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머신-90화 (90/284)

레벨업 머신 090화

진실의 단서(2)

크기가 3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구체 였다.

그 구체는 마치 거대한 사파이어를 보는 것처럼 영롱한 푸른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구체의 주변에는 새하 얀 빛을 띠는 문자들이 구체를 중심 으로 공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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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그 구체를 올려다보는 아라의 입에 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름답 다, 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광경이었다.

영식은 푸른색 구체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푸른색 구체의 거대한 크기와 위압감에 미처 눈에 들어오 지는 않았지만 이곳에는 구체만 있 는 것이 아니었다.

구제를 둘러싸듯 네 개의 제단이 있었다.

구체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제단 에는 두 자루의 쌍검이 꽂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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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각각 검은색, 붉은색 검신을 가 지고 있는 검이었다.

구체의 뒤에 있는 제단에는 황금색 검신을 가진 장검이 꽂혀 있었고, 정면에는 세밀하게 천사가 양각되어 있는 백금색 반지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제단에는…….

“저건?”

오른쪽 제단 위에 있는 물건을 본 영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메모리…… 큐브?’

제단 위에는 블랙큐브가 반으로 쪼 개진 것 같은 형태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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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반으로 갈라진 정육각형의 물체를 본 영식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보 스몬스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메모 리 큐브라는 것을 부정했다.

형태 자체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이것은 메모리 큐브와는 다른, 이제 까지 그가 봐왔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 느낌은……

영식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 꼈다. 뒷골에 알싸한 감각이 퍼지며 가늘게 몸이 떨렸다. 분노와 그리움 과, 후회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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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가 영식의 가슴속에 휘몰아 쳤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많 은 것이 담겨 있는 이 감정. 영식은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처음이 아니었 다.

‘슈트를 발견했을 때랑 비슷한 느 낌이야.’

영식은 처음 락테온 2식을 발견했 을 때를 떠올리며 어딘가 아련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격류가 그의 전 신을 뒤흔들었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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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의 몸이 다른 무언가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손이 자신의 목을 압박하듯이 답답하고, 불쾌한 기분.

“이건 뭐죠……r

불쾌한 감각에 휩싸인 영식의 귓가 에 티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 념을 끊어낸 영식은 나지막한 목소 리로 입을 열었다.

“글쎄. 주변의 물건들은 이 던전에 있는 레어 아이템들 같은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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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저 가운데 있는 건 뭔지 모르겠 어.”

영식은 제단 위에 있는 네 가지 물건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며 푸른 색 구체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중 요한 것은 제단 위에 있는 물건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푸른색 구체 였다.

“박시아 씨. 저 구체에 대해서 뭔 가 알고 계신가요?”

영식은 박시아에게 다가가며 물었 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 던전 안에 있는 ‘무언가’를 노리고 공략을 시 작했다. 그렇다면 저 정체불명의 구 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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컸다.

박시아는 영식의 말에 대답하지 않 은 채 멍한 표정으로 그 구체를 올 려다보고 있었다. 굳게 쥐어진 그녀 의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시아 언니? 왜 그래?”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하린까지 고 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 다. 강하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 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영식 씨. 저 구체에 대해서 물어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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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 라보았다. 박시아는 어딘가 씁쓸함 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읽은 기록이 맞는다면…… 저 구체는 어느 정보가 기록되어 있 는 장치입니다.

“정보요?”

“예.”

박시아는 푸른색 구체에 다가가 손 을 올렸다.

“괴물들의 창조주에 대한 기록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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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에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레비아탄 길드원들도, 살바토르 길 드원들도 그녀의 말에 두 눈을 부릅 뜬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괴물들의 창조주.

잉그리움 제국을 멸망시키고, 지금 도 실시간으로 대륙 전체를 집어삼 키기 위해 대륙 전역으로 몬스터를 보내고 있는 존재. 그리고 소환자들 이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반 드시 처치해야 하는 존재.

“티리아 씨.”

“아?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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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체를 가동시킬 때도 티리아 씨의 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시아는 마력을 불어넣고 있음에 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푸른색 구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티리아는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구체에 다가간 그 녀는 조심스럽게 그 위에 손을 올렸 다.

우우웅!

그녀의 손이 닿자 구체에서 홀러나 오는 푸른빛이 한층 더 강렬해지며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문자의 나열이 복잡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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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피를 이은 존재이시여, 이 곳에 남아 있는 기록이 영광의 재래 에 기반이 되기를.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푸른색 구체 위에 영상이 떠올랐다.

“지도?”

구체 위에 떠오른 것은 에르노어 대륙 전체의 모습이 그려진 지도였 다.

-몬스터의 침공으로부터 20여 년 전, 대륙 북부에 거대한 폭발이 일 어났습니다.

그 말과 함께 주황색 원이 지도에 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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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는 자연재해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덤덤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소환 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조사대에 의하면 북부에서 일어 난 거대한 폭발은 외계에서 떨어진 운석에 의한 폭발이었습니다.

“뭐라고……?”

