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196화 (196/284)

레벨업 머신 196화

업그레이드(1)

창세교를 궤멸시킨 살바토르 길드 는 서강준과 함께 아르난 제국으로 복귀했다.

서부 전체를 좀 먹고 있던 사이비 종교를 성공적으로 처치했지만 영식 과 그 일행들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제국으로 돌아왔음에도 길드원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단테리온의 경이로운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짙 은 패배감이 길드원들 전체의 어깨 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패배감만이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패배감을 느낀 상대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싸워야 할 궁 극적인 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들 무사히 돌아왔군. 창세교에 대한 얘기는 미리 전해 들었다. 창 조주의 계획을 저지하다니, 정말 큰 공을 세웠어.”

황성에 도착하자 그들을 마중 나온 포르테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사히 돌아왔다’라는 그녀의 말 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연스럽게 한 오우거의 얼굴이 길 드원들 사이에 떠올랐다.

포르테의 말이 이어졌다.

“폐하께서는 황성 창고를 약탈한

범인을 잡아준 그대들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 하네.”

“아…… 예. 우선 폐하는 나중에 찾아뵐게요. 지금 다들 지쳐 있어서 요.”

티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포 르테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 를 갸웃거리며 영식 일행을 바라보 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나중에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지 금은…… 좀 쉬고 싶네요.”

“ O 으..”

―― 丁그 ?

영식 일행이 포르테에게 전한 정보

는 황성 창고를 습격했던 범인들이 창세교라는 집단이었다는 것과 그들 을 궤멸시켰다는 정보뿐.

아직 단테리온에 대한 얘기는 그녀 에게 전하지 않았다.

“알겠다. 방을 안내해 주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폐하를 찾아뵈도 록 흐]게. 그대들에게 이번 서부 원 정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계시네.”

“예. 제국 상황은 많이 좋아졌나 요?”

“동부와의 협력 그리고 창세교의 궤멸 소식으로 전보다 많이 안정 되 었다. 이것도 자네들 덕분이지.”

“다행이네요. 그럼 나중에 찾아뵙 도록 할게요.”

“알겠다. 폐하께는 그리 전해두겠 다.”

포르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식 일행에게 방을 안내해 주었다.

“영식 씨……

티리아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영식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 았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영식은 평소와 다름없는 덤덤한 목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티리아 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마. 뭔가 방법을 생각할 테니까.”

“그게 아니라……

“잠깐 혼자서 생각 좀 할게.”

영식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방 안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티리아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그의 옷소매에서 손을 떼었다.

- 달칵.

방문이 닫혔다.

“하 아.

방 안으로 들어온 영식은 깊은 한 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엉켰다.

‘내가 창조주들의 지도자…… 였다 고.’

솔직히 지금도 실감하기 어려운 말 이었다.

그들을 이끌었던 기억은커녕 함께 있었던 기억조차 거의 나지 않았으 니까.

하지만 자신이 그들과 동류가 아니 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을 부정하기에는 영식은 너 무나도 그들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배신한 이유는 대체 뭐지?’

영식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주먹 을 움켜쥐었다.

이유 없는 배신은 존재할 수가 없 었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영식이 그들을 배신했을 때의 기억 은 떠오르지 않았다.

“락테온이…… 틀렸다, 라.”

단테리온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

영식은 어째서인지 그 말이 무척이 나 ‘불쾌’하게 느껴졌다.

짧은 침묵과 함께 한 얼굴이 떠올 랐다.

처절한 절망과, 중오로 일그러진 오우거의 얼굴.

“?이브.”

그 이름을 입에 담으니 가슴 속에 서 저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저를…… 죽여주세요.

“제길.”

이브의 모습에 이어 그의 마지막 부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영식은 거친 욕설을 입에 담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왜, 왜 저를 죽여주지 않으시는 거죠?

기억이 이어졌다.

절규와도 같은 이브의 외침이 영식

의 귓가에 들렸다.

-절 죽여주시지 않는다면, 떠나겠 습니다.

이브는 이제까지 보았던 그의 모습 과는 전혀 달리 차갑고, 딱딱한 말 투로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영식은 떠나가는 이브를 붙잡을 수 없었다.

“?제길.”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거친 욕설 뿐. 영식은 이마에 손을 올리 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을 수가 없었 다. 잊힐 리가 없었다.

절망과 증오로 뒤틀린 이브의 표정 이 영식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새겨 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냥 아무 감정도 없는 꼭두각시 병기로 살 걸 그랬네요.

“아니야.”

영식은 이브가 말했던 그 말이 너 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게 느껴졌다. 가슴 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더욱 강해졌 다.

