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95화 (195/200)

195화

류진의 의상은 일본 전통 의상이 아닌 영국 검은 장미단이 입고 있었던 검정색의 로브였다.

그 모습을 본 시우가 감상을 내뱉듯 말했다.

“외국 물을 좀 심하게 먹었나 봐, 꼭 딴 사람 같네?”

시우의 말에 류신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꼭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짓는 미소 같아 시우는 소름이 끼쳤다.

“시우 님과의 치른 마지막 일전에서의 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새사람이 되었다는 그 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군요.”

“의외였어, 뭔가 술수를 부린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영국이었을 줄은.”

“이전에도 마법에 대해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었죠. 마법이나 무공이나, 귀술에 비하면 한참 격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그걸 배우기 위해 영국에 유학이라도 다녀왔나? 반은 어디로 배정받았지? 슬리데린? 그리핀도르?”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 조금 수월했겠지만, 볼드모트는 환상 속의 인물이더군요.”

“확실히 다른 사람 같네. 농담도 할 줄 알고, 배운 게 마법뿐만은 아니었나 봐?”

“마법을 갖는 건 제게 꽤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해서 점점 더 확실하게 알게 될수록 시우 님의 존재는 점점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제가 갖은 마법은 시우 님의 마법을 좇기엔 너무 늦었거든요.”

“뭐, 내가 요즘 들어 잘났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

“그래서 시우 님의 근원에 대해서 찾아봤습니다.”

“그 조사도 꽤 잘했어. 여긴 나한테 별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 아니거든.”

“아아, 처음으로 밟은 고향 땅이 이처럼 더러운 곳이라 그랬던 겁니까?”

“이거야 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니까 대화가 뱅뱅 도는 것 같군.”

“전 사실 기쁘답니다. 이렇게 시우 님에 대해서 제가 더 잘 알게 된 건 처음이라. 사실 조금 흥분되는 경향도 있지요.”

“그런 비상식적인 발언은 좀 자제 해줬으면 좋겠네. 참고로 애인이 있는 몸이야.”

류신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불꽃을 생성했다.

“이게 제가 영국에서 처음 얻은 불꽃입니다.”

다른 손에선 얼음으로 만들어진 방추형의 송곳이 생성되었다.

“이건 제가 얻은 얼음이고요. 하지만 아무리 고차원의 마법을 얻어도 시우 님이 생성한 마법과 똑같은 것은 얻을 수 없더군요.”

“좋은 관찰력을 가졌군.”

“그래서 시우 님이 외계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우주 어딘가 마법적 진보가 뛰어난 행성에서 떨어진 슈퍼맨 같은 외계인.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시우 님의 과거가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엔 cctv가 별로 없는데?”

“cctv보다 더 선명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류신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정신을 건드리는 마법은 좀 쓸 만했나 보지?”

“아마도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그랬겠지. 인간의 사고란 다 거기서 거기니까.”

시우 또한 흑마법을 익히면서 가장 힘썼던 것이 바로 정신 관련 마법들이었다. 알게니하 대륙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인식 불능 마법부터 시작해 정신 지배 마법이 가장 주요했었다.

귀술에 조예가 깊은 존재가 정신 마법에까지 손을 뻗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정신 마법은 사용할 땐 가장 편리하고 좋은 마법이지만, 상대할 땐 가장 까다로운 마법 중 하나다.

“시우 님의 과거를 조사하던 중, 정말 믿지 못할 만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우 님께선 단 하루. 아니 단 한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셨더군요.”

“여기서 날 기다린 이유가 있었군.”

“힘을 얻는 건 사람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일생에 일어나는 몇 가지 되지 않는 기적들도 결국 그 인간의 생을 완전하게 바꾸지 못합니다. 복권에 당첨되어 떼돈을 번 사람은 얼마 안 가 그 돈을 잃고, 어부지리로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다 해도 그 권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지요. 시우 님이 얻은 그 힘은 단순히 기적을 통해 얻은 게 아님이 분명했지요.”

“그래서 알게니하 대륙은 다녀왔나?”

시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과 똑같이 차원의 문틈을 통해 순간의 시간 동안 일평생의 경험을 하고 왔다면, 시우는 이곳에서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그곳을 알게니하라고 하나 보죠?”

“다녀오지 못했나 보군. 하긴 차원의 문을 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니.”

