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11화
드래곤 슬레이어(1)
“돌진!”
알렉의 외침에 따라 각자의 무기를 빼어든 소환자들이 앞으로 달려 나 갔다.
천명에 달하는 소환자들이 움직이 자 지진이라도 난 듯이 주변이 뒤흔 들렸다.
마치 중세시대 기마병들이 돌진하 는 모습처럼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기마병의 핵 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 정도.
랭커 반열에 오른 소환자는 이미 그 신체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 난 초인이다.
물론, 클래스에 따라 정도의 차이 는 가지고 있지만 ‘고작’해야 말이 달려가는 속도를 내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신체를 가진 랭커는 없었다.
-투두두두두두!
소환자들의 돌진으로 뿌옇게 먼지
가 피어올랐다. 선두에 있던 알렉은 검을 빼들며 마력이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드래곤을 몬스 터 부대와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섣불리 교전하지 마라! 우리들은 이 대로 우회해서 드래곤을 지나친다!”
다수의 인원이 강한 적 하나를 상 대하는 정석적인 방법은 포위망을 구축해서 소모전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한계가 있다. 피로라는 개념 이 존재하는 이상 무한하게 싸울 수 는 없었다.
설사 그것이 신화 속 괴물인 드래 곤이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는 카르가스를 기계 몬스터의 본대 와 떨어뜨려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읏….”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로 편성 받은 랭커들은 점차 드래곤과 가까워지면 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처음 알렉이 ‘드래곤 슬레이어’ 부 대를 조직했을 때 소환자들은 꽤나 순순히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납득했다.
오히려 드래곤의 존재에 대해서 심
각하게 말한 알렉이 민망해질 정도 였다.
에르노어 대륙에 소환되기 전, 각 종 미디어 매체에 드래곤이라는 존 재가 너무 흔하게 다뤄졌기 때문에 소환자들은 에르노어 대륙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보다 오히려 더 쉽게 그 존재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 던 것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보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 었다.
-후웅! 후웅!
“?괴물.”
한 소환자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 거림이 흘러나왔다.
가까이에서 본 드래곤의 위용은 절 로 ‘괴물’이라는 단어를 내뱉게 만 들기 충분했다.
100미터에 달하는 거체.
고층 빌딩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압도적인 위압감.
초인에 이른 소환자들도 그 압도적 인 위압감 앞에서 태연할 수 없었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형상화시킨 것 같은 괴물의 등장에 소환자들은 전 율했다.
“이거 가까이서 보니 장난이 아니 구만.”
길수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점 점 더 가까워지는 카르가스를 바라 보았다.
단순히 위압감만 놓고 본다면 단테 리온이라는 창조주가 나타났을 때보 다 더 끔찍했다.
“덩치에 현혹되지 마세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적입니다.”
영식은 위축된 길드원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영식 스스
로도 덩치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지 잘 알 고 있었다.
인간이 동일한 신체 조건이라고 가 정하면 수십 배는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벌레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 아 죽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벌레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큰 크기 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벌레와 같은 입장에 처하 게 된 소환자에게 덩치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은 가혹했다.
‘어쩔 수 없어.’
싸우기도 전부터 이렇게 공포에 질
려 있다가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 하고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달콤한 거짓말이라도 사용 해야 할 때였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영식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에르노어 대륙에서 인간은 무력하 고 나약한 생물이 아니었다.
당장 살바토르 길드만 하더라도 도 시 하나를 지워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절망적인 크기 차이를 넘어서 치명 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힘이 있 다는 것이다.
“우선 원거리 견제를 통해 카르가 스의 시선을 돌릴….”
작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주의를 주려고 했던 영식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연합군을 향해 날아오던 카르가스 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었다.
짙은 불길함이 영식의 전신으로 퍼 져나갔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 ”
무시무시한 드래곤 로어 (Dragon Lore)가 연합군을 휩쓸었다.
“아아아악!”
“귀, 귀가!”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르가스를 향해 돌진하던 소환자 들은 귀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전신에 농밀한 공포가 퍼져 나갔다.
드래곤 로어가 가진 ‘굴복’의 저주가 소환자들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랭커조차 저항하기 힘든 강대한 저주.
열을 맞춰 돌진하고 있던 소환자들 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쿵
“정신 차려라!”
마력이 가득 담긴 알렉의 호통이 황무지에 울려 퍼졌다.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것처럼 힘찬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런 알렉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는 귀를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 고 있었다.
“락테온, 드래곤 로어의 음파에 맞 춰서 사이렌을 울려.”
영식은 다른 소환자들과 같이 고통 을 호소하는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 로어도 결국 소리의 일종 이야.’
아무리 강대한 마력을 사용했다고 해도 그것이 소리라는 사실은 변하 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소리’자체를 상쇄시 키면 이 혼란도 진정될 것이다.
[음파 분석 완료. 바로 사이렌을 울리겠다고 알림.]
럭테온은 녹색 빛으로 눈을 빛내며 사이렌을 울렸다.
