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머신 008화
대륙으로 (1)
“여긴?”
영식은 갑작스럽게 뒤바뀐 풍경에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 다.
거대한 공동이었다.
딱딱한 남색 계열 벽으로 뒤덮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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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안에는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 이 모인 채 영식이 그러한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튜토리얼이라는 게…… 끝난 건 가?”
길수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보았던 메시지창을 떠올리며 물었다.
짧은 시간 안에 정신을 차린 영식 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예. 오크 족장이 죽었기 때문에 기간이 끝나기 전에 튜토리얼이 끝 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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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가……?”
“응. 이번 튜토리얼이란 것에 불려 온 사람들이겠지.”
아라의 말에 영식은 날카로운 눈빛 으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 았다.
그들은 튜토리얼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이제 어떻게 될지 모 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인 복잡한 표 정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 우리가 왔을 때는 이 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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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 게 물었다.
그녀의 말 너머에는 ‘죽은 사람도 많았을 테고’라는 말이 숨겨져 있었 다.
영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 에 대답했다.
“우리만이 아니었던 거지. 그밖에 도 함께 온 사람이 더 있었던 거 야.”
그 말을 들은 길수와 아라의 표정 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이 공동에 있는 사람들은 어 림잡아 보더라도 천여 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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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죽은 사람은 대체 몇 명이라는 말 인가.
영식 일행은 영식이 가진 기이한 능력과 빠른 판단력, 아라의 미끼로 서의 뛰어난 역할, 길수의 넉살좋은 성격으로 인한 긴장감과 스트레스의 완화.
이러한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 게 튜토리얼 공간에 적응할 수 있었 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특히 한 명에서 두 명 정도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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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다닌 사람들은 오크들을 상대하 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하 거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 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건 그렇고.
영식은 가늘게 눈을 좁히며 투박한 검을 들고 있는 한 청년을 바라보았 다.
천태황.
오크 족장을 물리침으로써 이 튜토 리얼을 조기에 끝내버린 남자.
그는 처음 봤던 것처럼 다른 사람 들 사이에서 떨어진 채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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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혼자서 크롤을 물리친 건 가?”
영식은 믿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그 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가 족장을 처치했다는 메시 지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당연 히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세해서 족 장과 싸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그런 것 도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가 혼자 힘으로 크롤을 처 치했다면 천태황은 그의 예상을 한 참 벗어난 괴물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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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진 않지만.’
영식은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괴물 이라고 평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괴물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 는 사람은 여기서 자신 이외에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 또한 천태황이 오크 족장을 처치했다는 메시지를 봤는지 그를 힐끔거리며 웅성거리고 있었 다.
천태황이 뛰어난 성적을 보인 검도 는 한국에서 그다지 유명한 스포츠 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외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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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뛰어났고 세계적인 기록을 싸 그리 갈아치워 버리니 나름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가 있었다.
영식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이 내 고개를 돌렸다.
그를 향해 아라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주변을 살펴보던 아라는 걱정스러 운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글쎄……. 그냥 이렇게 모아두기 만 하니 모르겠네.”
영식은 거대한 공동에 모인 사람들 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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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에 따르면 튜토리얼이 끝난 후 ‘적응’의 기간을 거쳐 본토로 향 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대체 적응이 뭐고 본토는 또 어디인지에 대해서 는 아는 바가 없었다.
“빠, 빨리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내보내줘! 튜토리얼은 모두 끝났잖 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줘!”
한 사내가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지난 기간 꽤나 고생을 했는 지 삐쩍 마른 몸에 퀭한 눈빛으로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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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맞아!”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 줘!”
“더 이상 이런 곳에는 있기 싫단 말이야!”
사람들은 악을 쓰듯이 아무것도 없 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지난 2주간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 로 돌아다니면서 겪었던 설움과 울 분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더욱 커지 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에 대답하듯, 공동 중 앙에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나타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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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녕하세요 소환자 여러분.]
“뭐, 뭐야 저건?”
거대한 빛의 구체에서 나지막한 목 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지 는 목소리였다.
‘이건?
영식은 그 빛의 구체를 바라보며 어딘가 ‘익숙하다’라는 느낌을 받았 다. 아니, 익숙하다는 표현으로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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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했다.
마치 자신의 일부를 보는 것 같은 묘한 감각이었다.
영식이 그 기이한 감각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구체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튜토리얼을 성공적으로 마친 여러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 소환자들은 적응의 기간을 거친 후, 본토 에르노어 대륙으로 향하게 됩 니다.]
“에, 에르노어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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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진짜 판타지였어……?”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생 전 처음 들어보는 대륙의 이름을 입 에 담았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말건 빛의 구체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응 기간에 여러분들은 ‘레벨’과 ‘클래스’의 개념을 부여받습니다. 레 벨은 에르노어 대륙의 근간을 이루 는 중요한 시스템이며, 원주민과 몬 스터, 먼저 온 소환자들을 가리지 않고 그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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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이어지는 구체의 말에 사람들은 모 두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레벨과 클래스라니?
