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87화
무식한 자는 용감하다(1)
“주인님께서 내게 무슨 짓을 했다 니…… 그게 무슨 말이야?”
루시아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박도훈을 바라보았다. 숨 막힐 정도 로 짙은 살기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 져 나왔다.
“끌끌. 글쎄? 과연 무슨 짓을 했을
까?”
박도훈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 새끼가……!”
루시아는 발끈한 표정으로 라이트 세이버를 뽑아 들었다.
당장에라도 박도훈을 향해 달려 나 가려고 하는 그너를 영식이 막아섰 다.
“진정해, 루시아.”
“……네. 주인님.”
전에 영식에게 너무 감정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그녀는 살짝 풀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식은 깊게 가라앉는 눈빛으로 박 도훈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내 과거에 대해서 네가 어떻게 알 고 있지?”
그 자신조차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박도훈 이 알고 있다는 것은 이상했다.
“글쎄, 내가 왜 대답해 줘야 하지?”
박도훈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 며 되물었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대답해 줄 이유는 없 지.”
박도훈은 그의 친구도, 동료도 아 니었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답을 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면 되겠군.”
-파지지지직!
블레이드의 검날에 플라즈마가 맺 히기 시작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주변에 뿌려졌다.
“루시아, 너는 길드원들을 데리고 슈트 군단을 상대해 줘. 저놈은 나 랑 서강준 씨가 맡을게.”
루시아까지 박도훈과 싸운다면 훨씬 더 편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백에 달하는 슈트 군단을 상대할 전력이 부족해 졌다.
루시아와 영식, 서강준이 빠진 길 드원들만으로 저 슈트 군단을 상대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 하지만……
“알았지?”
영식은 그녀의 반론을 잘라냈다. 루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 알겠습니다.”
루시아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고개 를 끄덕였다.
영식은 주변 길드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저놈들이 사용하는 총탄을 조심하세요. 아마 어지간한 방어 스 킬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서강준 씨.”
“……말하게.”
“저 에메랄드빛 슈트. 저기에 닿기 만 해도 마력이 흩어질 겁니다. 범 위 공격 말고 한 점에 마력을 집중 해서 공격해야 해요.”
“마력이 흩어진다고?”
“예. 에너지 분해라는 기술이 들어 가 있는 슈트입니다. 방어도, 공격도 모두 만만치 않을 겁니다.”
“ 흐음?
서강준은 왜 영식이 그런 걸 모두 알고 있는지 물아보고 싶었지만 일 단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평화롭게 서로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루시아, 이브랑 락테온을 꺼내줘. 다른 분을 모두 인벤토리에 있는 안 드로이드들을 꺼내 주세요.”
서강준에게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숨겨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럴 때가 아니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루시아는 정중한 목소리로 답하며 인벤토리 안에 이브와 그의 주민들, 그리고 락테온을 꺼냈다.
다른 길드원들도 각자의 인벤토리 에서 A급 안드로이드들을 꺼냈다.
“몬스터……?”
서강준은 루시아의 인벤토리에서 나오는 이브와 그 주민들을 바라보 고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브, 락테온. 저 슈트 군단들을 상대해 줘.”
[……위급한 상황이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알림.]
인벤토리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슈 트 군단에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였 지만 이내 이브와 락테온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벤토리의 공간이 무한대가 아니 었기 때문에 C급, B급 안드로이드 들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 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럼……
영식은 박도훈을 향해 몸을 돌렸 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분 나 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시작하죠.”
-철컥.
영식은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인벤 토리에서 슈트를 꺼내어 입었다.
슈트 없이는 저 괴물 같은 성능의 슈트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 다.
?치이이이익!
[다용도 기능성 전투 슈트 락테온 2식. 가동합니다.]
검은색 슈트의 틈새에서 새하얀 증 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락테온의 코어를 획득한 덕분에 80%까지 출력이 상승한 락테온 2
식은 영식에게 무시무시할 정도의 힘을 가져다주었다.
“준비는 끝났나?”
박도훈은 슈트의 바이저를 내리며 비웃듯이 그에게 물었다.
어지간히도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래, 기다려줘서 눈물이 날 것 같네.”
영식은 그 자신감의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일단 저 슈트의 성능을 확인해야 해.’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슈트.
그 슈트가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공격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에너지 블라스트.’
-우우우우웅!
영식의 오른 손바닥에 검은색 에너 지가 뭉쳤다.
차징은 20프로 정도.
영식은 에너지 블라스트를 난사하 듯이 쏘아 냈다.
-슈우우욱...
박도훈의 슈트에 닿은 에너지 블라 스트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영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무리 차징이 많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에너지 블라스트가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은 허무 하게까지 느껴졌다.
“간지럽지도 않군.”
박도훈은 그의 공격을 비아냥거리 며 발을 박찼다.
그의 등 뒤에서 강렬한 부스트가 뿜어져 나오며 순식간에 음속을 뛰 어 넘는 속도로 그에게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박도훈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땅이 갈라졌다. 전신에 마력을 끌어 올린 서강준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와이어 실드.”
서강준의 양 손목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색 와이어가 허공에 방패 모양 으로 뭉쳤다.
올드 원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가지 고 있는 그의 클래스는 현의 군주.
수십, 수백 가닥의 와이어를 자유 자재로 다루며 근, 원거리 모두를 공격할 수 있는 히든 클래스였다.
- 퍼석.
“무슨?!”
“끌끌끌! 고작 이 정도 밖에 안 되 는 거냐? 응? 올드 원이라는 이름 이 울겠군!”
박도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 는 와이어 방패를 가볍게 뚫어버리 며 소리쳤다.