-기이이이이이이잉!
예전 아바돈 길드와의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던 강렬한 사이렌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드래곤 로어가 사이렌 소리에 상쇄 되며 그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지?”
드래곤 로어에 잠식당하고 있던 소 환자들은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증상이 완화되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뭣들 하고 있나! 지금이 기회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소환자들을 일 깨운 것은 알렉의 일갈이었다.
알렉은 드래곤 로어가 풀리자마자 다시 카르가스 쪽으로 드래곤 슬레 이어 부대를 이끌었다.
“크아아아아아!”
드래곤 로어의 저주에서 소환자들 이 풀려나자 카르가스는 흉포한 포 효를 내지르며 하늘 높이 쳐들었던 고개를 다시 내렸다.
붉은 빛으로 빛나는 파충류의 눈이 드래곤 슬레이어 부대를 향했다.
“원거리 클래스는 용에게 마법을 쏴라! 용의 시선이 끌리는 즉시 근 거리 클래스는 원거리 클래스를 업 고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알렉은 카리스마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부대를 이끌었다.
소환자들은 언제 혼란에 빠졌냐는 듯이 그의 지휘에 맞춰 몸을 움직였 다.
그가 보여주는 지휘 능력에 영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국의 맹장. 지휘 능력 하 나는 최고군.’
알렉 개인의 무력은 루시아, 서강 준에 비해 꿀리지 몰라도 지휘 능력 과 카리스마만 놓고 보면 압도적으 로 알렉이 우위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저절로 사람을 따 르게 만드는 힘이 서려 있었다.
-쿠구구구궁!
알렉의 지휘를 따라 원거리 클래스 소환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괜히 랭커들이 모인 부대가 아니라 는 듯, 카르가스를 향해 쏟아지는 공 격은 끔찍할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울 려 퍼졌다.
수백에 달하는 랭커들이 동시에 쏟 아낸 마법은 말 그대로 지형을 뒤바 꿔버릴 정도로 강렬한 폭발을 이루 었다.
지금 이 공격에 비한다면 아바돈 길드와의 싸움이나 적귀의 성으로 쳐들어갔을 때 보았던 마법 세례는 하찮게 느껴질 정도.
‘역시 숫자인가.’
영식은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을 피부로 느끼며 살짝 질린다는 표정 을 지었다.
그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대륙 연합 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
그것이 모두 이런 ‘숫자’의 우위를 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식이 아무리 무력이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개인.
수백에 달하는 랭커들이 동시에 쏟 아내는 공격은 ‘이클립스 캐논’으로 도 따라갈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크롸롸롸롸롸롸!”
수백 명의 랭커들이 동시에 쏟아낸 마법. 그것은 아무리 카르가스라고 하더라도 멀쩡히 있을 수는 없는 위 력의 공격이었다.
카르가스는 거칠게 몸을 비틀며 고 통스러운 포효를 내질렀다.
기계장치와 섞여 있는 그의 피부가
녹아내렸다.
‘단테리온 슈트 정도의 방어력은 아니야.’
영식은 마법 포격에 몸부림치고 있 는 카르가스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드래곤 스케일의 단단함에 대해서 는 신화에서부터 강조되어 왔지만 역시 ‘에너지 분해’라는 오버 테크 놀로지 기술이 들어간 단테리온의 슈트에 미치지는 못했다.
‘상대할 수 있다.’
영식의 눈빛에 확신이 서렸다.
공격이 통한다면, 피해를 줄 수 있
다면 죽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크아아아아!”
카르가스는 흉포한 포효를 내지르 며 거대한 몸을 비틀었다. 기다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콰직!
그의 꼬리에 얻어맞은 소환자들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곤죽이 되어 터져나갔다.
“더 빠르게 이동해라!”
카르가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을 확 인한 알렉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 쳤다.
공격에서 살아남은 랭커들은 빠른 속도로 우회하여 카르가스를 유인하 기 시작했다.
카르가스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 며 랭커들을 쫓아 몸을 움직였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5만의 병력 이 몬스터 부대와 카르가스가 합류 하지 못하도록 공격을 개시했다.
“포위망을 구축해라!”
알렉의 외침에 드래곤 슬레이어 부 대는 일사분란하게 카르가스의 몸을 둘러쌌다.
“공격 개시!!”
알렉은 한 자루 검을 손에 쥔 채 카르가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뒤를 이어 포위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소환자들이 카르가스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콰직! 쿵! 쿠가가가가강!
“크아아아아아!”
사방에서 공격을 받은 카르가스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좋아.’
영식은 카르가스가 속절없이 당하 는 모습에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대로라면 어렵지 않게 카르가스
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였다.
-치익.
-경고. 경고.
-적으로부터의 포격이 감지되었습 니다.
-포격 예상범위를 시각 데이터로 표현합니다.
“이게 무슨….”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붉게 포시된 ‘포격 예상범위’는 아 예 주변 일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