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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85화 (185/284)

레벨업 머신 185화

창세교 (2)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는 눈.

증오와 광기에 가득 찬 목소리.

사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목소리 에 영식은 전신을 저릿하게 울리는 불길함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숨통을 조이듯, 천천히 전신에 퍼 져 나가는 불길함.

지난번 카르가스가 접근할 때 느꼈 던 불길함과는 격을 달리 할 정도로 농밀하고, 끈적한 불길함이었다.

‘위험해.’

영식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무엇이 위험한지, 어떤 위험이 다 가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 는 것은 없었다.

그저 불길하다는 감각만 들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대로 있으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다.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그의 머릿속 을 가득 채웠다.

-치익.

고장난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법한 불쾌한 잡음.

순간적으로 영식의 시야가 일그러 졌다.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온화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청년의 모습을 본 영식은 머리 를 움켜쥐었다. 분명 그의 기억 속 에 남아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뭐야 대체.’

영식은 속이 울렁거리는 감각을 느 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공포에 질린 듯 가늘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쁨, 슬픔, 증오, 애정…… 상치될 수 없는 감정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켰다.

온화한 이상을 가진 청년이 영식에 게 천천히 몸을 돌렸다.

씨익.

청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딘가 낯익은 청년의 모습이 허공 에 녹아들 듯 사라지며 다시 시야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하아……

영식은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시야가 정상으로 되돌아 온 후 남 은 것은 끔찍할 정도의 불길함뿐이 었다.

“찾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 야, 저 자식?”

“글쎄요. 뭔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나와 한성은 살짝 표정을 일그러 뜨리며 반쯤 목이 비틀어져 있는 사 제를 바라보았다.

정창호가 죽었을 때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식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길 드원에게 다가갔다.

“영식 씨?”

티리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 식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비틀거리 고 있는 영식을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녀의 손이 영식에게 닿기 전에, 영식이 입을 열었다.

“……도망쳐야 해.”

영식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 이 흘러나왔다.

그가 의식해서 내뱉은 말이 아닌,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응? 도망치다니?”

유나는 이제까지 거의 본 적이 없 는 영식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식은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 리며 길드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빨리 제국으로 이동해야 합 니다!”

“주인님? 왜 그렇게 갑자기……

“빨리!”

영식은 다소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평소 그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 든 초조함에 찬 표정.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길드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영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을 길드원들은 직감했다.

“하지만 마차가……

길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 거렸다.

서강준의 진각에 무너진 것은 여관 만이 아니었다.

여관이 무너지며 그 옆에 보관 중 이던 마차까지 함께 박살 난 것이다.

“제조.”

영식은 인벤토리 안에 있는 재료를 닥치는 대로 꺼내어 다급하게 제조 스킬을 사용했다.

푸른 빛무리와 함께 소환자에게는 아주 익숙한 물건, 자동차가 만들어 졌다.

“빨리 타세요!”

영식이 순식간에 만들어 낸 자동차 의 숫자는 총 셋.

그 동안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자동차 를 만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자네, 이건……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차에 타세요.”

영식이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을 처음 본 서강준은 순간적으로 당황 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영식 의 말에 표정을 굳히며 차에 탔다.

영식 일행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차에 탑승했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영식과 길수, 철태. 영식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 며 철태와 길수에게 소리쳤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겠습 니다!”

“알겠네!”

두 사람에게 소리친 영식은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그가 만들어 낸 자동차는 과거 지 구에서 몇 억을 호가하는 스포츠카 보다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 는 자동차였다.

굉음에 가까운 엔진소리와 함께 자 동차가 쏘아지듯 앞으로 출발했다. 제국으로 이어지는 평원에 먼지바람 이 일어나며 자동차가 질주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주인님? 주변 에 딱히 위험이 느껴지는 존재는 없 는 것 같은데…… 영식이 운전하고 있는 차의 조수석 에 앉은 루시아는 너무나 갑작스러 운 영식의 행동들이 쉽게 이해가지 않는 다는 듯이 물었다.

길드 내에서 그녀보다 위기를 감지 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 번 카르가스의 접근 때만 하 더라도 영식보다 루시아가 훨씬 더 빨리 위기를 감지하지 않았던가.

예외가 있다면 밤비 정도인데 그도 루시아에 비해서 특별할 정도로 위기 감지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영식은 루시아의 질문에 바로 대답

하지 못했다.

지금 그?가 이렇게까지 초조해 하고 있는 이유.

그것은 영식 본인조차 정확한 이유 를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나도 정확하게는 설명할 수 없어.”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 했다.

“하지만, 아주 불길한 뭔가가 다가 오는 느낌이야.”

“감…… 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루시아의 질문에 영식은 고개를 끄

덕였다.

정확한 근거도 없는, 직감에 의존 하는 행동.

이제까지 영식이 거의 보여준 적 없는 행동이었다.

“……알겠습니다.”