그를 붙잡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 다. 꼭두각시 병기로 사는 것을 바 라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얻은 감정이라는 것은 무척 값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영식은 마지막까지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꼭두각시보다 감정과 의지를 가지 고 있는,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것 이 옳다는 것은 일반론에 불과했다.

창조주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서 벗어난 탓에 상상할 수 없는 절 망을 겪은 이브에게 그런 일반론은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이브에게 있어 감정을 느낄 수 있 게 된 것은 저주나 다름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영식은 ‘감정이 갚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자 신이 없었다.

“제길, 제길!”

_쿵!

영식은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힘을 제어하지 못한 탓에 방 전체가 흔들렸다.

-락테온은 틀렸습니다.

단테리온의 말이 다시금 그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

락테온이 누구인지, 그가 무슨 말

을 했던 건지 영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가 틀렸다는 말은 영식 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식은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참기 힘들었 다. 락테온이 틀렸다는 그의 말이 마치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테리온……

영식은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에 대해서 떠올릴 때마다 아득한 감정이 밀려왔다.

단순히 단테리온의 힘이 경이로웠 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향하 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모두 아득 하게만 느껴졌다.

“ 후우?

영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남은 것은 풀리지 않은 의 문의 응어리였다.

과거 그와 락테온, 단테리온 사이 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은 왜 창조주들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었 다.

‘기억을 더 찾아야 해.’

영식은 품속에서 단테리온 슈트의

파편을 꺼냈다.

과거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자 기 자신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억이 필요했다.

그리고…….

‘힘을 키워야 해.’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 술을 깨물었다.

단테리온이 가진 절대적인 힘을 보 았다. 그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모두 알게 된다고 해도 단테리온을 ‘이해’시킬 수 없는 이상 그와의 싸 움은 필연적이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해.’

지금 영식은 단테리온이 보여준 힘 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와 싸우기 위해서는 강해질 필요 가 있었다.

“그럼 우선……

영식은 손에 쥔 슈트의 파편을 움 켜 쥐었다.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성장의 가능성은 이 파편에 들어 있는 ‘에 너지 분해’라는 사기적인 기술을 익 히는 것이다.

“구조 파악.”

-우우우웅!

영식의 손을 타고 흘러간 푸른색 빛이 에레랄드빛 파편으로 빨려 들 어갔다.

“ O ol-O ”

―, I ―.

영식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머 릿속을 통해 들어오는 아득할 정도 의 정보량이 그의 전신을 떨리게 만 들었다.

감당할 수 없다고 영식은 본능적으 로 생각했다.

- 경고.

-한계치 이상의 정보량이 들어왔 습니다. 정보 처리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차단할 것을 권유합니다.

그의 머릿속에 익숙한 기계음의 목 소리가 들렸다.

영식은 입술을 깨문 채 슈트의 파 편을 움켜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만둘 수 없어.’

그만둘 수 없었다. 절망으로 일그 러진 이브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 에 그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은 자신 이 될 수도 있었다.

티리아, 아라, 루시아, 길수 그리고 다른 길드원들.

그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그

들이 모두 단테리온의 손에 죽게 된 다면 그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이브와 똑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영식은 머릿속으로 밀려 들오는 정 보의 해일을 필사적으로 견뎌냈다.

“아, 으악……

-파직, 파지직!

-경고. 경고.

-정보 수용량이 한계치에 도달하 였습니다.

-더 이상의 정보는 정보 처리 기 능의 과부하를 가져다 둘 수 있습니 다. 지금 당장 정보를 차단할 것을 권장합니다.

다시 한번 귓가에 시끄러운 경고음 이 흘러들어왔다.

영식은 머리가 터질 듯한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며 계속해서 구조파악 을 이어나갔다.

‘지금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

영식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한 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생각할 수 없 었다.

그에게는 지금 이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다시는……!’

-지직.

영식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의 몸에서 푸른 전기와 함께 연 기가 피어올랐다.

황성의 대리석 바닥이 열기를 견디 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 다.

‘잃을 수 없어.’

-지지직.

일그러진 시야 너머로 한 인영이

보였다. 황금색 검이 가슴에 꽂혀 있는 그는 영식을 향해 애처롭게 손 을 내밀고 있었다.

영식은 그 인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띠링.

[구조파악에 성공하였습니다.]

[구조파악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 였습니다.]

[구조파악 스킬 레벨이 9레벨로 상 승하였습니다.]

[표본을 통해 ‘에너지 분해’ 기술을 습득하였습니다.]

[정보 처리 속도 향상을 위해 현재 개방 가능한 보안 레벨을 모두 개방 합니다.]

[보안 레벨 10단계를 해제하였습니다.]

[보안 레벨 10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업그레이드’가 진행됩니다.]

-쿠우우웅!

거대한 폭음이 황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