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68화
연합 결성(1)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
창문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별빛만 이 비치는 그 방에 까랑까랑한 중얼 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모았는데도 부족하군.”
그 목소리의 주인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방 한쪽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푸른 수정 구슬 이 빛을 발했다.
[……님. 조사대가 모두 출발했다 고 합니다.]
“아아. 신종 몬스터를 조사한다, 라 고 했던가.”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짓을 벌이고 있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정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물음에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떻게 하기는. 판을 만들어줬는 데 움직여야지.”
?끼익. 끼익.
그가 앉은 흔들의자에서 썩은 나무 가 엇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르난 제국의 조사대가 신종 몬스 터에게 습격당해 퇴각했다.
이 소식은 안 그래도 신종 몬스터 에 대한 불안이 커져가던 남부에 직 격탄이 되었다.
물론 패배라고는 해도 직접적인 인 명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제국 최강의 세력이라고 평 가받는 1군의 조사대가 패퇴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일곱으로 나눠진 조 사대는 몬스터와 싸워서 이길 목적 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신종 몬스터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 해 조직된 임시적인 부대일 뿐이었 다.
문제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조사대가, 정 말 반항다운 반항 한번 제대로 해보 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알렉 볼프강의 제자이자 대륙 에서 내로라하는 강자 중 하나인 포 르테의 패배는 제국민들에게 큰 충 격으로 다가왔다.
포르테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제국 내에서 인지도는 알렉 볼프강 다음가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신종 몬스터와 포르테를 일방적으 로 밀어붙였다는 보랏빛 오우거, 바 이올렛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사 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헤밀턴 신문사를 통해 퍼진 신종 몬스터에 대한 막연한 공포들.
거기에 조사대의 패배 소식까지 겹 치자 마지 화학작용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아르난 제국은 혼란 상황에 빠졌다.
점점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이슨은 바로 연설을 준비했다.
마도구를 사용해 국가 전역에 걸쳐 퍼트린 연설의 내용을 이러했다.
-이번 조사대는 애초에 신종 몬스 터를 죽이기 위해서 편성된 부대가 아니다. 제국은 이번 신종 몬스터의 척살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1군을 중심으로 한 토벌대를 편성하여 신 종 몬스터와의 전쟁에 나설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활해도 된다.
연설문 자체는 굉장히 장황하고 길 었지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뭐 하나 거짓이 들어가 있지 않은 연설이었지만 국민들의 반웅은 생각 보다 뜨겁지 않았다.
이미 조사대가 패퇴했다는 것에 대 해 자국에 대한 ‘불신’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 불신에 불이 지펴진 것은 동부 연합의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면서였 다.
조사대가 만들어지기 전에 동부 연 합 측에서 접근하여 신종 몬스터는 실재하니 자신들과 동맹을 맺어 그 들을 상대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소 _무 국민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 은 제이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한다면 제이슨 의 선택이 비판을 받을 만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제이슨에게는 영식을 믿을 만 한 어떠한 근거도, 신뢰도 없었다.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생면부지의
말을 믿고 국가 간의 동맹을 체결하 는 것이야말로 한 국가의 지도자로 서 할 일이 아니었다.
단지 ‘결과적’으로 신종 몬스터가 실재했기 때문에 제이슨이 판단이 어리석었다고 평가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대중이란 것은 그러한 ‘세 세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
지도자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와 그 결과에서 파생된 손해뿐 이었다.
국민들의 평균적인 지능이 낮거나 애초에 그런 지도자의 입장을 생각 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은 아 니었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고 발전하고 사회를 만들어왔을 때부터 쭉 이어 져 오던 본성이었다.
대중을 개돼지라 칭하며 자신은 ‘깨어 있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막상 그 대중 안에 들어가면 똑같이 행동한다.
대중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디까 지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성적 인 공유였기 때문이었다.
조사대의 퇴각 사실에 의해서 제국 민들은 동부와의 연합을 강력하게 바라게 되었다.
필릭스 신문사에서 단독으로 취대 한 동부 전쟁을 통해 현 동부 연합 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강력한 아군을 늘리고 싶은 것 또한 인간의 본성.
이제 제국 지휘부는 동부 연합의 동맹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자네에게는 사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군.”
제국 수도, 라무스에 위치한 황성 에서는 황제가 직접 주도하는 신종 몬스터 대책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 회의에는 알렉 볼프강, 백강현, 포르테를 비롯한 제국군 사령관들과 영식, 티리아, 박시아, 배영훈, 배성 훈 형제 등의 동부 연합 핵심 세력 이 모여 있었다.
“아닙니다. 당시 폐하의 입장에서 는 절 믿기 어려우셨을 것을 이해합 니다.”
영식은 담백한 말투로 말했다.
“살바토르 길드에서 포르테 장군을 구해줬다고 들었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신종 몬스터는 비단 동부의 문제만이 아 니니까요.”
“흠. 영식…… 이라고 했던가? 자 네는 연합 내에서 직책이 어떻게 되 는가?”
표면적으로 알려진 동부 연합의 최 고 책임자는 박시아였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도 그렇고 연합 을 대표해서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 을 봐도 영식에게 기대는 모습이 자 주 보였다.
