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208화
영웅 이벨린의 유산(2)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
“그래.”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리스 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이리스의 능력은 ‘열기를 조종 하는 능력’이야.”
“그건… 나도 알겠는데.”
지금 방 안에 가득 찬 열기만 보 아도 아이리스의 능력이 무엇인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열기를 조종하는 능력’ 자 체가 아라가 사용하던 냉기 마법과 전혀 방향성이 다른 능력이라는 점 이었다.
영식의 말이 이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변의 열기를 끌어 모아서 내뿜는 거지.”
“주변의 열기를 끌어 모은다….”
“그래. 그 증거로 봐봐.”
영식은 아라의 손을 잡고 방문 밖 으로 이끌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느껴 졌다. 단순히 열기가 가득 찬 곳에 서 나갔기 때문에 느끼는 감각이 아 니었다.
밖은 한 겨울에 밖에 나간 것처럼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에르노어 대륙의 기후가 연중 내내 후덥지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 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 다.
“공기 중에 열기가 빠져나가자 냉 기만 주변에 남게 되는 거지.”
“ 아.”
아라는 짧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었다.
“하지만 결국 열기를 다루는 능력 은 내 마법하고 상관없는 것 아니 야?”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와준다면 그 힘을 이용해 볼 수 있을 거야.”
W..
아라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 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아라야, 잠깐 무기 줘봐.”
“알았어.”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무 기를 내밀었다.
영식은 아이리스를 손에 쥐었다.
아라가 만졌을 때와는 달리 지팡이 에서는 어떤 마력도,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기가 주인을 선택한 이후로는 사 용할 수 없다는 게 이런 의미였군.’
무기에 담긴 대부분의 힘이 지팡이
에서 아라의 몸속으로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니면 지금 이 무기 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했다.
“합성.”
영식은 아이리스를 향해 그가 생각 해두었던 기계 장치를 합성시켰다.
그렇게 복잡하고, 대단한 장치는 아니었다. 채린의 무기에 달아주었 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장치였다.
“자, 한 번 들어봐.”
“이건... 뭐야?”
아라는 영식에게 건네 받은 아이리 스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리스의 끝에는 정체를 알 수 없 는 원통형 기계 장치가 달려 있었다.
생김새만 본다면 지팡이라기보다는 메이스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 있었 다.
“채린이의 무기에 붙여준 것과 비 슷한 장치야. 뭐… 다소 차이가 있 긴 하지만.”
“차이?”
“이건 공기 중에 질소를 끌어 모으 는 장치야.”
“?응?”
영식의 말을 들은 아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질소라니?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열기를 조종하는 아이리스의 능력.
차가워진 방 밖의 공기.
이 두 가지 현상으로 미루어봤을 때 영식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예상이 가는 것 같았다.
“설마 너….”
“그래. 이걸로 액체 질소를 만드는 거야.”
“액체 질소?”
“전에 내가 만들어준 지팡이에서는 급속 냉각제를 통해서 냉기 마력을 강화시켰지?”
“응.”
아라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 이 사용했던 무기를 떠올리며 고개 를 끄덕였다.
“그 무기의 강화판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거야.”
“우선 내 예상대로라면 충분히 가 능할 거야. 자, 따라 나와 봐. 한 번 시험해 보자.”
“어, 응….”
아라는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채 연무장으로 향하는 영식의 뒷모습을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배운 모든 스킬과 마법들 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의 마음에 안도 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식이 생각한 방법으로 정말 무기 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진지하게 고 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그의 모 습은 안 그래도 영식에 대해 호의적 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있 어서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고마워.”
아라는 영식의 뒤를 따라 연무장으 로 향하며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식은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는 한 건지 덤덤한 표정으로 발걸음 을 옮길 뿐이었다.
“그럼, 한 번 시험해 보자.”
연무장에 도착한 영식은 아라를 향 해 말했다.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리스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금 아라 네 마력은 기존 아이리 스가 가진 ‘열기를 조종하는 것’만 이 가능한 상태일 거야.”
“맞아.”
그의 말에 아라는 고개를 끄덕였 다.
아아리스에게 받은 강대한 마력에 기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냉기를 다루는 마력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 는 중이었다.
“우선 그 열기를 조종하는 것부터 완벽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해.”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리스 끝 에 있는 통을 손으로 두드렸다.
“공기에 담긴 열기만을 밖으로 방 출한다는 이미지로 마력을 상용해 봐.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야. ‘통 안’에 있는 공기의 열기만을 뺏 어야 해.”
“알았어.”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손을 뻗어 영식이 말한 원통형의 기계장치에 손을 올렸다.
‘이 안에 담긴 열기만을 밖으로.’
영식이 말한 것을 떠올리면서 그녀 는 자신의 마력을 일으켰다.
-후우우웅!
“읏!”
한 번 의지를 일으키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전신에 휘몰아치는 마력에 아라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막대한 마력.
조금이라도 잘못 조종했다가는 몸 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전신에 휘몰아치는 마력을 가까스로 조종하여 영식이 말한 대 로 통 안에 있는 열기를 밖으로 방 출하기 시작했다.
