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086화
잊혀진 자들의 무덤(4)
-쿵! 쿵! 쿵!
거대한 무언가가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땅이 뒤흔들렸다.
“영식 씨 이건……
“ 쉿.”
티리아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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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입가에 손가락을 올린 채 조 용히 있으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쿵! 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어.’
영식은 점점 더 커지는 소리를 들 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스캔.’
-치익.
[주변 지형 정보를 시각 데이터로 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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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희미한 소음과 함께 영식의 머릿속 에 주변의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주변의 지 형과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가 디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세 마리……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디언의 숫자는 총 셋. 스캔만으로 그들이 가진 힘을 판단하긴 힘들었지만 도 저히 상대할 수 없다는 압박감까지 는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저놈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다른 놈들까지 몰려올 수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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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스캔으로 파악했을 때 크기가 최소 5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가디언이 었다.
그런 가디 언과 싸우면서 소음이 나 지 않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 다.
안 그래도 두 명밖에 없는 지금 상황에서 그 소리를 들은 다른 가디 언들이 몰려온다면 승산이 없었다.
티리아와 자신은 일반적인 소환자 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영식이 슈트만 착용 한다면 둘이서 레크라스 같은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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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 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수의 적을 상대로 둘이서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상대 가 20?30레벨 정도의 몬스터였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 는 가디언은 최소 90레벨 이상의 정예몬스터였다. 숫자가 조금이라도 몰리게 되면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특히 티리아가 문제야.’
영식의 긴장된 표정으로 숨을 죽이 고 있는 티리아를 바라보며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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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혔다.
지금 티리아는 오히려 그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슈 트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리라.
하지만 그런 문제와는 달리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피로를 상대적으로 적게 느끼는 그 에 비해서 훨씬 더 빨리 피로가 쌓 인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산을 박살 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 명의 강자가 다수를 상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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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친다. 비단 인간의 문제 만이 아니었다. 어떤 생물도, 심지어 생명이 없는 골렘조차도 무한히 움 직일 수는 없었다.
전쟁에서 머릿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었 다.
한 손으로 막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쿵. 쿵.
어느새 발걸음 소리는 바로 코앞까 지 다가왔다. 레이저로 어설프게 잘 라낸 벽 너머에 가디언이 돌아다니 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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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쿵.
‘멈췄어.’
지금 티리아와 영식이 숨어 있는 장소의 바로 앞. 가디언의 발소리가 끊겼다. 영식은 스캔을 사용해서 가 디언의 동태를 살폈다.
통로에 멈춘 가디언은 영식과 티리 아가 숨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가디언에게 들켰다고 생각한 영식 은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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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몸을 살짝 숙이며 언제라도 앞으 로 달려 나갈 자세를 취했다. 이렇 게 된 이상 최대한 빠르게 세 마리 의 가디언을 처치하고 다른 곳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내려앉 았다. 영식과 티리아는 숨소리조차 새어나가지 않도록 호홉을 멈춘 채 가디언이 멈춰선 쪽을 빤히 바라보 았다. 티리아의 이마를 타고 한 줄 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쿵. 쿵. 쿵.
다시금 가디언의 발소리가 울려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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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이번에는 가까워지는 것이 아 닌, 멀어지는 발소리였다.
영식과 티리아는 발걸음 소리가 완 전히 사라질 때까지 침묵을 유지했 다. 그렇게 한 10분을 기다리니 더 이상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 었다.
“ 후우?
“다행이네요.”
영식은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프게 만든 장소라서 들킬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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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숨어 있으면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에 영식은 음, 하고 침음 을 삼켰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가 디언들에게 들키지 않았지만 여기가 안전한 장소라고 확답은 할 수 없었 다.
‘바로 앞에서 멈추기는 했으니까.’
가디언은 분명 얇은 벽 너머에서 의심스럽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계속 숨어 있는 것 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다.
“조금 더 구멍을 파서 깊숙이 들어 가자. 여긴 좀 위험한 것 같아.”
“네. 그렇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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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의 말에 티리아는 고개를 끄덕 였다. 일반적으로 던전의 가디언은 일정 구간을 반복해서 돌아다니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 몇 번이나 계속해서 바로 앞을 지나칠 것이다.
“그럼 땅은 제가……
티리아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중 얼거렸다. 그녀의 손끝에 새하얀 빛 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커다란 통로를 만 들어버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 었다.
“아냐. 내가 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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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 씨가요?”
“응. 그 편이 더 나을 거야.”
영식은 스캔 기능을 활성화시키며 말했다. 스캔 기능만 있다면 만약 흙 너머가 던전의 다른 쪽 벽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그곳을 피해서 파낼 수 있었다.
‘던전의 벽 쪽으로만 가지 않으면 안전하겠지.’
다른 쪽 벽을 뚫고 다시 던전 안 으로 들어가는 불상사만 막을 수 있 다면 몬스터의 습격 없이 숨어 있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잠시만 뒤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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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영식 씨.”
티리아는 거의 안겨 있다시피 했던 몸을 그에게서 떼어냈다. 그녀는 순 간적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식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 한 채 몸을 돌렸다.
“스크류.”
옷이 찢어지지 않도록 팔을 걷어 올린 영식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 며 강화 스킬로 얻은 ‘스크류’ 효과 만 발동시켰다.
원래라면 로켓펀치를 쓸 때 오른팔 이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하며 앞으로 쏘아지는데 사용하는 효과였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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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응용을 하면 오른팔이 붙어 있 는 채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시이이이잉!
