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13화
드래곤 슬레이어(3)
-쿠웅!
“크아아아아아아!”
카르가스의 입에서 처절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잘린 단면을 따라서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바닥을 적셨다.
“나이스, 영식아!”
카르가스의 왼쪽 날개를 자르는 데 성공하자 카르가스의 움직임을 막는 데 힘을 보태고 있던 유나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영식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 정으로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블레이드의 날을 따라 수십 미터 길이로 늘어났던 플라즈마 커터는 잡아먹을 먹이가 떨어졌다는 듯이 다시 원래 크기로 줄어들고 있었다.
크기가 줄어듦에 따라 플라즈마 커 터가 뿜어냈던 끔찍한 열기도 서서 히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새로운 기술.’
이미 ‘에너지 분해’ 기술도 그가 익히기 과분한 오버테크놀로지라 생 각했는데 더욱 앞선 기술을 얻게 되 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크르르르르.”
카르가스는 흉포한 눈빛으로 영식 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이제까지는 사방에 적이 많아서 누 굴 먼저 공격해야 할지 알 수 없었 던 상태라고 한다면 지금은 확실히 ‘영식’ 하나만을 가장 위협적인 적 으로 판단한 것 같았다.
‘나중에 생각해야겠군.’
영식은 새롭게 습득한 기술, ‘에너 지 제어’에 대한 생각을 접으며 표 정을 굳혔다.
지금 이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얻 게 되었는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 으면 활용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 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왼쪽 날개가 잘려나갔다고 하더라 도 카르가스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 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영식에게 그 정신이 집중 되면서 더욱 흉포해지고 있었 다.
-쿠구구구구궁!
“크읏?!”
카르가스의 전신에 가시처럼 돋아 있는 포신이 영식을 향했다.
포신에서 쏘아진 수백 발의 포탄이 영식 하나를 노리고 쏘아졌다.
도저히 피할 틈이 보이지 않는 공 격이었다.
“주, 주인님!”
루시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영식을 향해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영식은 두 팔을 들어 정면을 가리
며 소리쳤다.
“오지 마! 오른쪽 날개를 마저 공 격해!”
“하, 하지만.”
“빨리! 이건 명령이야!”
영식은 호통을 치듯 루시아에게 소 리 쳤다.
“읏…!”
루시아는 머릿속에 끔찍한 두통을 느꼈다.
김재현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시절 익숙하게 느꼈던 두통.
명령에 저항하려는 자신과 블랙큐
브의 지배력이 그녀의 안에서 충돌 했다.
“아, 아아….”
루시아는 절망에 찬 표정으로 영식 에게서 등을 돌렸다.
블랙큐브의 지배력은 그녀의 의지 력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종류의 힘 이 아니었다.
“주, 인님….”
루시아는 거칠게 입술을 깨문 채 카르가스를 노려보았다.
카르가스에 대한 분노가 미친 듯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식의 명령을 따라 카르가 스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
“후우….”
영식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에 게 날아오는 포탄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쓴 바이저에 붉은색 빛이 점 멸했다.
-치익.
-도주 경로 파악 중.
-경고. 경고.
-현재 조건으로 해당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음.
슈트의 바이저를 통해 익숙한 경고
음이 들려왔다.
영식은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영식은 몸을 웅크리며 플라즈마 배 리어를 전신에 둘렀다. 피할 수 없 으면 막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제발 버텨다오.’
영식은 락테온 2식이 가진 무식한 내구도를 믿으며 배리어의 출력을 최대로 유지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공중에서 일어난 대폭발에 소환자들 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주변 전체에 뿌려졌던 화력이 한 점에 집중된 것이다.
마치 태양이라도 떨어진 것 같이 엄청난 빛이 소환자들의 시야를 가 로막았다.
그 폭발은 본 소환자들은 영식이 저 폭발 속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감히 이이이이!”
