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92화
정답은 오른팔에 있다(2)
-콰아아아앙!
플라즈마를 머금은 수십 발의 미사 일이 끔찍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강렬한 열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만월 (滿月).”
미사일의 폭격에 이어 거대한 구체
의 형태로 뭉친 푸른빛 와이어가 하 늘에 만들어졌다.
지금 15M에 달하는 그 구체안에 는 수천 가닥의 와이어들이 어지럽 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미사일의 여파로 튕겨져 나간 바위 가 와이어에 닿자마자 시끄러운 소 리와 함께 갈려나갔다.
마치 거대한 믹서기가 하늘에 떠있 는 것과도 같은 광경.
서강준은 미사일로 인한 연기가 걷 히자마자 박도훈을 향해 와이어의 구체를 날렸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강!
쇠를 두들기는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음량을 아 득히 뛰어넘은 그 굉음에 소리만으 로 안에 있는 사람이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파아앙!
세상 모든 것을 갈아버릴 것 같았 던 와이어의 구체가 터져나갔다.
와이어가 터져나간 자리에는 에메 랄드빛의 슈트를 입은 박도훈이 서 있었다.
“뭐 이런……
서강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박도훈을 바라보았다.
박도훈이 입은 슈트는 중간 중간 흠집이 나있기는 했지만 착용자에게 피해가 갈 만한 파손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정신 나간 방어력이군.’
서강준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그가 엘리아라고 자칭한 창조 주와 일전을 겨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박도훈이 입은 슈트를 단순한
방어력만 놓고 본다면 엘리아라는 창조주가 사용한 슈트 이상의 성능 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창조주보다 고성능의 슈트를 인간이 가질 수 있단 말인 가.’
서강준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박도훈이 입고 있는 슈트를 바라보 았다.
물론, 박도훈이 엘리아에게 앞서는 것은 슈트의 성능뿐이었다.
엘리아는 박도훈에 비해서 격이 다 를 정도로 전투에 능했다. 만약 그 녀에게 슈트가 없다고 하더라도 쉽 게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 의미에서 박도훈은 창조주와 일전을 겨뤘을 때처럼 난공불락의 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제대로 된 피 해를 주지 않아서야…… 그의 마력 양이 다른 소환자와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는 하나 무한한 건 아니었다.
이대로 싸움이 계속될 동안 제대로 피해를 주지 못한다면 승기는 점점 박도훈을 향해 기울 것이다.
‘큰 기술을 사용할 틈이라도 있다 면.’
1분, 아니, 30초라도 공격을 준비 할 시간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것 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박도훈이 입고 있는 슈트는 단순히 ‘방어’에만 특화된 슈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박도훈은 연달아 이어진 영식과 서 강준의 공격에 짜증스럽다는 목소리 로 소리쳤다.
-철컥.
그의 어깨가 열리며 유도 미사일이 영식과 서강준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크윽……
강렬한 폭발이 영식을 집어삼켰다. 폭발에 휩쓸린 영식의 몸이 거칠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미사일은 또 왜 이렇게 빠른 거 야.’
영식은 슈트 너머로 전해지는 강렬 한 충격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사용하는 미사일과는 격이 다 른 속도를 가지고 있는 박도훈의 미 사일.
이것이 그와 서강준이 큰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고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였다.
분명 박도훈의 전투 센스와 움직임 은 좋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전투 센스의 부재를 보완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가 입고 있는 슈트가 공격, 방어 모두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었다.
레벨 차이가 극명하게 나는 소환자 간의 싸움과 같은 양상.
기술의 부재를 압도적인 신체 스펙 의 차이로 메운 것이다.
‘창조주의 슈트를 받기라도 한 거
야 뭐야?’
영식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부스 트를 사용해서 이어지는 총알 세례 를 피했다.
서강준과 슈트를 입은 자신을 단순 한 스펙 차이로 찍어 누르다니.
대체 박도훈이 입고 있는 슈트의 정체가 뭔지, 그 안에 들어있는 기 술이 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하아, 하아.”
영식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 다. 계속되는 전투에 급속도로 피로 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어도.’
-지이이이잉!
영식은 자신을 노리고 쏘아지는 레 이저를 플라즈마 배리어로 막아냈 다.
배리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 작해야 3초.
영식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그 의 공격을 피했다.
박도훈이 입고 있는 슈트에는 자동 공격 기능이라도 달려 있는지 굳이 박도훈이 의식해서 사용한 공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동으로 영식과 서강준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박도훈과 싸우고 있는 건지 그의
슈트와 싸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 을 정도였다.
-콰직!
- 경고.
-슈트의 파손율이 31프로에 도달 하였습니다.
미사일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어깨 장갑이 박살 났다.
영식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서강 준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는 훨씬 더 잘 버티고 있 다고는 하지만 서강준의 상황도 결 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그도 큰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간신히 공 격을 막고, 피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야!”
박도훈은 슈트의 전능한 힘에 취해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이 슈트를 받았을 때를 떠올 렸다. 자신에게 슈트를 준 존재를 떠올렸다.
온화한 인상을 가진 청년.
그 청년은 자신에게 신과 같은 힘 을 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생각이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이 슈트의 힘이 신의 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 이 신의 힘이란 말인가!
‘응?’
순간적으로 박도훈의 시야가 일그 러졌다. 희미한 두통이 느껴졌다.
단테리온이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 이 신과 같은 힘을 주겠다고 말한 것은 기억난다.
