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180화 (180/284)

레벨업 머신 180화

광신 (3)

-철컹! 철컹!

“크르르르! 크아아아!”

거대한 쇠사슬에 묶인 몬스터가 거 칠게 몸을 비틀었다.

사슬에 묶여 있는 몬스터의 정체는 오우거. 북방 경계선을 넘으면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몬스터였다.

‘왜 몬스터를 여기에?’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쇠 사슬에 묶여 거칠게 몸을 비틀고 있 는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종교의 집회 장소에 오우거를 부른 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딴 걸로 교리를 전파할 수 있을 리도 없을 테고…… 아니, 오히려 창세교에서 주장하는 교리와 전혀 상반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창세교에서 주장하는 교리란 ‘북방

에서 내려온 신을 믿으면 몬스터와 인간이 화합하여 살 수 있는 낙원을 만들어준다’는 것.

그렇다면 오우거가 아닌 드래고니 안처럼 지성을 가진 몬스터를 제압 하여 사육한 후 인간과 함께 잘 지 낼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이브처럼 돌연변이도 아니야.’

이브의 경우 지성을 가지고 인간들 과 평화롭게 어울리고 있었지만 지 금 보이는 오우거는 그런 것도 아니 었다.

“대체 낙원 의식이라는 게 뭘까 요……

한성 또한 그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열광하고 있는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낙원 의식을 지원해 준 신도의 이름은 바바라다. 모두 그녀의 깊은 신앙심에 박수를 쳐주어라.”

“오오오오오!”

“아아, 바바라!”

집회에 모인 하층민들은 바바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격렬하게 환호성을 질렀다. 영식은 가늘게 눈을 뜬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아, 저야말로 제 아이를 먼저

낙원으로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입 니다.”

신도들 사이가 갈라지며 한 중년 여인이 걸어 나왔다.

바바라라고 불린 중년 여인의 모습 을 본 한성과 영식, 유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깐, 저건……

“어제의……?”

한성은 가늘게 몸을 떨며 바바라라 고 불린 중년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여인은 어제 살바토르 길드가 묵 은 여관의 주인이었다.

한성에게 받은 금화 한 닢을 소중

하게 품에 안으며 울먹이던 여인.

내일 자신의 아들의 생일이라며, 이렇게 선물을 주셔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던 여인.

그 여인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 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 다.

“?무슨.”

교단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 녀의 얼굴을 바라본 한성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를 생 각하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일그러진 광 기에 가득 찬 추악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한성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녀 를 바라보았다.

교단에 도착한 바바라는 사제를 향 해 공손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 자네 아들이 8번째 생일을 맞이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아이를 낙원으로 보내겠다는 큰 결정을 한 그대의 신앙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겠다.”

“아아, 사제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바바라는 사제의 발아래에 깊게 머 리를 조아리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를 데려오도록 해라!”

사제의 외침에 몬스터가 나왔던 문 으로 두 명의 사제가 다시 들어갔 다.

“O o o || 읍I!”

그들에 손에 끌려오고 있는 것은 어젯밤 보았던 바바라의 아들이었 다. 온몸이 결박된 그 아이는 두 눈 에서 눈물을 흘리며 거칠게 몸을 비 틀고 있었다.

한성은 다급한 표정에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 그의 어깨를 붙잡은 영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 다.

“……지금 움직이시면 들킵니다.”

“하, 하지만...

한성은 가늘게 몸을 떨며 몬스터에 게 소년이 끌려가고 있는 모습을 바 라보았다.

끔찍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어제 보았던 소년과 중년 여인의 따듯한 미소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키 며 시야가 흔들렸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바라를 바라보았다. 어제 보았던 자애로운 미소와 지금 광기에 찬 미 소 사이의 괴리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럼, 낙원 의식을 거행하겠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오우거의 앞까 지 소년을 끌고 온 사제는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하실 안에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철컥.

“크르르르르! 크아아아!”

사제들은 오우거를 묶고 있는 쇠사 슬을 해제했다. 사슬에서 풀려난 오 우거는 걸쭉한 침을 질질 흘리며 묶 여 있는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몬스터에 먹힌 소년의 영혼은 육 체의 굴레를 벗어나 낙원으로 향할 것이다. 자, 기도하라. 소년의 영혼 이 낙원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오오오오!”

“신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걸어 라. 낙원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신도들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광기 로 일그러진 그들의 기도문이 지하 실을 가득 채웠다.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 다.”

바바라는 감격에 찬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찧었다. 그녀의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쿵. 쿵. 그녀는 피가 흘러내리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계 속해서 머리를 바닥에 내려 찧었다.