피부가 저릴 정도로 강렬한 폭발을 본 루시아는 광기에 찬 포효를 내지 르며 카르가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영식을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 명령에 대한 강제력, 카르가스에 대한 분노 가 뒤섞여 그녀는 완전히 이성을 잃 어 버렸다.
“네가, 네가, 네가 감히!”
루시아는 광기가 흘러넘치는 목소 리로 카르가스의 오른쪽 날개를 향 해 검을 내려찍었다.
-콰직!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가 터져나왔다.
-치이이이익!
카르가스의 피에 닿은 그녀의 몸에 흉측한 화상 자국이 생겼다.
끔찍한 고통이 루시아의 전신에 퍼 져 나갔다.
-콰직! 콰직! 콰직!
“죽어! 죽어! 죽어!”
하지만 루시아는 그런 고통쯤은 아 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거칠게 검을 내려찍었다.
광기에 찬 그녀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진정하게!”
미친 듯이 검을 내려찍는 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서강준이었다.
그는 양팔이 카르가스의 피에 젖어
심한 화상을 입고 있는 루시아를 말 렸다.
“저리! 꺼져! 방해하면 네 대가리 도 찢어버릴 테니까!”
루시아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 강준을 노려보았다.
광기에 찬 그녀의 눈빛을 본 서강 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말리는 건 무리일 것 같군.’
루시아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여기서 괜한 오지랖을 떨었다가는 자신까지 그녀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강준은 재빨리 전 략을 바꿨다.
“알겠네. 방해하지 않을 테니 계속 하게.”
서강준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팔 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와이어 실드.”
그의 손을 따라 뿜어져 나온 수백 가닥의 와이어가 루시아의 팔을 휘 감았다.
그녀의 팔이 피에 젖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
-콰직! 쿠드득!
루시아는 그가 자신의 팔에 실드를
감아주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으며 계속해서 내려찍었다.
그녀의 전신에 보랏빛 기운이 폭발 하듯 솟구쳤다.
“저희도 합세하겠습니다!”
카르가스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 던 천태황과 알렉이 날개 쪽으로 다 가왔다.
영식에게 집중 공격을 하느라 카르 가스가 그 격렬한 움직임을 잠시 멈 췄기 때문이었다.
허공에 떠올라 있는 검들을 징검다 리처럼 밟으면서 나타난 천태황은 검 을 높게 쳐들고 루시아가 반쯤 갈라 낸 오른쪽 날개를 노려보았다.
-우우우우웅!
델 라인에서 황금빛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천태황이 순식간에 십여 미터 길이 로 길어진 황금색 검을 휘둘렀다.
“영웅의 일격!”
영웅 중의 영웅, 루시스의 힘을 이 어받은 천태황에게 가장 어울리는 기술.
황금빛 검기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카르가스의 날개를 향해 쏘아졌다.
-찌이이익!
_쿵!
그것이 결정타가 되었는지 루시아 에 의해 반쯤 갈라져 있던 카르가스 의 날개가 완전히 잘려 바닥에 떨어 졌다.
“크롸롸롸롸롸롸!”
두 날개가 모두 잘린 카르가스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여, 영식아...”
카르가스가 쓰러진 후, 살바토르 길드원들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폭발이 일어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워낙 폭발이 컸던 탓에 하늘 높게
피어오른 연기는 아직 가라앉지 않 고 있었다.
?치익. 치이익.
“주인님!”
영식의 명령에 따라 카르가스의 오 른쪽 날개를 자른 루시아는 다급한 표정으로 영식이 있는 자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녀의 뒤를 이어 티리아와 아라, 다른 길드원들도 움직였다.
“크으으….”
“영식 씨!”
바닥에 떨어진 영식의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티리아였다.
그녀는 여덟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재빠르게 영식이 있는 곳으로 날아 갔다.
-치직. 지직.
[본 기체의 파손 상태 점검. 전체 파손율 74.8%. 더 이상 전투를 속 행하기 어렵다고 판단, 슈트를 해체 합니다.]
