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164화 (164/284)

레벨업 머신 164화

선동과 날조로 승부한다(5)

나라가 뒤집어졌다.

그 표현 이외에 남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헤밀턴 신문사를 통해 퍼져 나간 신종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순식간 에 대륙 전역을 뒤흔들었다.

희생자의 처절한 표정이 담겨져 있 는 사진.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 중 하나인 부성애를 자극하는 사진과 마치 현 장에 직접 있었던 것 같은 데이브의 생생한 기사.

사람들 사이에 신종 몬스터에 대한 짙은 공포와 그 소식을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했던 골드런 길드에 대한 분노가 퍼져 나갔다.

제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신종 몬 스터와 골드런 길드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소문이라는 것은 역병과 같은 것이

다.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걷잡 을 방법은 없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듯 그 몸집을 더했 다.

골드런 길드가 창조주들과 힘을 합 쳐 세상을 지배할 계획을 세우고 있 다거나 새로운 몬스터들이 이 대륙 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등의 근 거 없는 소문들이 중구난방으로 퍼 져 나갔다.

안전 불감증에 걸릴 정도로 오랫동

안 평화가 지속되었던 남부라고 생 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 었다.

제국민들은 이제까지의 평화가 하 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에 질려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 남부 전역에 걸쳐져 일어나니 아르난 제국은 마치 광역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각종 생산력 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소식.

헤밀턴사를 통해 퍼져 나간 단 하 나의 소식이 말 그대로 나라 전체를 뒤집어 버리고 있었다.

아르난 제국의 황성.

포효하는 황금색 사자의 문양이 새 겨진 거대한 집무실 안에 은회색 갑 주를 입은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단발.

짙은 턱수염과 마주하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것처럼 강렬한 눈매.

아르난 제국의 1군을 통솔하고 있 는 맹장, 알렉 볼프강이었다.

황제의 집무실로 들어온 알렉은 절 도 있는 동작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허리를 숙였다.

“ 폐하.”

곱슬기가 가득한 금발.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황금색 눈을 가지고 있는 중년의 사내는 서류 뭉 치를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방 안으 로 들어온 알렉을 향해 시선을 옮겼 다.

“알렉 왔는가.”

제이슨 폰 아르난.

현재 아르난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황제 였다.

“예.”

“다른 두 사령관은 아직인가?”

“황명을 받고 지금 바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머지않아서 도착할 겁니다.”

“그래.”

제이슨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와 은발의 여인이 집 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3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포르테 폰 율리우스.

다른 한 명은 짧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였다.

그 사내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소환자로만 이루어진 정규군.

제국 2군을 맡고 있는 사내의 정 체는 불사 백강현이었다.

고작 60레벨에 불과한 레벨 제한 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이젠 어지간 한 랭커는 꿈도 꿔보기 힘든 경지까 지 레벨 제한을 올린 살아 있는 전 설.

레벨 제한이 낮은 소환자들에게 있 어서 신성시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소환자였다.

“사령관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

제이슨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신종 몬스터에 대한 소문 때 문입니까.”

알렉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 다. 지금 황제가 사령관들에게 비상 소집을 내릴 만한 일은 신종 몬스터 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제이슨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맞네.”

“전 그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 아 직 의심스럽습니다.”

알렉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 다.

신종 몬스터라니.

그것도 금속과 반쯤 몸이 섞인, 더 이상 생물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괴물들이라니.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더 이상 그 정보가 진짜고 아니고 는 중요하지 않아졌네.”

제이슨의 침착한 목소리에 알렉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래, 더 이상 진짜고 아니고는 아 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미 퍼져 버린 이상, 그 진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 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신종 몬스터에 대한 소식이 거짓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더 이상 사람들은 듣지 않을 것이 다.

‘애초에 이쪽도 그 정보가 진짜인 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니.’

제이슨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눈 살을 찌푸렸다.

정보가 퍼지자마자 그는 바로 헤밀 턴 신문사의 데이브를 잡아들여 어 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를 물었다.

그는 콜린이라는 지인을 통해 그

정보를 입수했다고 대답했다.

제이슨은 바로 그 콜린이란 자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골드런과 연이 닿아 있다는 그 콜 린이라는 사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다급히 골드런 길드의 길드장인 한 준만이라는 사내와 연락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단호하게 잡아뗐다.

그것이 책임 회피를 위한 거짓말인 지, 아니면 애초에 정말로 그런 일 이 일어나지 않았던 건지 제국 지휘 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지역에 본점을 두고 있는 길 드다 보니 강제로 잡아들여 심문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보는 이미 남부 전체에 퍼졌는 데, 그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 무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제국 지휘부가 정보의 진위 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 도 점점 제국의 상황은 악화되어 갔 다.