“아이야, 너만이라도 이 끔찍한 세 상에서 벗어나 먼저 낙원으로 가 있 으렴. 곧 엄마도 따라서 그곳으로 갈 테니까. 알았지?”

바바라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밧줄에 묶여 있는 소년의 몸을 끌어 안았다.

“으으으읍! 으읍!”

소년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눈물 을 홀렸다.

광기에 물든 오우거의 눈빛이 소년 을 향했다. 쿵. 쿵. 지하실 안에 오 우거의 발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 다.

“저……

한성은 소년에게 다가가는 오우거 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렸다.

“……안 됩니다.”

그런 한성의 어깨를 붙잡은 것은 영식이 었다.

영식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소년과 오우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차가운 눈빛이 아니 었다. 그 안에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뜨거운 감정을 억누르고 있 는 눈빛이었다.

“지금 움직이면 안 됩니다.”

영식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 했다. 그것은 비단 한성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 다.

영식은 저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끼지 않는 냉혈인 이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 역겨웠고, 속이 울 렁거렸다. 당장에라도 달려 나가 소 년을 구해주고 싶었다.

어머니라는 작자가 직접 자신의 아 들을 몬스터의 먹이로 바치려는 모 습을 보고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 은 이는 도덕적인 관념이 무너진 쓰 레기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참아야 해.’

영식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 며 한성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손에 힘을 더했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 또한 가지고 있었다.

지금 창세교의 꼬리를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들을 조사하고 있 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모든 집회를 멈추고 꽁꽁 숨어들 것이 분 명했다.

황성을 습격한 침입자들의 정체가 창세교라는 추측이 거의 확실시된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치 명적인 일이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확실하게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 을 때 움직여야 했다.

한성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지구에 있는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 게 하는, 아직 10살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어린 소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늦둥 이 동생. 새아버지라는 작자는 그 아이를 낳자마자 어머니에게서 도망 쳐 버렸다.

그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동생을 돌보 는 일은 그가 맡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어제 처음 봤을 소년의 위기에서 쉽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한 성이 피가 나도록 거칠게 입술을 깨 물었다. 터질 듯한 분노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버릴 것 같았다.

‘대체 왜.’

어젯밤 보았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 렸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대체 왜.’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 으면서, 대체 왜.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이 그의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시야가 흔들렸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에 머리가 어지 러 워 졌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죄송합니다, 영식 씨.’

한성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영식의 의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나서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당장에라 도 터질 것처럼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성은 주먹에 마력을 집중했다. 힐러 클래스라고 하지만 공격 스킬 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 오우거의 주의를 소년에게서 자 신에게 돌리는 정도라면 그도 할 수 있었다.

그때 였다.

_턱.

“ 쉿.”

한성의 어깨에 영식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 얹혀졌다. 한성은 흠칫 몸을 떨며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존재를 돌아보았다.

얼굴을 덮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 말총머리로 묶은 기다란 머리칼. 얼 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검은색 안 대.

오른쪽만 남은 눈에서 뿜어지는 강 렬한 눈빛이 한성을 향했다.

“가만히 있게.”

한성의 어깨를 잡은 그는 낮은 목 소리로 말했다. 영식과 한성, 유진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중년 사내에게 경계 어린 시선을 보냈다.

“당신 누……

한성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 다.

중년 사내에게 잡힌 어깨를 타고 아득할 정도의 힘이 전해졌다. 한성 은 두 눈을 부릅떴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조차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스러울 정도로 아득한 힘의 격 차.

한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 내를 바라볼 수만 있을 뿐이었다.

한성은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필사적 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평소에는 그의 의지에 따라 자연스 럽게 움직이던 마력이 그 사내의 힘 에 굴복한 둣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영식은 필요하다면 당장에라도 싸 울 수 있도록 준비하며 그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영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건 일단 지금 일이 끝나면 얘기 해 주도록 하지.”

그는 오른쪽만 남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영식에게 중얼 거리듯이 말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자네들도 동 시에 저들을 습격하게.”

“그게 무슨……

“최우선 목표는 저 교단의 사제. 자네들은 나머지 두 명을 맡아주 게.”

영식은 혼자서 멋대로 말을 진행시

키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제압하면 우선 혀를 끊어내는 것 을 봉쇄하고 왼쪽 가슴에 새겨진 문 양을 도려내 주게. 그게 없으면 그 들은 ‘슈트’를 사용하지 못해.”

“그들을 제압한 후에는 바로 밖에 서 대기하고 있는 사제들까지 모두 제압해야 하네. 그들을 제압하는 방 법은 방금 전과 동일하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기회는 한 번. 시작하지.”

-쿵!

사내의 몸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교단으로 날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