시우가 보일 듯 말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의 문은 열 수 없습니다. 그건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야토가미엔 명계의 벌어진 틈을 여는 주술이 존재합니다.”

“―!”

“시우 님이 다녀오신 그 틈을 이용해 차원의 통로를 만들 수 있었죠.”

“이곳에 말인가?”

시우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당초, 알게니하 대륙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고, 또한 돌아간다 해도 다시 되돌아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목숨을 건 도박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그랬기에 자신이 다녀온 차원의 문을 통해 통로를 만들었다는 류신의 말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의문이 생겼다.

통로까지 만들었다면 왜 다녀오지 못했던 것인가?

류신은 자신의 동료와 주군을 배신하면서까지도 시우를 죽이고 싶어 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행동 알고리즘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단 기계의 것에 더 가까웠으며, 목적하는 바와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탈감정의 소유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을 함께 해오고 자신을 믿고 있는 야토가미의 인물들을 자신을 위한 제물로 삼을 이유가 없었다.

어찌 보면 야토가미를 멸망시킨 것은 시우가 아닌 류신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이 시우로 하여금 류신을 가장 까다로운 적수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런 류신이 차원의 통로를 통해 알게니하를 다녀오지 않았다? 갑자기 감정이 생기고 목숨이 아까워진 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왜 알게니하에 다녀오지 않았지? 그곳엔 미녀와 맛있는 음식이 잔뜩인데?”

“저도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맨 처음 차원의 틈바구니를 열어 그 안을 통해 시우 님이 밟으신 곳들을 직접 밟아 보려 했지만, 저를 거부하더군요.”

“거부당했다고?”

“아마도, 온전한 영혼이 아니라 그런 게 아닐까 예측해 봤습니다.”

“그건 좀 아깝겠군. 알게니하라면 한 번쯤은 꼭 가볼 만한 대륙이거든.”

“그 말씀을 기억하고 차후에 꼭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류신이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긴 힘들 거야, 네가 벌린 일이 좀 커서 그걸 수습하고 나서도 죗값을 꽤 오랫동안 치를 거거든.”

“아아……. 그렇군요.”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저도 생각해 봤습니다. 야토가미의 동료와 부하들을 잃은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가 뭘까 하고요.”

“애초에 그들의 반은 네놈의 주술에 당했는데?”

“그 원인 제공은 시우 님께 있지 않습니까?”

“그거 아나? 이전에 감정 없는 편이 대화하기는 더 편했어.”

“저도 사실 이게 익숙지 않아서 말이죠. 사춘기를 겪는 아들의 변화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끔찍한 소리 하지 말지. 대답이나 해. 사람들은 어디 있지?”

시우가 양손에 마나를 뻗어내며 말했다. 그의 양손에서 솟구친 응축된 마나가 검처럼 푸른 예기를 내뿜었다.

“통로 안에 있습니다.”

“뭐? 통로 안?”

“워낙 많은 인원을 집어넣다 보니, 이게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한가 봅니다.”

“미치겠군. 그 많은 인원을 이(異)세계에 처박았단 말이야?”

“아직 도착한 건 아닙니다. 아직 이(異)세계에 도착한 이는 없습니다.”

“처음 해보는 마법일 텐데 꽤 자세하게 아는군?”

“영혼의 일부를 떼어 이(異)세계에 보낸 인원들 중 하나에 몰래 심어 놓았습니다.”

“마치 돈이라도 맡겨 놓은 듯한 말투군.”

“이건 꽤 재미있군요. 감정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왜냐면 차원의 틈을 제 영혼과 연결시켜 놓았거든요.”

“……그 말은?”

“시우 님은 꼭 저를 상대하셔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웅.

스겅.

공기가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시우의 신형이 류신을 지나쳤다.

살과 뼈가 동강 나는 소리치고는 꽤나 경쾌했다.

푸쉬익!

잘린 류신의 목 위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하늘에선 마치 피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떨어졌고, 시우는 일절 피하지 않은 채 묵묵하게 핏빛 비를 맞았다.

“협박이 틀렸어. 별로 재미도 없었고.”

시우는 곧장 류신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검은 촉수가 류신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마법을 배웠다고 해서 똑같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냐. 이런 잡술에 대해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일례로 네가 말하는 명계의 틈을 여는 주술 또한 이미 알고 있던 거다.”

