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90화
무식한 자는 용감하다(4)
-자살할 생각인가.
-무식하기 짝이 없군.
그녀의 미친 행동에 당황한 쌍식은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창세교의 사제들에게 포 위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들을 도발하다니.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 소녀를 지킬 생각이 아니었던가.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군.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채린을 버 리면 힘을 빌려주겠다던 쌍식이 오 히려 그녀를 지킬 생각이 없냐고 힐 난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흥. 뭐야. 고철덩어리 주제에 파괴 되는 건 또 무서운 거야?”
유나는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로 쌍 식에게 물었다. 쌍식은 그녀의 비웃 음에 바로 반론하지 못했다.
사실 그들에게는 생명이라는 개념
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파괴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영웅 라그나의 힘을 보좌하 고 그 힘을 대대로 이어나가야 한다 는 사명이 있었다.
만약 여기서 저 사제들의 손에 파 괴되기라도 했다가는 그 사명을 완 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망 설이게 만들었다.
‘좋아.’
유나는 쌍식이 망설이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너희도 나 말고 라그나의 후예를
새로 뽑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지 않 아? 이런 곳에서 저 미친놈들의 손 에 넘어갈 수는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몹시 불쾌하군.
쌍식은 고작 유나 따위(?)의 계략 에 말려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 는 듯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 했다.
하지만 감정은 둘째치더라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제안을 하나
할게.”
-……들어보지.
“우선 가능한 모든 힘을 빌려줘. 그 다음에 채린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길드원들과 합류한다면 그때 내게 다시 힘을 거둬가도 괜찮아. 그렇게 하면 내가 라그나의 후예에 적합한 사람에게 너희를 넘겨줄게.”
유나의 제안에 쌍식은 침묵을 이어 갔다. 그들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가?
-가능한 모든 힘을 빌려줄 시, 그
대의 몸은 한 줌의 잿더미가 될 수 도 있다.
“상관없어.”
유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 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채린 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과거 튜토리얼 때를 떠올렸 다. 자신을 지키고 오크에게 죽은 친언니를 기억했다.
‘그때 언니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신기한 기분이었다. 불쾌하지도, 두 렵지도 않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을 하는데도 전혀 후회스럽 지 않았다.
그저 채린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 음뿐이었다.
- 좋다.
-그대에게 이용 당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명심해라.
-이 대가는 그대의 목숨으로 치르 게 될 것임을.
“하, 끝까지 중2병이네.”
유나는 피식 웃음을 홀리며 그들에 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을 오래가지 못 했다.
-화르르르륵!
쌍식에서 각각 검은색, 붉은색의 화염이 그녀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두 개의 불꽃은 그녀의 몸 안에서 격렬하게 부딪히며 하나로 섞이기 시작했다.
“으윽?!”
-치이이이이익!
한계를 넘은 열기를 견디지 못한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흘러 나왔다.
몸 안쪽부터 타들어가는 끔찍한 고
통이 그녀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아 O O.”
I 9 ―- ?
유나는 전신에 휘몰아치는 끔직한 고통이 어금니를 있는 힘껏 깨물었다.
- 빠득.
너무 힘을 줬기 때문일까, 어금니 가 박살 나며 피와 함께 섞여 그녀 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견뎌야 해.’
유나는 채린의 몸을 끌어안으며 자 신의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의 격 류를 필사적으로 버텼다.
여기서 자신이 버티지 못한다면 끊
임없이 몰려드는 사제들의 손에 채 린이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실 상부했다.
유나는 전신을 불태우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견디며 단전 안에 뭉 쳐진 힘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인다.’
유나의 눈이 반짝였다.
단전 안에 뭉친 모든 힘이 움직이 는 것은 아니었다. 반이 좀 안 되는 양의 힘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 이는 정도.
하지만 평소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채 꿈틀거리는 것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양이었다.
- 화르르르륵!
“하.”
유나의 전신을 검붉은 화염이 뒤덮 었다. 그녀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 엄청나.’
마치 수십 킬로그램의 추를 벗어던 진 것 같은 해방감.
그녀는 자신의 몸이 깃털이 된 것 같은 착각까지 느꼈다.
‘따듯해……
유나는 어딘가 몽롱한 눈빛으로 자 신의 전신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 을 바라보았다.
아직 전신을 뒤흔들고 있는 끔찍한 고통은 여전했다.
너무 아파서 당장에라도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고통 속에서 도 유나는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있는 불꽃이 따듯하다고 생각했다.
-음……?
-이게 무슨…….
쌍식은 당황스럽다는 목소리를 흘
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유나는 그 들의 힘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불의 축복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쌍식은 당혹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 었다.
“아아?
그런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유 나에게 들리지도 않고 있었다.
유나는 소중한 보물을 쓰다듬듯이 불꽃을 어루만졌다.
검붉은 불꽃이 그녀의 움직임에 호 응하듯 몸을 꿈틀거렸다.
유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 불꽃의 움직임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언니를 보는 것 같아.’
유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 는 불꽃을 보며 어째서인지 자신의 언니를 떠올렸다.
