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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17화 (217/284)

레벨업 머신 217화

기계장치의 신(2)

“읏…!”

붉은색 슈트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하자 루시아의 입에서 당혹스러 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접근한 엘리아는 루시아 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읏!”

-카앙!

엘리아의 팔을 향해 라이트 세이버 를 휘두른 루시아는 다급하게 뒤로 몸을 빼냈다.

“하아, 하아….”

뒤로 물러난 루시아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카르가스의 전투로 인해 대부분의 마력을 사용한 그녀는 이 미 한계에 이르러 극심한 피로를 느 끼고 있었다.

“흐응. 왜 그러는 거야? 네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아?”

“필요 없어! 나에게는 주인님만 있 으면 된단 말이야!”

“하하! 그것 참 애틋한 사랑이네!”

엘리아는 루시아를 비웃으며 그녀 를 향해 달려들었다.

영식은 엘리아가 바닥에 떨어뜨린 오른팔을 원거리에서 조종해 그녀를 향해 쏘아 보냈다.

강렬한 부스트와 함께 로켓 펀치가 허공을 갈랐다.

로켓 펀치를 본 엘리아의 몸이 순 간적으로 흠칫 굳었다.

?퍼억!

허공을 가른 로켓 펀치가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아아…. 맞아. ‘예전’하고는 달랐 지.”

로켓 펀치에 정면으로 얻어맞은 엘 리아는 싱겁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 다.

“지금의 넌 고작 이 정도에 불과했 어.”

실실대는 웃음소리.

엘리아는 루시아를 노리던 것을 멈 추고 영식을 향해 발을 박찼다.

-쿠우우웅!

막대한 충격에 주변 땅이 갈라졌 다. 붉은색 빛으로 변한 그녀의 몸 이 영식에게 쏘아졌다.

‘피해….’

영식은 다가오는 엘리아를 피해 옆 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이어 가벼운 오 버로드까지 겪고 있는 그가 엘리아 를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주인님!”

이번에도 엘리아를 막아준 것은 루 시아.

엘리아는 그녀가 막으러 올 줄 알

았다는 듯이 오른팔을 그녀가 있는 곳으로 겨눴다.

- 화르르륵!

“꺄악!”

엘리아의 오른팔에서 뿜어진 화염 이 루시아를 덮쳤다.

루시아가 열기에 몸을 움츠린 사 이, 그녀에게 다가간 엘리아는 그녀 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컥!”

“드디어 잡았네.”

“루시아!”

“아, 우리 ‘대장님’은 조금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엘리아는 영식이 있는 쪽을 바라보 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영식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치익.

-경고. 메모리 데이터에 침입한 바 이러스가 치명적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치료를 위해 신체의 모든 기능을 제한합니다.

딱딱한 기계음이 영식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몸속으로 파고든 벌레가 전신을 뜯 어먹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 느껴 졌다.

“크악!”

영식은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쓰 러 졌다.

일순간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서 있을 수도 없게 된 영식은 바닥 에 쓰러진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안, 돼….”

영식은 당장에라도 꺼질 것 같은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루시아 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루시아의 모 습이 영식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새 겨 졌다.

“정말... 많이 변했네, 당신.”

바이러스로 인해 상상하기 힘든 고 통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루시아를 구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

그녀에게는 너무나 이질적이게 느 껴지는 모습이었다.

“아, 아아…. 주, 주인님….”

루시아는 바닥에 쓰러진 채 벌레처 럼 몸을 꿈틀거리고 있는 영식을 내 려다보며 절박한 신음을 흘렸다.

“자, 루시아. 이제 네게 선물을 하 나 줄게.”

“닥쳐! 주인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루시아는 목을 움켜잡힌 채 몸을 바동거렸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도 탈진 상태에 가까운 지금 그녀의 힘으로는 엘리 아를 떨쳐낼 수 없었다.

엘리아는 다른 한 손을 뻗어 그녀 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이제 너는 ‘자유’야.”

“무슨 소…. 아, 아아아아아악!”

-파직, 파지지직!

루시아의 머리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불타는 듯한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새하얀 거 품이 흘러나왔다.

“루, 시아….”

영식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끊어질 듯이 희미한 목소 리로 입을 열었다.

“루시아한테 무슨 짓이야!”

“이익!”

그 모습을 본 살바토르 길드원들이 엘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금 길드원들은 루시아, 서강준보다 더욱 지쳐 있는 상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벅찰 지경인 데 엘리아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쿵! 쿠 쿵! 쿠

“꺄악!”

“크윽!”

진홍색 슈트의 어깨가 열리며 주먹 만 한 크기의 미사일 수십 발이 길 드원들에게 날아갔다.

미사일의 폭발에 휩쓸린 길드원들 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 아으아아아아아!”

루시아의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울 려 퍼졌다.

그녀는 김재현의 명령을 거부했을 때와 같은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문제는, 명령에 따르면 고통이 줄 어들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떻게 해도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 이었다.

‘ 아파.’

전신의 모든 감각이 고통만을 느끼

게 변해버린 듯한 기분.