점점 살을 붙여 눈덩이처럼 불어난 소문에 의해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 작했다.

화폐의 가치가 바닥을 침과 동시에

현물의 가격 인플레이션이 미친 듯 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서나 보일 법 한 모습에 제국 지휘부는 골머리를 썩었다.

“아무래도 그대들이 직접 중앙 지 역으로 가서 신종 몬스터에 대한 단 서를 찾아줘야겠네.”

여론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상황에 서 지휘부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 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국민들 사이에 커져 나가 는 신종 몬스터에 대한 불안을 줄이 고 국가를 안정시켜야 했다.

“만약 신종 몬스터가 발견되지 않 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런 경우 최상의 시나리오는 신종 몬스터를 발견한 후 정규군이 그 신 종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흐름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신종 몬스터는 정규 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정규군 에 대한 신뢰도도 올라가고 국민들 의 불안도 말끔하게 해소될 것이다.

여기서는 오히려 신종 몬스터가 발 견되지 않는 것이 더욱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문제지.”

제이슨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각 사령관들은 조사대를 조직하여 북방 경계선 너머로 조사 를 착수해 주게.”

알렉과 백강현, 포르테는 절도 있 는 동작으로 경례했다.

제국 수도 라무스.

대륙 내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이며 제국 고위 관직에 있는 귀족, 관료 들이 모여 있는 도시.

보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지는 화 려한 주택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거 리를 한 청년이 걸어가고 있었다.

-철컹.

“여기는 율리우스 가문의 사유지입 니다. 신분증을 제출해 주십시오.”

저택 앞에선 청년을 가로막으며 두 기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문지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날카

로운 기도를 가지고 있는 기사들이 었다.

“신분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택 안으로의 출입 은 불가합니다.”

기사는 손에 든 창을 위협적으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예전에 이런 물건을 받긴 했 죠.”

저택 앞에 선 청년, 영식은 품속에 서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진 단도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혹시 전에 포르테 님을 직접 만나 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 그때 받았던 물건입니다.”

“귀인이셨군요. 몰라뵈어 죄송합니 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기사들은 정중하게 몸을 비키며 저 택의 문을 열었다.

영식은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가 포르테가 있는 집무실의 문 을 열었다.

“그대는……

집무실에 앉아 조사대에 참여할 인 원에 대해서 고민을 이어가고 있던 포르테는 살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영식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이군. 어떻게 지냈나? 그때 찾던 길드원들은 찾았나?”

포르테는 반갑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예. 길드원들은 무사히 찾았습니 다.”

“다행이로군. 근데 그대는 어느 길 드 소속인가? 그대 정도의 강자라면 보통 길드에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데.”

포르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 다.

“저는 살바토르 길드의 일원입니 다.”

“호오. 이번 동부 전쟁에서 큰 활 약을 했다던 길드가 바로 그대의 길 드였군.”

포르테 또한 필릭스 신문사에서 단 독으로 취재한 동부 전쟁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었다.

살바토르 길드는 전쟁의 승리에 가 장 큰 공을 세운 길드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먼 길을 찾아와 줬는데 미안하지 만…… 지금은 그대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군. 나중에 일이 정리되면 내가 한번 그대의 길 드를 찾아가지.”

포르테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 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영식이 반갑기는 했 지만 지금 그에게 신경을 쓸 수 있 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조사대 때문이십니까?”

“……동부에도 소식이 전해진 모양 이군.”

“황제 폐하께서 직접 발표하신 일 이니까요.”

제이슨은 국민들의 혼란을 잠재우 기 위해 조사대를 편성 중이라는 소 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즉, ‘곧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 해 조사대를 보낼 것이니 안심하고 있어라’라는 의미로 국민들을 진정 시킨 것이다.

그 발표는 실제로 꽤나 효과가 있 어서 국가 경제는 발표 후에 많이 안정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대의 말대로 조사대의 준비 때 문에 여유가 없다. 당장 며칠 후에 바로 북방 경계선 너머로 출발해야 하니까.”

“제가 포르테 씨를 찾아온 이유는 그 조사대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조사대를 만드실 필요는 없습니 다. 신종 몬스터는 실재합니다.”

영식의 말에 포르테는 표정을 굳혔 다.

“……신종 몬스터에 대해 알고 있

는 것이 있나?”

“예. 실제 만난 적도, 그와 싸운 적도 있죠.”

?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한동안 고민을 이어가던 포르테는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군. 잠시만 기다려 주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통신용 수정 구슬을 들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달칵.

밖에서 꽤나 긴 통화를 마치고 온

그녀는 영식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 을 열었다.

“황제 폐하가 자네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

그녀의 말에 영식은 보일 듯 말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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