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102화
사업 준비(5)
“……그래서 보상 금액의 일부분을 토지로 받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레비아탄 길드의 본관. 산더미 같 은 서류가 쌓여 있는 사무실 안에 박시아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 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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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제조 장치의 설치가 완료되 었습니다. ‘냉장고’ 제조에 필요한 재료의 50%를 넣으면 자동으로 냉 장고를 제조합니다.]
“와아……
“순식간에 만들어졌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나와 한성은 탄성을 내질렀다. 허공에 뭉 쳐진 푸른 가루들은 길이가 3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기계로 변해 있었다.
자동 제조 장치를 본 한성은 신가 하다는 듯이 거대한 기계를 이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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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둘러보았다.
“저는 공장이라고 하셔서 레일에 사람들이 서서 기계를 만드는 줄 알 았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네 요?”
“하하. 만약 그랬다면 훨씬 일이 복잡해졌겠죠.”
영식은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 했다.
그가 이번에 만든 ‘자동 제조 장 치’는 엄밀히 말하면 공장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부품을 하나하나를 대량 생산한 후, 조립을 하여 완성품을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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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공장과 달리 자동 제조 장 치는 영식이 추출로 만들어낸 금속 재료들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설정 된 품목을 만들어냈다.
‘애초에 스킬의 도움을 받지 않으 면 현대 물품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 겠지.’
영식은 자동 제조 장치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실제로 냉장고를 만든다고 하면 금 속 재료 이외에 훨씬 더 많은 재료 가 필요했다. 특히 냉장고의 핵심이 되는 프레온 가스 같은 경우 지금 에르노어 대륙에서 구할 방법 자체 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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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자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영식 이외에는 이런 물품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없는 것이다.
“이곳에 재료 아이템을 넣기만 하 면 자동으로 가동해서 냉장고를 만 들어냅니다. 인건비도 따로 필요 없 는 거죠.”
“호오…… 그렇군요.”
“그리고 냉장고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도 훨씬 감소하니 원가절감도 크게 되고요.”
“영식아! 이 커다란 것도 배터리로 움직이는 거야?”
유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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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었다. 영식은 손을 뻗어 유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뜨거운 눈빛으 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은 질문이야.”
“어? 응?”
“자동 제어 장치는 내장 배터리로 가동되고 있어. 하지만 저런 거대한 물건을 돌리는 배터리다 보니 충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지.”
“그, 그래서?”
영식은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자 동 제조 장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 다.
“저 옆에 보면 소형 발전기가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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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삼 일에 한 번 정도는 저것을 가동시켜서 내장 배터리를 가득 채 워야 해.”
“헤에. 그렇구나.”
유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발전 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발전기 를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 이었다.
“발전기는 어떻게 해야 전기를 만 들어내는데? 역시 태양빛이나 바람 으로 만들어내는 거야?”
“아니. 이건 화력으로 전기를 만들 어내는 발전기야.”
“흐응. 신기하네. 석탄을 넣고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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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면되는 건가?”
유나는 눈을 반짝이며 발전기를 쓰 다듬었다. 그녀에게 다가온 영식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할게.”
영식은 그녀의 손을 발전기 안에 집어넣었다.
“아, 너무 화력을 세게 하면 고장 나 버리니까 적당히 힘 조절을 해야 해.”
“야! 설마 날 석탄 대용으로 사용 할 생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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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조금이라도 아끼는 게 좋지. 안 그렇습니까, 한성 씨?”
“지당한 말씀입니다.”
유나는 죽이 척척 맞는 영식과 한 성을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기껏 랭커가 돼서 처음 하는 일이 이런 거라니…… 그녀는 숨길 수 없는 자괴감을 느 끼며 발전기 안에 집어넣은 손에 마 력을 흘려보냈다. 붉은 화염이 그녀 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배터리 충전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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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믿고 맡길게 유나야.”
“뭐? 여기 나 혼자 두고 갈 생각 이야?”
영식은 애탄 유나의 외침에도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야! 이 나쁜 놈아!”
영식은 유나의 외침을 귓등으로 흘 려들으며 길드하우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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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이제 골드런 길드 관계자만 만나면 되겠네.”
영식은 살짝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창고를 바라보았다. 자동 제조 장치 를 가동시킨 지 3일. 창고에는 꽤나 많은 물량의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쌓여 있었다.
이제는 골드런 길드원들을 만나 유 통을 부탁하기만 하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돈이 쌓이면……
영식은 거창하게 사업까지 벌려가 면서까지 돈을 모으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떠올리며 날카롭게 눈을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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냈다.
