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59화
완성된 코어(2)
“이건 또 뭔.
영식은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두 리 번거 렸다.
[초, 촌장님! 그 괴물입니다! 괴물 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양 이마에 뿔과 같은 기다란 안테
나를 달고 있는 미노타우르스가 이 브에게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들은 이브의 표정이 딱 딱하게 굳었다. 이브는 다급한 발걸 음으로 영식에게 다가왔다.
[어, 어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괴 물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괴물?”
[전에 공장을 탈출할 때 만났던 괴 물입니다! 어서 이곳에서 도망쳐야 해요!]
영식은 다급한 이브의 외침에 눈살 을 찌푸렸다.
‘공장 주변을 지키는 가디언인가.’
만약 그렇다면 무작정 도망칠 필요 는 없을 수도 있었다.
락테온의 코어를 얻으며 슈트의 성 능이 대폭적으로 향상됐다.
어지간한 강적이라고 해도 슈트를 입은 그의 앞에 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의 옆에는 루시아가 있었다.
치트키나 다름없는 힘을 가지고 있 는 경이로운 존재가.
“……주인님.”
루시아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영식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가 진심으로 ‘긴장’한 표 정을 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루시아의 말이 이어졌다.
“빨리, 도망쳐야 할 것 같아요.”
“도망쳐야 한다고?”
“예. 지금 저희에게 다가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라이트 세이버의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를
참살하고 S급 보스 몬스터를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사냥했던 그녀가 지금 공포에 떨고 있었다.
‘대체 그 괴물이라는 게 뭐길래?’
루시아가 공포에 떨 만한 존재라 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정도의 가디언이 존재한다는 것이 쉽게 상 상되지 않았다.
‘창조주 본인이라도 되는 건가 ...
기계 몬스터의 기억 속에 남아 있 었던 창조주가 이곳에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 다.
지금 살바토르 길드가 아무리 강력 하다고 하여도 창조주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여러분! 꾸물거릴 틈이 없습니다! 어서 광산이 있는 쪽으로 도망쳐야 해요!]
몸을 돌려 입구로 나가고 있던 이 브가 소리쳤다.
영식을 비롯한 길드원들은 이브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영식은 이동 속도가 느린 아라를 안아 들고 부스트를 사용해 공장의 입구로 빠져나갔다.
그의 뒤를 이어 루시아가 채린을, 티리아가 한태영을 안아 든 채 다급 히 몸을 움직였다.
“어디에 괴물이 있다는 거야?”
밖으로 나온 유나는 쌍식을 양손에 움켜쥔 채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는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 로 드넓은 황무지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루시아, 그놈이 어느 쪽에서 오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으……. 저, 저쪽이에요. 저쪽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요.”
루시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영식은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 개를 돌렸다.
-지이이잉.
그의 눈에서 카메라 렌즈가 돌아가 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가리 킨 방향으로 시야가 확대되기 시작 했다.
‘저건?
검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식은 가늘게 눈을 뜨며 그 점에 정신을 집중했다.
-치익.
-확대 영상을 시각 정보로 출력합 니다. 화질을 보정합니다.
그 말과 함께 검은 점이 확대되었 다.
영식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 다.
그는 어째서 이브를 비롯한 기계 몬스터들이 공포에 떨었는지, 루시 아가 왜 도망치자고 말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피부를 덮은 붉은색 비늘.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날개.
거대한 육체를 뚫고 나와 있는 수 십 종류의 무기들.
수십 종류의 기계가 섞여 있었지만 그 존재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 았다.
‘드래곤.’
오래전 대륙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알려진 신화 속의 괴물.
100미터에 달하는, 생물이라고 부 르기도 어색한 어처구니없는 크기의
육체와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조 차 나지 않는 단단한 비늘.
거구에서 나오는 무식한 파괴력과 ‘마법의 종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 도로 강력한 마법.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무한에 가까운 마력.
그리고.
드래곤 브래스.
닿는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소멸 시키는, 드래곤만이 사용 가능한 강 력한 공격.
레크라스가 생명을 쥐어 짜내며 내 뱉은 브래스도 진짜 드래곤의 브래 스 앞에서는 하찮았다.
멸망이라는 단어를 형상화시켜 놓 은 것 같은 괴물.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라는 존재였 다.
-치익.
-현 보안 레벨로 대처 불가능한 존재를 식별하였습니다.
-보안 레벨을 강제로 해방시키겠 습니까?
“이건 또 무슨……
라이트 실드 길드를 상대했을 때 이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강 제 해방’의 메시지.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지 ‘본’ 것만으로 강제 해방의 메시지가 떠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카르가스가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 는 증거였다.
‘제길.’
영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강제 해방을 할 수는 없었다. 라이 트 실드 길드를 상대하는 것만으로 도 영구적으로 레벨이 감소했을 정 도였다.
카르가스를 상대하기 위해 해방을 한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대체 드래곤이 어디서……?’
영식은 거칠게 입술을 깨물며 붉은 색 비늘을 가진 거대한 용을 바라보 았다.
‘ 설마.’
레크라스의 블랙큐브를 해석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의 기억 속에 나타난 붉은 형상 의 존재는 레크라스에게 카르가스의 위치를 묻고 있었다.
