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최창호와 김서영, 최민서까지 시우 일가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대한병원.
한국 최고의 병원인 이곳은 연일 전국에서 찾아오는 환자들로 인해 예약 진료에만 몇 달이 걸리고 응급실을 찾아가도 중한 상태가 아니라면 바로 치료받기 어려운 곳이었다.
최창호와 김서영도 몇 번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지만, 매번 장시간 기다리는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터라, 시우가 이곳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에 놀람 반의 걱정 반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던 듯, 병원 입구에서 태백그룹의 손녀인 소빈의 안내를 받아 곧장 12층 VIP 병동으로 향했고, 사람이 가득 찬 1층 로비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에 두 번 놀랐다.
“우, 우리 애는 괜찮은가요?”
“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셨어요.”
“깨어났다고요? 기절했던 건가요?”
소빈의 얼굴엔 아차 하는 감정이 스쳤다.
소빈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병실은 병실이라기보단 호텔 객실에 가까웠다.
병원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병실 자동문부터 시작해 고급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인테리어. 병원 특유의 소독약 대신 풍기는 은은한 꽃향기와 간헐적으로 들리는 환자의 신음 대신 클래식 음악까지. 자신들이 호텔을 병원으로 잘못 찾아온 거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해서, 식사 잘 챙기시고, 잠을 푹 주무시기 바랍니다.”
병실 내부는 호텔 객실만큼 큰 느낌이 들었지만, 병실 내부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로 인해 답답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하얀 가운을 입은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들은 김서영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셨습니까?”
시우의 가족들을 맨 먼저 맞은 건 정형진이었다.
최창호는 여기서 또 태백그룹의 수장인 정형진을 만난다는 것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아들은 괜찮은 건가요?”
“이쪽에 와서 이야기 들어 보시죠.”
정형진은 병실 안쪽을 가리켰고, 의사들의 무리를 넘어서 안쪽에는 태백그룹의 일가 사람들과 처음 보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누워있는 시우가 보였다.
“오셨어요?”
그 중심에 이곳저곳 반창고를 붙인 시우가 김서영을 아는 체했다.
“괜찮은 거야? 어디 많이 다친 건 아니고?”
“괜찮아요. 괜찮다는데, 이 사람들이 억지로 데려다 놓은 거야.”
“어쩌다 다친 거야?”
“아아, 그 지진에 휘말려서 넘어지는 바람에.”
“넘어졌다고?”
“응. 넘어졌어.”
김서영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의사 가운을 입은 중년의 사내를 바라봤다.
의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사람들을 구하다 그랬답니다.”
“사람들을 구했다고요?”
“얘기하지 말라니까.”
뒤에서 시우의 볼멘소리가 들렸지만, 의사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아주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용기 있게 나서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도왔다고 하더군요.”
“…….”
“회장님의 지시도 있었지만, 저희도 이런 훌륭한 청년을 함부로 대할 수 없어서 이곳저곳 자세하게 검사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이나 이상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
김서영은 무너질 듯 시우의 침대에 기대었다.
“괜찮아요. 괜히 오바 하는 거야.”
고개를 파묻고 있던 김서영은 벌떡 고개를 들고는 시우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래도 그렇지, 함부로 위험한 곳에 들어가면 돼?”
“아아… 잠깐, 가, 가슴은 아직 아파….”
시우의 비명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지만, 그 장면을 심각하게 느끼는 이들은 없었다.
* * *
휠체어 모양의 기구 위에 탄 시우가 멀찍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대한민국의 하늘은 언젠가부터 미세먼지를 저감 하는데 사활을 거는 중국 덕분에 흐린 날이 아니면 하늘은 언제나 푸르렀다.
물론 시우가 지나가는 말로 ‘한국에서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한 건 중국 상계와 한국 상계의 일부 사람들만이 아는 이야기였다.
“뭐 하고 계셨어요?”
등 뒤에서 한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우가 기구를 조작하자 자연스럽게 회전하며 등 뒤를 바라봤다.
“비행 마법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네. 낌새도 못 느꼈는데.”
“비행 마법이 아니에요. 바람의 정령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벌써 중급 정령까지 소환 가능하단 말이야?”
“이게 다 맹주님 덕분이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고 계셨어요? 알게니하에 두고 온 첫사랑이라도 생각나셨나요?”
