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162화 (162/284)

레벨업 머신 162화

선동과 날조로 승부한다(3)

“컷!”

어딘가 화난 것 같은 아라의 목소 리가 울려 퍼졌다.

“채린아! 조금 더 공포에 질린 표 정을 지어야지! 그리고 길수 아저 씨! 표정이 너무 딱딱해요!”

≪으

"X.?

아라의 호통에 채린과 길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지금 둘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채린과 길수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법으로 얼굴을 변장한 것에 더해 서 각종 소품, 화장을 통해 아예 다 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둘의 모습은 한국인이 아닌 영락없이 서구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원주민들처럼 보였다.

“이브 씨도 조금 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외쳐주세요.”

[사진을 찍는 것 아니었습니까? 굳 이 포효를 내지를 필요가…….]

“진짜 포효를 내지르는 것과 그냥 시늉만 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요.”

아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이브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라 양……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진행하는 게……

“아뇨! 이 정도로는 감정이 전해지 지 않는다니까요!”

아라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그녀에게 시달 렸던 길수는 간절한 표정으로 반사 판을 들고 있는 영식에게 고개를 돌 렸다.

영식은 굳게 입을 다문 채 포기하 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그의 ‘계획’에 필요한 사진을 촬영하는 역할은 그가 맡으려고 했 다.

하지만 그가 찍은 사진을 본 아라 가 이런 사진으로는 전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며 자신이 직접 촬영하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프로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다.

어떤 사진이 조금 더 사람의 마음 을 움직일 수 있는지 그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 다.

물론 그녀가 기자도 아니고 촬영하 는 쪽이 아니라 촬영당하는 쪽이었 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 긴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찍 혀야’ 조금 더 잘 찍히는가에 대한 것은 그녀가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 다.

“아라 언니…… 힘들어……

항상 밝은 미소를 보이는 채린조차 탈진한 표정으로 애처롭게 말했다.

레벨이 높은 소환자인 만큼 마법사 클래스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보다 훨 씬 더 높은 체력을 가지고 있는 그 녀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에 정신 적으로 지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 다.

“표정에서 처절한 감정이 느껴지는 게 중요해. 단순히 얼굴을 일그러트 린다고 다가 아니야.”

아라는 울상을 짓고 있는 채린에게

다가가 직접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 어 보였다.

모델이 아닌 배우의 일을 하고 있 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실 감나는 표정.

“자신을 지켜주는 아버지를 걱정하 면서도,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을 느 끼는 그런 표정으로 부탁해. 자, 쉴 시간은 없어!”

“후엥……. 뭔 말인지 모르겠 어……

채린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 다.

그렇게 때아닌 사진 촬영은 다음

날 황혼이 내려앉을 때까지 이어졌 다.

“젠장! ‘아라넬 백작 부인의 외도 현장 포착?’ 이딴 걸 헤드라인 기사 라고 가져왔어?!”

아르난 제국의 수도 라무스.

‘헤밀턴 신문사’라고 적힌 간판이 걸린 4층 건물에 노성이 울려 퍼졌 다.

노성의 주인은 갈색 더벅머리를 가

지고 있는 중년 사내였다.

퀭한 눈에 짙은 다크서클, 초췌해 보이는 것이 당연한 외모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나는 신경질적인 눈빛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데이브 맥스웰.

헤밀턴 신문사의 3인자로 총괄 편 집장을 맡고 있는 사내였다.

데이브는 자신의 앞에서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사원에게 손에 쥔 종이 뭉치를 집어 던졌다.

종이 뭉치에는 40대를 넘어가고 있는 아라넬 백작 부인이 잘생긴 청 년과 팔짱을 낀 채 한적한 강가를 걷고 있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사진이 들어간 기사가 얼마나 인 쇄비가 개같이 나오는지 알고 있겠 지?”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딴 발정 난 아줌마가 엉 덩이를 흔드는 사진을 헤드라인으로 쓰겠다고? 제정신이야?”

“죄송합니다!”

사원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그런 그를 주변 사람들이 불쌍하다 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데이브에게 깨지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아주 흔한 일 이었다.

“이런 어찌 돼도 상관없는 가십거 리 말고 조금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삿거리 없어?! 엉? 이런 기사를 가져올 거면 삼류 신문사에나 가란 말이야!”

“최근에 별다른 사건이 없다 보 니……

“제길! 얼마 전에 필릭스에서는 동 부 지역에 있었던 대규모 전쟁에 대 해서 단독 기사를 냈잖아! 아바돈 길드의 야욕과 그에 맞서 싸우는 동 부 연합! 그런 기사가 필요하다고!”

필릭스 신문사는 헤밀턴 신문사와 더불어 아르난 제국 내에서 가장 큰 언론사였다.

하지만 필릭스 신문사는 지난번 동 부에 있었던 아바돈 길드와 레비아 탄 길드의 전쟁을 단독 보도하면서 기세가 한층 더 높아졌다.

반면 헤밀턴 신문사는 가십거리에 만 집중하는 삼류 언론사처럼 취급 받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브 입장에서는 초조해질 수밖 에 없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사원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리 꺼져! 너희들 오늘 모두 야 근이다! 집에 돌아갈 생각 하지 마!”

데이브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원들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데이브는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후우……. 제기랄.”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어 문 그는

답답하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 다.

아라넬 백작 부인의 외도 현장 발 견.

내일 헤드라인으로 쓰일 그 기사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이딴 기사나 내보내려고 기자가 된 게 아니란 말이다.’

그에게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 이, 신념이 있었다.

이런 아무래도 좋을 소식을 사람들 에게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데이브는 쯧, 하고 혀를 차며 그가 즐겨 찾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바에 앉아 독한 술을 주문한 그는 얼음이 들어 있는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후우. 냉장고라는 물건이 신기하 긴 하군. 얼음을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다니 말이야.”

