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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83화 (183/284)

레벨업 머신 183화

올드 원(2)

“?조건?”

서강준은 가늘게 눈을 뜨며 티리아 를 바라보았다.

“예.”

티리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들이 성공적으로 종료된 뒤, 서강준 씨가 직접 나서셔서 서 부에 있는 부족들을 끌어들여주셨으 면 좋겠습니다.”

“끌어들인다고? 어디로?”

“동, 남부 연합……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대륙 연합이죠. 저희는 대륙 모든 지역의 힘을 하나로 합쳐 북방을 정벌할 계획입니다. 지금 창 조주에게 복수를 생각하는 서강준 씨와도 일치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죠.”

대륙 연합.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스케일을 가 진 그 얘기에 서강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티리아를 바라보았다.

티리아는 서강준이라는 강자와 대 면하면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평소의 그녀를 생각하면 쉽게 상상 하기 어려운 모습에 같은 길드원들 조차 놀랍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 라보았다.

“나는 창조주와의 싸움에서 대부분 의 부족원을 잃었네. 팔다리가 잘린 패배자의 말을 다른 부족들이 들을 것 같은가?”

“저희가 그 잃어버린 팔다리가 되 어드린다면요?”

“올드 원의 이름은 서부에 있는 모 두가, 아니, 대륙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입니다. 서부에서 서강준 씨처 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는 없 어요. 만약 뿔뿔이 흩어져 있는 서 부를 하나로 끌어 모을 수 있다면 그건 서강준 씨 이외에 아무도 불가 능한 일일 겁니다.”

티리아는 물이 흐르는 듯이 자연스

럽게 말했다.

딱히 서강준을 띄어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들의 무력함을 비난하는 말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덤덤하게, 당연한 사실 을 나열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말투.

마치 영식을 떠올리게 만드는 화법 이었다.

‘그렇지.’

영식은 티리아를 바라보며 마음속 으로 쾌재를 불렀다.

서강준과 협력하여 서부를 통합할 생각을 하다니.

살바토르 길드가 이곳에 온 목적이 라고 할 수 있는 창세교 조사와 서 부를 연합으로 끌어들이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서강준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 제안이었다.

창조주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그 의 목적과 북방 정벌 자체가 서로 상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 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창조주에 대해서 너무 깊게 생각한 탓일까, 평소라면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영식은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티리아를 바라보며 어딘가 뿌 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돌한 아가씨로군.”

서강준은 티리아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알겠네.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된 다면 자네들의 계획에 협력하도록 하지.”

서강준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시원 하게 결정을 내렸다.

북방을 정벌한다는 얘기는 창조주 들을 상대로 정면에서 전쟁 선포를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즉, 지금 서강준이 하려는 일과 똑같다 는 것이다.

목적이 같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협력을 하지 않을 이유를 오히려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서강준 씨를 도와 대 륙 연합이 하루라도 빨리 결성될 수 있도록 할게요.”

“그전에 우선 창세교 놈들부터 뿌 리를 뽑아내야 하지. 잠시만 기다리 게. 그 사제 놈들을 여기로 데려올 테니.”

그렇게 말한 서강준은 기분 좋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제압한 사제들을 묶어둔 방으로 향했다.

그의 입장에서도 강력한 아군을 얻 은 셈이니 저렇게 좋아하는 것도 당 연했다.

철태와 길수가 사제들을 끌고 오는 것을 도우기 위해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티 리아.”

“하, 우우……! 기,긴장 됐어요.”

서강준이 사제들을 데리러간 사이, 영식은 티리아를 불렀다.

티리아는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영 식의 팔을 끌어안았다.

영식은 아주 익숙한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홀렸다.

“갑자기 어쩐 일이야?”

영식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티리아는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뺨을 붉히며 대답했다.

“전에 영식 씨가 서부로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륙 연합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좋 은 기회…… 라고 생각했어요.”

“고마워. 하마터면 좋은 기회를 놓 칠 뻔했어.”

영식은 손을 뻗어 티리아의 머리칼 을 쓰다듬었다.

티리아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 한 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살짝 걱정했는데 그런 그의 걱정을 간단하게 날려 버리는 일이었다.

‘성장하고 있구나.’

영식은 그녀의 머리칼을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 다. 티리아는 새빨갛게 뺨을 물들이 면서도 그의 손길이 좋은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

티리아의 머리를 영식이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보자 루시아는 이글거 리는 목소리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 다.

“저, 저도 해주세요! 티리아 씨에 게만 해주는 건 치사해요!”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시아를 보며 일순 귀찮 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는 짧 은 한숨을 내쉬며 루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헤.”

루시아는 약간은 얼빠진 웃음소리 를 홀리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라가 뺨을 부풀리며 영식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빨갛게 물든 얼굴로 눈을 내 리깐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나도 이번에 메이크업 도와줬 으니까……

그녀는 차마 자기도 머리를 쓰다듬 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치밀 어 오르는 부끄러움에 푹 고개를 숙 였다.

영식은 자신에게 몸을 가까이하는 세 여인의 모습에 살짝 표정을 굳혔다.