류신의 잘린 머리가 눈꺼풀을 움찔거렸다.

촉수가 다다라 류신의 목에 파고들려는 순간.

류신의 머리가 덜컥 움직이며 시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방심할 수 없는 분이군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조심을 했답니다.”

류신의 말과 함께, 머리가 검은 가루로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류신의 머리는 계속 입을 주절거렸다.

“문제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제 몸은 몇 개나 더 존재할까요? 그리고 무고한 한국 분들에겐 몇 분의 시간이 남았을…….”

말을 끝까지 채 마무리 짓지도 못한 류신의 입도 결국은 타들어 갔다.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서 마법진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차원의 틈새를 찾는 마법부터 시작해, 뒤틀림을 보는 눈, 차원 이동에 관한 개략적인 이론으로만 남아 있는 고대의 마법도 무리하게 시전하기 시작했다.

시우의 두 눈이 마치 태양을 박아 넣은 것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시우의 차원의 눈이 다른 세계가 들어왔다.

‘이거구나.’

4층 빌라 만큼의 찢어진 차원의 틈은 세상의 온갖 것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기이한 불빛과 기운을 내뿜는 틈은 찢어진 상처처럼 다양한 색깔에 무언가를 바닥으로 흘리고 있었고, 그 기운들이 지구의 기운과 합쳐져 몬스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되찾아 와야 해.’

가족뿐만 아니라, 온갖 사람들이 차원의 틈새에 먹혀 버렸다. 이건 단지 차원 이동의 문제뿐만 아니라 두 세계에 어떠한 후유증을 남길지 몰랐다.

애당초 시우가 지구로 돌아왔던 것은 그곳에서의 일이 다 끝났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계의 존재가 현계의 법칙을 훼손하면 현계의 법칙은 잘못된 법칙을 고치려 한다. 시우가 돌아왔던 것은 어쩌면 현계의 법칙의 하나의 회복의 과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1,0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넘어간 후에도 똑같은 요행을 바랄 순 없다.

더불어 지구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

어쩌면 류신은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서 일을 벌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시우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했다.

이 또한 고차원의 이동에 관한 이론 마법 중 하나인 신체의 물질변화 마법이었다.

본래의 신체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대로 붕괴되어 사라질 위험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시우의 손이 차원의 틈새에 파고들었다.

팔꿈치까지 시우의 몸을 집어삼킨 틈새가 꾸물떡꾸물떡 거렸다.

시우는 과감하게 온몸을 틈새에 집어넣었다.

시우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고, 틈새는 점점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었다가 이물질을 토해내듯 검은 무언가를 총알처럼 뱉어내었다.

콰쾅!

골목에서 튀어나온 시우가 건너편 빌라의 대리석 벽을 산산이 부수고 멈춰 섰다.

“으윽.”

돌무더기를 털어낸 시우는 틈새가 있던 방향을 바라봤다.

더 이상 태양 같은 빛이 감돌지 않는 그의 눈은 이제 차원의 틈새를 볼 수 없었다.

“진짜 틈새와 영혼을 합친 거냐? 대체 마법을 배워 무슨 짓을 벌인 거냐.”

시우도 마법과 귀술을 익혔다. 귀술뿐만 아니라 중국의 무술과 주술까지 익혔고, 머릿속엔 51area에서 얻어낸 세계 각지의 힘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하는지는 각 개인의 몫이다. 어느 한계까지는 시우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론 예측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지금 류신이 행한 모든 것들이 그랬다.

“네놈이 원하는 대로 술래잡기를 해주마, 하지만 그리 재미있진 않을 거다.”

시우가 아공간을 열어 타이탄을 소환했다.

자동수복기능이 장착된 타이탄은 아공간에서 ‘골렘’과의 전투로 망가졌던 모든 부분을 회복한 상태였다.

타이탄에 탑승한 시우는 하늘에 마법진을 띄웠다.

[뷰 마나 포스]

류신이 가진 특정한 마나의 파장을 파악해 서울 전체를 검색한다.

타이탄의 오른손에 푸른빛의 마나 소드가 생성된다.

곧이어 타이탄의 부스터가 불을 내뿜었다.

부앙

아스팔트 바닥이 녹고, 주차되어 있던 차들의 유리가 깨졌다.

퍼퍼펑!

소닉붐 현상을 일으키며 타이탄은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해 서울 하늘을 갈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