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14화
드래곤 슬레이어(4)
“바이러스…?”
영식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 치지지 직.
시야에 거친 노이즈가 생기며 몸이
휘청거렸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이 스쳤다.
‘무슨, 일이지…?’
영식은 카르가스의 정수리에서 바 닥으로 추락하며 자신의 상태를 살 폈다.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 았다. 부스트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다.
거친 노이즈가 가득한 영식의 시야 에 한 영상이 떠올랐다.
어두운 빛이 내려앉은 공장.
심장을 잃어버린 듯 더 이상 작동 하지 않는 그 공장 안에 진홍색 머 리칼을 가진 여인이 작은 철제 의자 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치 영식에게 메시지를 보 내려는 것처럼 정면을 주시한 채 씨 익 입가를 비틀었다.
“생각대로 ‘권능’을 사용했구나.”
그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 다는 둣이,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광기에 찬 그녀의 시선이 영식을 향했다.
“언제까지 네 생각대로만 되리라고 생각했어?”
신랄한 조소에 영식은 아무런 대답 을 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은 대화가 아닌, 그의 행동을 예측한 그녀가 과거에서 보낸 메시 지였으니까.
“그분의 생각은 잘 이해하지 못하 겠지만…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들 어.”
그녀는 루즈가 칠해진 듯 붉은 입 술을 핥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널 후회하게 만들라는 거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폭소를 터 뜨렸다.
-치이이익.
노이즈와 함께 일그러졌던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으, 아….”
영식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 전체가 망가진 것처럼 그의 말 을 듣지 않았다.
“영식 씨!”
티리아의 다급한 외침이 영식의 귓
가에 들려왔다.
여덟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온 그녀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영식의 몸을 붙잡았다.
“괘, 괜찮으신가요, 영식 씨?! 갑자 기 어째서….”
그녀는 갑작스럽게 쓰러진 영식을 내려다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영식은 그런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 으….”
“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식 씨. 금방 안전한 곳으로 옮겨다 드릴게 요.”
티리아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영식의 몸을 끌어안은 채 길드 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주, 주인님!”
갑작스럽게 쓰러진 영식을 향해 한 창 카르가스와 싸우던 루시아가 다 급하게 날아왔다.
“루시아 씨! 영식 씨는 제가 데리 고 갈게요! 루시아 씨는 카르가스의 공격을 막아주세요!”
“하, 하지만….”
“지금 루시아 씨가 빠지면 다시 카 르가스가 영식 씨를 노릴 수도 있어 요!”
“?알았어요.”
반박하기 힘든 티리아의 외침에 루 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지금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에서 그 녀가 가진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는 루시아 자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티리아는 영식의 몸을 끌어안으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영식은 그녀의 품에 안긴 채 거칠 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메모리 큐브를 해석하러 올 것을 예측 당했어.’
진홍색 머리칼을 가진 여인의 얼굴 이 떠올랐다. 비웃음 가득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안일했다.
자신이 메모리 큐브를 해석하여 지 배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창조 주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 지 않았다.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함정을 파둘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생각해야 했었다.
‘제기랄.’
영식은 거친 욕설을 마음속으로 읊 조리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치익.
-데이터베이스에 침입한 바이러스 를 치료 중에 있습니다. 치료가 완 료 될 때까지 보안 레벨 3단계 이 하의 무기만 사용 가능합니다.
‘그래도 치료는 되고 있어.’
다행히 치료가 불가능한 바이러스 는 아니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자신의 의지대 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으….”
영식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침음이 홀러 나왔다.
마치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로 돌 아간 듯한 짙은 무력감이 그의 전신 을 짓눌렀다.
바이러스를 치료 중이라고는 하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가 가진 폭발적인 화력은 대부분 높은 등급의 보안 레벨이 해제되었 을 때 얻은 무기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거의 모든 공격에 섞어 사용 하는 플라즈마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너무 뼈아픈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밖에 없나.’
카르가스는 이미 전신에 상처를 입 은 상태.
다른 소환자들이 힘을 합친다면 죽 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영식은 그런 생각을 하며 카르가스 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르가스의 붉은 눈이 정확하게 자 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전신이 소환자들의 공격으로 난자당하면서도, 광기에 물든 눈빛 으로 영식을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영식은 그 눈빛이 영상에서 보았던 여인의 눈빛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 설마.’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농밀한 불길함이 그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치익.
-전방에 폭발적인 열에너지 감지.
-경고. 현재 자리를 이탈할 것을 권고 드립니다.
귓가에 들리는 기계음과 함께 카르 가스의 입 안에 붉은색 빛이 모여드 는 것이 보였다.
“잠깐. 기, 다려.”
“어, 어서 안전한 곳에서 피해야 해요, 영식 씨!”
티리아는 갑작스러운 영식의 말에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영식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채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알겠으니, 까. 잠깐 멈춰봐.”
티리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땅에 발을 디딘 영식은 카르가스의 입가를 자세히 살폈다.
입가에 모이고 있는 무시무시한 열기.
