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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204화 (204/284)

레벨업 머신 204화

서부에 부는 피바람(1)

적귀 권오진이 다스리는 도시.

끝없는 착취로 인해 폐허나 다름없 는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다.

그러나 도시 외곽을 둘러싼 방벽만 큼은 그 견고함이 왕성의 성벽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탐욕스러운 권오진의 성격상 이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적대 세력이 많 았기 때문이었다.

-부아아아아앙!

폭발할 듯한 배기음과 함께 적귀의 도시로 장갑차가 돌진했다.

“뭐야…… 저건?”

“차? 저거 설마 자동차야?”

도시 외곽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소환자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장 갑차를 바라보았다.

에르노어 대륙에 있는 것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저거 계속 돌진하는데?”

“조, 조장님! 도시 쪽으로 자동차 가 돌진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감시조장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보고를 하러 온 보초병을 바라보았다.

“진짜입니다! 자동차라고요!”

“이 새끼가 근무 중에 술이라도 쳐 마셨나…… 에르노어 대륙에서 뭔 자동차 타령이야? 엉? 지구 생각이 라도 났어?”

감시조장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보초병에게 소리쳤다.

그때, 그의 귓가에도 장갑차의 강 렬한 배기음이 흘러들어왔다.

“뭐야……?”

보초병을 밀치고 앞으로 나선 그는 도시 외곽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하 고 있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허……. 저게 뭐야.”

그는 허탈한 목소리로 자동차를 바 라보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소 환자들에게 소리쳤다.

“접근하고 있는 차를 공격해!”

그의 외침에 따라 원거리 클래스 소환자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그들이 꺼낸 무기에 빛이 맺히기 시 작했다.

“쏴!”

강렬한 빛과 함께 수십 개의 마법, 수백 개의 화살이 영식의 장갑차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광!

포격이 장갑차 주위에 떨어지니 내

부가 미친 듯이 뒤흔들리기 시작했 다. 귀를 멀게 할 정도의 굉음이 끊 임없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악! 야, 이 미친놈아아 아아아!”

정신없이 떨리는 차 내부에서 강하 린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무식한 정도를 넘었잖아!”

그녀는 창문 위의 손잡이를 붙잡으 며 영식에게 소리쳤다.

영식은 핸들을 비틀어 큰 마법 공 격들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튼튼하게 만들어 놨 으니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폭발하 지는 않을 거야!”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 미친놈아!”

강하린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도시 외곽에 모여 있는 소환자들을 올려다보았다.

적귀 권오진은 ‘초인의 땅’이라고 불리는 서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자의든, 타의든 그의 힘에 굴복하 여 따르는 소환자들의 숫자는 수백 에 가까웠다.

숫자 자체는 레비아탄, 한울 같은 거대 길드에 비해서 한창 부족하지 만 그 질은 압도적이었다.

도시 안에 잠입 한 후 기회를 틈 타 적귀 권오진을 노리는 것도 위험 부담이 큰 작전인데 이걸 그냥 정면 을 돌파하자니?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 는 일이다.

-콰과과과과광!

“하하하!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이익! 얘 진짜 정신 나간 거 아니 야?!”

영식은 미친 듯이 흔들리는 장갑차 를 운전하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까지 잠입, 혹은 진형을 짠 상 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주로 했지만 이처럼 화끈하게 돌진한 경 험은 거의 없었다.

색다른 경험에 전신에 짜릿한 전율 이 흘렀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결 맑아지는 감각이었 다.

- 쨍그랑!

장갑차의 창문이 터져나가며 강렬 한 열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끊 임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박시아가 장갑차에 펼쳐둔 보호 마법이 뚫린 것이다.

“수룡의 방벽!”

박시아는 창문이 뚫린 것을 확인하 자마자 바로 캐스팅하고 있던 마법 을 사용했다.

깨진 창문을 대신하듯 물의 보호막 이 만들어졌다.

박시아가 만들어낸 방벽은 창문을 대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장갑 차의 표면 전체를 뒤덮었다.

수룡의 방벽으로 보호되고 있는 장 갑차는 거대한 물방울 속에 갇힌 듯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시아 씨.”

“……영식 씨.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었나요?”

박시아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물 었다.

영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압도적인 전력 차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 라고 생각합니다. 몰래 잠입해서 권 오진만 노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변명’을 만들어 버리거든요.”

사람들은 자신에게 편리한 쪽으로,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

만약 영식 일행이 권오진의 도시에

잠입해서 그를 처치한다면 ‘적귀가 방심해서 당했을 것이다’, ‘기습에 당해서 패배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정신적인 자위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는 곤란했다.

그런 변명의 여지를 만들어버리면 그들은 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착각에 빠져, 자신들이 이길 수 있 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식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변명의 여지도 없는, 방심할 틈도 없는 방법.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가장 효과적

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 짜 이건……

강하린은 귀가 얼얼할 정도로 들리 는 폭음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 었다.

영식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 도시를 보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강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운전할 줄 알아?”

“아니. 나 장롱 면허였는데.”

“그래도 면허는 있다는 말이군. 그 럼 잠깐 운전하고 있어.”

“아니, 이 새끼야! 운전할 줄 모른 다고!”

핸들에서 손을 뗀 영식을 보며 강 하린은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기울 여 핸들을 잡았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격렬하 게 혼들리는 핸들을 조종했다.

“어, 어…… 그러니까 이게 깜빡이 고…… 이게…… 뭐였지?”

그녀는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핸들 에 붙어 있는 버튼을 마구잡이로 누 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위잉. 위잉.

