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044화
폭렙 (2)
끝없이 이어진 통로를 내려가고 있 었다. 영원할 것 같은 침묵이 통로 안을 짓눌렀다. 영식은 그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 찰칵.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2/29
영식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따라 무수한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 했다.
-쿠웅.
묵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공 동이었다.
영식은 아무것도 없는 그 공동을 천천히 걸어갔다.
-이미 늦은 건 알고 있어.
영식은 피곤에 절은 표정으로 그렇 게 중얼거렸다. 지쳐 있고, 황폐하
3/29
고, 메마른 목소리였다.
영식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피부 가 벗겨지며 무수한 금속 장치가 드 러났다. 희미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 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영식의 오른팔이 수백, 수천 개로 부서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금속 장치들이 살 아 있는 생물처럼 바닥에서 움직였 다.
영식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지.
4/29
그는 칼로 내리긋 듯 날카로운 목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우우우웅!
바닥을 기어 다니던 금속 장치들이 독특한 문양을 그렸다. 그 문양 안 에서 밝은 빛이 떠올랐다.
밝은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구체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 * *
“커 첩!”
영상이 끝났다. 영식은 침대에서
5/29
쓰러져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막대 한 정보의 격류가 그의 전신을 뒤흔 들었다.
“ 크으?
영식은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머 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잊혔던 기억 의 편린이 그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난도질했다.
‘아까 그 빛의 구체는……
영식은 기억의 마지막 부분, 바닥 에서 떠올랐던 빛의 구체에 대해 생 각했다. 그것은 분명 튜토리얼 공간 에서 본 빛의 구체였다.
‘왜 그게 저 안에?’
6/29
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억이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해결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의문만 쌓여갈 뿐이 었다.
왜 자신의 기억 속에 블랙 큐브가 있는지, 빛의 구체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난……
영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낮 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정 체에 대해서 조금도 짐작가는 것이 없었다.
치 익.
그런 그의 상념을 끊어내듯 익숙한
7/29
잡음이 귓가에 들렸다.
[보안 레벨 7단계까지의 해방이 완 료되었습니다.]
[5 단계 해방으로 인하여 ‘샷건’, ‘개틀링 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6 단계 해방으로 인하여 ‘마인’, ‘전자기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7단계 해방으로 인하여 ‘레이저’, ‘에너지 블라스트’를 사용할 수 있 습니다.]
“뭐……?”
8/29
영식은 귓가에 들리는 기계음의 내 용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사고 를 이어나가기 전에 막대한 정보의 홍수가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크윽!”
샷건, 개틀링 건, 마인, 전자기장, 레이저, 에너지 블라스트. 무려 여섯 개에 달하는 무기들의 사용 방법이 영식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였다.
영식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 다.
철컥.
9/29
그의 등이 열리며 흉측한 개틀링 건이 튀어나왔다. 오른손이 꺾이며 샷건의 총구가 나타났다. 왼쪽 허벅 지가 열리며 다섯 개의 마인이 바닥 으로 떨어졌고, 푸른 전기장이 그의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영식은 머릿속에 홀러들어오는 정 보를 제어하기 위해 거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달 리 그의 눈에서 붉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레이저를 사용할 때 나오던 빛이었다.
‘위험해.’
10/29
영식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 다. 손바닥에 둥그런 에너지 탄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모든 무기 들을 동시에 사용한다면 이 허름한 여관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경고.]
[정보 과다로 인하여 무기 제어기 능이 저하됩니다.]
[신속한 정보처리를 요청합니다.]
“그게, 마음처럼, 되면!”
11/29
영식은 오른팔을 이마에 올리고 짜 증스럽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머 릿속에 쏟아지는 무기들의 정보가 그의 머리를 뜨겁게 만들었다.
“흐읍.”
영식은 깊이 숨을 들이키며 눈을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며 쏟아지는 정보의 격류가 머릿속을 휘젓고 있 는 것이 느껴졌다.
‘정보의 분류부터.’
영식은 각각 어떤 무기를 통해서 나오는 정보인지를 구분했다. 그런 후 머릿속에 폴더를 만든다는 생각 으로 각각의 정보를 폴더 안에 집어
12/29
넣었다.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받아 들일 수 없다면 일단 폴더에 집어넣 은 후 하나씩 꺼내어 확인해야 했 다.
끈질긴 작업이 시작됐다. 정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며 엉키려고 했고, 영식은 그 정보들을 분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보를 정리했다.
치 익.
[정보 분류가 완료되었습니다. 무 기 제어 기능이 다시 정상적으로 가 동합니다.] [현재 정보처리 레벨로는 모든 무
13/29
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무기 제 어 기능에 치명적인 저하를 불러일 으킬 수 있습니다.]
“휴우……. 일단 어떻게 위기는 넘 겼나.”
영식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 에는 더 이상 붉은색 빛이 흘러나오 지 않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졌던 마인들도, 등에서 튀어나온 개틀링 건도 모두 그의 몸속으로 다시 돌아 갔다.
“여섯 개의 무기라.”
상황이 일단락되자 영식은 이번에
14/29
새롭게 얻은 무기들에 대해서 생각 했다. 그의 입가가 자연스럽게 올라 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그도 알 수 없지만 5단계 이상부터는 한 개가 아닌 2개의 무기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무기를 2 배나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무기 하나하나가 엄청나.’
영식은 이번에 새롭게 얻은 무기들 의 정보를 떠올렸다. 이번에도 역시 부스트나 슬로우 모션처럼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15/29
매우 강력한 무기들이었다.
“음……?”