“연락이 올 때까지 좀 쉬고 있을 까.”
던전 공략이 끝난 이후 처음으로 여유 시간이 생긴 영식은 방 안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피로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몸이라고는 하나 며 칠간 쉴 틈도 없이 사업의 준비를 했던지라 피로가 만만치 않았다.
‘한 시간만 잘까.’
영식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눈 을 감았다.
그때 였다.
-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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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식은 침대에서 일어나 며 말했다.
“티 리아야?”
이렇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것은 티리아밖에 없다고 생각한 영 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었 다.
“..둘 사이가 많이 좋아졌나 봐?
바로 이름이 나오는 것보니.”
“아라였구나.”
그의 방문을 두들긴 것은 긴 흑발 을 가지고 있는 미녀, 서아라였다. 그녀는 바로 티리아의 이름을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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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의 물음에 아라는 홈칫 몸을 떨 며 고개를 숙였다. 묘한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음. 일단 안으로 들어와.”
영식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아라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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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영식은 그녀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번에 던전 공략에서 있었던 일, 말인데……
a 으 ≪
“O".
“……미안해.”
아라는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어떤 일에 ‘미안하다’고 말 하는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 다.
“그때 나한테 했던 말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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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
...흐*
“그거라면 괜찮아. 상황이 상황이 었으니까.”
“하, 하지만!”
아라는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 었다. 그녀의 손이 영식의 손을 붙 잡았다.
몸이 기계로 되어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온기가 그 녀의 손을 타고 전해졌다.
“미안, 해.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해. 감정이 없다고 해서…… 미안해.”
이제까지 참고 있었던 듯, 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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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며 말했다.
결국 그녀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 물이 흘러내렸다.
영식은 그녀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 소를 지었다.
솔직히 그때 그녀의 말에 아무런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며 거짓 말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음식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있었다.
고통을 느낄 수도 있었고, 화를 낼 수도 있었다. 여자를 품고 싶다는 욕구가 있고, 감정을 교류하고 싶다 는 욕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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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간이 아니 었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 질적인 존재였다.
그 차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 이 없는 영식에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
“……정말, 미안해.”
아라의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영 식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계속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영 식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괜찮아. 뭐, 그리고 사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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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틀린 말이 아니라니?”
“내가 인간이 아닌 건 맞는 말이잖 아.”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아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는걸.”
“음? 뭐가?”
“영식이 네가 인간이 아니라도, 상 관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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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는 굳은 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영식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말이라도 고마워.”
“마,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야!”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 리 쳤다.
꿀꺽.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침이 삼 켜졌다.
“말로만 그러지 않는다는 거…… 증명, 해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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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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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희 쪽에서도 나쁘지 않 은 제안이네요. 어차피 이쪽 토지 중에 남는 곳은 많으니까요.”
레비아탄 길드가 위치해 있는 곳은 북방경계선 근처. 정신이 나가지 않 은 이상 이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 람이 많을 리가 없었다.
“그럼 토지의 대금을 제외한 금액 은 일주일 내로 바로 지급해드리겠 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한 가 지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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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런 길드와 직접 만나서 얘기 를 나누고 싶습니다.”
“골드런 길드요? 갑자기 골드런 길 드는 왜……
“살 물건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할 얘기들이 좀 있어서요.”
“음. 알겠습니다. 골드런 길드 부길 드마스터에게 따로 연락해두겠습니 다.”
골드런 길드는 레비아탄 길드가 원 정을 통해서 얻은 몬스터의 사체나 드롭 아이템을 좋은 값에 사들여주 고 있는 길드였기 때문에 약속을 잡 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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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넓은 토지가 왜 필 요하신 건가요?”
박시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 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사업을 하나 계획하고 있어서요.”
“사업이요?”
“예.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흐음……. 그러시군요.”
그녀는 어쩐지 믿음직스럽지 못하 다는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길드들이 몬스터 사냥과 던전 공략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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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증에, 갑자기 사업을 한다고 하니 그런 눈빛을 보내는 것도 당연했다.
“박시아 씨에게도 선물을 준비했습 니다.”
“선물이요?”
“예. 이번에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사용할 물건들입니다.”
영식은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에 서 냉장고를 꺼내어 사무실 안에 내 려놓았다. 일반인이었다면 혼자서 들기 쉽지 않은 무게였지만 이미 초 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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