-철컥.
“쿨럭! 쿨럭!”
슈트에서 나온 영식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슈트를 뚫고 들어온 열기 탓에 몸 곳곳의 피부가 녹아내린 상태였다. 녹아내린 피부 너머로 그의 몸을 이 루고 있는 기계장치가 드러났다.
“여, 영식 씨! 어서 이걸…!”
티리아는 다급한 표정으로 최상급 회복 포션을 그에게 내밀었다.
영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션을 벌컥벌컥 마셨다.
하지만 당한 상처가 워낙 큰 탓에 최상급 회복 포션으로도 상처는 치 유되지 않고 있었다.
“괜, 찮아. 슈트 덕분에 크게 다치 지는 않았어.”
영식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락테온 2식은 이번 전투에서 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미지를 입었지만 덕분에 그는 어느 정도 무 사할 수 있었다.
“이, 이렇게 심하게 다치셨는데 무 슨 소리세요, 주인님!”
“너도 만만치 않잖아. 일단 루시아, 너도 이거 마셔둬.”
영식은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루시아를 바라보며 머 리가 아프다는 듯 그가 반쯤 마신 회복 포션을 내밀었다.
“일단 조금 쉬고 계세요, 영식 씨.
카르가스는 저희가 처리할게요.”
영식에게 카르가스의 모든 어그로 가 끌려 있는 사이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는 꽤나 큰 타격을 카르가스에 게 줄 수 있었다.
남은 소환자들이 총공세를 취한다 면 머지않아 용의 목을 자를 수 있 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차피 영식 혼자서 카르가스와 싸 우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가 무리해 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아니. 지금은 쉴 수 없어.”
“영식 씨….”
영식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
하며 몸을 일으켰다.
영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르가 스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승기가 이 쪽으로 넘어왔기 때문에라도 그가 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주인님, 여기서는 티리아 씨의 말 에 따라 휴식을 취하시는 게… 이, 이제 슈트도 사용하지 못하시잖아요.”
루시아는 이번에야말로 영식을 잃 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영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카르가스가 입은 대미지
도 만만치 않으니까.”
그는 길드원들을 돌아보며 나지막 히 말을 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모두 카 르가스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에 집중해 주세요.”
“?죽이는 게 아니라?”
“그래. 최대한 움직임만 막아줘.”
영식의 말에 길드원들은 잠시 고민 을 이어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영식의 말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런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었다.
“그럼 다시 움직이죠.”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길드원들을 돌아보았다.
“부디 다치지 마세요, 영식 씨.”
티리아는 그의 손을 가볍게 움켜쥔 후 몸을 돌려 카르가스를 향해 날아 갔다.
-쿠웅! 콰아아앙!
바닥에 쓰러진 카르가스는 소환자 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급소를 노리는 알렉과 서강준, 천
태황의 공격은 몸에 부착된 기계 무 기로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지만 다 른 소환자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 지는 못했다.
잠시 영식에게 가있던 살바토르 길 드가 전장에 합류하자 카르가스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좋아.’
카르가스를 살피던 영식의 눈이 반 짝였다.
그가 카르가스와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노리고 있었던 기회가 드디 어 그에게 찾아왔다.
“가속.”
-슈우우우우!
영식은 부스트의 남은 잔량을 불태 우며 카르가스의 정수리를 향해 접 근했다.
카르가스는 고개를 이리저리 휘두 르며 소환자들의 공격을 피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_척.
“잡았다.”
카르가스의 정수리에 올라선 영식 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는 블레이드를 사용해 카르가스 의 이마를 가른 후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구조파악.”
-우우우웅!
그의 손에서 뿜어진 푸른빛이 카르 가스의 머리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영식은 이로써 카르가스를 블랙큐브 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였다.
-띠링.
-경고. 경고.
-SSS급 메모리 큐브를 해석하는 도중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흘러들어 왔습니다.
영식의 예상을 깬 기계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