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79화
광신 (2)
- 딸랑.
정화영의 저택에서 나온 살바토르 길드는 한참을 주변을 찾은 후에야 낡고 허름한 여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간신히 찾았네요.”
티리아는 낡긴 했지만 꽤나 아득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여관을 바라보 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서부까지 오늘 길에 매일 노숙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잠자리에 대 한 욕구는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응? 그러고 보니 루시아는 어디 갔어?”
유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아, 잠깐 내가 심부름 시킨 게 있어서 하러갔어.”
영식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 게 어깨를 으쓱였다. 한성은 그런 영식을 슬쩍 바라보며 그가 시킨
‘심부름’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 강남에 이렇게 많은 외지인 이 한 번에 찾아온 것은 정말 오랜 만이네요.”
주방에서 나온 중년 여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7?8 살로 보이는 작은 소년이 그녀의 치 마 뒤에 숨은 채 호기심 어린 눈빛 으로 영식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성은 그녀에게 다가가 여관의 방 값을 계산했다. 그녀는 손에 쥐어진 몇 개의 은화에 환한 미소를 지었 다.
“숙소가 별로 없어서 찾는 데 고생 하셨죠? 따듯한 스프를 만들어 드릴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후훗. 오랜 만에 단체 손님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방으로 돌 아가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치마를 소년이 당겼다.
“엄마? 나도 스프 먹을 수 있어? 응? 배고파아?”
“어머, 얘가 왜 이러니. 손님들에게 실례잖아.”
중년 여인은 소년의 투정에 당황스 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성의 눈치 를 살폈다.
“나중에 엄마가 따로 해줄게. 알았 지?”
“거짓말! 어제도 해준다고 했으면 서 안 해줬잖아!”
“얘가 정말……
중년 여인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 을 듯이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소년의 몸이 움찔 떨 렸다.
“괜찮습니다. 아이 것도 같이 만들 어주세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성 이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 그게……
중년 여인은 말끝을 흐리며 당황하 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이의 식사값입니다.”
한성은 그렇게 말하며 금화 한 개 를 내밀었다. 번쩍거리는 금화를 본 여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아이의 식사 값은커녕 그녀의 한 달 생활비 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어, 어찌 이런 거금을……
“……괜찮습니다. 받아두세요.”
한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 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가 내민 돈은 길드의 활동 자금이 아닌 그가 개인적으로 가지 고 있는 돈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돈을 받아 든 중년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한 성은 그런 그녀와 소년의 모습을 안 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도와주려고 생각했다면 1골드 가 아닌 더욱 많음 금액을 그들에게 줄 수도 있었다.
살바토르 길드가 길드원에게 지급 하는 월급 자체는 무척 짠(?) 편이 지만 그만큼 사냥을 통해 벌어들인 개인적인 수익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위험하겠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돈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한성 은 씁쓸한 표정으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고마워, 형!”
소년은 한성에게 해맑은 미소를 지 어 보였다. 한성은 피식 웃음을 흘 리더니 소년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여관 1층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의외네요.”
한성의 옆에 앉은 영식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성은 쓴웃음을 지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건 저도 자 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요?”
영식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수라면 몰라도 한성이 단순한 동 정심에 선의를 베풀어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옛날 생각이 좀 나서요.”
“옛날 생각이요?”
“예. 에르노어 대륙에 오기 전 에…… 한국에 있었을 때요.”
영식은 그의 말에 굳게 입을 다물 었다.
에르노어 대륙에 오기 전의 일. 그 것은 소환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일이었다. 어차피 말해봤자 서로 답답함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저희 집이 좀 사정이 있어서요. 딱 저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그랬군요.”
“예. 거의 제가 기르다시피 했었 죠.”
한성은 어딘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지금은 많이 컸겠네요.”
?
씁쓸한 한성의 말에 길드원들 사이 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소환자들이 과거에 대해서 섣부르게 말하지 않 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남겨놓고 온 것 들이 생각나니까.
“하하. 죄송합니다. 괜한 소리를 해 가지고 분위기를 망쳤네요.”
“……꼭 다시 동생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한성 씨.”
티리아는 한성의 손을 잡으며 굳은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한성 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스프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어휴. 감사라뇨. 안 그래도 이번
달 식비가 막막했는데…… 저희야말 로 감사합니다.”
중년 여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의 머리 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가 마침 내일 생일이거든 요. 좋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 다.”
“잘됐네요. 축하드립니다.”
한성은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 을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중년 여인이 건네준 스프를 한입 떠먹었다.
밍밍하지만 마음이 따듯해지는 맛
을 가진 스프였다.
일요일.
주말 개념이 희미한 에르노어 대륙 에서는 그저 일곱 가지의 날 중 하 나에 불과한 날이었다.
