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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95화 (195/284)

레벨업 머신 195화

단테리온 (2)

[오랜만입니다.]

마음까지 편해지는 듯한, 무심코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온화한 목소 리.

- 치직.

“크윽!”

영식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시야에 노이즈가 생겼다.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잉그리움 제국의 영토에 도착 했을 때, 갑작스럽게 떠올랐던 기억 들.

“단, 테리온……T

무의식중에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의 말을 들은 온화한 목소리의 주인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 를 끄덕였다.

[아, 아아…….]

이브의 입에서 절망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브는 슈트의 팔에 가슴이 꿰뚫린 밤비를 바라보며 비틀거리는 걸음으 로 다가갔다.

[바, 밤비야……?]

[조, 족장…… 님.]

-파직! 지지직!

밤비는 가슴이 꿰뚫린 채 당장에라 도 끊어질 듯이 희미한 목소리로 이 브를 불렀다. 이브의 몸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j j j]

?쿵! 쿵! 쿵!

이브는 미친 듯이 포효하며 단테리 온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몸에서 흉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브는 에메랄드빛 슈트를 향해 거 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브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네 요.]

단테리온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쿠웅

[크아아아아!]

팔에 얻어맞은 이브의 몸이 형편없 이 바닥을 굴렀다.

“넌…… 누구지. 아니, 애초에 어떻 게 지금 슈트를 조종할 수 있는 거 지?”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단 테리온을 노려보았다.

분명 여태 슈트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은 박도훈이 맞았다. 바이저를 열 어서 직접 얼굴까지 봤으니 착각 했 을 가능성도 없었다.

[하하. 원격 조종입니다.]

“원격…… 조종?”

[예. 이 슈트의 주인은 저니까요.]

단테리온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

답했다. 영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 러졌다.

‘저 슈트의 성능이 이상할 정도로 높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군.’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슈트 성능의 비밀이 풀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슈트 성능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고 해도 아직 남아 있는 의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봤다는 건 무슨 의미지?”

영식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단테리온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 소리로 답했다.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대장님.]

“……대장님이라고?”

그의 태연한 대답에 영식은 표정을 굳혔다. 창조주들이 누군가를 ‘대장’ 이라고 칭하는 것은 몇 번 봐왔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을 ‘대장’이라 고 부르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하. 아직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 진 않으신 모양이군요.]

≪..r까

[대장님, 당신은 저희의 지도자입 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

단테리온의 말에 동요한 것은 영식 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함께 듣고 있던 길드원 들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영식과 단테리온을 바라보았다.

“내가…… 괴물들의 창조주라는 얘 기냐?”

영식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믿기 힘든 얘기였다. 아니, 믿고 싶지 않 은 얘기였다.

[괴물들의 창조주라…… 뭐, 그런 명칭으로 불리고는 있죠. 맞습니다. 당신은 소환자들로부터 괴물의 창조 주라 불리는 존재입니다.]

단테리온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 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실, 단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단서는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그가 사용하는 ‘기계’의 힘이 창조 주들이 사용하는 힘과 동일하다는 것.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 창조주의 슈트를 자신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무조건적인…… 승인.’

가끔 구조 파악을 했을 때 떠올랐 던 메시지. 분명 복잡하기 그지없었 을 보안 장치가 자신을 무조건적으 로 받아들였던 것.

그 모든 것이 자신이 ‘괴물들의 창 조주’라고 한다면 납득이 가는 일이 었다.

[하하.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던 모 양이군요.]

단테리온의 물음에 영식은 침묵을

이어갔다.

그의 말이 맞았다. 단서는 충분히 있었다. 흩어진 기억의 파편을 이을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 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에 대해서 침묵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사고하지 않았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봤다.

[보고 싶었습니다, 대장님.]

“?닥쳐.”

영식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단 테리온을 노려보았다.

그가 자신을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를 분 노케 만들었다.

[당신은 제게 가르침을 주었습니 다. 의미를 주었습니다. 목적을 주었 습니다.]

단테리온은 취한 듯한 목소리로 말 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배신했습 니다.]

“?배신?”

[예. 당신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 습니다.]

M 99

?

“그, 그럼 그 창조주들 사이에 있 다는 배신자가…… 영식 씨였단 말 입니까?”

단테리온의 말을 듣던 한성이 더듬 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단테리온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지금 저희 대장님과 대화중입니 다. 부외자는 입을 다물어주세요.]

-쿠드드득!

“커 헉!”

“하, 한성 씨!”

보이지 않는 압력이 한성의 어깨를 짓눌렀다.

한성의 무릎이 꿇리며 바닥에 쓰러 졌다.

티리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한성에 게 다가갔다.

[계속 생각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장 님이 왜 저희를 배신했는지.]

온화했던 단테리온의 목소리가 광 기를 띠기 시작했다.

[자, 저걸 보세요. 대장님을 이해하 려고 한 제 노력의 흔적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단테리온이 가리킨 것은 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 고 있는 이브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대장님께서는 지구에 관심이 많으 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지구에 대해 서 공부를 좀 했습니다. 그래서 저 아이의 이름을 ‘이브’라고 지었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음을 흘렸다.

“네가…… 이브의 이름을 지어줬다 고?”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존재에게 감 사를 표하고 싶다는 이브의 말이 떠 올랐다.

[아, 아아…….]

