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88화
무식한 자는 용감하다(2)
-콰아아앙!
“길수 씨! 철태 씨! 뒤로 빠지면서 싸워주세요! 포위망을 뚫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티리아는 주변을 살피며 소리쳤다.
‘숫자가 너무 많아.’
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둘러 싼 슈트 군단을 바라보았다.
저 ‘슈트’라는 물건이 얼마나 강력 한지는 영식을 통해 질리도록 봐왔 다.
물론, 그들이 입고 있는 슈트가 영 식의 것처럼 강력하지는 않겠지만 수백이라는 숫자만으로 그러한 단점 은 이미 상쇄하고도 남았다.
‘영식 씨가 총탄을 조심하라고 말 씀하셨으니까…… 그녀도 영식과 벌써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지낸 만큼 총이라는 것 이 어떤 물건인지 알고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금속을 음속이 넘는 속도로 쏘아낼 수 있는 무기.
그것을 이렇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맞는다면 그 결과는 굳 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우선 포위망부터 뚫어야 해.’
티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루시아 에게 고개를 돌렸다.
“루시아 씨, 선두를 부탁해요.”
지금 전력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있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바 로 루시아였다.
“네. 알겠어요.”
평소 영식을 놓고 티리아와 마찰이 잦았던 루시아였지만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그런 사소한 감정을 내세 우지는 않았다.
루시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저쪽으로 가죠.”
그녀는 그나마 슈트 군단의 숫자가 적은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은 동쪽.
영식과 서강준, 박도훈이 싸우고 있는 장소와 살짝 떨어진 방향이었 다.
그녀의 말에 길드원들은 긴장된 표 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_쿵!
루시아는 거칠게 발을 구르며 앞으 로 쏘아졌다. 그녀가 쏘아진 길을 따라 보랏빛 잔상이 남았다.
“피오레 디 리베리에!”
낭랑한 외침과 함께 루시아의 몸 주위에 수십 개의 검영(劍影)이 떠 올라 슈트 군단을 향해 쏘아졌다.
“신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걸어 라. 낙원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살바토르 길드를 둘러싸고 있던 사 제들이 동시에 기도문을 외웠다.
“발검!”
직위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 몇몇 사제들이 명령을 하달했다.
-촤앙!
수백의 슈트 군단은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검극에 손가락만 한 총구가 만들어 져 있는 건블레이드였다.
무기를 뽑아든 그들은 보랏빛 검영 을 향해 건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까앙! 쿵! 콰앙!
아무리 슈트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 나 루시아의 공격을 완벽히 막을 수 는 없었다.
그녀의 검영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 한 몇몇 사제들이 바닥으로 추락했 다.
“신의 인도를 따라!”
루시아의 공격에 그들이 주춤한 것 도 잠시.
사제들은 광기에 찬 기도문을 입에 담으며 살바토르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부스트를 사용한 슈트 군단이 그들 을 둘러싼 채 포위망을 좁혀 왔다.
건블레이드의 검극이 그들을 향했다.
“모두 저 검 끝에 조심하세요!”
“알겠네!”
길수는 광휘의 방패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타앙!
그와 동시에 총성 한 발이 울려 퍼졌다.
길수는 다급한 목소리로 스킬을 사 용했다.
“광명!”
그의 앞에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여섯 겹의 방패가 만들어졌다.
건블레이드에서 쏘아진 총탄이 광 명으로 만들어진 방패에 닿았다.
-카가가가강!
“허업……
영식의 경고대로 사제들이 쏘아낸 총탄은 순식간에 다섯 겹의 방패를 박살 냈다.
길수는 방패에 마력을 집중하여 강 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티잉!
“허억, 허억!”
간신히 총탄을 튕겨내는 것에 성공 한 길수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 을……!’
길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작 한 발의 총탄을 막는 것만으 로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였다.
이런 총탄이 수십, 수백 개가 동시 에 쏘아진다면 사실상 막는 건 불가 능했다.
“아도니스 디 리베리에!”
-콰아아아앙!
선두에 선 루시아의 몸에서 거대한
보랏빛 기운이 폭발했다.
라이트 세이버에서 뿜어져 나온 검 기가 슈트 군단을 갈랐다.
규격 외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공격으로 포위망에 구멍이 뚫리며 작은 틈이 만들어졌다.
“모두 포위망 밖으로 나가요!”
루시아에 이어 티리아의 공격이 이 어 졌다.
새하얀 뇌전이 포위망의 구멍을 더 욱 크게 벌렸다. 살바토르 길드원들 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포위망을 돌파했다.
“바로 진형을 다시 세우세요! 조금
이라도 멈추면 다시 포위당합니다!”
“이익! 이것들 뭐 이렇게 단단한 거야?!”
유나는 눈앞에 있는 사제 하나를 쌍식으로 베어내며 답답하다는 목소 리로 소리쳤다.
생각대로라면 한 번의 검격으로 깔 끔하게 두 동강이 나야 하는데 반도 채 베어내지 못하고 쌍식이 막혀 버 렸다.
사람의 몸을 두 동강을 내든 반만 베든 죽는 것은 같지만 문제는 그 다음 공격이었다.
깔끔하게 베어내야 자연스럽게 다
음 공격으로 이어가는 것이 가능한 데 반쯤 베어내다가 멈춰버리니 계 속해서 공격의 흐름이 끊어지고 있 었다.
‘이것들이 진짜..!’