포근하게 전신을 감싸는 그 불꽃에 서는 친근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띠링.
[‘라그나의 불꽃’이 소환자 ‘최유
나’에게 호의를 표합니다.]
[‘불의 축복’을 각성하였습니다.]
[모든 화염 계열 스킬의 위력이 30% 증가합니다. 다룰 수 있는 ‘라 그나의 불꽃’의 양이 증가합니다.]
[‘라그나의 불꽃’이 당신을 주인으 로 인정하였습니다.]
‘ 이건……
유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에 순간적으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 었다.
“죽어라 이교도……!”
유나가 메시지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녀에게 다가온 사제 하나가 손에 쥔 건블레이드를 내려 그었다.
-화르르르륵!
“크아아아악!”
유나의 몸을 둘러싼 검붉은 화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사제 를 불태워 버렸다.
쌍식을 휘둘러도 반쯤밖에 가르지 못했을 정도로 단단했던 슈트가 검 붉은 화염에 집어삼켜져 순식간에 잿더미로 바뀌어버렸다.
‘이거라면……!’
유나의 눈이 반짝였다.
무기를 직접 휘두르지 않고도 이 정도 화력을 뿜어낼 수 있다면 슈트 군단의 포위망을 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일식을 다시 검집에 넣은 후 두 팔로 품에 있는 채린을 꼬옥 끌어안았다.
“ 언니.”
“조금만 기다려. 곧 한성 씨가 있 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
유나는 전신에 검붉은 화염을 두른 채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슈트 군단 을 바라보았다.
길드원들과의 거리가 너무 떨어졌 는지 육안으로는 길드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 괜찮아.’
그녀는 살짝 눈을 감고 정신을 집 중했다.
다행이도 지금 길드원들 중에서는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찾기 쉬운’ 존재가 있었다.
‘저기다!’
유나는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 다.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끊 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찾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존재, 루시 아가 있는 곳이었다.
루시아의 마력이 워낙 상식 밖의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녀가 의도 적으로 숨기려 하지 않는 이상 감지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몸이 좀 흔들려도 참아!”
유나는 품에 안은 채린에게 외치며 발을 박찼다.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 를 따라 검붉은 화염의 불길이 만들 어 졌다.
“막아라!”
사제들은 8영웅의 무기를 들고 있
는 유나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들 었다.
유나는 잠시 몸을 웅크리더니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가속도를 붙였다.
‘총탄만 조심하면 돼!’
이상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총탄 이외에 그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은 없을 것이다.
유나는 온몸에 화염을 두른 채로 슈트 군단과 격돌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화염이 사방으로 뻗어나갔 다. 끔찍한 열기가 주변 대지를 불 태웠다. 불길에 휩싸인 사제들이 사 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윽..”
유나는 짧은 침음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전력을 다해 사제들과 충돌했지만 그들의 단단한 포위망을 뚫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길드원 전체를 대상으로 좁혀진 포 위망이 아니라 그녀 한 명을 대상으 로 좁혀진 포위망이니 그 견고함이 차원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유나는 순식간에 다시 그녀를 조여 오는 포위망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 포위망을 뚫어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그런 유나의 모습에 쌍식은 한심하 다는 듯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뭐하고 있냐니?’
-넌 불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왜 그 힘을 무식하게 사 용하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권능을 사용하라는 말이다.
-불의 축복이 네게 내려준 힘을 사용하라는 의미다.
≪..
당최 알 수 없는 그들의 말에 유나 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쌍식의 깊은 탄성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대체 어떻게 불의 축복을 받았는 지 모르겠군.
-설마 단순하게 불을 뿜어내는 것 이 라그나의 불꽃을 사용하는 방법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정말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로군.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 나 의심스러울 정도야.
“다, 닥쳐 이 고철덩어리들아!”
유나는 때 아닌 폭격(?)에 얼굴을 붉게 물든 채 소리쳤다. 쌍식은 그 런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이 었다.
-눈을 감아라.
-정신을 집중해라.
-불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 지.
그녀는 쌍식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그들의 말에 따라 눈을 감았다.
“아……
그녀의 머릿속에 영웅 라그나의 기 술들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루시아의 경이로운 기술을 봤을 때와 같은 전율이 그녀의 전신 에 퍼져나갔다.
-불꽃을 다루는 방법은 전해주었다.
-이제부터는 네 역량에 달렸다.
-불이 향하는 길을 따라 몸을 움 직여라.
“거참 말도 참 많네, 이 고철들.”
유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무기를 들어야 사용할 수 있는 기
술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 무기가 필요 없는 기술도 있었다.
-화르르르르륵!
그녀의 몸 주변에서 퍼져나간 검붉 은 화염이 장막처럼 내려앉았다.
유나는 쌍식이 말한 대로 ‘불이 향 하는 대로’ 마력을 움직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기술의 이름이 저 절로 떠올랐다.
“일몰(日 沒)
나지막한 스킬명을 입에 담은 순 간, 하늘이 검붉은 화염에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