이건 진짜 무슨 게임 속에 빠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아닌가.
[레벨 제한은 개인의 재능, 역량, 운과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 용하여 결정됩니다. 레벨 제한이 높 은 소환자들은 다른 소환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장 가능성을 지니 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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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일반 게임과 다르군.’
구체의 말을 듣고 있던 영식은 깊 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렇게 생각 했다.
RPG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유저들의 ‘공평한 시작점’이었 다.
컨트롤에 따른 재능의 차이는 있겠 지만 시스템적으로 동등한 레벨에서 시작했고, 똑같이 레벨을 올리는 것 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처럼 시작부터 제한 레벨 이 개인마다 다르다면 재능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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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일 정 단계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의 미였다.
이것은,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나 볼 법한 시스템이었다.
[클래스는 앞으로 소환자 여러분들 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 주며 스 킬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그딴 것 다 필요 없고 집으로 돌 려보내달란 말이야!”
구체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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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을 일으키듯 거친 목소리로 소 리 쳤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동의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이라느니 클래스라느니 헛소리 에 가까운 말은 그들에게 필요 없었 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듯한 보금 자리로 돌아가는 것 하나뿐이었다.
[소환자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목표를 완수했을 때만 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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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구 체를 바라보았다.
[여러분들의 목표는 에르노어 대륙 의 북방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물 리치고, 괴물들을 만들어낸 창조주 를 죽이는 것입니다.] 구체에서 한층 더 강렬한 빛이 쏟 아졌다.
[괴물들의 창조주를 죽인 소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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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소환자들은 어느 세계도 자유 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 으며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 습니다.]
“뭐, 뭐야 그게……
사람들은 이어지는 구체의 말에 꿀 꺽 침을 삼켰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실감이 되지 않 는 말이었다.
괴물들의 창조주를 죽이고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라니?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던 사람들에 게는 그냥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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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들리지 않았다.
물론, 그중에는 ‘세계의 지배자’라 는 단어에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 빛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소설이나 만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엄청 난 힘을 얻고 짜릿한 모험을 통해 수많은 미녀와 재화,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 이 워낙 어처구니없다 보니 그런 망 상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지랄하지 말고 그냥 지구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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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고!”
처음 소리쳤던 퀭한 눈빛의 사내가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느꼈던 강렬한 스트레스는 그에게 그런 핑크빛 망상조차 꿈꿀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그의 절규를 빛의 구체는 가 볍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적응’을 시작하겠습니다.]
-파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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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과 함께 강렬한 빛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구체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빛이 사람들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기 시 작했다.
“크윽!”
“이, 이게 무슨……!”
사람들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드 는 빛을 바라보며 다급한 표정을 지 으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영식 군…… 이건.”
“예, 이게 적응이라는 것 같네요.”
영식은 구체에 가까운 쪽부터 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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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 사람들의 몸속으로 홀러들어가 는 빛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 냈다.
그의 생각에는 지금 저 구체가 헛 소리를 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것 같 지는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정말 이걸 통해서 레벨 이라든지 클래스가 생기게 되는 건 가?’
그렇게 생각한 영식은 묘한 기대감 이 부푸는 감각을 느꼈다.
영식은 그런 감각에 쓴웃음을 지으 며 다른 사람들이 하나씩 ‘적응’하 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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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였다.
- 파아아아앗!
엄청난 양의 빛이 한 청년의 몸속 으로 흘러들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천태황……?”
영식은 강렬한 빛을 몸속에 받아들 이고 있는 청년의 이름을 입에 담았 다.
그는 그런 빛을 받아들이면서도 덤 덤하게까지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며 구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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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환자는 적 응을 통해 더욱 많은 것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빛의 구체는 천태황에게 일어난 현 상을 설명하려는 듯이 나지막한 목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천태황에게 사람들의 이 목이 집중됐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망 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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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주인공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 는 인간은, 천태황과 같이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이들뿐이었다.
“음……. 저 사람이 저 정도라면 너는 얼마나 큰 빛이 날지 기대되 네.”
아라는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천태 황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오크 족장을 단신으로 처치했 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 과는 비교하기 힘든 천부적인 재능 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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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로켓 펀치를 사용하고, 등에서 개틀 링 건을 뽑아내며,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아내는 영식에 비할 수는 없 다고 생각했다.
영식의 경우는 더 이상 재능 문제 가 아니었다.
아라는 영식에게만큼은 레벨이나 클래스 같은 것도 의미가 없다고까 지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 정도로 충 격적인 것이었으니까.
“하하. 영식 군이라면 여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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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 깜짝 놀랄 정도의 빛이 나 오지 않겠나?”
길수도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기대 찬 눈빛으로 영식을 바라보았다.
영식은 그런 그들의 눈빛이 살짝 부담된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 었다.
그리고 시간이지나 영식의 차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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