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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머신-173화 (173/284)

레벨업 머신 173화

의문의 침입자들(4)

에너지라는 것은 힘 그 자체를 의 미하는 단어였다.

영식이 사용하는 무기는 물론 블레 이드를 휘두르고, 부스트를 사용하 여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모두 그 에너지를 사용한 결과였다.

마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마력은 그 종류가 다를 뿐 결국 힘 을 가진 에너지라는 것은 동일했다.

즉, 열에너지 운동에너지처럼 마력 에너지라는 종류가 있다는 의미였 다.

그런데 이 ‘에너지 분해’라는 기술 은 에너지 그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 어 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분해할 수 있는 에너지에 제 약이 없는 건 아니겠지?’

영식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채 손에 쥔 총탄을 내려다보았다.

만약 정말로 닿는 것만으로 모든 에너지를 분해시켜 버린다면 이것은 최강의 방패와 창의 역할을 모두 수 행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쏘아지는 모든 공격을 분해하여 막 아내는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건 말도 안 돼.’

닳는 모든 에너지를 순식간에 분해 시켜 버리다니, 마치 신이나 사용할 법한 힘이 아닌가.

영식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생각 을 부정했다.

분해할 수 있는 힘의 총량이 정해 져 있을 것이다. 전기가 통하지 않 는 고무조차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전기를 통하게 하면 타버리는 것처 럼.

“문제는……

영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미 그 총량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총탄 안에 있는 ‘에너지 분해’ 기술이 강력하 다는 점이었다.

이 정체불명의 총탄은 영식의 플라 즈마 배리어를 가볍게 뚫고 들어와 그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아무리 전력을 사용한 플라즈마 배 리어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태워 버릴 만한 그의 배리어를 마치 배리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뚫고 왔다는 것은 그 만큼 이 ‘에너지 분해’ 기술이 가진 힘이 강력하다는 증거였다.

‘대체 이런 기술을 어디에서?’

영식의 표정에 더더욱 의문이 깊어 졌다.

영식 자신조차 재현해 낼 수 없는 오버테크놀로지의 기술을 그들이 가 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조사는 끝났나?”

“……일단은요.”

영식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 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황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세. 이번 습격에 대해서 대책 회 의를 열어야 할 것 같네.”

백강현의 말에 영식은 고개를 끄덕 였다.

제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황 성이 습격당한 사건이었다. 안 그래 도 신종 몬스터에 대한 불안으로 인 해 혼란이 커진 남부의 입장에서 치 명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사건.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제국민 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는 알렉까지 부상을 입었다. 빨리 대처하지 않으 면 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아니,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 다.

‘설마 이걸 노린 건가.’

영식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애초에 신종 몬스터에 대한 소문을 의도적으로 제국에 흘려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그였다.

조사대를 습격하여 그 불안감을 더 욱 커지게 만든 것도 그였다.

그 모든 것은 평화에 찌들어 있는

제국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한 그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그런 그의 계획을 기회라고 생각해서 혼란을 더욱 크게 만들려고 한다면?

‘……마음에 안 들어.’

마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닌 가.

영식은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 그렸다.

“북쪽만 표시된 나침반, 인가요.”

황성으로 돌아온 백강현와 영식은 바로 제국 정보부로 향했다.

침입자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전에 일단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부터 알 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보부를 총괄하고 있는 에드윈 백 작은 영식이 들고 온 침입자의 시체 에 새겨진 문양을 꼼꼼히 확인했다.

“혹시 이 문양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

“음……. 잠시만요.”

한동안 문양을 살피던 에드윈 백작 은 서류 뭉치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 을 옮겼다.

그곳에는 남부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부 요원들이 보낸 서류들 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확실…… 하지는 않지만 의심스러 운 단체가 하나 있긴 합니다.”

한동안 서류를 뒤지던 에드윈 백작 은 원하는 정보를 찾았는지 한 장의 서류를 들고 영식과 백강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곳이 어디인가?”

“최근 서부에 퍼지고 있는 사이비

종교 단체입니다만…… 이곳의 교리 가 좀 이상합니다.”

“교리가 이상하다고?”

에드윈의 말에 백강현은 고개를 갸 웃거렸다.

사이비 종교가 교리가 이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교리가 멀 쩡했다면 사이비라고 취급 받지도 않았을 테니.

“북방에서 내려온 신들이 몬스터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낙원을 만들 어줄 것이다, 라는 것이 이 사이비 종교의 교리입니다.”

“..확실히, 사이비라고 불릴 만

하군.”

터무니없는 그 교리에 백강현은 허 탈한 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북방에서 내려온 신이 무엇 인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괴물들의 창조주.

평화로웠던 에르노어 대륙을 몬스 터와의 전쟁으로 몰아넣은 원흉이었 다.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영식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그들의 교리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 푸렸다.

스톡홀름 증후군. 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긍정 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이었다.

