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98화
업그레이드(3)
-치익.
강렬한 노이즈가 시야를 어지럽혔 다.
그와 함께 영식의 머릿속에 한 가 지 영상이 떠올랐다.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왕좌.
그 위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저벅, 저벅.
“대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영식은 천천 히 눈을 떴다. 짙은 검은색 머리칼 을 가진 한 청년이었다.
“무슨 일이냐, 락테온.”
영식은 다급해 보이는 락테온을 향 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아냈습니다.”
“알아냈다고?”
락테온은 홍분에 찬 표정으로 고개
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왜 인간과 싸우고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또 그런 헛소릴 하는 거냐. 인간 과의 싸움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대체 왜 의문을 갖는 거지?”
“하지만 대장님도 그것이 왜 ‘당연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계 시지 않습니까?”
락테온의 물음에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인간을 죽여라.
그리고 이 세계를 지배해라.
이 ‘에르노어’라는 대륙에 도착한 그에게 마치 진리와도 같이 느껴졌 던 일이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불쾌한 이유가.”
“?뭐지?”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 었다. 그가 말하는 ‘불쾌한 이유’라 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으로 락테온의 말에 귀를 기울 이기 시작한 것이다.
락테온은 살짝 밝아진 표정으로 입 을 열었다.
“그 이유는……
-지직.
영식이 그 말을 기억해 내기 전, 다시 한번 노이즈와 함께 시야가 일 그러 졌다.
“..하아, 하아 |허
영식의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졌 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철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그의
안에서 울려 퍼졌다.
영식의 자신의 육체가 그 근본부터 바뀌고 있는 감각을 느꼈다.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겠습니다.
딱딱한 기계음과 함께 영식의 몸에 서 시끄러운 쇳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철컥, 철컥, 철컥!
“커억……
전신이 뒤틀리는 고통.
영식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 나왔다.
-쩌적!
피부가 가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피부 너머로 복잡한 기계 장치로 된 신체가 드러났다.
몇몇 부품이 밖으로 튕겨져 나오며 그 빈자리를 새로운 부품이 채웠다.
블레이드에서부터 샷건, 개틀링건 과 미사일, 이클립스 캐논까지 그의 신체에 잠들어 있던 무기들이 밖으 로 나와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었 다.
“크으으으!”
부품이 교체될수록 강렬한 고통과 함께 강렬한 힘이 끓어 넘쳤다.
영식은 왜 이 현상에 ‘업그레이드’
라는 명칭이 달렸는지 이해할 수 있 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었 다. 기존에 있던 무기들을 강화하고 그를 조화롭게 몸에 섞어 넣는 것이 다.
이제까지 할 수 없었던 동작, 상상 하지 못했던 무기 활용법이 그의 머 릿속에 떠올랐다.
강화 스킬과는 달랐다.
강화 스킬이 무기에 새로운 스킬을 부여해 준다면 업그레이드는 원래 있던 스킬과 무기를 조금 더 효율적 으로, 완벽하게 다를 수 있는 방법 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검사로 치면 검법의 오의를 깨닫는 것과 같은 현상.
영식의 마치 의식이 확장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고양감.
그 고양감과 함께 떠오른 것은 루 시아의 움직임이었다.
슈트의 도움을 받아도 정확히 파악 할 수 없었던 그녀의 현란한 움직 임. 경이로운 검술.
그것이 그의 머릿속에 수없이 재생 되었다.
루시아만이 아니었다.
창세교와 전투 때 보았던 서강준의 움직임, 황성 습격 사건 때 보았던 알렉 볼프강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그의 뒤를 이어 티리아, 유나, 유 진의 움직임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영식의 의식은 그들의 움직임을 서 로 겹쳤다. 무기를 휘두르는 것, 공 격을 피하는 것, 받아치기 위해 몸 을 움직이는 것.
모든 움직임이 그의 머릿속에 데이 터로 변환되어 뒤섞였다.
-지금까지 수집 된 전투 데이터를
통해 머신 러닝 (Machine Learning) 을 시행합니다.
-전투 데이터가 업데이트됩니다.
영식의 의식이 그들의 움직임을 철 저하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루시아와 서강준, 알렉의 움직임들 을 데이터로 만들어 겹치며 그 사이 의 가장 효율적인 패턴을 찾아낸다.
어떻게 무기를 휘둘러야 가장 효율 적인 움직임으로 휘두를 수 있는지.
어떻게 공격을 피해내야 가장 효율 적인 움직임으로 피해낼 수 있는지.
어떻게 반격해야 가장 효율적인 움 직임으로 반격할 수 있는지.
여러 전사들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식은 무술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씩 깨우 치기 시작했다.
실제 오랜 수련을 통해 실력을 쌓 은 전사들이 보면 입에 게거품을 물 고 쓰러졌을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전사들이 깨달음을 얻 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감’이었다. 수천, 수만 번의 동작을 반복하면서 그 무술을 더욱 효율적으로 펼칠 수 있는 방법을 감각적으로 깨닫는 것 이다.
하지만 영식은 그렇게 하지 않았
다.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시무 시할 정도의 연산을 펼쳐 가장 효율 적인 움직임을 ‘도출’해 낸 것이다.
