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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74화 (174/284)

레벨업 머신 174화

서부 도시 강남(1)

“주인님!”

제국 수도 라무스 근처에 있는 작 은 야산. 그곳에서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성 습격에 대해서 얘기 들었어 요. 무사하신가요? 어디 다치신 곳 은 없으신가요? 아프지는 않으신가 요? 아아, 감히 저급한 쓰레기 같은 것들이 주인님을 공격하다니!”

루시아는 표정을 사납게 일그러트 리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홀러나 오는 기운에 의해 주변의 땅이 살짝 갈라질 정도였다.

그녀는 마치 소중한 보물에 흠집이 라도 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듯이 정 성스럽게 영식의 몸을 더듬었다.

영식의 몸을 더듬던 손이 그의 왼 쪽 어깨에 닿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다치셨군요.”

“……그런 것도 알 수 있는 거야?”

영식은 허탈한 웃음을 홀리며 그녀 를 바라보았다.

침입자와의 교전에서 영식이 입은 상처는 크지 않았다. 고작해야 피부 가 찢어지고 피부 아래쪽의 금속이 살짝 패였을 뿐이었다.

전투 중에 그 정도 상처는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미 회복은 완전하게 됐는데.’

수리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 다. 자가 회복만으로 영식의 상처는 전혀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 게 치유됐다.

“느껴져요. 주인님이 이곳에 상처 를 입으셨다는 게요.”

“생채기 정도야.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니요.”

루시아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어 금니를 깨물었다.

농밀한 살기가 그녀의 몸에서 줄줄 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주인님을 혼자 두는 건 위험 해요. 그 슈트……? 라고 하셨던가 요. 그게 없는 주인님은 너무 약하 시니까요.”

루시아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영식은 물론 주변 길 드원까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그 녀를 바라보았다.

영식이 약하다니?

그가 가진 슈트가 상식을 벗어난 성능을 가진 물건은 맞으나 슈트가 없다고 해도 영식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동부에서도 슈트를 벗은 영식을 이 길 수 있는 존재는 티리아와 박시아 정도밖에 없었다.

‘이거 루시아라서 뭐라고 반론을 할 수도 없고…… 영식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 라보았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영식에 게 ‘약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아의 기준에서 본다면 슈트를 입지도 않은 영식은 초식동 물(?)처럼 약하기 그지없는 생물이 었다.

영식은 주머니 속에 총탄을 움켜쥐 었다.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둡게 물 들었다.

‘약하다, 라……

처음 천태황을 봤을 때가 떠올랐 다.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그 힘. 경이로울 정도의 재능.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은 감각에 영식은 묘한 패배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패배감은 오히려 영식에 게 큰 이득이 되었다.

강함에 대한 절박함이 그를 더 높 은 경지로 성장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때와 같은 절박함이 사라진 건 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후로, 정확

하게는 천태황과의 대련에서 압도적 인 승리를 거머쥔 이후로 그는 강해 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옅어졌다.

이미 일반적인 기준에서 충분히 강 자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 아냐.’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 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부정 했다.

‘내가 강한 게 아니야.’

객관적으로 보면 그는 강했다. 하 지만 이 세계에서 그 이상의 강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티리아만 생각하더라도 슈트 없이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알렉 볼프강, 백강현, 김재현과 같 은 강자와 비교하면 더욱 절망적이 었다.

‘내가 강한 게 아니라, 슈트가 너 무 강력한 거야.’

영식은 자신이 어째서 ‘절박함’을 잃어버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락테온 2식.

규격 외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 슈트가 지나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 슈트는 마치 ‘자기 자신’。] 강 해진 것 같다는 착각을 줄 정도로 경이로운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절박함이…… 다시 필요할 때인 가.’

영식은 주머니 속의 총탄을 손끝으 로 만지며 살짝 표정을 찡그렸다.

그는 슈트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식의 말을 듣고 허허 롭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아, 감히 저의 주인님에게 상처 를 입히다니…… 용서할 수 없어요. 잔혹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후회하 게 만들어주겠어요. 손톱을 하나씩 뽑아버리고 눈과 귀를 잡아 뜯어버 리겠어요.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하 고 구걸하다가 돼지우리에 처넣어서 천천히 죽어가게 만들겠어요. 하 아……. 어서 한성 씨에게 부탁해서 돼지우리부터 만들지 않으면…… 영식의 왼쪽 어깨를 계속해서 손으 로 쓰다듬던 루시아는 초점이 흐려 진 눈으로 저주를 내뱉듯 중얼거렸 다.

도를 넘어선 그녀의 살기에 주변 길드원들의 표정까지 창백해졌다.

“그만.”

영식은 병든(?) 눈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나한테 상처를 입힌 놈은 죽었어. 그러니까 진정해.”

“하, 하지만……

“오히려 네가 이성을 잃고 폭주하 는 게 내게는 더 골치 아픈 일이 야.”

“……우우. 알겠어요.”

루시아는 단호한 영식의 목소리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방금 전에 보여줬던 광기가 마 치 착각처럼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 어린 양 같은 모습이었다.

영식은 고개를 돌려 오랜만에 보는 길드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지난번 자작극 이후 영식은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여 루시아를 비 롯한 길드원들에게 길드 하우스에서 대기하라고 말해두었다.

