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083화
잊혀진 자들의 무덤(1)
“다들 준비는 끝나셨나요?”
평소의 상냥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아닌 딱딱한 목소리로 티리아는 입 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준비를 마 친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식과 천태황의 승부로부터 3주가 지난 지금, 살바토르 길드원들은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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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탄 길드가 제안한 ‘잊혀진 자들 의 무덤’ 공략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레비아탄 길드 본관으로 이동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드릴 말이 있어 요.”
티리아는 그녀의 앞에 정렬한 11 명의 길드원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얼마 전에 가족을 모두 잃었어요.”
덤덤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몇 몇 길드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 었다. 그녀는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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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말을 이었다.
“저는, 다시는 그런 가슴 아픈 경 험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을 자신의 가슴께에 올렸다.
“그러니 아무도 다치지 말아주세 요. 죽지 말아주세요. 살바토르 길드 의 길드장으로서의 명령입니다.”
그녀는 특유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 며 말을 마쳤다. 진심 어린 그녀의 말에 길드원들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 어떻게 유나 언니! 큰일 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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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훈훈한 분위기를 처참하게 박살 내는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 졌다. 길드의 막내 역할을 맡고 있 는 이채린이었다.
그녀는 유나의 옷소매를 붙잡으며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다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유나는 뜬금없는 채린의 외침에 고 개를 두리번거리며 되물었다. 채린 은 그녀의 옷에 얼굴을 묻으며 손가 락으로 티리아를 가리켰다.
“티리아 언니가 너무 엄청난 사망 플래그를 세워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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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채린의 외침에 유나의 표 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티리아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 으로 입을 열었다.
“사, 사망 플래그라니? 저주 계열 마법이 니?”
“그래! 그것도 ‘나, 이번 싸움이 끝 나면 그녀와 결혼할 거야’급의 저주 마법이라고! 어떻게 그런 잔혹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수있 어‘?!”
“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 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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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분명 보스를 쓰러트리고 나서 ‘처치했나?’ 라고 물어볼 눈치 없는 사…… 빠악!
채린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유 나의 주먹이 빗살처럼 움직였다. 그 녀의 머리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왜, 왜 때리는 거야 유나 언니?!”
“……네가 하도 기가 막힌 헛소리 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길드원 들 사이에 웃음소리가 홀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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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체 무슨 말인데요? 저한테 도 알려주세요.”
혼자서만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 고 있던 티리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 그녀를 본 한성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움켜쥐었다.
“신성한 출정식에 이 무슨……
예의와 격식에 관해서는 꽤나 깐깐 한 그는 동부 최대 길드 중 하나인 레비아탄 길드와 협력하여 던전을 공략한다는, 어쩌면 왕성 습격보다 위험한 일에 앞선 출정식의 분위기 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것에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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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게 살바토르 길드 분위 기답긴 하군요.”
“쯧, 항상 저 꼬맹이가 문제로군.”
한성의 옆에 선 채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던 영식이 어깨를 으쓱이 며 입을 열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유진이 혀를 차며 채린을 노려보았 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죠, 길드장 님.”
“영, 영식 씨? 사망 플래그라는 게 어떤 마법이기에 다들 웃고 있는 거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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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천천히 설명해드리겠습 니다.”
영식은 발걸음을 옮겨 티리아의 옆 에 서며 말했다.
* * *
영식과 살바토르 길드원들이 레비 아탄 길드의 본관 앞에 도착하자 푸 른빛 머리칼을 한 여인이 그들을 향 해 걸어왔다.
“다시 한번 던전 공략에 참여해 주 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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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아는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뒤에는 30명 정도 되는 레 비아탄 길드원들이 정렬해 있었다.
“저희야말로 좋은 거처를 마련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3주 간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티리아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박 시아의 손을 마주잡았다. 악수를 나 눈 티리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 의 뒤에 도열해 있는 길드원들을 의 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원정에 참여하시는 레비아탄 길드원들은 뒤에 계신 분들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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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요?”
레비아탄이라고 하면 길드원이 1천 명이 넘는 거대 길드였다. 하지만 박시아의 뒤에 정렬해 있는 길드원 들의 숫자는 고작 서른에 불과했으 니 티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 도 당연했다.
“예. 잊혀진 자들의 무덤까지 향하 는 루트가 이미 저번 원정으로 확보 된 이상 불필요하게 많은 인원이 던 전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 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녀의 말에 티리아는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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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과거 살바토르 길드에서도 대규모 던전 탐사를 한 경험이 몇 번 있었 기 때문에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깨달 을 수 있었다.
필드라면 몰라도 던전은 많은 인원 을 한 번에 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 다. 던전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 대규모 인원이 들어가게 된다면 곳 곳에 숨어 있는 함정과 몬스터들의 급습으로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 았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서 그런 혼 란이 일어나면 아군이 같은 아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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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는 상황까지 빈번하게 일어났 다. 그렇게 될 경우 통제도 어렵고, 길드원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게 됐 다.
집단을 이끄는 데 있어서 통제와 사기는 무척 중요한 요소였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상실한 경우 반란 까지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인원이 많은 중상급 규모의 길드가 몰락하는 가장 흔한 경우가 바로 던전 탐사였다. 다수라는 강력 한 이점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 다.
“다들 80레벨 이상의 정예 멤버이 니 전력으로는 부족하지 않을 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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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박시아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 리로 말했다.
“후훗. 든든하네요.”
티리아는 가볍게 웃음을 홀리며 자 신의 길드원들을 돌아보았다.