에르노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이라 면 기본적으로 몬스터에 대한 공포 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서부의 상황은 특히 더 심했 다. 그곳은 딱히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 몬스터의 위험에서 그들을 지 켜줄 수 있는 방패가 없기 때문이었 다.

‘어떤 놈이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 놈이군.’

영식은 턱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찡 그렸다.

사이비 종교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대부분 그것을 퍼트린 교주와 고위 간부급은 자신들의 교리를 믿지 않 는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세력을 키우기 위해 ‘종교’라는 수단을 이용한 사 기 꾼이 었다.

영식이 그들을 머리가 잘 돌아간다 고 평가한 것은 바로 의외성을 지닌 그들의 교리 때문이었다.

백강현과 영식처럼 힘과 명성을 모 두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 교리는 당연히 헛소리와 다름없는 말로 들 렸다.

하지만 애초에 그 교리로 속이려는 사람들은 백강현이나 영식과 같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이비 종교에 속는 대부분의 사람 은 가진 것 없고 비참한 삶을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의 절망적인 상황 을 뒤바꿔 줄 존재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들을 속이는 수단으로 인류 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괴물들의 창조주를 내세우다니.

기발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방 법이었다.

“그래서 그 사이비 종교가 이번 습 격 사건의 범인이라는 건가?”

백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이비 종교 따위가 그런 힘을 가지 고 있다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에드윈 백작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 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곳 의 교리와 이 문양이 가진 의미를 연관 지어 본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죠.”

“북쪽만 표시된 나침반……. 아, 그 렇군.”

백강현은 에드윈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했다.

북쪽만 표시된 나침반과 북방에서 신이 내려와 낙원을 만들어주겠다는 사이비 종교의 교리.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단순히 문양과 교리의 연관성만 가지고 그쪽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특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영식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이 가진 특이한 교리를 통해 문양과 연관성을 짓다니, 너무 근거 가 부족한 추론이었다.

에드윈 백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교리와 문양이 반드 시 연관성이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 까요.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사이비 종교밖에 없네요. 이 문양에 대해서는 제국 정보부에서 추가적으 로 조사하겠습니다.”

“흠……. 결국 어떤 세력이 황성을

습격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 다는 건가.”

백강현은 짧은 침음을 삼키며 한숨 을 내쉬었다.

영식은 손에 든 서류를 다시 품 안에 집어넣고 있는 에드윈을 향해 물었다.

“그 사이비 종교의 이름은 무엇입 니까?”

“아, 제가 이름을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애드윈 백작은 어수룩한 미소를 지 으며 말을 이었다.

“창세교, 란 이름을 가진 종교입니

다.”

“창세교……

영식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들 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아직 남부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 았지만 서부에서는 나름 유명한 종 교라고 하더군요.”

오 Q..”

M...?

영식은 짧은 침음을 삼키며 백강현 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제국은 움직이기 힘든 상황 인가요?”

“아마 그럴 걸세. 알렉 장군님도

다치셨고 황성이 습격당한 상황이니 국민들의 동요도 크겠지.”

그의 말에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 다.

나라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황성이 습격당한 것이다. 뒤처리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저희가 움직여서 그 창 세교라는 곳을 한번 조사해 보겠습 니다.”

“자네들이?”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 다.

“예. 지금 당장 저희들이 할 수 있

는 일은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리 고 어차피 서부에는 한번 가볼 생각 이었습니다.”

영식이 생각하고 있는 대륙 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부의 힘도 필요 했다.

겸사겸사라고 할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었지만 서부와의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단서를 찾을 겸 창세교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 다.

“일단 폐하의 의견도 들어보도록 하지.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지 원을 해주실 걸세.”

“예.”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세교라……

그는 회의실로 걸어가며 이번에 들 은 사이비 종교 단체의 이름을 떠올 렸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사이비 종 교 단체 따위가 침입자들이 사용한 슈트와 같은 터무니없는 오버스펙의 물건을 사용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 다.

‘대체 누구에게 그런 물건을 받은 거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대륙 어딘가에 영식과 같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진 존 재가 있거나…….

‘창조주가 이 일에 직접 관여했거 나.’

영식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창조주들이 영식 이상으로 오버테 크놀로지의 기계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신종 몬스터만 봐도 알 수 있 는 사실이었다.

‘어느 쪽이든 조금 더 단서가 가지 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 없나.’

영식은 쯧, 하고 혀를 차며 가늘게 눈을 떴다.

‘어찌 됐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 을 거야.’

움직이지 않으면 영영 그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영식은 주머니에서 총탄을 꺼내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자신이 해석할 수 없을 정 도로 고도의 기술이 사용된 총탄.

어떻게든 이 기술이 사용된 표본을 더 구해서 ‘에너지 분해’라는 기술 에 대해서 해석해야 했다.

그리고.

‘이 기술을 얻어야 해.’

영식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총탄 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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