등골을 저릿하게 만드는 불길함.
그 입에 모인 붉은빛의 정체를 깨 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브레... 스”
영식은 떨리는 목소리로 카르가스 의 입가에 모인 붉은빛의 정체를 입 에 담았다.
드래곤 브레스.
닿는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소멸 시키는, 드래곤만이 가능한 권능.
그 절대적인 소멸의 권능이 영식을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피해야….’
-예상 공격 범위를 시각 데이터로 표시합니다.
영식의 눈에 붉은색 범위가 표시되 었다. 그 범위를 본 영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드래곤 브레스의 범위는 주변 전체 를 뒤덮고 있었다.
이건 영식을 향하고 아니고의 문제 가 아니었다.
오히려 드래곤 브레스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지경이었다.
‘피할 수 없어.’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 지 않았다. 어딜 가더라도 드래곤 브레스의 범위 밖으로 빠져 나갈 방 법이 없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고민에 잠겨 있던 영식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방법이라면….’
남들이 듣는다면 정신 나간 것 아
니냐고 할 만한 방법이지만, 드래곤 브레스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방 법이 한 가지 있었다.
고민할 시간 따위 없었다.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상 취해야 할 행동은 한 가지였다.
“티 리아!”
“네, 영식 씨.”
“지금 당장 원거리 지원을 하고 있 는 소환자들을 이리 불러 모아줘!”
“지, 지금 당장이요? 하지만 지금 은 영식 씨가….”
티리아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말끝
을 흐렸다.
지금 영식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는 것 정도는 몇 년을 그를 지켜봐 온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빨리! 시간이 없어!”
영식은 초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티리아는 굳 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식이 이 정도로 다급한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번 창세교 사건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영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
‘빨리 움직여야 해.’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빠른 움직임이 필수였다.
영식은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전달 하기 위해 통신기에 손을 뻗었다.
“루시아, 들려?”
[주, 주인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카르가스와 근접해서 싸우고 있던 루시아는 영식의 연락이 오자 다급 한 목소리로 물었다.
격렬한 싸움 도중인지 통신기 너머 에서 시끄러운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 내 말을 알렉 장군에게 그대로 전해줘.”
[으….]
걱정조차 용납하지 않는 영식의 단 호한 말투에 루시아는 무거운 침음 을 흘렸다.
“곧 카르가스가 브레스를 뿜을 거야.”
[...브레스요?]
루시아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격렬한 전투 중이었기 때 문인지 그녀는 아직 드래곤의 입에 붉은빛이 모여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도 경고음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테니까.’
드래곤의 브레스는 이제 막 준비되 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열에너지는 드래곤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밖에서 그 에너지를 감지하는 것은 쉽지 않 은 일이었다.
영식은 자신이 생각한 ‘브레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그녀에게 알 려주었다.
[주, 주인님. 정말 그 방법을 사용 하실 건가요?]
영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루시아조차 이번 영식의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다른 방법이 없어.”
브레스의 예상 범위를 본 영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최대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살리 기 위해서라도 무식한 방법을 사용 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알렉 장군에게도 바로 전하겠습니다.]
“고마워. 그 다음에는 카르가스의 머리 쪽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브 레스를 최대한 늦춰줘.”
드래곤 브레스는 절대적인 위력을 가진 만큼 완성되는 데까지 어느 정 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영식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정도의 시간’뿐이었다.
“영식 씨! 사람들을 불러왔어요!”
영식의 말을 듣고 원거리 지원군을 데리러 간 티리아가 도착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소환자들이 다급 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 사이로 채린과 아라, 황현의 모 습도 보였다.
“그럼 티리아, 나를 다시 좀 들어줘.”
“예. 저한테 붙으세요.”
아직 혼자서 몸을 가눌 수 없는 영식은 티리아의 어깨에 팔을 걸치 고 일어섰다.
영식은 티리아를 따라 온 소환자들 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지금부터 전력으로 카르가스 쪽으 로 접근하겠습니다.”
“응…‘?”
“저, 저 용에게 접근한다고?”
영식의 말에 소환자들은 당황스러 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원거리에 특화된 클래스를 가진 소환자들이었다.
지금 영식의 말은 마법사에게 지팡 이 들고 적에게 돌진하라는 말과 다 르지 않았다.
“영식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라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빠르게 움직여 주세요.”
영식은 다소 강압적인 목소리로 그 렇게 말했다.
연합군 내에서 영식이 차지하는 권 력은 알렉과 거의 동급이었다.
소환자들은 갈등에 찬 표정으로 서 로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내 하나둘 명령을 따라 카르가스를 향해 움직 이기 시작했다.
“영식 씨… 대체 뭘 하시려고 그러 시는 거예요?”
영식의 몸을 안아든 티리아는 카르 가스를 향해 날아가며 물었다.
영식은 점점 더 붉은빛이 강해지는 카르가스의 입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카르가스의 목에 달라붙을 거야.”
드래곤의 브레스를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거대한 드래곤의 목에 달라붙어 버 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