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한연맹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하교 후에 아무도 남지 않은 학교의 전경을 보는 듯, 한연맹의 부지는 적막하기 그지없었고 그런 환경들이 돌아온 이들에겐 낯설게 느껴졌다.
“다들 어디 간 거지?”
한연맹의 무인들은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한 피로함보단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부자연스러움에 더욱 혼란을 느끼며 건물을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건물과 어떤 길에서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한 무인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가지고 나왔다.
다른 이들은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그 무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무인은 곧장 시우 일행에게 다가갔다.
“맹주님.”
시우가 무인을 돌아봤다.
“방금 카페에서 가져온 겁니다.”
무인의 말에 우빈이 나섰다.
“지금은 이런 행동을 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요?”
우빈의 차가운 어투는 무인의 행동을 책망하고 있었다. 비록 시우가 한연맹의 사람들에게 신처럼 대우받고는 있지만 모든 행동은 때와 장소를 가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인은 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시라고 가져온 게 아닙니다.”
무인이 일회용 잔에 든 커피를 들어 올려 보았다.
플라스틱 잔의 외면엔 내부의 액체와 외부의 온도차로 인해 생성된 물기가 방울져 있었다.
무인은 손가락으로 일회용 잔의 물기를 쓸어 내리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도 사람들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
무인의 말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우빈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다른 이들의 표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흔적이 있습니다.”
“연무장에서 검을 발견했습니다.”
차례차례 건물을 수색하던 이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고가 들어올수록 사람들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한순간에 사람들이 사라졌다. 이 미증유의 사태에 무인들의 불안감이 가속화되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상계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불가사의한 이런 현상을 평범한 인간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고, 그런 이유로 상계는 하계를 직접 분리하여 혼란을 막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계인들마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상상의 한계가 하계인들보다 좁은 상계인들은 자신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면 더욱 당황하는 면이 있었다.
무인들은 평소와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장내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불안에 떨었다.
“조용―.”
시우의 음성이 무인들의 머리를 쨍하니 울렸다.
한세아를 비롯한 책임자들도 머리가 아프게 고민하다 시우의 음성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지금부터 조사를 시작한다. 한연맹과 관련된 외부인들을 시작으로 연락을 돌리고, 외부에 나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도록.”
정확한 목표를 정해주자 무인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았다.
한세아는 직접 나와 무인들을 진두지휘하며 무인들에게 임무를 맡겼다.
“인원들은 10명으로 나누어 총 20개의 팀으로 움직이도록 하세요. 나머지 10개의 팀은 본부에 남아 중간 연락을 담당하도록 합니다.”
“네!”
무인들은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가장 큰 두려움을 겪었던 지혜는 조심스레 시우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시우는 난생처음 보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한연맹은 물론이고, 서울의 모든 인구가 사라진 상태였다.
사라진 그들의 모습은 한연맹의 모습과 똑같았다. 일상을 지내던 이들 모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로, 학교, 건물, 정부청사, 지하철 등등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자취를 발견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듯, 당금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대도시 속에서 인간의 자취를 발견하지 못 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오랜 세월 무공을 수련한 무인들도 적막감만이 느껴지는 도시의 전경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인간의 자취가 사라진 것에 놀라움을 느끼던 이들은 점차 하나둘 격정적인 감정 속에 빠지고 말았다.
사라진 인간들 중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인근이나 지방의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연락을 해 보았지만, 직접 지방으로 차를 몰고 나간 무인을 돌아오지 못했고, 핸드폰은 계속 먹통이었다.
“도로엔 차 사고 현장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반대로 피를 흘리거나 상처 입은 흔적은 없었고요.”
“서울을 나간 차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실험을 위해 서울 경계를 밟았던 무인도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저희가 환영마법에 걸린 건가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의심했다. 오히려 현재 상황은 마법이나 환상이 아니라면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확인해 봤어. 우린 깨끗해. 그리고 저 하늘에 있는 것들이 환상이 아니라고 알려 주고 있어.”
시우의 말대로 서울 상공엔 군용 정찰기들이 계속 선회 비행을 하고 있었다.
헬기도 간혹 보이긴 했지만, 어쩐지 가까이 다가오지 않은 채 먼 거리에서 지상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세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시우는 천천히 자신이 파악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서울 전체에 진이 형성된 모양이야.”
“서울 전체에요?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 진이 목적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야. 단순히 공간을 분리해서 우리를 가둬놓을 생각이라면 그저 한연맹의 부지 정도만을 대상으로 했으면 되겠지. 근데 굳이 서울 전체에 진을 펼쳤어.”
“그럼 이 공간 안에 있던 사람들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건 또 아니야. 일전에 야토가미에서 쓰던 진은 현실 안에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내는 환영진이었어. 현실이지만 진짜가 아닌 거지. 근데 지금 펼쳐진 진은 환영을 만드는 게 아닌, 그저 경계만을 나누고 있어.”
“그럼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
시우는 대답이 없었다.
그조차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태에 혼란을 느끼는 중이었다.
“맹주님!”
헐레벌떡 한 무인이 들이닥쳤다.