서강준이 만들어 낸 와이어 실드는 그의 슈트에 닿자마자 허공에 흩어 지듯 사라져 버렸다.
‘괴물 같은 슈트!’
서강준은 영식이 왜 그렇게 초조함 에 떨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성능의 슈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자신이라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강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분명의 슈트의 성능은 무시무시했 다. 속도는 음속을 가볍게 뛰어넘었 으며 그 방어력은 어처구니없을 정 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 슈트를 다루는 박 도훈이라는 자는 그다지 전투에 능 하지 않은지 움직임에 빈틈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12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가 장 척박하다고 알려진 서부에서 살 아남은 그의 전투 센스는 그런 박도 훈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얼굴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박도훈 의 주먹을 고개를 살짝 비틀어서 피 한 서강준은 자신의 왼발에 마력을 집중했다.
수백 가닥의 와이어가 그의 왼발에 얽혀들기 시작했다.
“스톰 와이어.”
-그그그그그끙!
나지막한 스킬명과 함께 푸른빛 와 이어가 굉음을 뿜어냈다.
그의 왼발 주위로 강렬한 소용돌이 가 만들어졌다.
서강준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많
은 마력을 왼발에 집중했다.
저 에메랄드빛 슈트의 방어막을 넘 어 박도훈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 는 필요 이상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 으면 안 됐다.
-쿠우우웅!
서강준의 왼발이 박도훈의 배를 거 칠게 후려쳤다.
그의 발 주위에 뭉쳐 있던 와어이 들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무시무시 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 크으?
아무리 에너지 분해라는 사지적인 기술이 들어간 슈트라고 하더라도 이번 공격은 완전히 방어할 수 없었 는지 박도훈은 짧은 침음을 삼키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드디어 슈트의 방어를 뚫고 공격에 성공했지만 서강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마력이 흩어졌어.’
그가 생각한 대로라면 박도훈은 침 음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피를 토해 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슈트에 닿는 순간 마력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원 하는 만큼의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쇄기.”
서강준의 공격에 이어 뾰족하게 형 태를 바꾼 에너지 블라스트가 박도 훈에게 적중했다.
-콰아아앙!
“윽……
박도훈은 전신을 울리는 충격에 짧 은 침음을 삼켰다. 그의 모습을 본 영식의 눈이 반짝였다.
‘80퍼센트의 출력이면 피해를 입힐 수 있어.’
물론, 그 피해라는 것이 ‘몸이 흔 들리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아예 공 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희 망적인 일이었다.
“이것들이……
박도훈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중 얼거리며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의 양팔의 주먹이 안으로 들어가 며 여섯 개의 총구가 나타났다.
“머신 건.”
-투두두두두두두!
총탄의 비가 영식과 서강준을 덮쳤 다.
영식은 바이저의 해석 기능을 사용 해 지금 날아오고 있는 총탄의 재질 을 확인했다.
‘오리하르콘 총탄이 아니야.’
머신 건에서 쏟아지고 있는 수백 발의 총탄이 모두 오리하르콘 총탄 이었다면 무조건 피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겠지만 다행이 그 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긴, 저 총탄이 모두 오리하르콘 인 건 말이 안 되지.’
영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플라즈마 배리어를 펼쳤다.
-티디디디딩!
박도훈이 쏘아낸 탄환이 그의 배리 어에 막혀 튕겨져 나갔다.
“하앗!”
영식이 배리어를 펼치는 틈을 타 순식간에 접근한 박도훈은 손등에서 뽑아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슈우우우욱.
-촤악!
“크윽!”
플라즈마 배리어를 가볍게 가르고 휘둘러진 박도훈의 블레이드가 슈트 의 가슴을 길게 갈랐다.
?치익.
-슈트의 파손율 8.83%. 자동 수리 를 위해서는 전투를 중단하여야 합 니다.
“전탄 사격!”
영식은 귓가에 들리는 경고음을 무 시하며 박도훈의 머리를 향해 샷건 을 갈겼다. 수백 발의 총탄이 그의 바이저를 두들겼다.
-티디디디딩!
“흥, 이딴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냐!”
박도훈은 슈트의 방어력을 뚫지 못 하고 튕겨져 나가는 영식의 공격들 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영식은 부스트를 사용해 몸을 뒤로 빼며 그의 외침에 답했다.
처음부터 삿건의 총탄이 그의 슈트 를 뚫고 피해를 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시야를 가리는 것은 가능 하지.’
수백 발의 총탄이 바이저에 튕겨져 나가며 튀어 오르는 자그마한 불꽃 들. 그것만으로 박도훈의 시야를 가 리는 것은 충분했다.
‘그리고.’
영식은 박도훈의 뒤를 향해 질주하 는 서강준을 바라보았다.
서강준은 와이어를 사용해 공중까 지 날아 오른 후 그 추진력을 받으 며 오른 주먹을 들어올렸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와이어가 그의 오른 주먹에 뭉쳐 있었다.
-콰아아앙!
“크윽!”
등에서 일격을 허용한 박도훈은 침 음을 삼키며 몸을 숙였다.
평야 전체가 울리는 굉음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박도훈은 별다른 데미 지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소용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냐, 이 머저리들아!”
박도훈은 슈트의 무시무시한 방어 력에 취한 채 폭소를 빠뜨렸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슈트 자체의 파손율은 0%.
그가 피해를 입은 거라고 해봐야 몸이 거칠게 흔들리는 정도의 피해 에 불과했다.
‘너무 단단해.’
상식을 초월하는 슈트의 방어력에 영식과 서강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