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86화
창세교 (3)
“박…… 도훈?”
영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에메랄드 빛 슈트를 입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신경을 긁어내리는 것 같은 카랑카 랑한 목소리. 이런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는 그의 기억 속에서 한 명 밖에 없었다.
‘왜 박도훈이 여기에?’
영식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골드런 길드와의 사건이 있었던 뒤 로 영식은 박도훈을 찾기 위해 지속 적으로 수색을 진행했다.
하지만 뒤늦게 찾은 박도훈의 허름 한 아지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어디로 향했는지 단서를 찾아 보려고 했지만 평소에 애용했다던 낡은 흔들의자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추적을 계속할 수 는 없었다.
그 뒤로는 한준만에게 박도훈에 대
한 추가적인 조사를 전적으로 맡겼 다. 한준만 또한 박도훈에게 복수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동부에서도, 남부에서도 박 도훈에 대한 정보는 들리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에 메랄드빛 슈트를 입은 존재를 바라 보았다.
그렇게 대규모의 조사를 했음에도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죽 었거나 다시 세력을 만드는 것에 실 패했다고만 생각했었다.
“기억하고 있어줘서 영광이야.”
슈트의 바이저가 올라갔다. 퀭한 얼굴에 짙은 다크써클.
영식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박도훈 의 얼굴이었다.
“네가 왜 여기에……
영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슈트 군단의 선두에 서 있는 것도 그렇고 다른 슈트와는 다른 슈트를 입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가 이 슈 트 군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예 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강력한 랭커도 아닌, 단순히 돈에 대한 욕망에 가득 찬 늙은이가 무슨 수로 영식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 을 뛰어넘은 슈트 군단을 지휘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나 뜬금없는 그의 등장에 영식 은 마치 악몽을 꾸고 있다는 생각마 저 들 정도였다.
“아아, 아주 좋은 기회가 있었지.”
박도훈은 이죽거리는 미소를 입가 에 지으며 영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말한 ‘좋은 기회’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누구에게 그 슈트를 받은 거지?”
박도훈이 갑자기 영식과 같은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여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슈트를 만들어 낼 정도의 기 술력을 쌓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슈트는, 다른 누군 가에게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다른 누군가, 라는 건……
영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서강준
의 말을 생각했을 때 그 ‘다른 누군 가’라는 것은 창조주일 가능성이 컸 다.
“끌끌. 글쎄. 과연 누구에게 이 슈 트를 받은 걸까.”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 을 들어올렸다. 그는 약에 취한 듯 멍한 눈빛으로 에메랄드빛으로 빛나 는 자신의 슈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영롱한 에메랄드빛.
영식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빛이었다. 영식은 주머니 속에 있는 총탄을 꺼내들었다. 그의 표정 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에너지 분해’라는 규격 외의 기술 이 들어가 있는 총탄.
그것과 같은 빛을 뿌리고 있는 슈 트. 영식의 머릿속에 끔찍한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 총탄과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 진 슈트인 건가?’
자신이 만든 플라즈마 베리어를 마 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뚫어버렸 던 총탄.
그것과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슈 트라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힘을 가 지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영식은 손에 쥔 총탄은 거칠게 움 켜 쥐었다.
에너지 분해 능력은 그 자체만으로 최강의 창이자, 방패였다.
저 슈트를 입는 것만으로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을 것이고 역으 로 박도훈의 공격은 대부분의 방어 스킬을 뚫고 위협적으로 다가올 것 이 분명했다.
‘최악이야.’
영식은 길드원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백의 슈트 군단을 바라보았다.
모든 슈트 군단이 저 에메랄드빛
슈트를 입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에 영식이 상대한 적처럼 에너지 분해 기술이 들어간 총탄을 사용한 무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 었다.
그것은 이 수백에 달하는 슈트 군 단이 모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의 미와 동일했다.
영식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지금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법 을 생각했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성이 앞으로 걸어 나가며 짙은 분노가 담 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창세교를 만든 놈이냐.”
“그래, 내가 직접 만들었지.”
박도훈은 낄낄 웃음을 흘리며 고개 를 끄덕였다.
그의 느긋한 대답에 한성은 주먹을 움켜쥔 채 분노에 몸을 떨었다.
바바라와 소년의 일이 그의 머릿속 을 스쳐 지나갔다.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던 집회의 풍경이 낙인처럼 머 릿속에 새겨졌다.
“왜, 왜 그런 정신 나간 종교를 만 든 거지?”