영식의 오른팔이 빠른 속도로 회전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곧게 핀 영식은 자신의 오른손을 흙벽에 가 져다 대었다.
CC 륵 II 륵II
그의 오른손에 닿은 홁들이 사방으 로 비산했다. 영식은 얼굴에 흙이 튀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천천히 앞 으로 나아갔다.
티리아는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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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힘든 영식의 오른팔을 보며 살짝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까지 너 무 평범하게 함께 생활하다 보니 그 의 몸이 일반적인 인간과는 많이 다 르다는 점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 다.
지이이잉.
영식은 눈에서 레이저까지 쏘아내 며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마음 같 아서는 에너지 블라스트를 풀 차징 으로 사용해서 시원하게 길을 뚫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 는 그대로 땅이 내려앉아 버릴 것이 분명했다.
“……여기 정도면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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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스캔으로 주변을 살피며 중 얼거렸다. 원래 있었던 곳에서 20미 터나 벗어난 장소이기도 했고, 다른 쪽 벽과도 가깝지 않은 장소였다.
‘개미라도 된 기분이군.’
영식은 3일 동안 생활하기 위해 꽤나 넓게 뚫어놓은 주변을 둘러보 며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지금 그들의 모습은 땅에 집을 짓고 생활 하는 개미와 흡사했다.
“네.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안전할 것 같아요.”
티리아는 그녀의 힘을 사용해 주변 을 밝히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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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는 자신의 옷에 묻은 흙들을 털어 내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만.”
영식은 아직 할 일이 남은 듯이 그의 인벤토리를 열었다.
“제조.”
인벤토리 안에서 금속 재료들을 꺼 낸 영식은 지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줄 지지대를 만들었다. 그가 뚫고 들어온 자리에 지지대를 모두 설치한 영식은 인벤토리 안을 확인 했다.
‘홁으로 거의 가득 찼네.’
그의 인벤토리는 뚫고 지나온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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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홁들로 포화상태였다. 영식은 티리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 었다.
“티리아. 인벤토리에 홁들 좀 넣어 줄 수 있어? 지금 내 인벤토리는 거의 가득 찼거든.”
“아, 예. 알겠어요 영식 씨.”
이 세계에서는 원주민들도 소환자 들과 똑같이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티리아의 도움을 빌 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남아 있는 홁을 모두 인벤토리에 담은 티리아는 살짝 피곤한 표정으 로 벽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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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대로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네, 영식 씨. 아, 지금 잘 숨어 있 다고 연락해둘게요.”
티리아는 통신용 수정구슬을 통해 지금 숨어 있는 위치를 설명했다. 그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들은 길드 원들은 허탈한 웃음을 홀렸다.
-둘만 좁은 공간에 있다고 길드장 님에게 이상한 짓을 하면 나중에 가 만 안 둘 거야.
수정구슬을 통해 잔뜩 뿔이 난 아 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식은 피 식 웃음을 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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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줘. 거 기는 어때? 별문제 없어?”
-가디언들이 몇 번 습격하기는 했 는데 다 문제없이 처리했어.
“앞으로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연 락해줘.”
영식은 그렇게 말한 후 수정구슬의 통신을 끊었다.
“뭐 좀 먹어두자.”
“네. 안 그래도 좀 배가 고파졌어 요.”
티리아와 영식은 인벤토리에서 각 자 육포와 물을 꺼내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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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의 경우 거의 손가락 두개 크 기의 육포에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말았지만 티리아는 꽤나 배고팠는지 육포 3개와 물병 하나를 모두 마셨 다.
“휴우?…”
식사를 마친 후 티리아는 좀 살겠 다는 표정을 지은 채 흙벽에 등을 기댔다.
영식과 티리아 사이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침묵이 한동안 이 어지고 있을 때, 티리아는 몸을 가 늘게 떨며 말했다.
“여, 영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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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게요……
그녀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 처럼 처량한 목소리로 고개를 두리 번거렸다. 영식은 수상하기 짝이 없 는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 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티리아는 다리를 베베 꼰 채 말끝 을 흐렸다. 그녀의 모습을 본 영식 은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설마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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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악! 아, 아무 말도 하지 마요!”
티리아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영식은 피식 웃음을 홀렸다. 영식 의 경우는 거의 배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평범한 인간의 몸을 가진 그녀는 달 랐다.
“저기 앞쪽 통로로 가서 볼일 봐.”
“시, 싫어요! 소리가 전부 들릴 거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게? 앞으로 3일은 여기서 숨어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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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으..w
티리아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영 식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한 손에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새하얀 빛 이 뭉치기 시작했다.
“……뭘 하려고?”
“후후, 후후후……. 걱정하지 마세 요 영식 씨. 아프지 않게 해드릴 테 니 아주 잠시, 아?주 잠시만 기절해 있으면 돼요.”
티리아는 배설 욕구와 수치심이 뒤 섞여 이성을 잃은 눈빛으로 영식에 게 다가왔다.
“자, 잠깐 그게 무슨 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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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은 다급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 렸다.
하지만 거의 이성을 잃은 티리아의 귀에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호, 호홋……. 괘, 괜찮아요 영식 씨. 처음엔 조금 아프더라도 서서히 좋아질 거예요.”
“대체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영식은 평소 그의 모습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당황했다. 그는 손을 뻗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티리아를 막았다.
“후훗. 반항하시는 모습이 안쓰럽 네요 영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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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쓰러운 건 네 머리겠지.”
영식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를 바 라보았다.
“자아, 포기하세요, 영식 씨!”
티리아는 두 다리를 베베 꼰 채 묘한 자세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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