_ 화아아아악!
강렬한 열기가 주변을 불태울 기세 로 뿜어져 나왔다.
‘열기’를 빼앗긴 원 통 안의 공기 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원통의 주변으로 새하얀 서리가 내 렸다.
‘부족해.’
아라는 표정을 찡그린 채 지팡이 끝에 달린 원통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의 냉기로는 액체 질소는커 녕 얼음조차 만들기 어려운 수준이 었다.
‘힘을 더 집중해서.’
그녀는 원통 안에 담긴 열기를 모 조리 쥐어짜내듯이 마력을 일으켰 다.
방금 전에 비해서 훨씬 줄어든 열 기가 원통 주변으로 뿜어져 나왔다.
물기가 마른 행주를 쥐어짜내는 듯 한 모습.
하지만 열기가 줄어든 것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원통 안에 있는 냉기는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좋아. 거기서 천천히 원통 안에 있는 냉기를 아라, 네 마력으로 바 꿔봐.”
“알, 았어.”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통 안에 모여 있는 냉기를 자신의 마력으로 변환했다.
‘프로스트 메이지’라는 히든 클래 스를 가진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
그녀의 몸에 순수한 냉기의 결정으 로 이루어진 마력 한 줄기가 흘러들 었다.
몸 전체가 얼어붙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냉기.
그 냉기는 기존 아이리스의 마력에 섞이지 않고 도도하게 그녀의 몸 안 을 움직였다.
‘이거라면.’
아라는 순수한 냉기만이 모인 마력 을 사용해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이스 자벨린.”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무시무
시한 냉기가 허공에 뭉쳤다.
허공에 5미터는 넘는 크기의 얼음 창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연무장 바닥을 향해 아이스 자벨린을 쏘아냈다.
-촤좌좌좌좌좡!
빠른 속도로 쏘아지던 아이스 자벨 린 수백 개의 얼음 파편으로 변해 연무장 바닥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허….
아라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이제까지 그녀의 마력으로 만들었
던 아이스 자벨린과는 그 크기도, 위력도 전혀 차원을 달리했다.
그녀의 몸을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다행히 생각대로 된 것 같네.”
영식은 곤죽이 된 연무장 바닥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열기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아 이리스의 마력을 사용해 순수한 냉 기를 만들어 낸 후 그것을 다시 아 라의 마력으로 변환하는 것.
마력을 준비하는 기간이 긴 탓에 전과 같은 즉발 마법은 사용하기 힘 들겠지만 위력에 있어서는 훨씬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 해졌다.
“뭐, 아직은 액체 질소를 만들 정 도로 냉기를 응축 시킬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앞으로 계속 연습하다 보면 점점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그는 아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 며 말했다.
아라는 지팡이를 움켜쥔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모든 힘을 잃어버린 채 길드원들의 발목을 붙잡게 되면 어 떻게 하지, 라는 불안에 휩싸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 영식아.”
“웅?”
영식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라는 그에게 몸을 가까이하며 살 짝 발돋움을 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고마워. 날 위해서 그렇게 걱정 해 주고, 생각해 줘서.”
그녀는 물기에 젖은 눈빛으로 영식 의 회색빛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사실보다,
영식이 자신을 위해서 고민하고 해 결 방법을 생각해 줬다는 것이 너무 나도 감격스러웠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영식의 손을 붙잡으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 로 입을 열었다.
“너, 너 이미 루시아랑… 티리아랑 은 이미 했지?”
“음…. 뭐, 그렇지.”
그녀가 말하는 ‘했다’라는 것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영식 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변태.”
아라는 삐쭉 입술을 내밀며 영식을 흘겨보았다.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막상 영 식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으니 순간 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에는 너무 욕심이 났으니까.”
영식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 했다.
그녀의 말을 부정할 생각도, 자신 의 결심을 번복할 생각도 없었다.
이 일에서만큼은 자신의 욕망을 관
철하기로 결심했다.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듯이 당당한 그의 태도에 아라는 살짝 입 술을 깨물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평소 보여주던 쿨한 모습과 는 달리 몸을 배배꼬며 부끄러움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듯이 말했다.
“그, 그럼 나한테도… 그런 욕심이 들어?”
“물론이지.”
영식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 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아라는 흠 칫 몸을 떨었다.
“너, 넌 부끄러움도 없는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 게…!”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니까.”
영식은 격렬하게 반응하는 아라가 오히려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라는 새빨갛게 물든 표정으로 고 개를 푹 숙였다.
“하아…. 내가 못 살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영식에게 살 짝 몸을 기댔다.
“오, 오늘 밤은 그럼 다른 사람이
랑 약속 잡지 말고 있어.”
“그건...”
“아, 알았지?! 따, 딱히 네가 좋아 서 그런 건 아니니까!”
“아니 어디서 또 그런 전형적인 대 사를….”
너무 우려먹어 사골까지 녹아내린 대사를 외치며 아라는 영식에게서 몸을 돌렸다.
영식은 점점 멀어지는 아라의 뒷모 습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 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