루시아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몸을 떨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그녀의 눈앞에 한 가지 영상이 떠올랐다.

“아, 으, 아아.”

“네게 메모리 큐브를 심은 게 누군 지 알아?”

엘리아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바로 네가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 한 주인님이야.”

“아, 니야. 그럴 리가, 없….”

“하하하! 아니라니? 아닐 리가 없 지! 내가 직접 봤는걸!”

그녀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 우리는 8영웅이라고 불리는 놈들을 상대해야 했거든. 근데 이놈 들이 인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하더라고?”

“아, 아아.,”

“그래서 우리 대장님께서 계획을 하나 세웠지. 바로 그 영웅들 중 하 나인 널 납치해서 메모리 큐브를 심 은 거야. 꼭두각시가 된 네게 저놈 이 가장 먼저 시킨 일이 뭔 줄 알 아? 네가 널 따르던 부하를 직접 죽이게 했지.”

“아니야. 주인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야.”

“넌 저놈의 명령을 따라 네 손으로 하나씩 부하들을 죽였지. 하하하! 그때 네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는 데!”

“아, 아아….”

루시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기억이.

잊혔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 되 살아나고 있었다.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영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냉혹한,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 는 차가운 표정.

그녀가 한 번도 본적 없던 영식의 얼굴이었다.

-메모리 큐브는 성공적으로 심어 진 것 같군.

기억 속의 영식은 아무 감정도 실 려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 버리겠어! 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여 버리겠다고!

자신의 손으로 죽인 부하들의 시체

를 부여잡은 루시아는 광기에 찬 목 소리로 소리쳤다.

저주를 퍼붓는 그녀의 외침에 영식 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 반항심이 남아 있군. 계획에 앞서 다시 한번 심리조작을 하지.

-더 이상 심리조작을 하면 뇌가 녹을 위험이 있습니다.

-상관없어. 나에 대한 충성도를 최 대치로 조정해라.

기억 속의 영식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지금의 영식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루시아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기억들은 그녀에게 이것이 ‘진 실’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더라? 아, 그래. 영웅들 사이에 널 되돌려 보 내서 서로 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 지. 아쉽게도 루시스란 놈에게 들켜 서 완전히 성공은 못했지만 말이야.”

“아, 아아….”

“그때 저 배신자의 발밑에서 죄송 하다고 싹싹 비는 네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하하하! 널 그렇게 만든 원수의 앞에서 꼴사납게 비는 꼴이라니! 아, 그런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진가?”

엘리아는 폭소를 터뜨리며 그녀의 목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의 손에서 해방된 루시아는 바 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움켜쥔 채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자, 네 머릿속에 있는 메모리 큐 브를 무력화시켜줬어. 네게 자유를 줬다고! 어때, 최고의 선물 아니야?”

루시아의 귓가에는 더 이상 엘리아

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에 빠진 눈빛으로 자신 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쯧, 실패했나.

-그래도 전쟁에서는 어느 정도 쓸 모가 있겠지.

기억 속의 영식이 내뱉는 차가운 말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과거의 영식과 지금 영식과의 기억 이 그녀의 머릿속에 뒤섞였다.

괴리감.

기억과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너무

나 큰 괴리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루시아는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가 만히 땅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영식과 함께 했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 사라져 갔다.

아니, 정확하게는 지금 영식의 모 습이 과거 영식의 모습에 뒤덮였다.

“아아아...”

루시아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 켰다. 그녀는 라이트 세이버를 움켜 쥔 채 바닥에 쓰러진 영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네가, 모두 네가 저지른 일이었구나.”

그녀는 자신이 ‘주인’이라고 불렀 던 존재를 향해 검을 겨눴다.

“모두 네가 저지른 일이었어.”

그녀의 눈빛에 증오의 불길이 타올 랐다.

바닥에 쓰러진 영식의 모습이 더 이상 그녀를 가슴 아프게 만들지 않 았다.

오히려 비참하게 꿈틀거리는 그의 모습이 기분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루시아….”

“그 더러운 입으로 날 부르지 마.”

루시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영식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박도훈이 자신을 그렇게 비웃었 는지, 엘리아가 영식을 지키려는 자 신의 모습에 폭소를 터뜨렸는지.

모두 저 악마가 꾸민 일이었다.

저 악마가, 자신을 농락한 것이었다.

“모두… 네 탓이었어.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다 너 때문이었다고!”

루시아는 손에 쥔 라이트 세이버를 거칠게 움켜쥐며 영식을 향해 소리 질렀다.

증오에 찬 외침이 그녀에게서 터져 나왔다.

영식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게 그런 일을 저지른 기억이 없 다고?

기억에도 없는, 과거의 자신이 저 지른 일이라고?

그딴 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변명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영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에게 다가온 루시아는 천천히 검 을 들어 올렸다.

“죽어, 이 악마 새끼야.”

루시아의 입에서 증오에 찬 목소리 가 흘러나왔다.

영식이 그녀에게 만들어 준 라이트 세이버가, 그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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