무기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던 영식 은 익숙한 두 개의 무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개틀링 건과 레이저. 그것 은 그가 처음 강제 해방을 했을 때 사용했던 무기였다.
“그때 그럼 7단계까지 개방을 했단 말이야?”
그때 남기태를 레이저로 죽였으니 무려 7단계까지 개방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영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왜?’
16/29
그때 남기태와 그의 부하들은 ‘적 응’조차 거치지 않은 일반인에 불과 했다. 고작해야 오크가 사용한 조잡 한 무기들을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상대로 7단계까지 개방하다 니? 위험감지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 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일이었다.
막말로 블레이드와 부스트까지만 해방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인원 을 상대로 쓸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영식은 라이트 실드 길드를 상대할 때의 강제 해방을 떠올렸다. 그때도
17/29
그는 라이트 실드 길드원들이 손도 쓸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을 몰살했다.
“강제 해방 자체가 너무 많은 단계 를 개방하는군.”
영식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강제 해방은 대상을 ‘압살’할 수 있을 정도로 보안 레벨 을 개방해 버렸다. 소 잡는 칼로 닭 을 잡는 수준을 넘어 아예 바주카포 로 닭을 사냥하는 격이었다.
‘대체 단계가 몇 단계까지 있는 거 야?’
영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
18/29
살을 찌푸렸다. 저번 2차 강제 해방 때 대체 몇 단계까지 해방했는지 감 도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이걸로 더더욱 강제 해방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생 겼군.”
영식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 거렸다. 라이트 실드 길드를 상대했 을 때 개방한 단계만으로 그는 레벨 제한치가 5나 내려갔다.
만약 그것이 랭커가 섞인 길드를 상대로 발동됐다면?
강제 해방은 랭커를 압도할 수 있 을 정도로 더욱 많은 보안 레벨을
19/29
해방시킬 것이다. 어쩌면 그가 해방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개방을 해버 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과부하로 인한 리스크 가 너무 컸다. 레벨 제한치에서 끝 날 문제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 그 대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었다. 과부하 상태일 때 그가 느끼는 고통 은 당장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 도로 격렬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 힘이라면.”
영식은 새롭게 얻은 무기들의 정보 를 정리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메모리 큐브를 통해서 스탯과 스킬
20/29
을 얻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보상을 얻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5단계 이상 보안 레벨을 해방하면서 얻은 힘은 오히려 그것 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났다.
‘조금만 무기 제어에 익숙해진다면 3개월 내에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영식은 최유나와 박철태의 파티가 보여주었던 강력한 힘을 떠올렸다. 처음 헤어졌을 때는 과연 3개월이라 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힘에 닿 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21/29
그들이 가진 힘, 아니 오히려 그들 을 넘어서는 힘까지도 얻을 수 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영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상태창을 열었다.
[소환자 정보]
이름: 영식
레벨: 30/73
클래스: 기계공학자(히든)
체력: 935 마력: 753
22/29
〈스탯〉
힘: 63
민첩: 67
강인함: 62
기량: 70
지력: 45
지혜: 48
운: 43
카리스마: 60
23/29
〈보유 스킬〉
[구조 파악: Lv 6]
[분해: Lv 2]
[추출: Lv 3]
[제조: Lv 4]
[강화: Lv 1]
[광명: Lv 1]
“?허.”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한 영식의 입 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평균 을 훨씬 뛰어넘는 무지막지한 스탯
24/29
이었다.
‘지금 상태면 거의 50레벨과 동급 이잖아?’
메모리 큐브에서 얻을 수 있는 스 탯 중에서 체력과 마력은 없었기 때 문에 50레벨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다른 스탯은 오히려 50레벨의 평균 스탯을 뛰어넘는 것도 있을 정도였 다.
이런 상태라면 레벨 제한인 73을 달성했을 때는 거의 90레벨에 육박 하는 스탯을 가질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상태의 그를 보았다면
25/29
백검 강하린도 도도한 태도를 무너 트리며 그를 어떻게든 레이아탄 길 드로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조건들 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곳을 갈 생각은 없지만.’
영식은 레이아탄 길드가 떠오르자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이득만을 따진다면 지금 상 황에서 살바토르 길드를 배신하고 레이아탄 길드로 들어가는 것이 더 욱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레 비아탄 길드에 들어간다면 엘노트 왕국과 싸워야 할 일도 없을 것이 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길드를 다 시 일으켜 세울 필요도 없었다.
26/29
게다가 그들은 3대 길드라는 거대 한 집단이었다. 지금 영식에게 있어 서 가장 필요한 아이템 중 하나인 높은 등급의 블랙큐브를 다수 보유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아.”
영식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에서 살바토 르 길드를 배신하고 다른 곳으로 가 는 것은 굉장히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은 기계로 되어 있었다. 팔 이 뜯겨져 나간다고 해도 피 대신
27/29
기계부품들이 홀러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간성 을 상실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영 식은 오히려 남기태나 홍승걸처럼 바닥까지 타락한 인간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
“일단 블랙큐브는 전부 다 사용했 으니……
영식은 침대 위에 늘어진 블랙큐브 들을 인벤토리에 정리했다. 블랙큐 브를 통한 성장은 그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올리며 끝 이 났다.
이제는 30레벨에 불과한 레벨을
28/29
제한치까지 끌어올릴 때였다.
영식은 새로운 무기를 얻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계획’을 생각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가 생각한 계획이 성공한다면 거 대 길드가 관리하고 있는 던전에서 세상 편하게 성장하고 있을 천태황 을 뛰어넘는 폭렙이 가능했다.
“우선 드론부터 만들어 볼까.”
영식은 배한성에게 받은 골드를 바 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2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