자신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며 그에게 욕을 퍼부었던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 뒤가 잘 기억나지 않았 다.
어떻게 그를 신뢰하게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그의 명령을 따르기 시 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는 것이 아 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박도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몽유병 환자가 잠에서 깨어난 것과도 같은 감각.
잠들어 있는 사이 몸은 움직인 것 같은데, 그사이의 기억이 안개에 휩 싸인 듯이 불투명했다.
- 치직.
...
박도훈은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그게 무슨 상관이지?’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아무런 상관없지.”
박도훈은 어딘가 취한 듯한 목소리 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어째서 단테리온을 믿게 되었 는지, 그의 명령에 따르게 되었는지 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슈트의 경이로운 힘!
“흐흐흐. 하하하하하!”
박도훈의 입에서 열락에 찬 웃음소 리가 흘러나왔다.
전능한 힘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마약과도 같은 쾌락을 주었다.
돈? 여자?
그것이 줄 수 있는 쾌락은 이 힘 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였다.
-슈우우우우욱!
슈트의 등에서 강렬한 부스트가 뿜 어져 나왔다. 몸이 길게 늘어지는 듯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
순식간에 영식 앞에 도착한 박도훈 은 손등의 블레이드를 내려 그었다.
검술의 묘리도, 고난이도의 기교도 들어가지 않은 단순한 일격이었지만 슈트의 힘에 의해 그 일격은 스킬을 사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로 강력한 일격으로 변했다.
-촤악!
박도훈의 공격을 피하느라 체력을 소진했던 영식은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락테온 2식의 흉부가 길게 갈라졌 다.
- 경고.
-슈트의 파손율이 63%에 도달하 였습니다. 부스트 기능이 정상적으 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길?!”
영식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 왔다.
박도훈의 일격을 허용한 슈트의 가 슴이 흉측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부스트가 꺼진 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인니이이이이임!”
루시아의 비명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굉음과 함께 눈 깜짝할 사 이에 수백 미터를 주파한 루시아는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영식의 몸을 안아들었다.
“괘, 괜찮으신가요, 주인님?!”
“크윽. 난 괜찮아. 그것보다 슈트 군단은 어쩌고 여기 온 거야?”
“다른 슈트 군단은 거의 정리되었 어요. 이제 주인님과 함께 싸울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영식은 고개를 돌려 길드원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과 달리 아직 슈트 군단 은 꽤나 많은 숫자가 남아 있었지만 확실히 승기는 살바토르 길드를 향 해 기울고 있었다.
‘저거 유나 맞아……?’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유나였 다.
유나는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유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강렬 한 화염을 주변에 뿌리며 슈트 군단 을 압도하고 있었다.
“……알았어. 우리를 도와서 같이 싸워줘.”
루시아의 말대로 머지않아 슈트 군 단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판단한 영식은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 주인님!”
루시아는 영식의 말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식을 지 키며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지금 그 녀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고 있던 일 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던 영식은 가슴 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표정을 일그 러뜨렸다.
그런 영식을 내려다보는 루시아에 게서 끔찍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감히 주인님을……
그녀는 공중에서 오만하게 이곳을 내려다보는 박도훈을 바라보며 마력 을 끌어올렸다.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아. 조심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칠 게 발을 굴러 박도훈에게 날아갔다.
-쿠웅!
공중에서 박도훈과 루시아, 서강준 의 싸움이 시작됐다.
“후우?
전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여 유가 생긴 영식은 가슴을 부여잡으 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뜬 채 박도훈을
노려보았다.
‘이클립스 캐논을 사용해야 하나?’
지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중 파괴력만 놓고 본다면 가장 강력 한 힘을 가진 무기는 이클립스 캐논 이었다.
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단한 슈 트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이클 립스 캐논 정도의 무기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리라.
영식의 표정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이클립스 캐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슈트를 벗고 기술을 사용해야 했다.
지금 전투에서 슈트를 벗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잠깐.’
그때, 영식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굳이 슈트를 파괴할 필요는 없잖 아?’
슈트가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박도훈이었다.
박도훈만 죽일 수 있다면 슈트를 파괴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 었다.
‘슈트 안에 있는 박도훈에게 피해 를 줄 수 있는 방법.’
통상적인 공격으로는 슈트 안에 있 는 박도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갑옷과 달리 슈트에는 그 틈으로 살이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식은 자신의 오른팔을 살짝 내려 다보았다.
-철컥.
영식은 루시아와 서강준의 협공을
받아내고 있는 박도훈을 향해 오른 팔을 겨눴다.
팔꿈치에서 강렬한 제트 엔진이 뿜 어져 나왔다.
“로켓펀치.”
-콰아아아앙!
“허……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사된 그의 오 른팔이 박도훈을 노렸다.
박도훈은 사지 중 하나를 발사한다 는 기막히기 짝이 없는 공격에 헛웃 음을 흘렸다.
“끌끌끌! 자신의 사지를 발사하는
공격이라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기……
-퍼어어어억!
“커헉?!”
로켓펀치에 얻어맞은 박도훈은 몸 을 크게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그 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슈트의 바 이저에 묻었다.
대상의 내부에 파동을 흘려보내 공 격하는 ‘파열’ 효과 덕분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박도훈을 바라 보는 영식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로켓펀치라면 가능해.’
유일하게 그에게 제대로 된 ‘피해’ 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영식은 찾아 냈다.
정답은 오른팔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