루시아는 그런 영식을 비웃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영식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있는 그녀는 지금 그의 이런 행동을 단순 히 아무 근거 없는 망상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루시아는 차를 운전하고 있는 영식 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그의 다 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 졌다.

루시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주인님이 떨고 계셔……

이제까지 영식이 긴장한 듯한 모습 은 몇 번 봐왔다. 그가 분노를 하는 것도, 슬픔에 차있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그가 공포에 질려 있는 모 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걱정 마세요, 주인님.”

루시아는 영식의 몸 안에 살짝 마 력을 흘려 넣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주인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굳은 결의가 느껴지는 목소 리로 말했다.

영식은 자신의 몸 안에 흘러 들어 온 그녀의 마력에 가늘게 떨리고 있 는 몸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

영식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 은 채 말했다. 루시아와 영식 사이 에 순간적으로 따듯한 분위기가 흘 렀다.

-쿠웅!

“크윽!”

그때 였다.

영식이 운전하고 있는 길이 하늘에서 날아온 무언가에 맞아 터져 버렸다.

-끼이이이익!

제국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던 세 대의 자동차가 동시에 급정거했다.

영식은 차문을 열고 나와 갑작스럽 게 하늘에서 날아온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미사일?”

처참하게 터져나간 길에 보이는 것 은 분명 미사일이었다.

“주, 주인님! 위에!”

영식과 함께 밖으로 나왔던 루시아 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영식 은 고개를 들어 루시아가 가리킨 방 향을 바라보았다.

-슈우우우우!

“이런 미친……

영식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 왔다.

루시아가 가리킨 방향에서는, 마치 하늘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미사일이 이쪽으로 쏘아지고 있었다.

“길수 아저씨!”

“잠시만 기다리게!”

저런 넓은 범위의 공격을 막는 것 에는 길수의 스킬이 가장 적합했다.

길수가 광휘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

방패의 앞부분이 열리며 거대한 쐐 기가 바닥에 파고들었다.

-콰직!

거대한 쐐기가 땅에 박혔다. 길수 는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소리 쳤다.

“철벽의 수호!”

길수의 몸에서 뻗어나간 거대한 푸

른 장막이 넓게 펼쳐졌다. 마치 허 공에 거대한 성벽이 만들어진 것 같 은 모습.

길수가 만들어낸 푸른 장막이 길드 원들을 감쌌다.

‘이걸로는 부족해.’

얼마 전 길수가 큰 성장을 이뤘다 고 하더라도 이런 미사일 세례를 그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식은 등에서 개틀링 건을 뽑아내 며 소리쳤다.

“가능한 모든 스킬을 사용해서 미 사일을 요격해!”

길수의 장막에 미사일 세례에 박살 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전에 그 숫자를 최대한 줄여둬야 했다.

영식의 외침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 한 길드원들은 모두 스킬을 준비했 다.

“아이스 스톰!”

가장 먼저 캐스팅을 완료한 것은 아라. 그녀는 지팡이에 담긴 한기를 마력으로 만들어 강력한 마법을 퍼 부었다.

-쾅! 콰앙!

비처럼 쏟아지는 미사일 세례가 얼 음조각에 부딪혀 공중에서 폭발했다.

아라의 뒤를 이어 길드원들의 원거 리 공격이 미사일들을 향해 쏘아졌다.

“난사.”

영식 또한 개틀링의 난사 효과를 사용하면서 최대한 미사일의 숫자를 줄였다.

-쿠구구구구구구궁!

허공에서 폭발하는 미사일들. 천지 가 개벽할 정도의 굉음. 서로의 목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굉음 속에서 영식 일행은 필사적으로 미사일들을 막아냈다.

수백 미터 반경에 걸쳐 퍼진 회색 연기가 자욱이 내려앉았다.

“크으……

미처 길드원들이 막아내지 못한 미 사일의 폭격을 고스란히 받은 길수 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일단 마력부터 보충하세요, 아저씨.”

영식은 비틀거리는 길수에게 다가 가 마력 회복 포션을 내밀었다. 길 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푸른 액체가 들은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주인님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무 리가 있습니다.”

“알고 있어.”

영식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대답 했다. 이쪽으로 향해 다가오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그도 느끼고 있 었다.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었어.’

-철컥.

영식의 손등에서 블레이드의 칼날 이 튀어나왔다. 영식은 딱딱하게 굳 은 표정으로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아오고 있는 수백 대에 달하는 슈트.

영식은 거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 불길 함이 더더욱 거세졌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해주세요.”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낮췄다.

-쿵 쿵! 쿵!

하늘에서 내려온 슈트 군단이 바닥 에 착지했다.

“오랜만이군.”

슈트 군단의 선두에 서 있는 자가 영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른 슈트가 감청색인 것에 비해 은은한 에메랄드빛을 뿜어내는 슈트 를 입고 있는 자였다.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슈트의 바이저에서 카랑카랑한 목 소리가 흘러나왔다.

광기와 증오로 일그러진, 불쾌한 목소리.

영식이 들어본 경험이 있는 목소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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