“응? 그건 당연히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박도훈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 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교는 가장 ‘이용하기 좋은’ 수 단 중 하나거든. 그렇기 때문에 창 세교를 만든 것뿐이야.”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용하기 좋은…… 수단이라고?”
“그래. 편리하고, 효율적인 수단이 지.”
“그것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 람들을 지옥에 빠뜨린 거냐.”
한성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거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전신이 분노 로 인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옥에 빠뜨렸다니?”
한성의 말에 박도훈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 다.
“난 그들을 지옥에 빠뜨린 기억은 없다.”
“개소리! 그 정신 나간 집회에 나 간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알고 있지.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문 제라는 거지?”
“무슨 문제라니……
한성은 태연하기 짝이 없는 박도훈 의 태도에 어지러움까지 느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아무런 잘 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 았다.
“난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야.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게 해줬을 뿐이야.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응?”
박도훈은 짙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 며 영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라면 이해겠지? 너는 나와 같잖
아. 믿고 싶은 것을 믿게 해주는 것. 그건 네가 골드런을 상대로 사 용했던 방법 아닌가?”
영식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와 박도훈이 비슷한 부류의 인간 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믿고 싶은 것을 믿게 해주는 것.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주는 것. 그것은 영식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루안 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헨드 릭이라는 무능한 왕이 루안의 반역 으로 죽기를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는 하나도 없는 헛소문 을 믿었다.
골드런 길드를 먹어치웠을 때도 그 랬다. 그들은 이용해먹기 좋은 호구 를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영식의 계략에 쉽게 말려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눈앞 에 주어졌을 때, 상상 이상으로 단 순해졌다.
애초에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대한 것은 본능이었으니까.
“열 길 물속은 몰라도 한 길 사람 의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 그건 잘못된 말이야. 사람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 이상으로 단순하고, 직관적 이지. 그렇지 않나, 영식?”
이번에도 영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 정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속 어딘가에 그 래라고 박도훈의 말에 동의하는 자 신이 있었다.
“영식 씨는 달라요!”
박도훈의 말에 반론한 것은 영식이 아닌 티리아였다.
“영식 씨는 당신 같이 아무 죄책감 도 없이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 지 않아요! 상냥하고, 따듯한 사람 이란 말이에요!”
그녀는 여섯 장의 날개를 펼친 채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웅..?”
그녀의 외침을 들은 박도훈은 정말 로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크, 크크크크! 아하하하하하!”
박도훈의 입가를 비집고 광소가 터 져 나왔다. 그는 배를 움켜잡은 채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폭소를 빠뜨 렸다.
“하하하하하! 그가 상냥하고 따듯 한 사람이라고?”
아주 재미있는 개그를 들었다는 듯 이 박도훈은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광기에 찬 그의 눈빛이 티리아를 향했다.
“너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 는군.”
“……뭐라고요?”
그녀는 발끈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 켜쥐었다. 박도훈이 영식을 만난 시 간은 그녀에 비하면 찰나라고 해도 좋을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모른 다니.
건방지고, 오만한 말이었다.
“적어도 당신보다는 영식 씨에 대 해서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녀는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박도훈은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으 며 말을 이었다.
“과연 그럴까? 네가 나보다 더 그 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물론이죠.”
“하하.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저
것’을 사람이라고 표현하나?”
“그게 무슨……
“사람은 손등에서 칼이 튀어나오지 않아. 등에서 개틀링 건이 나오지도, 미사일이 발사되지도 않지. 하물며 오른팔을 로켓처럼 쏘아 보내는 건 상상조차 못 하겠지.”
박도훈은 마치 콧노래를 흥얼거리 듯이 말을 이었다.
“저 피부 너머에 있는 것은 뭐지? 근육인가? 혈관인가? 뼈인가? 아니, 아니지. 그의 피부 너머에 있는 건 딱딱한 금속이지.”
티리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
다. 영식의 몸이 혈육이 아닌 기계 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은 그 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박도훈이 눈이 영식을 향했다.
“저게 인간이라는 근거가 대체 어 디에 있지?”
“적어도 너처럼 쓰레기 같은 인간 보다야 훨씬 더 인간적이시지.”
박도훈의 말에 루시아는 흉포한 기 운을 뿜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박도 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 네가 바로 그 8영웅 중 하
나라는 루시아인가.”
그녀는 자신의 정체까지 알고 있는 박도훈을 바라보며 살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도훈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너도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 고 있군. 적어도 너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텐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루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 라보았다.
“과거 그가 자네에게 무슨 짓을 했
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박도훈은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