골드런 길드를 통해 보급된 냉장고 는 남부 요식업에 어마어마한 영향 을 미쳤다.

고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술에 얼음을 타서 마신다는 것은 어지간 히 고급 술집을 가지 않고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어 딜 가더라도 얼음 제공은 기본이 되 었다.

‘오히려 이런 물건들이 지금 남부 의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버 렸지만.’

생활의 편리함과 질적인 상승은 필 연적으로 나태함을 불러왔다.

편한 만큼 지금 상황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다.

데이브는 이런 생활의 편리함이 독 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웅? 아아, 당신이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냐.”

빈 술잔을 채워주던 바텐더가 그를 향해 물었다.

데이브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고, 최근에 뭐 재미있는 소식 들린 건 없나?”

평소라면 술집에 떠도는, 헛소문에 가까운 소식들은 취급도 하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은 그런 헛소문이라도 듣고 싶은 기분이었다.

“음……. 재미있는 소식일지는 모 르겠지만 흥미로운 얘기는 들어봤네 요.”

“흥미로운 얘기?”

“예. 그…… 대륙 서부 있지 않습 니까? 그곳에 지금 사이비 종교가 들끓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건 굳이 특별한 얘기도 아 니잖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들이켰다.

서부는 지금 완전히 망가졌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제는 무너졌고, 국가는 존재하지 도 않았다.

그곳은 오로지 강한 힘을 가진 자 에 의한 극도의 강자존으로 변해 버 린 지 오래였다.

사이비 종교가 생기기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으니 그곳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번에는 꽤나 크다고 들었어요. 이름이…… 창세교였던가? 아마 그 런 이름이었을 겁니다.”

“이름 하나는 거창하군.”

데이브는 관심 없다는 말투로 시선 을 옮겼다.

그때, 그의 옆에 한 사내가 다가와 앉았다.

“오랜만이군, 데이브.”

“콜린?”

콜린은 데이브의 오랜 지인이었다.

헤밀턴이나 필릭스에 비해서는 한 단계 떨어지는, 로크 신문사의 편집 장으로 일하고 있는 사내였다.

“여긴 무슨 일이지?”

“나도 술 한잔하러 왔지 뭐.”

콜린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옆자리 에 앉았다.

“골드런 길드가 신상품을 내주지 않아서 할 일도 없는가?”

데이브는 조롱하듯 그에게 물었다.

콜린이 있는 로크 신문사는 골드런

길드와 강한 유착 관계를 가지고 있 으며 그들의 상품을 홍보해 주는 일 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신문사였 다.

어떻게 보면 더 이상 언론으로서 가치를 잃은, 유통사나 다름없는 삼 류 신문사였다.

그의 조롱에 콜린은 굳게 입을 다 물었다.

그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어 있었 다.

“데이브.”

“왜?”

“……엄청난 특종을 하나 전해줄 테니 헤밀턴에 한자리 만들어줄 수 있나?”

“……무슨 일이야?”

심각한 그의 말투에 데이브는 눈살 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아마 이 정보가 퍼지게 되면 난 로크에 있을 수 없을 걸세.”

데이브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크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삼류 언론사에 불과했지만 콜린은 그렇게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특종이라고 말했을 정도면 보 통 소식이 아닐 것이다.

“……편집장 자리 하나 마련해 주 지. 이번에 안 그래도 병신 같은 헤 드라인을 가져온 놈을 자를 생각이 었거든.”

“하하. 그 말을 들으니 자네 밑에 서 일하는 게 좀 긴장되는군.”

콜린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 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선 자리를 좀 이동하지.”

데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집에 있는 룸 안으로 들어갔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흐르는 방이 었다.

“그래, 그 특종이란 게 뭐지?”

“로크가 골드런과 많이 연관되어 있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걸 모르는 놈은 제국 내에 없겠 지.”

“……이번에 골드런에서 필사적으 로 숨기려고 하는 정보를 하나 입수 했네.”

“골드런에서……?”

데이브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뭐 골드런 제품이 폭발했거나 그

런 소식인가?”

“아니, 그게 아니야.”

콜린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 로 말을 이었다.

“……자네 동부 북방 경계선 근처 에 골드런 길드가 운영하고 있는 마 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뭐…… 알고 있지.”

골드런 길드의 생산량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마을 단위의 노동자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이번에 그 마을이 정체불명의 몬 스터 떼의 습격으로 사라졌다고 들 었네.”

“호오.”

“골드런 길드는 이 사실을 필사적 으로 은폐하려고 하고 있지.”

“……설마.”

데이브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 다.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이번 일로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을 원하 지 않는 거지.”

골드런 길드에서 생산하는 ‘기계’ 라는 물건은 대부분 생활용품이었 다.

그리고 당연히 생활용품이라는 것

은 전시 상황에 가까워질수록 그 가 치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전시 상황이 되면 사치를 위한 생 활용품보다는 군수물자나 식량의 가 격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군.”

데이브는 역겹다는 듯이 표정을 일 그러트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자신의 길드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들이 몬스터의 습격에 죽었는데도 떨어질 판매량을 걱정하며 정보를 숨기는 데 급급한 모습.

그가 혐오하는 상인의 모습을 적나 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골드런 길드의 주 요 수익은 남부에서 나오는 게 아닌 가? 남부도 아니고 동부에서 몬스터 습격으로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것 은 흔한 일일 텐데.”

“단순히 몬스터의 습격이었다면 그 들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겠지.”

콜린은 그렇게 말하며 한 장의 사 진을 내밀었다.

“이건?

사진을 본 데이브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양손이 거대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오우거가 검은색 단발의 소녀 와 그를 지키려는 중년 사내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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