직접 루시아, 이브들과 전투를 한 포르테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밝힐 타이밍이 아니지.’

바이올렛의 정체가 루시아라는 것 은 언젠간 포르테와 함께하다 보면 들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들키면 안

됐다. 들켜도 대륙 연합이 완성된 이후, 북방 정벌군이 완성된 이후에 들켜야 했다.

‘뭐, 들키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영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랜만에 모인 길드원들을 보며 희미한 미소 를 지었다.

그다지 오래 떨어져 있던 것도 아 닌데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럼 바로 서부로 가는 겁니 까?”

“예. 창세교…… 라는 단체에 대해 서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 고 서부를 동맹에 끼울 방법도 생각 해야 하고요.”

길수의 물음에 티리아가 대답했다.

한성이 앞으로 나오며 손에 든 종 이를 길드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번에 서부로 간다는 얘길 듣고 따로 조사한 서부 세력 구도입니다. 모두 한 번씩 정독해 주세요.”

“흐응. 역시 ‘올드 원’의 세력이 가 장 압도적이네.”

“올드 원이 누군가?”

길수는 처음 듣는 칭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최초로 에르노어 대륙에 온 소환 자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입 니다. 서강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 환자죠.”

“허. 그렇다면……

“예. 정확하게 12년 전부터 에르노 어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이죠.”

한성의 말에 길수는 굳게 입을 다 물었다.

그가 에르노어 대륙에 소환된 2년 만 하더라도 수많은 전투와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 이 세계에서 12년 동안 살아남은 그가 얼마나 끔찍한 난관들을 헤쳐 나왔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초기 소환자들은 엄청 박해받 았다고 들었는데…… 그 와중에 살 아남았다면 보통 실력을 가진 게 아 니겠군요.”

“정확한 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서부 최강자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하죠.”

‘초인의 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 도로 강력한 소환자가 즐비한 서부.

그 속에서 최강자의 반열에 들었다 는 것은 서강준이 가진 강력한 힘을 증명했다.

“그곳은 강력한 소환자들이 이끄는 부족 단위로 움직인다고 했죠?”

한성이 준비한 서부 세력도를 정독 한 티리아가 그에게 물었다.

“예. 소수의 소환자가 다수의 원주 민을 다스리며 도시를 만들어 생활 하고 있죠.”

“흐음…….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 시가 어디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시의 이름 은 ‘강남’입니다.”

“……강남이요?”

생소한 단어에 티리아는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에 반해 길드원들은 어처구니없 다는 웃음을 지으며 종이를 내려다 보았다.

“예. 뭐…… 도시를 만든 소환자가 한국인이니까요. 그대로 따와서 지 었겠죠.”

한성 또한 에르노어 대륙에 ‘강남’ 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다는 사실 에 쓴웃음을 흘렸다.

“음? 설마 그 강남이라는 곳이 여 러분들 세계에 있는 도시인가요?”

“음…… 도시라기보단 도시의 일부 분이랄까……. 가장 부홍한 곳 중 하나는 맞습니다.”

“헤헤.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게 되 면 언니에게 소개시켜 줄게! 나 거 기 살거든.”

유나는 헤실헤실 미소를 지으며 티 리아의 팔을 끌어안았다.

“유, 유나 언니가 강남에 살았어?”

채린은 충격 받았다는 표정으로 물 었다.

“응. 태어날 때부터 쭉 거기 살았 는데.”

“……서울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다 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구나.”

채린은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꼬맹이가 또...

“근데 언니가 무식한 건 사실이잖 아.”

채린의 팩트(?)에 유나는 반박하지 못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 다.

길드원들은 울분에 떠는 유나를 보 며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가는 군.”

“뼈 맞은 것 같은데……

길수와 태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기만 하는 유나를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 시끄러! 이익. 급하다며!

빨리 출발하자, 언니!”

“어? 어어. 자, 잠깐만 유나야!”

유나는 티리아의 팔을 끌며 성큼성 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끄응?

간만에 보는 길드의 일상(?)에 영 식은 짧은 침음을 삼켰다.

영식은 유나와 티리아를 따라 마차 를 향해 걸어가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아, 참.”

무언가 생각난 영식은 루시아를 향 해 고개를 돌렸다.

“루시아, 이브를 꺼내줄 수 있어?”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 리’를 열었다. 그 안에서 이브와 함 께 그를 따르는 기계 몬스터들이 나 왔다.

덩치가 덩치기에 기계 몬스터를 인 벤토리 안에 넣는 것은 다른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루 시아는 레벨이 높은 만큼 어마어마 한 크기의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었 다.

원래 살아 있는 생명은 들어가지 못하는 인벤토리였지만 이브를 비롯 한 기계 생명체는 인벤토리 안에 들 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생명으로서…… 쳐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영식은 어딘가 씁쓸하다는 표정으

로 이브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영식 씨.]

“그래. 인벤토리에 넣고 이동시켜 서 미안해. 저번 계획 때문에 살바 토르 길드에 기계 몬스터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하거든.”

[하하.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안락 하기도 하고요. 그보다 무슨 일이십 니까?]

영식은 이브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 을 열었다.

“물어볼 게 하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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