차 앞 유리에 물이 뿌려지더니 와 이퍼가 좌우로 움직였다.

“……헛짓거리 하지 말고 그냥 핸 들이나 잡아.”

그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강하린 에게 말했다.

“이익! 못 한다고 했잖아! 왜 갑 자기 나한테 운전을 시키는 건데!”

“도시 벽을 부숴야 하거든.”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기울여 왼팔 손바닥을 앞으로 창밖으로 내 밀었다.

장갑차가 단단하다고는 하지만 영 화처럼 호쾌하게 벽을 박살 내버리 며 돌진할 수는 없었다.

장갑차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구 멍을 만들어줘야 했다.

-우우우우웅!

영식의 손바닥에 푸른빛 구체가 모 여들기 시작했다. ‘업그레이드’가 된 영식의 에너지 차징 속도는 전과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풀 차징 된 에너지 블라 스트가 위협적인 열기를 뿜어냈다.

영식이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얻 은 것은 새로운 무기나, 능력이 아 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힘을 완벽하 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주 는 것.

그것이 그가 업그레이드를 통해 얻 은 것이었다.

-콰아아아앙!

그의 손에서 발사된 에너지 블라스 트가 도시의 벽에 충돌했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박살난 벽의 잔해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아아아아아악!”

외곽 벽 위에 올라 서있던 소환자

가 폭발에 휩쓸려 바닥으로 추락했 다.

성벽을 지키던 소환자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젠장! 뚫린 곳을 방어해!”

감시조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 쳤다.

하지만 워낙 폭발이 컸던 탓에 훤 하게 뚫린 구멍으로 병력이 이동하 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부우우우웅!

그 틈을 타 장갑차는 더욱 속력을 올려 뚫린 벽을 향해 돌진했다.

감시조장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 안 돼……

지금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방어 가 뚫린다면 권오진이 자신을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간부자리에서 잘리는 것은 물론 직 위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목이 잘릴 판이었다.

“하압!!”

?쿵!

그는 거칠게 발을 박차며 뚫린 구 멍을 향해 다가갔다.

그 또한 서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초인.

바람을 가르며 순식간에 쏘아진 그 의 몸이 장갑차의 앞을 막아섰다.

“넌 못 지나간다!”

감시조장은 손에 쥔 곡도를 집어 들며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였다.

-철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장갑차의 뒤편이 열렸다. 포신처럼 생긴 두 개의 기둥이 장갑차의 뒤로 빠져나왔다.

“응……r

감시조장은 희미한 불안감을 느끼 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장갑차를 바라보았다.

에르노어 대륙에 오기 전, 지구에 서 보았던 박쥐 슈트를 입은 주인공 이 등장하는 영화 하나가 그의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쿠구구구구궁!

그의 불안감에 호응하듯 장갑차 밖 으로 빠져나온 두 개의 포신에서 맹 렬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장갑차의 속도는 ‘자동차’라고 불 릴 수 있는 범주를 넘어 있었다.

“이, 이런 미친……!”

감시조장은 입을 쩍 벌린 채 장갑 차를 바라보았다. 그의 예상을 아득 하게 웃도는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그대로 그를 치어버렸다.

-콰직!

장갑차에 치인 감시조장의 몸이 산 산이 터져나갔다. 검붉은 피와 내장 이 차 앞 유리에 달라붙었다.

-위잉. 위잉.

“와이퍼는 이럴 때 켜야지.”

“이, 미친 놈…… 우욱!”

성벽을 박살 낸 영식은 다시 핸들 을 잡고는 차를 몰았다.

강하린은 와이퍼에 쓸려나가는 사 체를 바라보며 구역질이 난다는 듯 이 입을 막았다.

수많은 전투를 통해 피에 익숙해져 있는 그녀였지만 역시 바로 눈앞에 서 장기자랑(?)이 펼쳐진 모습을 보 고는 멀쩡히 있기 힘들었다.

“영식 씨는…… 보기와는 달리 상 당히 과격한 사람이었군요.”

천태황도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전투 이외에 다른 무엇도 관심 없 던 그가 영식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할 정도면 그가 받은 충격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하. 최근 복잡했던 일이 많아서 좀 짜증이 쌓였거든요.”

영식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핸들 을 움켜쥐었다.

“그럼, 바로 권오진이 있는 곳으로 가죠.”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부스트의 출력을 올렸다.

권오진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이 넓은 도시 속에서 그가 사는 대저택만 5층이 넘는 웅장한 크기를 자랑했으니까.

-그아아아아앙!

더 이상 배기음이라고 할 수는 없 는 소리와 함께 장갑차가 질주했다.

도시 중앙에 있는 저택까지 도착하 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초.

저택을 대문을 가볍게 박살 내고 들어간 영식은 그대로 장갑차를 끌 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콰아아앙!

자욱한 연기와 함께 장갑차의 움직 이 멈췄다. 정신 나간 질주가 드디 어 끝난 것이다.

?달칵.

영식은 장갑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앞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 였다.

그가 입고 있는 화려한 옷에서 그 가 누구인가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 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적귀 권오진 님 이시죠?”

장갑차에서 내린 영식은 권오진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권오진 님과 잠시 대화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뭐?”

권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황당한 표정을 지은 사람은 권오진 만이 아니었다. 영식을 따라 내린 강하린과 천태황, 박시아 또한 영식 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 지랄을 했는데 잘도 대화가 되 겠다.”

강하린은 권오진이 하고 싶은 대신 입에 담으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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