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67화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방법(3)
“괜찮으십니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녀를 구해 낸 영식은 품에 안아 든 그녀를 내 려다보았다.
“……영식 군?”
그녀는 자신을 안아 든 청년을 올
려다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 다.
그녀는 그가 떠나기 전 나눴던 짧 은 대화를 떠올렸다.
영식은 동맹을 제안이 거절당했으 니 다시 동부에 있는 길드로 돌아간 다고 말했다.
“왜 자네가 여기에……
그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 로 영식을 올려다보았다.
“뭐, 이렇게 될 걸 어느 정도 예상 하고 있었으니까요.”
영식은 그녀를 바닥에 눕히며 자리 에서 일어섰다.
-쿵! 쿠
보랏빛 마력을 뿜어내고 있던 오우 거는 영식과 포르테의 모습이 마음 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거칠게 발을 굴렀다.
이제까지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던 것치고는 꽤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 다.
‘사냥감을 놓친 것이 그렇게 분했 던 건가……?’
포르테는 갑작스러운 오우거의 행 동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 라보았다.
사냥감을 놓친 것에 분노한다고 하
기엔 아까 전 펠릭스와의 전투에 자 신이 끼어들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 던 반응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다니? 그게 무슨 말..”
“우선 설명은 나중에 하죠. 지금은 느긋하게 설명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을 것 같으니까요.”
영식은 포르테의 말을 끊으며 블레 이드를 꺼내 들었다.
그가 무기를 꺼내 들자 숲속에서 열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대들은……
포르테는 영식에 이어 나타난 사람
들을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처음 뵙겠습니다. 포르테 씨라고 하셨죠? 영식 씨에게 얘기는 들었습 니다.”
황금을 녹여낸 것 같은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여인이 방긋 미소를 지 으며 손을 흔들었다.
포르테는 그녀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있었다.
“살바토르 길드……
동부 전쟁의 주역 중 하나였던 살 바토르 길드. 그 길드의 길드마스터 티리아 폰 에르만이었다.
“크르르르르!”
기계 몬스터들은 갑작스러운 살바 토르 길드의 출현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보랏빛 오우 거는 들고 있는 대검을 영식을 향해 내밀었다.
-우우우웅!
영식의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온 플라즈마의 열기가 주변을 휩쓸었 다.
끔찍한 그 열기에 주변의 나뭇잎이 불타올랐다.
힘을 끌어내기 시작한 것은 영식만 이 아니었다.
티리아를 비롯한 모든 살바토르 길 드원이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보랏빛 오우거와 대치했다.
“돌격!”
티리아의 외침과 함께 보랏빛 오우 거를 향해 살바토르 길드원이 달려 들었다.
“버스터 스매쉬!”
전투의 시작은 박철태의 대검이었 다.
그의 대검은 부스트의 힘을 받아 무시무시한 속도로 휘둘러졌다. 오 우거의 대검과 그의 대검이 격돌했 다.
?까아아앙!
“크윽!”
그 결과는 절망적.
박철태의 몸이 막대한 힘에 떠밀려 뒤로 튕겨져 나갔다.
보랏빛 오우거는 그 덩치에 어울리 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몸을 숙 이더니 그를 지나쳐 티리아에게 달 려들었다.
“읏……!”
바로 자신을 노리는 보랏빛 오우거 의 공격에 티리아는 표정을 일그러 트리며 손에 맺힌 새하얀 뇌전을 오 우거에게 쏘아냈다.
-쿠릉! 콰과광!
“꺄악!”
뇌전을 뚫고 나온 오우거가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티리아는 바 로 방패를 만들어내어 그 공격을 막 았지만 충격을 완전히 막아내는 것 은 불가능했다.
“꺄악!”
오우거의 주먹에 얻어맞은 티리아 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티리아 언니!”
유나는 다급한 외침을 홀리며 오우
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양손에는 검붉은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쌍식이 쥐어져 있었 다.
-쿠릉! 쿠구구궁!
“?…"허.”
살바토르 길드와 보랏빛 오우거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 포르테의 입 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부 전쟁의 기사를 통해 살바토르 길드는 그 숫자가 적은 대신 하나하 나가 랭커에 근접하는 강자들이라고 들었다.
실제 지금 살바토르 길드가 보여주
는 전력은 소문대로, 아니, 소문 이 상이었다.
‘대체 오우거의 정체는 뭐란 말인 가.’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보랏빛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보랏빛 괴물은 그 살바토르 길드 전원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괴물들의 창조주라도 되는 건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오우 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 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_ 탁.
“이 사이에 퇴각하게나.”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방패를 든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자네는……
“살바토르 길드의 김길수라고 하 네. 몬스터들의 공격은 내가 막고 있을 테니 포르테 양은 병력을 이끌 고 뒤로 물러나게나.”
“그럴 수는……
포르테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긍지 높은 제국군이었다.
아군도 아닌 다른 세력의 도움을 받아 그사이 퇴각하다니.
제국의 권위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빨리! 시간이 없다네. 우리도 저 보랏빛 오우거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냐. 적당히 싸우다가 뒤로 도망칠 걸세.”
“부하들을 지키고 싶지 않은 건 가?”
“……알았다. 자네의 말에 따르도 록 하지.”