괜히 티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 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영식은 루시아의 머리를 쓰다듬던 것을 멈추고 아라에게 손을 뻗으려 고 했다.

_ 탁.

“저런 목각인형 같은 여자보다는 제 머리를 좀 더 쓰다듬어주세요?”

루시아는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영 식의 손을 혀로 살짝 핥았다.

아라는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목각인형이라니…… 그게 무슨 소

리야?”

“어머? 자각하지 못하고 계신 건가 요? 표정 변화도 거의 없으시고, 애 교도 없으시고…… 후훗. 영식 씨가 좋아할 만한 여성분이라고는 생각되 지 않는데요.”

“읏! 네가 영식이에 대해서 뭘 안 다고 그러는 거야? 나보다 만난 시 간도 훨씬 짧으면서.”

“흥, 고작 내세울 거라고는 시간뿐 인가요?”

두 여인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 렀다.

영식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

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둘 다 그만해. 그럴 상황이 아닌 거 잘 알고 있잖아.”

“으..”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살짝 노기가 섞여 있는 그의 말에 아라와 루시아는 홈칫 몸을 떨었다.

“으으으읍! 으읍!”

때마침 제압해 둔 사제들을 서강준 과 철태, 길수가 끌고 왔다. 서강준 은 아까 전 교단에 서 있던 사제를 끌고 와서 무릎을 꿇렸다.

“우선 이놈들에게 지휘부의 위치를

물어보도록 하세.”

“자백은 어떻게 받아내실 생각이십 니까?”

영식은 살짝 눈살을 찡그리며 물었다.

사실 자백을 받아내는 가장 빠르 고, 효율적인 방법은 고문이었다. 끔 찍한 고통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인 간은 많지 않으니까.

‘문제는 저놈들이 그 많지 않은 인 간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데.’

신앙이 광기로 변했을 때보다 인간 의 정신력이 강해지는 순간은 없었 다. 자기 자신의 목숨 따위는 신앙 을 위해 가볍게 던져버릴 정도로.

“뭐, 간단하네. 이걸 사용할 생각이 야.”

서강준은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새하얀 물약이 든 포션 병을 꺼냈 다.

영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하얀 액체를 바라보았다.

“그건 뭔가요?”

“만드라고라의 뿌리 추출액. 인지 를 마비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 간단하게 말하면 자백제네.”

“ 호오?

“구하는 데 꽤나 애를 먹은 물건이 라, 한 번에 성공했으면 좋겠군.”

서강준은 새하얀 액체를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부 최강자 중 하나인 그가 ‘애를 먹었다’라고 할 정도면 저 포션은 정말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 것이 다.

“그럼 저 사제의 입을 잠시 잡아주게.”

“예.”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버둥치 는 사제의 턱을 잡고 벌렸다.

“o O 0-0 || o O 을II”

사제는 물약을 마시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반항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쿨럭! 쿨럭!”

물약을 마신 사제의 초점이 흐릿해 졌다. 서강준은 낮은 목소리로 그에 게 물었다.

“네 이름은 뭐지.”

“정, 창호……

“에르노어 대륙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지.”

“5년..”

교단에 서 있던 사제의 정체는 꽤

나 오랜 기간 에르노어 대륙에 있었 던 소환자였다.

“레벨은?”

“47……

동부 소환자들의 평균 레벨보다는 높다지만 ‘초인의 땅’이라고 불리는 서부를 기준으로 하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하는 레벨이었다.

‘역시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퍼져나 간 종교라 이건가.’

강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강자존 의 관념이 뚜렷하게 박혀 있는 서부 에서 레벨이 낮은 소환자는 하층민 들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사제직을 받은 것도 다른 하층민들보다는 강했기 때문이지 특 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 다.

“창세교의 지휘부가 위치 한 곳을 알고 있나.”

정창호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마치 고장 난 인형과도 같 은 그 모습에 서강준과 영식의 눈이 반짝였다.

“지휘부는 어디에 있지?”

“교단, 본부는……

―쿵!

교단 본부의 위치에 대해서 말하려 고 했던 정창호의 몸이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쿨럭! 아, 으아아, 아!”

“크읏……

정창호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듯이 미친 듯이 몸을 떨며 새하얀 거품을 입에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눈 이 위로 돌아가며 기괴한 괴성이 그 의 입에서 홀러나왔다.

“제길!”

서강준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정

창호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목을 잡 은 그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 의 마력을 홀려보냈다.

“?이건.”

정창호의 몸에 마력을 홀려보낸 서 강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창호의 몸에 흐르는 마력은 조금 의 흐트러짐 없이 멀쩡하게 흘러가 고 있었다. 서강준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마력이 아무 이상이 없다면 더 이 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 문양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유나가

소리쳤다.

정창호의 왼쪽 가슴의 문양이 빨갛 게 달아오르며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전에 영식이 제압했던 침입자가 자 폭하기 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으, 어어어! 으아아아아!”

“제길.”

정창호는 눈을 까뒤집은 채 발광했 다. 그의 왼쪽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점점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영식은 정창호의 왼쪽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상태가 마력에 의한 것이 아니

라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 다. 영식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구조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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