아직은 레비아탄 길드와 비교한다 면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전력 이었지만 어지간한 6강 길드는 명함 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전 력을 가진 소환자들이었다.
“저희 길드도 가만히 업혀가지는 않을 겁니다.”
티리아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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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당당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 에 박시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럴 길드였다면 티리아 씨 에게만 도움을 요청했을 겁니다.”
살바토르 길드는 인원은 소수에 불 과하더라도 그 길드원들 하나하나가 가진 힘은 어느 길드에 들어가더라 도 간부 자리는 쉽게 꿰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애초에 던전 탐사가 소수 정예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고려 한다면, 살바토르 길드의 전력을 따 라올 수 있는 길드는 6강 길드 중 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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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저 이상한 놈도 참여하는 거 야?”
강하린은 티리아 바로 뒤에 서 있 는 영식을 보며 불만스럽다는 표정 으로 말했다. 천태황에 대한 자부심 이 남달랐던 그녀에게 있어서 비상 식적인 무기와 스킬들을 사용해 그 를 꺾은 영식이 곱게 보일 리가 없 었다.
“……하린아. 꼴사나우니까 그만 둬.”
“으으..”
강하린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 영식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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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다음에는 우리 태황이가 이길 테니까 우쭐해 있지 마!”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영식에 게 소리쳤다. 영식은 피식 입가를 비틀며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전형적인 패배자의 말이라서 대꾸할 생각도 들지 않네요.”
“이익! 뭐라고!”
신경을 박박 긁는 듯한 영식의 말 에 강하린이 발끈하여 그에게 다가 가려고 했다.
“하린아. 원정 시작도 전에 내 얼 굴에 먹칠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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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제지했다. 강하린은 거칠게 입술을 깨문 채 영식에게서 몸을 홱 돌렸 다.
어색한 침묵이 살바토르 길드원들 과 레비아탄 길드원들 사이에 내려 앉았다.
영식은 묘하게 이어지는 침묵 사이 에서 자신을 향한 뜨거운 눈빛들을 느꼈다. 두 곳에서 쏟아지는 그 눈 빛 중 하나는 그에게 있어 익숙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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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황.’
신검합일 스킬을 사용하고 난 후 그대로 쓰러졌던 천태황은 자신을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내고 있 었다.
딱히 그에게 패배한 것이 분하다는 느낌의 눈빛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 서든 그를 이기고 싶다는, 강렬한 투지가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영식은 그런 그를 보고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로지 강자와의 전 투에 대한 열망 하나로 순수하게 빛 나는 천태황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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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에서 온 전투민족이라도 되는 건가?’
7개의 구슬을 모으는 모 만화에 등장하는 전투민족처럼 싸움 이외에 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듯한 천 태황을 바라보며 영식은 허탈한 표 정을 지었다.
‘뭐, 복잡하게 안 살아도 돼서 좋 겠네.’
강자와의 전투 이외에 아무것도 관 심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가 장 맘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하며 영식은 두 번째로 뜨거운 시선이 쏟아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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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다.
“저기, 네가 그 살바토르 길드의 신입이라는 애 맞지?”
그 뜨거운 시선의 주인은 웨이브진 흑발의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어딘가 요염한 분위기가 풍기는 그 여인은 노줄도가 상당히 높은 옷을 입은 채 영식에게 다가왔다.
“정 다연……
한성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정다연.
백검 강하린이나 워록 박상준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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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지만 레비아탄 내에서 꽤나 유명한 소환자였다.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랭커에 근접한 강력한 힘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 었다.
“후훗. 그때 봤을 때 아주 훌륭한 물건을 가지고 있던데 말이야…… 그녀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입 술을 핥으며 영식의 뺨을 어루만졌 다. 훌륭한 볼륨을 자랑하는 그녀의 몸매가 노출도 높은 옷 너머로 적나 라하게 드러났다.
“어때? 이 누나랑 기분 좋은 일 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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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영식이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옆에서 나타난 아라가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정다연 의 손을 쳐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좀 무례하 신 것 같네요.”
“흐응? 넌 뭐야? 얘 애인이라도 되는 거야?
“애인이건 아니건 당신이 뭔 상관 이죠?”
아라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노 려보았다. 정다연의 입가에 짙은 미 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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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왜 그래? 딱히 닳는 것도 아닌데 한 번 정도는……
“정다연 씨. 더 이상의 무례는 살 바토르 길드마스터로서 참기 힘드네 요.”
아라에 이어 나타난 티리아가 평소 의 그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 의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머, 죄송하게 됐네요, 살바토르 길드장님. 신입 씨가 이렇게 인기가 좋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서.”
마치 영식을 지키듯이 앞으로 나선 두 여인을 바라보며 정다연은 꺄르 르 웃음을 터트렸다. 한동안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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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던 그녀는 몸을 돌려 레비아탄 길드가 도열해 있는 곳으로 돌아갔 다.
“……이거 영식 군의 인기가 장난 이 아니로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길수는 옆에 있던 황현의 옆구리를 툭 건드 리며 말했다.
“허허. 그사이 길드장님까지……. 비결이 뭔지 궁금하군.”
“아무래도 그거 아니겠습니까?”
“……으음. 역시 그게 가장 중요한 가.”
두 사람은 영식의 몸을 위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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홅듯이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역시 그게 팔뚝만하니……
“아저씨들. 주책 떨지 말고 그만 출발하시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나 가 가늘게 눈을 뜨며 한심하다는 듯 이 말했다.
황현과 길수의 몸이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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