‘결국 카르가스의 위치를 알아낸 건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
다.
괴물들의 창조주는 카르가스를 찾 아낸 것도 모자라 그를 개조하여 기 계 몬스터로 만들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드래곤에 기계의 힘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길 수 없어.’
루시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나 오 버테크놀로지의 힘을 받은 드래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드래곤을 잡으려면 동부 전체가 연합하여 그와 싸워야 했다.
아니, 동부 전체가 달려든다고 해 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주인님! 어서!”
초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루 시아가 영식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갈 시간은 없었다.
영식은 몸을 돌려 공장이 있던 지 역에서 벗어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살바토 르 길드는 이브와 그의 주민들이 머 물고 있는 광산으로 돌아왔다.
광산에 도착하자 이브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아, 하아... 이곳까지 도망치 면 아마 따라오지 않을 겁니다. 전 에도 그랬으니까요.]
“후우. 지금은 전과 같은 상황이 아니잖아.”
영식은 안아 들고 있던 아라를 바 닥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티 리아.”
“하아, 하아. 예, 영식 씨.”
“이번 원정은 중단하고 그만 돌아 가자.”
카르가스라는 괴물을 본 이상 계속 해서 중앙 지역을 탐사할 수는 없었 다.
잉그리움 제국의 황성에 살짝 미련 이 남기도 했지만 전멸을 감수하며 그곳으로 향할 이유는 없었다.
“……예. 안 그래도 원정을 더 할 생각은 없었어요.”
이번만큼은 영식이 원정을 계속하 자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었던 그녀 였다.
“대체 그 괴물이란 게 뭐기에 그러 는 거야?”
카르가스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유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용, 이었어.”
“용‘?”
“그래, 드래곤.”
“자, 잠깐?! 드래곤이 현존한단 말 이야?”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그의 말에 유나는 굳게 입을 다물 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와서 드래곤이 등장했다고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장르적으로 보면 그게 맞기도 하고.’
오히려 영식과 기계 몬스터들의 존 재가 더 비상식적이었다.
[그 과물의 정체는 드래곤이었군요?….]
“모르고서 도망쳤던 거야?”
[전에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에서 계속해서 공격이 날아와서요. 하늘 을 날 수 있는 몬스터의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드래곤이라고는 생 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괴물이라고만 불 렀던 거군.”
영식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고개
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에게 다가온 루시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죄송해?”
“주인님의 적을 죽이지 못했어요. 주인님의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어 떤 적이라도,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제가 싸워 이겨야 하는데…… 그녀는 라이트 세이버의 검자루를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위해서 영식이 직접 무기까 지 만들어줬는데 무기력하게 도망쳤 다는 사실이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내가 있을 자리가 사라져 버려.’
그녀는 그런 생각까지 하며 거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영식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 리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상대 하지 못했을 괴물이야.”
“하지만……
“루시아의 도움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것만으로 충분해.”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살바토르 길
드는 기계 몬스터 무리를 뚫고 이브 와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헤헷. 감사합니다, 주인님.”
루시아는 영식의 말에 헤실헤실 미 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 뺨을 비볐 다.
“크흠.”
그 모습을 보고 상당히 불편한 표 정을 짓고 있던 티리아가 억지스러 운 헛기침을 하며 영식에게 다가왔 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 요, 영식 씨?”
“일단 돌아가야지. 그다음에는
영식의 말끝이 흐려졌다.
돌아간 다음.
그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니 아득한 기분이 느껴졌다.
‘동부 연합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고 카르가스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이 그의 머릿속에 피어올 랐다.
만약 카르가스를 죽일 수 없다면 동부 연합을 결성하는 것 자체의 의 미가 없어졌다.
사실상 북방 정벌 계획이 좌절되는
거니까.
‘일단 이번 원정으로 시간은 좀 번 것 같은데.’
이번 원정의 가장 큰 수확은 락테 온의 코어를 완성했다는 것과 기계 몬스터를 만들어내던 공장을 정지시 켰다는 점이었다.
창조주의 계획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이번 일로 그 계 획이 늦춰진 것은 확실하리라.
“……남부, 서부의 힘까지 하나로 통합시켜야 할 것 같아.”
동부 하나의 힘으로는 북방 정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확실 시된 상황이었다.
카르가스 하나만 하더라도 동부 연 합 전체가 달려들어서 잡을 수 있을 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괴물이었다.
거기에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짐 작도 가지 않는 기계 몬스터, 그리 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괴물의 창 조주들까지 상대할 것을 생각한다면 대륙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 고서는 답이 없었다.
“두 세력을 모두요?”
“동부 연합만으로는…… 도저히 북 방 정벌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 이지 않으니까.”
그의 말에 길드원들은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남부와 서부의 협력을 얻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한성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그 방법에 대해서는 돌아가 서 생각하죠.”
광산까지 도망쳐 오는 동안 꽤나 체력 소모가 심했지만 쉬고 있을 시 간은 없었다.
영식은 한시라도 빨리 중앙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잠시만요.]
“웅……?”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돌아가려고 하는 살바토르 길드를 이브가 붙잡았다.
그는 간절함이 담긴 눈빛으로 영식 을 바라보았다.
[저희를?…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