! 그 주변에 기계 몬스터도 등장한다고 했던데 용케 공략에 성 공했네?”

“뭐, 레비아탄에는 그 ‘검성’이 있 잖아.”

“크으…. 그 소식은 들었어? 천태 황이 그 레비아탄 길드 마스터랑 그 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

“응? 검성은 백검이랑 연인 사이인 거 아니었어?”

“그게 둘 사이에서 좀 고민하고 있 다나봐.”

“크으, 아주 복이 터졌군그래.”

유명인의 가십거리는 어디에서나 훌륭한 대화 소재였다.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길을 걸어가

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 던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살짝 들어 올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 다.

그녀가 향한 곳은 영웅의 요새 중 앙에 위치한 잉그리움 제국의 황성 이었다.

황성에 도착하니 대륙 연합군복을 입은 두 병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기부터는 출입 제한 구역입니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시기….”

“야, 이 멍청한 놈들아!”

두 병사를 향해 대머리 사내가 바 람처럼 달려왔다. 그는 병사의 머리 를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소리쳤다.

“어떻게 최유나 장군님의 얼굴도 못 알아보냐?!”

버럭 소리를 지른 그는 유나를 향 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 였다.

“죄, 죄송합니다, 장군님! 이것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괜찮아.”

유나는 힘없는 표정으로 손을 저었 다. 그녀는 두 병사를 향해 고개들 돌렸다.

“그럼 수고해.”

“옛!”

두 병사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경례했다.

“이, 이번에 레비아탄 길드와 같이 서리 망령의 지하 동굴의 공략에 성공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대머리 사내는 힘찬 목소리로 그녀 에게 소리쳤다.

그의 눈빛에는 어떻게든 유나의 눈

에 들어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감 시조장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유나는 그런 그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강력한 보호막에 의해 보호받는 잉그리움 제국의 황성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그 웅장한 모습을 그대 로 유지하고 있었다.

황성으로 들어간 그녀는 살바토르 길드원들이 묵고 있는 거처로 향했다.

현재 황성에는 대륙 연합군의 지휘 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자 구역을 나눠 지내고 있었다.

“유나 왔어?”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라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모델 체형의 마른 몸을 가진 그녀였지만 지금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웅, 나 왔어.”

“다친 곳은 없고?”

“멀쩡해. 아마 조금 있으면 레비아 탄 길드도 복귀할 거야.”

“그래? 시아 씨도 한번 만나봐야겠네.”

“지금은 안 만나는 게 좋을걸. 천 태황 그놈을 두고 강하린이랑 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으니까.”

유나는 붉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미연시 주인공 같은 놈.’

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천태황을 떠올리며 유나는 한심하다 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면 다 가져 버리자는 선택을 한 영식과는 달리 천태황은 꽤나 우유부단하게 선택을 망설이고 있었다.

“언니는 뭐 하고 있었어?”

그녀의 물음에 아라는 쓴웃음을 지 었다.

“평소랑 똑같지 뭐. 이 지팡이 좀 다뤄보려고 노력 중이야.”

“하하. 영웅의 무기가… 조금 까칠 하지.”

“정말. 대화가 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라니까.”

아라는 손에 쥔 아이리스를 쓰다듬 으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길수 아저씨랑 철태 씨는 수련 중 이고 유진이랑 채린이, 태영이는 밖 에 물건 좀 사러 나갔어.”

“그쪽도 나름 수라장이네.”

“하하. 뭐… 어디까지나 유진이는 채린이를 여동생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그놈도 답답하니까. 남자 맞나 몰 라.”

거침없는 유나의 말에 아라는 당황 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성이는?”

“?보급품과의 전쟁 중이지.”

길드의 재정 관리를 넘어 연합군의 보급 관리의 총책임자가 된 한성은 지금 그 누구보다 격렬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멘탈적인 부분은 길드원 중 영식을 제외하고서 가장 단단한 한성조차 매일 밤 업무를 끝내고 돌아와서는.

‘아니, 어떻게 매번 보급품 조사를 할 때마다 수량이 달라지는 거죠?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왜 사람 은 열 명인데 뚝배기는 열한 개죠?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걸 두 겹으로 쓰고 돌아다닌 겁니까? 아, 여기서 뚝배기는 연합군 정규 투구 2호를 말하는 겁니다.’라며 불평을 쏟아낼 정도였다.

그가 그런 불평을 쏟아낼 때마다

길수와 철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 며, ‘원래 군대라는 게 그래’라며 발 톱 때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 을 해줄 뿐이었다.

“?고생하네.”

유나는 안쓰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한성에게 기도(?)를 올렸다.

“티리아 언니는?”

“?영식이가 있는 방에 있어.”

?

아라의 대답에 유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영식.

그에 대해서 떠올리자 그녀의 가슴 에 저릿한 통증이 달렸다.

“?잠깐 보러갈게.”

유나는 짐을 푸는 것보다도 먼저 티리아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끼익.

방문이 열렸다.

어둑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방 안.

넓은 침대 위에 마치 시체처럼 눈 을 감고 있는 영식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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