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15화
드래곤 슬레이어(5)
“드래곤의 목에… 달라붙는다고요?”
티리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는 있었다.
입으로 쏘는 드래곤 브레스의 특성
상 목에 달라붙어 있으면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티리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지금 살아남은 드래곤 슬레이어 부 대의 소환자는 수백 명. 그 모든 소 환자가 따개비처럼 드래곤의 비늘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상상하니 굉장 히 미묘한 기분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겠는데, 마음 속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할까.
“다른 방법이 없어.”
피해서 도망갈 수 있는 범위가 아 니었다.
티리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르가스를 향해 날개를 펄럭였다.
영식을 비롯한 원거리 클래스 소환 자들이 카르가스에게 도착했을 때쯤 그의 입가에 모여 있는 붉은빛은 절 정에 도달해 있었다.
“읏!”
카르가스의 머리를 공격해 브레스 를 지연시키고 있던 루시아는 더 이 상 열기를 견디기 힘든지 목 쪽으로 내려오며 영식을 향해 소리쳤다.
“주인님! 말씀대로 모두 달라붙었 어요!”
“곧 브레스가 시작될 거야! 다들 떨어지지 않게 붙어!”
티리아에 안겨 카르가스의 목에 도 착한 영식은 카르가스의 기다란 목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영향인가.
그는 당장에라도 카르가스의 목 위 에서 떨어질 듯이 비틀거렸다.
“영식 씨, 제 쪽으로 오세요.”
티리아는 휘청거리는 영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영식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왼손 을 들어올렸다.
“이 편이 더 확실해.”
-콰직!
영식은 전력을 담아 블레이드를 내 질렀다.
블레이드의 칼날이 카르가스의 비 늘을 뚫고 파고들었다.
블레이드를 지지대 삼아 몸을 지탱 한 영식은 고개를 돌려 카르가스를 바라보았다.
카르가스는 신체 구조상 영식을 향
해 브레스를 쏠 수 없자 당황하듯 목을 비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줘!”
카르가스가 목을 비틀기 시작하자 그 위에 달라붙어 있던 소환자들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 미터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랭커 소환자가 죽지는 않지만 문제 는 그곳이 브레스의 범위라는 점이 었다.
-화르르르르륵!
땅에 떨어진 소환자들이 다시 올라 오기도 전에 카르가스의 브레스가 입에서 내뿜어졌다.
끔찍한 열기를 가진 브레스가 바닥 을 향해 쏘아졌다.
“어…?”
바닥에 떨어진 소환자들은 멍한 표 정으로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소 멸의 빛을 올려다보았다.
브레스에 닿은 소환자들의 몸이 혼 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고통에 찬 비명도, 몸부림도 없었다.
랭커라는 초인의 경지에 몸을 디딘 소환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 도로 허무한 최후였다.
-치이이이익!
“아아아악!”
“뜨, 뜨거워!”
드래곤 브레스가 쏘아지기 시작하 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흘리기 시작 한 것은 오히려 목 쪽에 달라붙은 소환자들이었다.
브레스의 근처에 있는 열기만으로 도 그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느 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 쪽에서 떨어지는 소환자들도 속출했다.
-치이이익!
“크윽….”
금속으로 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영식조차 강렬한 열기에 표정을 일 그러뜨렸다.
“브레스가 끝날 때까지 버텨라!”
드래곤의 뒷목에 달라붙은 알렉은 부대원들을 향해 거친 목소리로 소 리 쳤다.
그는 불바다가 된 아래쪽을 바라보 며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려 찍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브레스 를 끝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상황이 좋지 않아.’
영식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씩 불바다가 된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소환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살바토르 길드원들은 서로 를 지탱해 주곤 있었지만 그것도 오 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영식은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계속 해서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는 카르 가스를 올려다보았다.
카르가스가 뿜어내는 브레스는 그 칠 생각도 하지 않고 주변 전체를 불태우고 있었다.
“읏!”
마법을 사용해 얼음을 접착제처럼 사용하여 카르가스의 목에 달라붙어 있던 아라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신 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몸을 비늘에 달라붙게 해주 고 있던 얼음들이 서서히 녹아내리 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영식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위태로운 것은 아라만이 아니었다.
살바토르 길드를 비롯한 다른 소환 자들도 거칠게 목을 비틀며 사방에 브레스를 뿜어내는 카르가스의 움직 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루시아와 서강준을 제외하고서는 땅에 떨어졌을 때 브레스의 열기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 둘조차도 브레스의 열기를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식은 아까 카르가스의 날개를 절 단했을 때와 같이 박아 넣은 블레이 드에 플라즈마 커터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치익.
-바이러스로 인해 보안 레벨 3단 계까지의 무기만 사용하실 수 없습 니다.
‘아직도 치유가 안 됐나.’
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보안 레벨 3단계까지의 무기는 로 켓 펀치, 블레이드, 부스트 이 3종 류였다.