“그러고 보니, 헷갈리네, 그럼 난 첫사랑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지? 알게니하에서 처음 여자를 만난 건 30대 후반이 다 돼서였거든.”
“지혜 양한테 다 이를 거예요.”
“후후….”
시우는 다시금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한세아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저런 시우의 모습이었다.
시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혹시 불편하신 건 아닌가요? 그럼 바로 대한병원에 예약을 해서….”
“그 쇼를 하고 겨우 나왔는데, 거길 또 갈까.”
시우의 몸은 최악의 상태였다.
외관적으로의 부상이 아닌 내부의 문제였다.
과도한 마나의 폭주로 마나서클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완벽한 회복을 위해선 장기간 요양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집에서 긴 요양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입원부터 치료와 퇴원까지 연기를 하고 그 이후에 어학연수를 핑계로 한연맹에서 요양을 하는 중이었다.
“그럼 무슨 고민이 있으셔서 매번 이렇게 나와 계신 건가요?”
“내가 나와 있는 게 불편한가?”
“맹도들이 걱정을 해요.”
“아아….”
시우는 이미 한연맹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맥없이 매일매일을 말라가는 것처럼 보이니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것.
“일부러 안 보이는 곳에 높이 올라와 있었는데.”
“맹도들 때문이 아니라, 정말 걱정돼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 우리에겐 말해주지 않으시는 건지. 저희가 아직 못 미더우신 건가요?”
세아의 말에 시우는 속으로 뜨끔한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실제로 시우는 최후의 결전 이후에 깊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은 빌리언트라는 중재자가 있었고, 시우도 나름 이야기를 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소통이 부재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최근엔 정말 심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소통이 부재하고 있었다.
더구나 빌리언트 이후에 한연맹의 시스템을 처리하는 새로운 에고(EGO) ‘에인스타인’은 빌리언트와 달리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되어있는 존재였기에 사람들은 최후의 결전 이후에 시우에게 심각한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그랬나?”
“저희는 시우 님을 따르는 존재예요. 시우 님이 저희를 믿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에겐 그것만으로도 큰 짐이 되어버린답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말할 건 아니야. 그냥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있어서. 그게 좀 복잡해서 그래.”
“그게 뭔가요?”
“아….”
“그게 뭐죠?”
한세아가 시우에게 바짝 다가왔다.
“좀 떨어지지 그래, 부담스러운데?”
“말씀해주시면 떨어질게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좀 물러나라고.”
시우는 머리를 북북 긁었다. 여전히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빌리언트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
“…어.”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좀 조심스러운데, 에고 소드의 자아는 인위적인 것 아닌가요? 인간보다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딱딱한 존재는 아니야. 사실 그것 때문에 가끔 마검이 만들어지기도 하거든, 에고소드에서 에고가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폭주해서 사용자의 정신을 좀먹기도 하고. 더구나 빌리언트는 내 영혼의 조각을 나누어 만든 존재라 알게니하 대륙의 태생이라해도 이세계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나 이상으로 느끼게 될 거야.”
“그게 걱정되시는 거군요.”
“사실 녀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 영혼을 나누어 만든 에고 소드는 지독하고 맹목적으로 주인만을 생각하곤 하거든. 그런 에고에게 주인 외의 존재가 자신을 희생하고 싶을 정도로 인식되었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도 않고 말이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네요.”
“그렇지?”
“전 사실 궁금한 게 있어요.”
“갑자기?”
“네. 류신은 왜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차원의 틈을 여는 그런 짓을 한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럴 필요 없이….”
“아아,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류신의 행동은 사뭇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모든 행동은 효율을 향해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법이다.
마법도 마찬가지, 류신이 펼친 복잡한 결계와 차원 마법 등은 쓸데없는 짓거리라는 소리가 아까울 정도로 허튼짓이었다.
그 정도 노력이라면 대한민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체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쉬웠을 터, 그럼에도 류신은 천만의 인원을 차원 이동시키는 기이한 짓을 벌였던 것.
“그것도 모르겠네. 머리가 너무 안 돌아가. 이거 드래곤 하트 부작용으로 뇌세포가 줄어든다는 걸 따로 기록해놔야겠는데.”
시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려 한연맹 부지를 바라보았다.