포르테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부하들의 목숨과 제국의 체 면.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오랜 고 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원 퇴각한다!”
포르테는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 보이는군.’
큰 부상을 입은 병사도 있었지만 다행히 죽은 병사는 없었다.
그녀는 쓰러진 부상자들을 데리고 전장을 벗어나며 소리쳤다.
“조금만 기다리게! 바로 지원군을
불러서 다시 오겠네!”
경계선 너머에 들어온 조사대는 그 녀의 조사대만이 아니었다.
2군의 정예 조사대 2개와 1군의 정예 조사대 4개도 함께 들어와 있 었다.
‘사부님의 병력이라면!’
소환자, 원주민 중에 가장 강력한 정예만 모인 1군.
알렉과 더불어 12기사라 불리는 강력한 강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 는 1군이라면 저 오우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길 수 있을 것 이다.
크윽!”
포르테는 치밀어 오르는 굴욕에 거 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남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면서 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고작 다른 사람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거라니!
그녀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력감에 몸을 떨었다.
‘부디 아무도 죽지 말아주게……
그녀는 자신을 도와준 살바토르 길 드를 떠올리며 간절히 빌었다.
포르테의 조사대가 퇴각한 후.
격렬한 전투가 이뤄졌던 전장에 어 울리지 않는 정적이 흘러내렸다.
“ 갔나?”
유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물었다.
“다 도망친 것 같네.”
영식은 어깨를 으쓱이며 보랏빛 오 우거와 그 옆에 있는 기계 몬스터들 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고 많았어.”
-슈우우우욱.
보랏빛 오우거의 몸에서 흘러나오 던 보랏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철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등이 갈라졌 다.
“후우. 이거 생각한 것보다 힘드네 요.”
괴물의 등에서 나온 것은 보랏빛 머리칼을 가진 눈부신 미녀였다.
루시아 디 리베리에.
신화의 영역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8영웅 중 하나이자 영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여인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루시아 씨. 많 이 불편하셨죠?]
답답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고 있는 루시아를 향해 거대한 오우거가 다 가왔다.
그 오우거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흠. 확실히 불편하긴 하네요.”
루시아는 이제까지 들어가 있던 갑 주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영식이 만들어준 몬스터 외형의 갑
*
이브를 본뜬 틀을 개조 스킬로 조 정하여 만든 갑주였다.
영식이 신경 써서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골격 구조는 인간이나 오우거나 비 슷하다고 하더라도 체형 자체가 너 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165cm의 키를 가진 그녀가 3미터 가 넘는 오우거의 체형으로 움직이 려고 하니 답답하지 않을 리가 없었 다.
마치 무거운 족쇄를 찬 채 몸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족쇄.”
가만히 생각을 이어가던 루시아의 뺨이 발그레 물들었다.
그녀는 몸을 배배 꼬며 나사가 하 나 빠진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 다.
“헤헤헤. 주인님께서 그런 플레이 를 원하신다면…… 노예라는 속성도 잘 살릴 수 있고……. 헤헤. 그건 그것 나름대로 흥분된 달까.”
[...]
이브는 어딘가 굉장히 안쓰럽게 느 껴지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루시 아를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때 루시아의 주먹을 맞고 튕겨져 나갔던 티리아가 침음을 삼키며 자 리에서 일어섰다.
“……루시아 양, 아무리 그래도 너 무 세게 친 거 아닌가?”
박철태는 티리아를 부축하며 눈살 을 찌푸렸다.
“흥, 리얼한 연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에요. 그렇죠? 주인 님?”
영식에게 쪼르르 달려간 루시아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띠며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아, 물론 티리아 씨에 대한 개인 적인 감정이 아주 조? 금 실린 건 사실이지만요.”
티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며 히죽 웃 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 을까요, 영식 씨?”
“음? 뭐가?”
“지금 이 사기극이요. 신종 몬스터 들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이럴 필요 없이 이브 씨들을 보여주면 되 지 않았을까요?”
티리아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거창 했던 영식의 작전을 떠올리며 가볍 게 눈살을 찌푸렸다.
왜 굳이 들키면 모든 것이 물거품 으로 돌아가는 위험한 도박을 연달 아서 하는지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 다.
“확실히 신종 몬스터에 대한 증거 를 보여주는 것만 필요했다면 그렇 게 하는 게 맞았겠지.”
영식은 빈껍데기만 남은 오우거 슈 트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국은 신종
몬스터에 대해서 별다른 위험을 느 끼지 않을 거야.”
중요한 것은 경각심이었다.
다른 세력과 협력해서라도 저 위험 을 제거해야 한다, 라는 경각심.
영식은 제국에게 그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 이렇게 거창한 사기극 을 준비했다.
“위기감을 느끼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
그게 설사 거짓된 것이라고 할지라 도.
“하아……. 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속이는 게 좀 걱정돼요.”
지금 살바토르 길드가 하고 있는 짓은 제국 전체에 사기를 치는 일이 었다.
그들에게 속은 사람의 숫자만 따지 면 백만을 넘었다.
“ 괜찮아.”
영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안 들키면 되니까.”
고래부터 이어져 오던 불변의 진리.
목격자가 없으면 그건 암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