무술을 수련하며 깨닫는 심오한 오 의 따위는 없었다. 그냥 방대한 데 이터로 찍어 누르듯이 그 무술 안에 숨겨진 오의를 찾아냈다.
사도(邪徒)도 이런 사도가 없었다. 인간들이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오고, 단련해 온 기술들을 데이터화시켜서 모두 분석해 버린 것이다.
한때 지구에서 유명했던 인공지능 과 프로 바둑기사와의 싸움.
그 인공지능은 수천, 수만의 달하 는 데이터를 토대로 ‘최선의 수’를 놓아 모든 바둑기사를 좌절시켰다.
인공지능이 패배한 것은 단 한 번.
한국인 바둑 기사의 기적과도 같은 한 수로 인해 무너졌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자신이 패배한’ 기록까지 더해진 그 인공지능은 괴 물 같은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욱 성장해 버렸다.
결국 한 번의 패배 이후 더욱 성 장한 그 인공지능은 전 세계 바둑기 사들을 발아래 둔 채 은퇴해 버렸 다.
지금 영식이 하는 일은 그 인공지 능이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전투’라는 이름의, 무한에 가까운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그 상황에서 무수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것.
흔히 무협지에서 나오는 무공에 대 한 경외심이나 존중 따위는 어디서 도 찾아 볼 수 없는 철저히 계산적 인 방법이었다.
- 치직.
-오류. 데이터화 할 수 없는 전투 데이터가 있습니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보인 것은
단테리온이 이브의 주민들을 학살하 고 있는 모습이었다.
-해당 데이터는 현제 연산 능력으 로 해석이 불가합니다.
-해당 데이터를 제외하고 업데이 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전투 데이터의 업데이트가 완료 되었습니다.
w 크윽.! ”
그 말과 함께 영식의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전투 데이터가 흘러들 어왔다.
영식은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 에 이마를 움켜쥔 채 몸을 떨었다.
-업그레이드 최종 단계에 돌입합 니다.
-업데이트한 전투 데이터에 최적 화시키기 위해 신체 구조를 조정합 니다.
“크윽!”
시끄러운 쇳소리와 함께 그의 몸을 이루는 기계 장치들의 위치가 미묘 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신장이 조금 더 커졌고, 근육의 역 할을 하는 부분이 더운 세밀하게 구 성되 었다.
그가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 들어낸 ‘무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최적화된 신체 구조가 필요 했기 때문이었다.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불필요한 에너지 및 노폐물을 배 출합니다.
-우우우웅!
그 말과 동시에 영식의 몸에서 강 렬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거대한 충격과 함께 영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가 황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후우……
영식은 몸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 을 정도로 가벼워진 감각에 놀랍다 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 았다.
‘웅……?’
그때, 그의 왼손 손등에 있는 문양 이 살짝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그만이 알 수 있는 문자로 ‘영식’ 이라고 적혀 있는 문양이었다.
‘이게 뭐지?’
그는 순간적으로 희미하게 빛난 문 양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콰앙
“주, 주인님!”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다급 한 표정의 루시아가 방 안으로 들어 왔다.
영식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 다.
“주인…… 님?”
자욱한 연기가 걷히고 영식의 시선 이 루시아를 향했다.
영식의 눈을 본 루시아는 흠칫 몸 을 떨었다. 그녀의 몸을 타고 짜릿 한 전율이 흘렀다.
‘전율? 아냐, 이건……
루시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식을 본 그녀가 느낀 감정은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례 거의 느껴본 적이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공포’라 는 감정이었다.
“아, 아아……
루시아는 가늘게 떨리는 몸으로 그 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듯한 공포가 전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루시아?”
영식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루시아는 고개를 붕붕 저으며 다시 그에게 시 선을 향했다.
처음 느꼈던 이해할 수 없는 공포 는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 주인님 머리카락이……
“웅? 머리가 뭐?”
영식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자신의 앞머리를 바라보았다.
단정한 흑발이었던 그의 머리칼은 어느새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뭐지? 업그레이드의 영향인가?’
그는 회색으로 변한 자신의 머리칼 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 었다.
“여, 영식 씨!”
“영식아!”
루시아에 이어 티리아와 아라도 영 식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급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아라에 게 영식은 괜찮다는 듯이 웃음을 흘 리며 방금 전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 을 설명했다.
“……몸이 막 새롭게 구성되고 새 로운 무술을 깨달았다고?”
“그래. 이제까지 무거운 추를 달고 다닌 것을 벗어던진 기분이야. 몸도 가볍고, 컨디션도 좋아. 오히려 지금 당장에라도 대련을 해보고 싶을 정 도야.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휴우……. 다행이네요.”
영식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티리아와 달리 아라는 딱딱하게 굳 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식아 그거…… 환골탈태인가 그 거 아니야?”
“음. 업그레이드, 라고 하던데.”
“하지만 일어난 일이 딱 환골탈태 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가 겪은 것은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환골탈태와 비슷한 현 상이었다.
a =司 ≫
... Or
아라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웃 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
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기어코…… 모든 장르 그랜드슬램 을 찍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