한연맹 내부는 이제 무공을 익히는 사람과 마법을 익히는 사람, 야토가미의 술을 익히고 진법을 설치하는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고 있었다.
시우는 그 이질적인 일상의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빌리언트를 희생했다는 죄악감과 이곳에 남았다는 안도감 사이에서 괴로움을 견뎌내고 있었다.
“혹시….”
세아의 나직한 말에 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류신도 그렇고, 빌리언트도 그런 행동을 한 건 시우 님 때문이 아닐까요?”
“류신은 그렇다 치고, 빌리언트는 무슨 이야기야.”
“우선 류신부터 이야기해 볼게요. 류신이 감정을 되살렸다는 말을 했잖아요.”
“응. 웃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감정을 가지게 된 류신이 맨 처음 느꼈을 감정은 바로 고독 아닐까요?”
“…?”
“자신의 손으로 행하긴 했지만, 이 세상에 야토가미에 관련된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은 거잖아요. 그건 달리 말하면 알게니하 대륙에 떨어진 시우 님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시우는 말없이 세아를 바라봤다.
“그 몰아치는 고독 속에서 그 무엇보다 커다란 절망을 느끼고, 시우 님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려고 한 거죠.”
“그런가…?”
류신은 최후의 일전을 벌이며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자신이 준비한 술법과 마법들이 한 번씩 부서져 나갈 때마다 마치 신기한 마술을 보는 아이처럼 웃었다.
모든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 것을 기뻐하는 아이처럼.
“시우 님은 이미 알게니하를 다녀 왔으니까, 똑같은 고통을 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시우 주변에 있는 인원들을 다른 세계로 보냄으로써 시우 님에게 또 다른 고독을 주려 했던 거죠. 만약 죽음이나 상처로 해를 입혔다면….”
“죽음은 상처로 남아 회복되었을 테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끔찍하네.”
“만약 성공했다면, 시우 님은 평생을 바쳐 그 사람들을 되돌아오게 하는 데 시간을 보냈을 거고요.”
“그만 얘기해, 트라우마 생길 거 같으니까.”
“반면에 빌리언트는 시우 님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생각 들어요.”
“같은 존재?”
“빌리언트는 알게니하 대륙에서 보낸 시간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면서요. 그 긴 시간에 더불어 이곳에서의 시간까지 어찌 보면 누구보다 시우 님을 잘 아는 존재가 바로 빌리언트잖아요.”
“그렇지.”
“그 고독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달라지는 시우 님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언젠가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요?”
세아의 말에 시우가 피식 웃었다.
“너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거 아닌가?”
“그래도 좀 위로가 되었나요?”
“왠지 그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드는군.”
“분명 그랬을 거예요. 빌리언트는 우리 중에서도 제일 시우 님을 존경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랬나.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나….”
“그런 존재였어요. 언제나.”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전경 너머로 붉은색의 노을이 진다.
알게니하 대륙에 있을 때도 이렇듯 노을이 지는 모습에 심취하곤 했었다.
그때 건물 옥상의 난간 너머로 두 남녀가 휘청거리며 둥실 떠올랐다.
“시우야! 나 봐! 나 지금 플라이! 플라이!”
“시우야, 나 지금 날고 있어!”
두 남녀의 정체는 우빈과 지혜.
지혜가 마법을 배우며 우빈도 마검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개척해 보겠다는 이상한 꿈을 품고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그렇게 떠오르기만 해서 착륙은 어떻게 할 거야?”
시우의 말에 우빈과 지혜가 서로를 바라봤다.
“마법 쓸 때 정신 놓지 말라고 했지?”
풍선처럼 떠오르던 두 사람의 신형이 갑작스레 추락했다.
“우아아아아아아악!”
“꺅!”
건물 8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아찔함에 한연맹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던 두 사람은 어느새 중력의 힘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몸이 안정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곳은 시우의 손가락.
기구 위에 앉아 있는 시우의 손가락 끝에 마법진이 생겼던 것.
“힘이 돌아왔구나!”
“만세!”
“심하게 움직이지 마. 아직 불안정하니까.”
다시금 두 사람의 비명이 한연맹 내부에 가득 울리고, 뒤이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의 웃음소리가 한연맹을 가득 메웠다.
《리턴 투 다크위저드》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