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63화
선동과 날조로 승부한다(4)
“이건……
“노동자 촌에 있는 가족이 습격당 하는 것을 멀리서 촬영한 것일세.”
“누가 이런 사진을 찍은 거지?”
“아마 골드런 길드의 관리자겠지.”
“크윽……
콜린의 말에 데이브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쿵! 주먹을 움켜쥔 그는 거칠게 테 이블을 내려쳤다.
“자기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죽어나 가는데 사진이나 찍고 있단 말인가!”
사진을 본 것만으로도 생생하게 느 껴지는 소녀의 공포.
그런 소녀를 끌어안은, 노동자로 보이는 사내의 처참하게 일그러진 표정.
그의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사진사의 딜레마지.”
“이런 상황에서 사진이나 찍는 새 끼는 사진사도 아니야!”
데이브는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진사의 딜레마.
위급한, 일 초를 다루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그 처절함을 알린 것인 가 아니면 직접 나서서 도움을 줄 것인가.
그것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수십 개로 갈릴 정도로 민감한 문제 였다.
단순히 도덕성을 잣대로 들이밀어 너는 나쁘고 쟤는 옳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그중에서 데이브는 후자였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처절함이 전해질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사진을 찍기보 다 그들을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 각했다.
‘게다가 이 사진은……
데이브가 화난 이유는 단순히 사람 을 구하지 않고 사진 촬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평생을 언론에 몸을 담은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이 철저한 준비 끝에 찍혔 다는 것을.
즉, 도망치다가 급하게 찍은 것이 아니라 멀리서 관찰하듯 상황을 보 다가 사진을 촬영했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존재는 콜린의 말처럼 골드 런 길드의 관리자밖에 없었다.
“데이브, 진정하고 그 사진에 나오 는 몬스터를 자세히 한번 봐보게.”
“뭐……‘?”
흥분에 휩싸여 있었던 데이브는 콜 린의 말대로 호홉을 가다듬고 사진 을 바라보았다.
“……이 몬스터는 뭐지?”
소녀와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 를 습격하고 있는 몬스터는 그가 처 음 보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오우거는 오우거인데……
마치 오우거를 잡아다 무장이라도 시킨 것 같은 모습.
양팔에 거대한 금속 팔을 달고 있 는 몬스터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 었다.
“이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닐세.”
콜린은 그렇게 말하며 몇 장의 사 진을 더 내밀었다.
그 사진에는 마치 금속과 몸이 섞
인 것 같은 형태를 지닌 몬스터들이 찍혀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몬스터가……
“이게 바로 골드런 길드가 정보를 숨기려고 하는 이유일세.”
“이 몬스터들이?”
“그래. 이 몬스터들은 최근 중앙 지역에 나타났다는 신종 몬스터일 세. 기존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는군. 그 예로 이 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고작 다섯 마리의 몬스터에게 모두 전멸 했다고 하네.”
“뭐라고? 다섯 마리?”
데이브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골드런 길드는 그 막대한 자금력으 로 동부에서 손꼽히는 경비대를 가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강력한 길드의 부대가 고작 다섯 마리의 몬스터에게 쓸려 나갔 다니?
말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설마 골드런 길드에서 이 정보를 숨기고 있는 이유가……
“맞아. 신종 몬스터의 출현 사실이 퍼지면 남부에서도 큰 화제가 되겠 지. 그들은 지금 최고의 돈벌이인 남부 시장에서의 판매율이 떨어지지 않길 원하고 있네.”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데이브는 분노에 차서 몸을 떨었 다.
강력한 신종 몬스터의 출현이라면 남부에서도 큰 화제가 될 만한 일이 었다.
에르노어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몬스터의 소식에 민감하지 않 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콜린 ”
데이브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콜 린을 바라보았다.
“당장 우리 사무실로 오게. 이 사 진을 내일 헤드라인에 걸리게 해주 지.”
그는 마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언론인으로서 잊고 있었던 사명감 이 그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피어 올랐다.