뜬금없다고까지 느껴지는 구체의 말에 소환자들은 표정을 일그러뜨렸 다. 운석에 의한 폭발이라니. 생각지 도 못한 이유였다.

-그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을 사용하여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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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몬 스터들을 지배하고, 양식을 하듯 몬 스터들을 길러 개체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우리들은 이들이 외계(外界)에서 온 존재라고 추정하 고 있습니다.

“……그럼 창조주들이 외계인이란 말이야?”

유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외계인이라니. 굉장히 흔하게 다뤄진 소재였지만 막상 이렇게 들으니 너무 현실성이 없는 단어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계인인 저희도 비상식적인 존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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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은 둥그런 안경을 쓸어 올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잠깐.”

박시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푸른색 구체가 한 말 중에 그냥 지 나치기 힘든, 무척이나 거슬리는 단 어가 섞여 있었다.

“……존재‘들’이라고?”

“아...”

그녀의 중얼거림에 소환자들의 표 정에 경악이 서렸다.

-이들은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몬 스터들을 복속시킨 후, 잉그리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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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용맹한 제 국군과 8영웅이 힘을 모아 그들을 상대했지만 그들은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조주는…… 한 명이 아니었어.”

이어지는 구체의 말을 들은 박시아 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지구에 돌아가기 위해서 반 드시 처치해야 하는 적. 그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은 소환자들로 하여금 깊은 절망을 느끼게 만들기 에 충분했다.

영식은 경악에 휩싸여 있는 길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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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놀라 운 소식은 아니었다.

몬스터를 지배하고 있는 창조주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이전에 메모 리 큐브를 해석하며 익히 알고 있었 으니까.

‘그래도 처음 안 사람들에게는 경 악할만한 일이겠지.’

영식은 너무 충격 받은 나머지 다 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은 소환 자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영식의 경우 과거의 기억이 없으니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열망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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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소환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폭력 이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이 세계로 끌려왔다.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다’ 라는 열망은 이제까지 그들을 지탱 해주는 가장 큰 지지대였다.

그런데 그들이 최종적으로 쓰러트 려야 할 적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을 깨닫게 되었으니 저렇게 절망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지독하게 어려 운 게임을 하고 있는 도중 최종 보 스가 여러 명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런…… 하나로도, 하나로도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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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히 벅찬데……!”

박시아는 거칠게 입술을 깨물며 주 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어깨가 가 늘게 떨리고 있었다. 항상 냉정을 유지해오던 박시아로선 의외의 모습 이었다.

-마법을 초월한 힘을 가진 그들과 의 싸움은 처참했습니다. 비옥했던 평야는 모조리 불타버리고, 찬란한 제국의 문명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푸른 구체에서 홀러나오는 목소리 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영식은 이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음성이 아니라 누군가 녹음을 한 음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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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을 깨달았다.

-격렬했던 전투가 끝나고, 남은 생 존자들은 다가올 영광의 재래를 위 해 숨어들었습니다.

푸른 구체의 주위를 떠도는 새하얀 문자들이 격렬하게 떨렸다.

-이곳에 8영웅들 중 2명의 유산과 황제의 인장을 보관해두었습니다. 고귀한 피를 이은 존재이시여, 부디 이 유산을 사용하여 다시 잉그리움 의 이름을 대륙에 널리 퍼지도록 해 주소서.

“8영웅의 유산……

영식은 고개를 돌려 검고, 붉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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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가진 두 자루의 검과 찬란한 황금색을 가진 장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8영웅의 유 산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식의 시선이 오른쪽에 있는 제단 으로 향했다.

-그들은 강하지만,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적은 아닙니다. 그 예로 저 희는 외계의 존재 중 하나를 죽이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오오.”

소환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홀러나 왔다. 그들이 ‘죽일 수 있는’ 존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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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묘 안 안도감이 느껴졌다.

-외계의 존재의 사체를 조사하며 그들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지직.

영식의 귓가에 희미한 잡음이 들려 왔다. 푸른색 구체의 형체가 조금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뭐지?’

구체가 말한 ‘흥미로운 사실’을 듣 고자 했던 영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푸른 구체를 바라보았다.

-외계의 존재들은 지지직……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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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져 있다는 지지직……. 그들 의 힘의 원천은 지지지직…… 입니 다.

“뭐, 뭐야?”

“갑자기 음성이……?”

소환자들은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섞여 들어오는 잡음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푸른 구체의 형체가 점점 더 크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영식 또한 긴장된 표정으로 점점 더 형체가 일그러지고 있는 푸른 구 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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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에서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이 어 졌다.

-지지지직……. 저희가 처치한 외 계의 존재는 고도의 지능과 지지지 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존재는 지지 직…….

“저, 저거 형제가 점점 더 이상해 지는데?”

“티리아 씨! 이게 무슨……

“저, 저도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티리아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구체에 천사의 힘을 더욱 불어넣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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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일그러지던 형체가 순간적으로 원상태로 돌아왔다.

구체에서 홀러나오는 음성이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자신의 이름을, ‘락테온’이라고 칭 했습니다.

선명하게 울려 퍼진 그 이름을 들 은 영식은 두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차갑게 굳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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