“자,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한연맹의 연무장으로 나온 이들은 무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초록색의 피부와 기괴한 얼굴, 어린아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키에 손에 들고 선 것은 날이 나가고 녹슨 단검이었다. 낡은 가죽으로 대충 몸을 가린 것으로 보아 최소한의 의류를 입는 의식은 있는 듯한 그것은 초록색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
“그, 그것이 갑자기 나타나 공격을 해대는 바람에 곧장 출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어 있는 ‘그것’의 모습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현대 문명의 환상적인 문화를 겪고 자랐고, 자신들 또한 상계라는 특수한 곳에 속해 있었다. 더군다나 일반인들보다 이러한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모두 ‘그것’의 이름을 누군가 알려 주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대부분 만화 영화 소설 등에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상상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이거…… 고블린 맞죠?”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존재’의 이름이 나오자 침묵은 더욱 무거웠다.
“이걸 어디서 발견했다고?”
시우의 물음에 고블린을 사냥한 무인이 답했다.
“그게, 한연맹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적이 드물지만 민가와 멀지 않은 곳에 종종 출몰하여 인간을 사냥하거나 인간의 농작물을 약탈하는 존재. 고블린은 시우가 알던 그 습성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블린 맞아.”
“아―!”
시우의 확정적인 답변에 무인들이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사라진 인간, 나타난 몬스터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 사태에 혼란은 더욱 가속화되어 갔다.
“팀들은 다시 서울 시내를 수색하고, 수상한 객체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 보고하도록 해. 사냥은 해도 상관없지만, 인간의 크기를 넘는 존재에 대해선 싸우지 말고 보고만 하도록.”
시우는 말을 끝내는 즉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무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소빈이 그들 앞에 나서서 말했다.
“지금은 그저 맹주님의 명을 따르는 것이 이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다들 빠르게 움직여 주세요.”
소빈의 지휘가 있자 그제야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우를 따라 들어선 한세아는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시우의 표정이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에서 빌리언트와 이야기한 후 대형 컴퓨터를 조작하던 시우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문주가 일전에 나의 근원에 대해서 궁금해한 적이 있지?”
아주 옛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한세아가 멈칫거리다 대답했다.
“……네.”
“왜 그 뒤로 나에 대해서 묻지 않았지?”
“언젠가 이야기해 주실 거라 생각했었어요.”
“문주는 참 좋은 사람이야, 머릿속으로 알아도 실천하기 힘든 일을 항상 행동으로 행하거든.”
“감사합니다.”
“한 문주는 내 근원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했지?”
“어떤 기연을 통해서 상계의 큰 힘을 얻은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맞는 거 같던가?”
“…….”
한세아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보기에 시우는 많은 방면으로 너무 유능하고 익숙했으며, 낯설음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타고난 성격이 여유 있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익숙해 보이는 모습들이 많았다. 마치 몇 번이나 세상을 살아본 사람처럼.
“혹시…… 반로환동을 겪으신 건가요?”
한연맹이 구성되고 무인들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한세아도 종종 듣는 것들이 많았다.
무인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선 종종 시우의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무인들은 그런 시우를 보며 분명 반로환동한 고수가 틀림없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보지 않고선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인물이 남궁혜자와 비슷한 노련함을 보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반로환동의 경지는 전설로나 내려오는 경지이기에 듣는 무인들도 모두 우스갯소리로 넘겼고, 세아도 마찬가지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것 말고는 시우의 정체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하, 그것도 재밌는 이야기네.”
“아닌가요?”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건, 기연 때문이 아냐. 바로 저주 때문이지.”
한세아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저주요―?”
“그래, 저주, 난 저주에 의해 난생처음 보는 세계에 떨어진 적이 있어. 흔히 장르 소설에 나오는 이(異) 세계에.”
“―!”
“뭐, 특정 취미를 가진 이들한테는 정말 즐겁고 재밌게 들릴지 모르는 이야기지만 내가 겪은 이(異) 세계는 저주 그 자체였어. 문화와 언어, 생김새가 다른 그 세계에서 이방인으로서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은 지옥 그 자체였지. 그곳에서 일평생을 살았어.”
점점 놀라운 이야기였다.
“무려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었어. 환상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길고 생생한 시간이었지. 그렇게 겨우 그곳에 적응하여 살아갈 시점에 이곳 현실로 돌아왔다. 이곳 현실에선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지.”
“…….”
세아는 놀라운 이야기에 말을 잊었다. 아니, 만약 그동안 시우의 활약을 보지 못했다면 분명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 듯 허공을 맴도는 그녀의 눈빛이 빌리언트와 마주쳤다.
빌리언트는 무언가 일을 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내 근원이고 나의 정체야.”
“그럼…… 지금 100살이 넘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야. 돌아왔을 땐, 젊은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길 갑자기.”
“방금 전, 내가 이(異) 세계에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내게 위협이 되었던 몬스터를 봤거든.”
“그럼―!”
“그래, 그 고블린은 내가 겪은 이(異) 세계에서 온 몬스터가 분명해.”
“그게 뜻하는 바가 뭐죠?”
세아는 자신의 머릿속에 부유하는 예측들을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일을 하던 빌리언트가 말했다.
“두 세계 간에 생겨선 안 될 통로가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서울 사람들이 이(異) 세계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인가요?”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
세아의 머리가 멍―해졌다. 이건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통로를 막고 그들을 되돌려 놓아야 하는 건가요? 그게 가능한 건가요?”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 가의 문제가 아니야.”
“네?”
“아까 내가 이야기했지? 이(異) 세계에서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돌아왔을 땐 몇 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그럼…….”
“나는 그때까지 살아있었기 때문에 원상태로 복구가 되었던 거겠지. 하지만 이(異) 세계에서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일이 모두 끝나고 되돌려 졌을 때, 그들이 이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평소 감정을 잘 숨기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었다.