그중에 부스트는 공격용으로는 사 용하기 힘드니 실질적으로는 블레이 드와 로켓 펀치, 이 두 가지로만 적 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아니, 블레이드 또한 몸을 지탱하 기 위해 카르가스의 목에 박아 넣었 으니 사용 가능한 것은 로켓 펀치 하나였다.
“제길.”
영식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 왔다.
로켓 펀치의 위력이 상당히 강한 것은 맞으나 카르가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 았다.
일단 크기 자체가 너무 크다 보니 내부에 충격을 주는 ‘파쇄’ 효과가 제대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흡수 를 한 플라즈마 커터로 목 전체를 베어내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 이 생각나지 않았다.
‘ 잠깐.’
플라즈마 커터에 생각이 미친 영식 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기술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게 가능하다면….’
카르가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 도 가능할 것이다.
영식은 카르가스의 목에 박아 넣은 블레이드를 내려다보았다.
재질 자체에 ‘에너지 분해’ 기술이 섞여 있는 블레이드는 카르가스의 피에 담긴 에너지를 계속해서 분해 하고 있었다.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는 에너지.
‘에너지 제어’ 기술을 익히기 전이 라면 느껴지지 않았을 그 에너지들 이 영식의 감각에 걸려들었다.
영식은 그 주인을 잃은 에너지들을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했다.
주인을 잃고 공기 중을 떠돌던 카 르가스의 마력이 영식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아...”
영식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 왔다.
익히고 나서 처음 써보는 기술임에 도 ‘에너지 제어’를 마치 수족처럼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었다.
그의 전신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감각.
이제까지 이 감각을 잊어버리고 있 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 로 낯익은 감각이었다.
‘할 수 있어.’
영식의 머릿속에 확신이 서렸다.
그는 블레이드의 날을 마치 톱질하 듯이 앞뒤로 움직이며 카르가스의 상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상처가 벌어지며 더 많은 양의 피 가 카르가스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영식은 카르가스의 목을 긁어내리 듯이 가르며 블레이드의 날에 더욱 많은 양의 피를 묻혔다.
카르가스의 피가 블레이드의 날에 닿는 족족 허공으로 흩어지며 순수 한 에너지로 변했다.
- 우우우우웅.
영식은 공기 중으로 흩어진 에너지 들을 자신에게 끌어 모은 후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오른팔에 보냈다.
에너지가 집약된 오른팔이 붉은빛
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아아악!”
브레스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 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필사적으로 카르가스의 목에 달라 붙어 있던 소환자들도 하나둘씩 바 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채 린아!”
티리아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떨 어지고 있는 채린을 공중에서 낚아 챘다.
등에 돋은 날개로 채린의 몸을 감 싼 그녀는 절망에 물든 표정으로 영 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영식 씨! 이대로라면!”
결국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은 자명 한 사실.
영식 또한 조급한 표정으로 카르가 스의 에너지를 흡수했다.
“크으으. 미, 미안하네, 영식 군.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군.”
한성을 한 팔에 안고 버티고 있던 길수 또한 슬슬 한계가 다가왔는지 영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요!”
영식은 거칠게 입술을 깨물며 닥치는 대로 공기 중의 에너지를 흡수했다.
- 경고.
-에너지 제어로 제어 가능한 에너 지의 임계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더 이상의 에너지를 제어할 시 오버로드가 발생합니다.
‘아직 부족해.’
영식은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오른 팔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기회는 단 한 번.
이번에 실패하게 된다면 그 뒤는
없었다. 오버로드의 위험성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치이이이익!
오른팔의 에너지가 너무 집약되었 기 때문일까.
그의 피부가 녹아내리며 은색으로 된 금속 팔이 들어났다.
‘ 지금!’
영식은 붉게 타오르는 오른팔을 카 르가스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슈우우우우우!
팔꿈치에서 강렬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오른팔이 무시무시한 열기를 주변에 뿌리며 빠른 속도로 회전하 기 시작했다.
‘부탁한다.’
영식은 이제껏 위기에 빠진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콰아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영식의 오른팔이 카르가스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불꽃에 휩싸인 주먹이 브레스를 뿜 어내고 있는 카르가스의 머리를 가 격했다.
-콰직!
“크아아아아아아!”
카르가스의 머리가 반쯤 함몰되며 사람보다 큰 크기를 가진 눈알이 빠 져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카르가스 의 브레스가 멈췄다.
“그렇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유나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카르가스의 목에 달라붙어 있던 다 른 소환자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 었다.
“크르르르르.”
“아직이야!”
침착하게 카르가스를 살피던 영식 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카르가스는 놀랍게도 머리의 반 이 상이 함몰되었음에도 그 생명을 이 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입이 열리며 다시 붉은빛이 모여들었다.
간신히 끊어졌던 브레스가 다시 이 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안 돼!’
영식은 절박한 표정으로 카르가스
를 바라보았다.
-치익.
-과도한 에너지 제어로 인한 오버 로드가 시작됩니다.
“크윽!”
영식의 희망을 짓밟듯 그의 몸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오버로 드가 시작되었다.
영식은 더 이상 카르가스의 목에 달라붙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