특종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소식은, 이 처참한 사건은 모든 사람이 알고 공유하며 분노해야 할 만한 일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 구나.’
데이브는 사진 속에 울부짖고 있는 이름 모를 소녀를 보며 거칠게 입술 을 깨물었다.
이 소녀가, 이 소녀를 지키고 있는 사내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 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이 짓이겨지는 것 같은 기분이 었다.
이런 처참한 죽음이 비밀리에 감춰 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나라가 뒤집어질 정도로 엄청난 걸 써주지.”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벌벌 두려움 에 떨 만큼 실감나는 기사.
총괄 편집장이 되면서 직접 기사를 쓰는 것에는 오래 손을 뗐지만 그의 실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엿이나 먹어라, 골드런.’
그는 술잔 안에 든 얼음을 바닥에 버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골드런이 그렇게 걱정하는 기계의 판매량은 내일 이후 바닥으로 곤두 박질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_ 탕.
데이브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콜린 혼자 방에 남게 되었다.
콜린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 을 살피다가 품속에서 수정 구슬을 하나 꺼냈다.
“아?…”. 저기?…"
[예, 말씀하세요.]
수정 구슬을 통해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씀하신 대로 모두 얘기했습니
[하하. 감사합니다. 약속했던 보상 은 바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콜린은 헤벌쭉한 미소를 지으며 연 신 고개를 주억였다.
[감사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수정 구슬을 통해 청년의 밝은 웃 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좋은 일에는 그만한 보상이 따르 는 법이죠.]
?
콜린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손에 쥔 수정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청년이 말한 ‘좋은 일’을 자 신이 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아주 자극적인 기사군요.”
한성은 헤밀턴 신문사에서 오늘 막 배포된 신문을 읽으며 말했다.
신문의 거의 모든 내용이 신종 몬 스터에 습격당한 마을에 대한 얘기 로 가득했다.
“기대했던 대로 잘 해주고 있군 요.”
영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은 그런 영식에게 시선을 돌리 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며칠 전 영식과의 대화를 머 릿속에 떠올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성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 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아르난 제국에 발전해 있는 언론 을 이용하는 겁니다. 국민들에게 신 종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흘려 두려 움을 가중시키는 거죠. 국가에서 나 서서 조사해야 할 정도로.”
“ o w
M..?
영식의 말에 한성은 짧은 침음을 삼켰다.
현재 에르노어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에서 평민의 영향력은 무척 낮 았다.
그들에게는 투표권이라는 개념 자 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표권이 없는 국민은 그저 국력을 유지시켜 주는 개돼지에 불과했다.
노예나 다름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르난 제국이라면.’
아르난 제국이 이만큼 강대한 세력 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강력한 힘을 가진 원주민이 많기 때 문만이 아니었다.
아르난 제국은 황제부터 시작해서 재상, 고위 귀족과 장군들까지 모두 유능하기로 유명했다.
우선 황제 제이슨 폰 아르난부터 굉장한 호인으로 제국의 황제에 걸 맞은 인품을 가졌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그의 후계인 제이드 폰 아 르난과 1군 사령관으로서 재상과 비 슷할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알 렉 볼프강 또한 인품과 실력 모두 출중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일단 제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 는 지휘부가 워낙 유능하다 보니 정 규군의 질 또한 타국에 비할 수 없 을 정도로 뛰어났다.
단순히 군사력만 강한 것도 아니었 다. 국민들의 평균 소득도 타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삶 의 질 또한 상당히 높았다.
골드런 길드에서 괜히 남부로 진출 하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이 아니었 다.
아르난 제국의 시장은 마르시아,
엘노트, 익시스 왕국 세 개를 다 합 친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이상적인 국가, 라는 표현이 부족 하지 않을 정도로 흠잡을 곳을 찾을 수가 없는 국가가 바로 아르난 제국 이다.
‘그런 국가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묵살하지는 않을 거야.’
역사상 국민의 목소리를 완전히 묵 살한 채 노예처럼 부리는 국가가 강 대했던 적은 없었다.