이브의 입에서 절망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영식은 그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 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인위적으 로 만들어진 사실이라는 것에 절망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대장님 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단테리온의 말에 영식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그들을 배신한 이유는 영식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제가 대장님을 이 해시키려고 합니다.]

“날…… 이해시키려고 한다고?”

[예. 대장님은 제게 있어 다른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니 까요.]

단테리온은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 로 말을 이었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영식 은 어째서인지 그가 따듯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테리온은 자신의 팔에 꿰뚫린 밤 비를 들어올렸다.

[아, 아파. 아파요, 족, 장님…….]

밤비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이브를 찾았다.

[그만, 둬.]

이브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단테 리온에게 걸어갔다.

단테리온의 시선이 이브에게 향했 다.

[조, 족장님 구해주…….]

-콰직!

[아...]

단테리온은 밤비를 꿰뚫은 손을 옆 으로 휘둘렀다. 밤비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브의 입에서 절망에 찬 신음이 홀러 나왔다.

[아직 부족하네요.]

단테리온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하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따악.

그의 손가락이 맑은 소리와 함께 튕겼다.

-콰드드드득!

[아아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이브의 주민들을 향해 쏘아졌 다.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주민들의 몸이 산산이 터져나갔다.

[아, 아……?]

이브는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잊어 버린 채 멍한 표정으로 산산이 박살 난 주민들의 몸을 바라보았다.

“주, 주인님, 저건……

루시아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단테리온이 어떤 방법으로 이브의 주민들을 공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절대적인 힘.

단테리온이 가진 전율스러운 힘에 살바토르 길드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히 ‘강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차원이 달랐다.

단테리온이 지금 보여준 공격은 불 가해(不可解)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하하. 이제 이걸로 대장님도 이해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단테리온은 온화한 웃음을 흘리며 영식에게 시선을 옮겼다.

[락테온이 틀렸다는 사실을요.]

-쿠웅!

[단, 테리오오오오오오온!]

광기가 서린 이브의 포효가 주변을 울렸다. 이성을 잃은 이브는 주먹을 움켜쥐고 단테리온을 향해 달려들었 다.

[그럼.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대장님.]

하지만 이브의 주먹이 단테리온에 게 닿을 일은 없었다.

-슈우우우우!

순식간에 이브의 주민들을 학살한 단테리온의 등에서 강렬한 부스트가 뿜어져 나왔다. 단테리온의 몸이 하 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영식이 뭘 해보기도 전에 단테리온 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아아아아아 j

이브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 다. 이브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 듯 엉금엉금 기어가 반 토막 난 밤비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바, 밤비야. 밤비야……? 대답 좀 해봐』

이브는 밤비의 뺨을 쓰다듬으며 떨 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만, 밤비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야…….]

그는 몸을 돌려 산산이 박살난 주 민들을 향해 기어갔다.

[아,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그는 처참하게 박살난 주민들의 시 체를 양손 가득 끌어 모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양손 가득 시체를 끌어 모은 이브 는 영식에게 기어갔다.

[여, 영식 씨. 수리라는 스킬이 있 다고 하셨죠? 아, 아이들을 고쳐주 세요, 영식 씨.]

반 토막 난 주민들의 시체를 들고 영식에게 기어 온 이브는 처절한 목 소리로 말했다.

영식은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해줄 수 없었다.

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정도로 파손된 기계를 수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브도 알고 있을 테니까.

이브가 느끼고 있는 처절한 절망 이, 슬픔이 그에게 전해졌다.

[제, 제발 제 아이들을 고쳐주세요, 영식 씨. 네? 영식 씨라면 고치실 수 있잖아요.]

“……미안해.”

영식은 딱딱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 었다. 이브는 절박한 표정으로 영식 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안하다뇨? 그, 그게 무슨 소리 에요, 영식 씨. 영식 씨는 괴물들의 창조주잖아요. 그러니까, 저희들을 만든 저 단테리온이라는 놈하고 같 은 존재잖아요? 그, 그렇다면 고치 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예? 그렇 죠?]

[왜 대답이 없으신 거예요? 예? 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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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고쳐 달라고!]

이브는 거칠게 발을 구르며 영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두 눈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이, 이상하잖아요. 그렇죠, 영 식 씨? 아, 이게 그 인간들이 꾼다 는 악몽인가 그건가요? 그렇죠? 하 흐}하. 아, 좀 이상하긴 했어요. 이제 저희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나 보 네요.]

“?이브.”

영식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이브 를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득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를 위해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하 는지 영식은 알 수 없었다. 아니, 지금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혹, 흐윽. 허어어어엉.]

이브는 영식에게서 손을 뗀 채 바 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반 토막 난 밤비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영식은 울부짖고 있는 이브를 가만 히 내려다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 하하.]

한동안 눈물을 홀리던 이브의 입에 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영 식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영식 씨에게 잘못 말씀드린

게 있네요.]

[슬픔이라는 감정은, 전혀 소중하 지 않습니다. 그저 괴롭고, 괴로울 뿐이에요. 하하.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냥 아무 감정도 없는 꼭두 각시 병기로 살 걸 그랬네요. 예. 그편이 더 행복했을 것 같아요.]

이브는 처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 했다. 영식은 그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브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생 각나지 않았다.

[영식 씨,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이브의 시선이 영식을 향했다.

[저를……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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