유나는 끊임없이 달려드는 사제들 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쌍식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화염 이 그녀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블레이즈 차지!”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그녀의 몸이 슈트 군단의 벽을 무식하게 뚫어버 렸다.
?콰아앙!
화염의 폭풍과 함께 끈질기게 달라 붙던 슈트 군단이 거칠게 튕겨져 나 갔다.
스킬을 사용해 한 번 시원하게 그 들을 밀어낸 유나는 후련하다는 미 소를 지었다.
“휴우. 이제 좀 여유가……
-타앙!
짧은 총성과 함께 유나가 있던 자 리에 에메랄드빛 총탄이 틀어박혔 다.
유나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 아슬 아슬하게 총탄을 피해냈다.
“허억, 허억...”
유나는 아찔한 상황 파악에 가쁜 숨을 토해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총탄이 머 리를 꿰뚫었을 상황이었다.
“?후우.”
그녀는 일식과 월식을 늘어뜨리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머리가 조금 은 맑아지며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 어왔다.
주변 상황을 확인한 유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어내는 것에 는 성공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 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 동력이다.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소수 대 다수 의 상황이 아닌 소수 대 소수의 싸 움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다.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기동력이 없 다면 다수의 병력에 둘러싸여 제 힘 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예를 들면 보병과 기마대의 싸움.
말을 타고 다니며 보병의 포위를 뚫어내고 소규모 교전을 유도하여 압도적인 숫자 차이를 극복하는 모 습이 이러했다.
문제는 이런 기동력의 차이를 보여 주기에는 슈트 군단의 기동력이 너 무 좋다는 점이었다.
기동력에서 차이를 낼 수 없으니 포위망을 뚫어냈다고는 하지만 별로 의미가 없었다.
빠른 속도로 밀고 들어오는 슈트 군단에 의해서 강제적인 난전 구도 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포위망을 만들려고 하는
슈트 군단과 그 포위망을 뚫어내려 고 하는 살바토르 길드의 전투가 이 어 졌다.
“천상의 심판!”
-파지지지직!
티리아의 외침과 함께 새하얀 뇌전 의 폭풍이 슈트 군단에 내리꽂혔다.
감청색 슈트가 까맣게 타들어가며 연기를 뿜어냈다.
그녀는 루시아를 돌아보며 외쳤다.
“루시아 씨! 저쪽을 뚫어줘요!”
“예!”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티리아
가 공격한 곳으로 발을 박찼다.
-타앙! 타앙! 탕!
그녀를 노리고 건블레이드의 총탄 이 쏘아졌다. 루시아는 예술에 가까 운 몸놀림으로 수십 발에 가까운 총 탄을 피해냈다.
다행히 연사가 가능한 공격은 아니 었는지 한 차례 공격이 쏟아지고 난 후 슈트 군단에 큰 빈틈이 생겼다.
루시아는 마치 발도 자세를 취하듯 허리를 깊게 숙이고 라이트세이버를 허리춤에 가져다 대었다.
농밀한 마력의 폭풍이 그녀를 중심 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쩌적!
“피해라!”
사제들도 이번 공격이 심상치 않다 는 것을 눈치챘는지 다급한 목소리 로 외쳤다.
사제들은 부스트의 출력을 올리며 그녀의 정면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데니스 디 리베리에.”
그들이 완전히 도망치기 전에, 루 시아의 검술이 완성됐다.
?쿵!
그녀는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라이 트세이버를 횡으로 휘둘렀다.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휘 둘러진 검격.
그 검의 궤적을 따라 마치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드래곤의 브레스와도 같이 극도로 압축된 보랏빛 마력이 사제들을 향 해 쏘아졌다.
-촤악!
“허?…”
루시아의 공격을 본 유나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위력.
SS급 무기인 쌍식조차 반 정도밖 에 자르지 못했던 슈트를 루시아의 검기는 마치 두부를 가르듯 부드럽 게 갈라버렸다.
그것도 하나만 가르고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휘두른 검의 궤적에 있는 모든 슈트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나는 소름 돋는다는 표정으로 루 시아를 바라보았다. 같은 사람이 맞 는지 의심 될 정도의 경지였다.
마치 처음 에르노어 대륙에 발을 디뎠을 때 고레벨 소환자를 본 둣한 감각.
“으, 아아.”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지고 있 는 사제 하나가 루시아를 향해 건블 레이드를 내밀었다.
-타앙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어 검 자루의 방아쇠를 당겼다.
에메랄드빛 총탄이 루시아를 노리 고 쏘아졌다.
“흥.”
루시아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고 개를 비틀어 총탄을 피했다.
“모두 이동하세요!”
티리아는 루시아의 검격이 지나간 자리로 발을 옮기며 소리쳤다.
루시아가 만들어낸 길을 따라 길드 원들이 빠져나갔다.
그때 였다.
“어……?”
티리아의 지휘에 따라 이동하려고 했던 유나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목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시아가 피한 총탄이 유나를 향했다.
의도한 공격이 아닌, 어디까지나 우연의 결과.
총탄이 자신을 향할 것이라 생각지 못한 유나는 그 공격에 미처 대처하 지 못했다.
“유나 언니!”
채린이의 비명소리가 그녀의 귓가 에 들렸다.
그녀의 몸이 부드러운 무언가에 감 싸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 에, 총탄이 살을 꿰뚫는 섬뜩한 소 리가 울려 퍼졌다.
“채…… 린아?”
유나는 자신을 끌어안은 채린이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총 탄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불 구하고 어떠한 고통도 없었다.
"쿵
채린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몸에는 유나를 향했던 총탄 이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