제이슨이 그의 직위에 대해서 궁금 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연합 내의 그의 직책은 책사입니 다.”
제이슨의 질문에 답한 것은 박시아 였다.
“ 책사?”
“예. 군사 작전의 1차적인 결정권 과 외교를 비롯한 타 세력 간의 관 계 유지도 그가 맡고 있죠.”
“연합 내의 2인자라는 말이군.”
제이슨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으로 치면 알렉과 비슷한 권한 을 가진 존재였다.
“예, 그렇습니다.”
박시아는 제이슨의 말에 고개를 끄 덕였다.
사실 영식의 실제 직책은 따로 정 해져 있지 않았다.
직책으로만 보면 그는 살바토르 길 드의 일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을 계획하는 회의 에서 영식에게 아무런 직책이 없다 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직책도 없는 일반 길드원이 회의를
주도하거나 외교에 간섭하는 것은 제국의 체면을 떨어트려 놓는 일이 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시아는 한울 길드 의 동의를 얻어 영식을 동부 연합의 핵심 직책으로 만들어놓았다.
“음. 포르테 장군에게 듣기로는 자 네의 무위 또한 상당하다고 하던 데.”
“어디 가서 무시받을 정도는 아니 라고 생각합니다.”
영식은 덤덤한 목소리로 제이슨의 말을 긍정했다.
이럴 때 겸양을 떠는 것은 오히려
독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동맹 관계를 형성할 때 무척 중요한 일이 었다.
가치가 없으면 일방적으로 한쪽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 동맹 관계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영식에게 주어진 직 책은 그의 가치에 날개를 단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자네의 목적은 제국과 동부 연합 이 힘을 합쳐 신종 몬스터를 섬멸하 는 것이라고 했나?”
“아뇨. 저희들의 목적은 단순히 신
종 몬스터를 섬멸하는 것이 아닙니 다.”
“응? 신종 몬스터를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고?”
제이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영식을 바라보았다.
“최종적인 목적은, 괴물들의 창조 주를 죽이고 잃어버린 대륙의 영토 를 복구하는 것입니다.”
당당하기까지 한 영식의 말에 제이 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괴물들의 창조주.
그것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신종 몬스터를 섬멸하자는 것 따위 와는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그건?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군.”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알렉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괴물들의 창조주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언젠가는 상대해야 할 존 재기도 하죠.”
영식은 알렉의 말에 조금도지지 않
고 답했다.
제이슨은 짧은 침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괴물들의 창조주는 최근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 그들을 우리 쪽에 서 먼저 자극해야 할 필요가 있는 가?”
제이슨의 물음을 들은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영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심하군.’
최근 몇 년간 이어져온 평화.
그 평화가 가져다준 ‘안정’이라는 독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것 같았 다.
한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는 상황 을 억지로 만들어놓은 후에야 그들 은 신종 몬스터를 토벌하겠다는 결 심을 세웠다.
만약 영식이 제국민들의 여론을 토 벌에 조장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애 초에 토벌을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 이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내딛지는 못하 겠다는 건가.’
상황이 이러니까 신종 몬스터는 어
쩔 수 없이 토벌하겠지만 창조주와 싸우고 싶지는 않다.
지금 제국 지휘부가 보여주는 모습 은 공포에 질린 꿩이 땅에 머리를 박은 채 위기가 지나가길 바라는 듯 한 멍청한 모습이었다.
제이슨과 알렉에게 창조주를 공격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 었다.
그들은.
그저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에 안주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영식은 두 사람을 날카롭게 노려보 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계실 생 각이십니까?”
“뭐라?”
-쿵!
“무엄하다!”
알렉은 분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 이 솟구쳐 올랐다.
제국의 황제한테 쥐새끼라니?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이었 다.
“여, 영식 씨.”
박시아와 티리아 또한 영식의 폭탄
발언에 창백하게 표정을 질렸다.
이건 동맹을 맺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영식의 말로 인해 최악의 경우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지금 짐에게 한 소리인가?”
“예. 제이슨 폐하에게 한 말입니 다.”
“……예의를 모르는 자군.”
“예의를 차려서 말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영식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제 이슨을 노려보았다.
“신종 몬스터를 만든 것은 괴물들 의 창조주들입니다. 설마 그 기괴한 형태의 몬스터가 자연적으로 태어났 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죠?”
제이슨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금속과 몬스터가 반쯤 섞인, 있을 수 없는 형태의 괴물. 그것이 자연 적으로 생겨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창조주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숨을 죽이고, 날카롭 게 칼을 갈고 있죠. 그동안 제국은 뭘 했습니까?”
“우리는……
“정규군을 강화하고, 미래가 총망 한 인재를 길렀다고요? 그건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가, 길드가 한 일입 니다.”
제이슨의 말을 자르며 영식은 뜨거 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의 평화가 만족스러우십니까?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잔 같은 평 화가? 현실을 부정하지 마십쇼, 폐 하. 괴물들의 창조주들은 지금도 대 륙을 집어삼키려고 움직이고 있습니 다. 아니, 그들은 움직이지 않은 적 이 없습니다. 다만 폐하께서 ‘움직 이지 않기를’ 바랐던 것뿐이죠.”
“다시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영식과 제이슨의 눈빛이 허공에 교 차했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계실 생 각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