하지만 최근 강남 하층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구역에서는 매주의 일요 일이 더 이상 평범히 흘러가는 의미 없는 요일이 아니게 되었다.
종교 집회.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집회를 향해 도시에 사는 하층민들 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영식과 한성, 유진이 그 하층민들 사이에 섞여 걸어가고 있었다.
아라가 직접 메이크업을 해준 그들 의 모습은 하층민들 사이에 섞여 있 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남루 하기 그지없었다.
걸레 조각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옷. 기름때가 가득한 얼굴. 다크서클 이 짙게 드리워져 초췌해 보이는 눈 매까지.
“바로 옆에서 보는데도 몰라볼 정
도로군요.”
한성은 완전히 변해 버린 영식과 유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 을 흘렸다.
“……화장을 한 여자를 믿지 말라 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군.”
유진 또한 본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린 둘의 모습에 쓴웃 음을 지었다.
“그럼, 들어가 보죠.”
영식은 유진, 한성과 함께 집회 장 소인 성당으로 향했다.
‘꽤나 숫자가 많아.’
영식은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 다. 집회 장소인 성당 앞에는 이미 수백에 달하는 숫자의 하층민이 모 여 있었다.
“o}o}.
“저희에게 낙원을……
그들은 집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 데 두 손을 모아 성당을 향해 기도 를 올리고 있었다. 영식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이게 종교의 힘인가.’
창세교가 최근에 생겼다는 것이 믿 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눈빛은 짙 은 광기에 차 있었다. 집회를 시작 하기도 전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입 에서 거품을 흘리며 기절한 사람까 지 나올 정도였다.
“오오. 이번에 집회에는 낙원 의식 까지 한다고 하더군.”
“아, 바바라 댁 경사 덕분인가?”
이번 집회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있 는 모양인지 입구에 모인 신도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 고 있었다.
‘낙원 의식……?’
영식은 낯선 그 이름에 눈살을 찌 푸렸다.
?쿵.
“오오오오오!”
성당이 문이 열리자 신도들의 환호 성이 더욱 거세졌다.
성당 안에서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두 명이 걸어 나왔다. 체격을 보면 남자였지만 눈만 뚫린 두건을 뒤집 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확인 할 수 없었다.
“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차 례대로 들어와 주세요.”
사제의 인도에 따라 신도들은 집회 장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훈련받 은 군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 은 조금도 줄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움직였다.
“……이건 공간 이동을 사용할 필 요도 없겠군.”
따로 신원 확인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사제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진 이 말했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는 신도들의 뒤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빛을 뿜어내는 마도구로 밝혀진 성 당 지하의 모습은 음산하기 짝이 없 었다.
당장에라도 건물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의심될 정도로 허름한 성당 의 지하에는 정체 모를 비린내가 가 득했다.
영식과 한성, 유진은 사람들 사이 에 섞여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무릎을 꿇은 앉은 신도들은 교단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기도를 시작했다.
“사제님이 입장하십니다.”
“오오오오!”
“낙원으로 인도해 주소서. 낙원으 로 인도해 주소서.”
다른 사제들과 같이 얼굴 전체를 덮는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교단에 섰다. 그는 지하 전체가 떠 나갈 듯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신 도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 다.
“조용.”
나지막한 그의 한마디에 지하실 안 에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 다.
교단에 선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걸어 라. 낙원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신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걸어 라. 낙원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사제의 기도에 따라 신도들은 경건 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따라 읊었다.
방금 전 광기에 차 있던 신도들이 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건 한 태도. 신도들은 두 눈을 감은 채 몇 번이고 기도문을 반복하서 읊조 렸다.
‘저 기도문은……
그들의 기도문을 들은 영식의 눈이 반짝였다.
이전 황성 습격 때 상대했던 슈트 의 괴인. 그가 자폭을 감행하기 전 에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던 문장이었 다.
‘황성을 습격한 건 창세교였어.’
그들의 교리와 문양 사이에 있는 연관성이라는 얄팍한 단서로 시작한 조사치고는 한 번에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들키지만 않고 저들의 뒤를 밟을 수 있다면.’
저들을 제압해서는 안 된다. 광신 에 물든 그들은 어떤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뒤를 밟아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를 밝혀 내야 했다.
“그럼 오늘 설교에 앞서 ‘낙원 의
식’을 거행하겠다.”
“오오오오!”
“낙원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낙원 의식이라는 사제의 말에 사람 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교단에 선 사제는 한 손을 들곤 다른 사제들에 게 눈짓을 보냈다.
“데려오게.”
“예!”
-철컹!
교단 옆의 문이 열리며 쇠사슬에 묶여 있는 거대한 무언가의 모습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