있다고 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현재 아르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제이슨 황제가 헨드릭 왕처럼 무능 한 것도 아니었으니 국민들 사이에 신종 몬스터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움직임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언론 또한 발달해 있으니 정보를 퍼트리는 것이 어렵지도 않을 것이 다.
“하지만……
한성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 다.
“그 계획은…… 실패할 겁니다.”
“흠.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요?”
“신종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흘린 다고 해도 국민들이 영식 씨가 생각 하는 대로 엄청난 공포에 떨지는 않 을 겁니다. 아르난 제국의 평화 는……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거든 요.”
아르난 제국은 소환자들이 오기 전, 유일하게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 낸 국가였다.
직접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이야 신종 몬스터의 출현에 기겁을 하겠 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래 지속된 평화가 그들에게 안전 불감증을 가져다준 것이다.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냥 신종 몬스터가 나타났다, 라는 정보에는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겠 죠.”
w..r하
예상치 못한 영식의 대답에 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식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 다.
“어디 보자…… 아, 한국의 상황을 예로 드는 것이 좋겠군요.”
“한국의 상황이요?”
“예. 지속된 평화로 안전 불감증이
걸린 대표적인 국가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영식의 말에 한성은 굳게 입을 다 물었다.
반박할 말을 찾기가 어려운 사실이 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신무기를 개발 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진다고 합시 다.”
영식은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물론, 엄청난 이슈가 되겠죠. 각종 포털 사이트와 SNS가 그 소식으로 도배될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들이 그 소식에 엄청난 공포에 떨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성 씨의 말대로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 때문 에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부정하기 힘든 말.
실제 한국에서 몇 번이나 검중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신무기에 의해 직 접적인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는 소 식이 들린다면 어떨까요?”
“……나라가 뒤집어지겠죠.”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필요도
없었다.
2?3명이 그 무기에 죽었다는 소식 만 퍼져도 혼란의 정도는 비교할 수 도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피해가 일어난 것과 단순 한 위험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비교 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어마어마 한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 보다 감정적인 공유를 통해 더 격렬 하게 동요하기 때문이었다.
나도 피해자들처럼 죽을 수 있다, 라는 공포가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 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할 생각입니 다.”
영식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이런 방법까지 쓰셔야
했습니까?”
영식과의 회상을 마친 한성이 그에 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이 언론사 에 사진만 보내더라도 신종 몬스터 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퍼질 텐데 요.”
“뭐,그러긴 하겠죠. 소식이 소식이 니까요.”
영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가 이 사 진을 찍었나’라는 의문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그를 통 해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게 밝혀질 수도 있어요.”
영식은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 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 보도해 주는 기자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사진에 담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해서 전 해주면 훨씬 신빙성이 생기게 되 죠.”
“……그렇긴 합니다만.”
영식은 헤밀턴 신문사의 헤드라인 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기사 아닙니 까? 사진과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제가 직접 그곳에 있었던 것처 럼 느껴질 정도잖아요.”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 어 졌다.
“이런 기사는 어지간해서는 쓰기 힘들겠죠. 데이브처럼 정의감에 불 타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합 니다.”
때로 정의감은 물질적인 것 이상으 로 행동의 동력이 됐다.
데이브에게 어떤 거금을 줘서 매수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감정’이 느 껴지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니까.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건 참 이용 하기 좋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영식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성 에게 물었다.
한성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
다.
영식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그럼 다음 계획을 준비해 보 죠.”
“……다음엔 또 무슨 계획을 생각 중이신 겁니까.”
한성은 살짝 질린다는 표정으로 영 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따라와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는 미리 연락을 듣고 왔는지
이브가 도착해 있었다.
“부탁한 건 잘 나왔어?”
[예. 그…… 일단 제 모습으로 틀 을 만들긴 했는데 이건 어디다가 쓰 시려고...]
이브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인형 탈을 만들어볼 생각이야.”
[인형 탈이요……?]
이브는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